죄송합니다-22회 자료 분실
2007년 7월 15일 월요일
여행 18일째 체코 필젠~프라하
눈을 뜨니 호수가 환히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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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는 호수가 앞에 텐트를 친 것이다.
왠지 시작이 좋은 하루다! 좋은일이 생길것같군하! ^_____^
어제 쇼핑으로 떨어진 쌀을 채워 넣었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진짜 개맛대가리 없다는 타이 쌀이었다.
(아쉽게도 그것밖에 없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통통하게 살오른 쌀은 보이지 않았다)
타이쌀과 한국인들이 먹는 쌀 비교방법!
타이쌀은 일단 좀 깁니다.
얇고 길쭉~ 밥을 하면 전혀 뭉쳐지지않습니다.
흠... 태국의 볶음밥 생각하시면 조금 그럴듯하겠네요.
왠지 사천요리 하듯이 거센불에다가 기름넣고 쌀넣고 이것저것 넣고
냄비인지 후라이팬인지를 후딱 후딱 뒤집으면 밥도 파도를 치죠 ;;
쌀알이 한알한알 따로 노는 바로 그러한 쌀이 타이쌀에 해당하겠습니다.
한국쌀은 알다시피, 럭비공 모양이죠.
뭔가 통통한 느낌이 납니다. 밥을 해놓으면 어느정도 찰기도 있구요.
이거 뭐 영 설명이 부실합니다만..
여튼 한국인이 먹기에 영 입맛에 안맞는다는건 확실합니다.
여튼 그날 아침 다들 그다지 식성이 활발하지 않았다.
나름 배추전 나부랭이도 구워먹고, 고기 조림도 해먹고 거룩하게 차린듯 했지만,
날씨는 덥지, 쌀은 세상에서 제일 맛없지, 배추는 구웠지만 살아숨쉬지...
결국 아침밥을 반이상 남긴 우리는,
아무래도 '더워서 입맛이 떨어진것같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앞으로는 아침식사는 시리얼을 먹기로 했다.
이 주변에서 쇼핑도 하고 환전도 할 겸 마트를 들렀다.
아! 망할! 대체 마트들이 왜이렇게 큰건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나는 마트를 아주 사랑한단 말이다.
마트에서 구경하고 있자면 강림하는 지름신이 들어왔다 나갔다 아주 내 혼을 쏙 빼놓는다.
어쨌든 우리는 그곳에서 시리얼과 과일을 사고 이것저것 둘러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접시만 썼다. 쌀밥도 접시에 담아먹고,
국은 그냥 한냄비에 정겹게 숟가락 나누며 먹었단 말이다.
그런데 이제부턴 시리얼과 우유가 필요한데, 접시에다 우유에 시리얼 부어먹을수 없잖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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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증맞은 플라스틱 그릇도 여섯개 샀다. 룰루랄라
또 마트를 구경하고 있자니... 덜덜덜
이번에는 스쿠버 도구들이 눈에 띄는것이 아닌가!!
때는 한여름! 미친듯이 더운 한여름!!!
더구나 오늘 아침에 밥에 더위말아먹은 우리들이 한눈에 반한 그 소품!! 스쿠버 도구!!!!!!!!
오빠들은 뭐, 이번에만 쓰고 버릴거~ 라며 100kr 짜리를 샀고,
나는 눈이 멀었는지 정신이 나갔는지 499kr 짜리를 질러버렸다!!!!
역시 화폐가 바뀌면 물가를 몸소 체험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이제 겨우 유로에 익숙해 졌더니
이놈의 크로나가 이번엔 머리속에서 '이왕사는거 좋은거 사~ 별로 비싸지도 않잖아~' 라고 소리쳤던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쇼핑을 하고 난뒤 아주 싼 가격의 아이스크림을 한손에씩 들고는 기쁜마음으로 달려나왔다.
짐을 차에 싣고 환전을 하기 위해서였다.
커헉!!!
마트 밖의 햇빛은 선글라스를 낀 사람의 눈을 심봉사 만들정도로 강렬한 햇살이었고,
그 햇살은 노출된 내 팔다리에서 왠지모를 고기타는 냄새가 느껴질만큼 강력하게 뜨거웠으며,
그 더위는 지금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있는지 두부를 핥아먹는지 구분이 안갈만큼 더웠다.
그래 나도안다 -_- ;;
과장이 좀 심하긴 하다.
여하튼
내품에 안겨진 스쿠버 도구를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위로했다.
이따위 더위는 나로 하여금 지중해에 가기위한 동기부여일 뿐이야~~!!
지지않아!!
마트앞에 있는 경찰에게 물어보니 이 마트의 2층에 환전소가 있단다.
그 마트는 1층마트였고, 2층에 자그마하게 지어진 건물이 환전소인듯 했다.
마침 나와보니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우리는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나는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것을 알았다.
그 엘리베이터는 두꺼운 유리로 만들어진 엘리베이터였고, 난방시설은 전연 찾아볼 수 없다는걸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 불가마 들어갑니다~ "
그래, 난 지금 불가마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것이다....
고작 2층이다. 괜찮다.
아니 근데!!!!! 누가 엘리베이터를 위에서 끌어당기나??!?!?!!?
왜이렇게 느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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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30초도 걸리지 않은 그 시간동안 묵은지가 되었던 우리들은
엘리베이터문이 열리자 냉장고 안의 배추처럼 싱싱해졌다.
그 뜨거웠던 햇살이 오히려 반가웠다니.. 세상에 대체 저 엘리베이터의 정체는 뭐지 ;;;;;
무사히 환전을 한 후, 차를타자마자 에어콘을 틀어달라고 아우성을 쳤는데...
"에어콘이 안나와!!!"
"뭐라고???????????"
바보같은 우리들은 에어콘을 뒤집어놓고는 ㅈㄹ을 했던것이다. 아놔 ;;
도로를 달리는데 도로옆 커다란 전광판에 현재 온도를 표시해 놓는곳이 있었다.
39˚c
헉......
정말 지독한 날씨군..
아직 오전인데, 오후 넘어가면 진짜 사람 죽이겠다.
지독한 날씨에 우리는 이대로 바로 프라하로 달리기로 했다!
그동안 쌔리 오던 비가 갑자기 조금, 진짜 쬐끔 그리워졌다.
진짜 사람마음 간사하다는걸 새삼 느꼈다. ㅠㅠ
시원한 에어콘 바람을 맞으며 창밖을 바라보니
헐빈한 도로에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 푸른 색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붉은 땅들..
갑자기 멍하게 감상에 잠기기 시작했다.
내가 여행을 와서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매일, 캠핑장에서 텐트 펴고 걷고, 밥해서 밥먹고, 차타고 구경, 마트가서 장보고, 또 캠핑장에서 텐트 치고 밥...
갑자기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행온건 분명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목적이 가장 큰 것인데,
여행을 와서 내가 하고 있는것이 바로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심한 권태로움이 느껴졌다.
다른 무언가의 이유가 아니라, 바로 여행 자체에 권태로움을 느끼다니,
신나게 밥먹으러 달려가다 갑자기 밥이 없어진 느낌이다..;;;
푸조리스로 여행을 오기전에, 여행을 할 멤버를 구한다는 글을 카페에 남겼었는데
그때 여러사람들로 부터 전화가 왔었다.
그때 한 남자가 전화로 물어보는것이
"여행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어요?"라는 것이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나는 유적지를 중심으로 구경을 할거야!'
'나는 멋진 사진을 찍는걸 목표로 여행을 할거야!'
이런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이 막연한 권태를 느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내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이거야 말로, 따분한곳에서는 따분하고 어쩌다 좋은거 보면 좋은, 요행이 따라야만 즐거울 수 있는 여행이 아닌가..
왜 나는 여행의 목적을 뚜렷하게 정하지 않고 왔을까?
앗차차!
우리가 비넷을 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안했었군.
그렇다. 체코는 톨게이트라는 개념대신 비넷을 쓴다.
비넷은 국경 근처의 주유소 등에서 구입을 할 수 있다.
비넷을 사서 차량 앞유리에 붙여놓으면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데,
굳이 확인을 하는 경찰이나 톨게이트 같은 곳은 없다.
그걸 믿고 비넷을 사지 않았다가 고속도로에서 적발당할 경우 고액의 벌금이 당신을 쫓아올 것이다~~~!!!!!!!!!!!!
근데, 우리는 얼마 안하는 그 비넷값을 아껴본다는 취지하에 비넷을 사지 않았고,
덕분에 실컷 체코 시골동네를 구경하고,
조금만 큰 도로가 나오면 벌벌벌벌 떠는게 사시나무 저리가라 할만큼 떨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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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값진 경험인가
앞으로 누군가 체코 비넷값 아끼려고 안사신다하면...
정신 건강상 그냥 사라고 아낌없이 충고해드리고 싶다.
거 얼마 안하는거... 그냥 삽시다. (인융 니나 사라 퍽퍽-3)
그렇게 고속도로를 탔니 안탔니,
꺄악 소리를 질렀다가 벌벌떨었다가 마음놓기를 수십차례 반복하고나니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프라하에 도착했다!!
프라하 외곽 지역의 캠핑장에 체크인을 하고 캠핑 준비를 하고, 프라하의 야경으로 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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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노선과 주황노선이 만나는 곳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가면 프라하성이 가장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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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지하철은 자동문이 아니다
버튼을 눌려야 정거장에서 문이 열린다
그 캠핑장에서 약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지하철역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차를 몰고 지하철 역으로 갔다.
다행히 그곳에 주차하는 곳이 있었다. 주차요금도 싸서 부담없이 지하철로 향했다.
프라하의 지하철은 복잡하지 않아 어렵지 않게 프라하의 시내로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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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문 사이로 멀리 보이는 프라하성.. 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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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성.. 정말 말못할 정도로 아름답다!
강가에 비친 조명들 또한 분위기가 묘하다.
강이 있고, 강넘어 저멀리 언덕끝에 그 유명한 프라하성이 조명을 받으며 웅장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강주변으로는 노천식당이 줄지어있어, 은은한 조명아래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카렐교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성의 야경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고 카렐교로 갔다.
그곳엔 엄청난 인파들이 몰려있었는데 약 30%의 사람들이 한국인일 정도로 한국인이 많았다 ;;
여기저기서 어디서나 한국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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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이 바로 카렐교!
그런데, 그사람들은 전부 다 친구들 같았고 우리만 왠지 이방인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배낭족들은 다음목적지가 같다면 부담없이 함께 다음여정을 기약할 수 있지만,
우리는 설령 배낭족들과 함께 다니고싶다 하더라도 여행의 방법이 너무 달라 무리수가 있다.
교통편도, 숙박도, 식사도 모두 달랐다. 왠지 조금 진~~짜 조금 소외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바로 소수의 서러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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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교 입구쪽에서 두여자가 멋진 공연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여자는 키보드로 연주하고, 한 여자는 그 연주에 맞추어 '아베마리아'를 불렀다.
세상에,,,,
나는 다시 멍해지기 시작했다.
로맨틱하기 짝이 없는 도시, 체코 프라하...
이곳에서 이렇게 멋진 음악과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니..
갑자기 여행의 목적을 잃은 나의 모습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목적? 그런것따윈 없다.
그냥 별로인곳은 내 취향이 아닌것이고, 좋은곳은 요행이다.
여행이란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좋을수 없다.
내가 텐트를 치고 밥을 하고 차를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요행을 위한 준비이다.
오늘 날씨가 그렇게 더웠던것은 언젠가는 뛰어들 지중해 바다를 위한 것이고,
내 여행에서 일상이 된 부분은 바로 이러한 좋은 순간을 위한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난 이 세상 최고의 낙관 주의자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