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All roads lead to Rome.”
막상 로마를 찾아보니, 길들이 좁았다. 자동차와 사람이 같이 이용하는 골목길이 많았다. 세상의 모든 길이 이탈리아 로마로 통한다고 말한 이는 17세기 프랑스 작가 라 퐁텐이었다.
라퐁텐이 말한 ‘길’은 로마와 점령지를 잇는 도로다. 기원전 8세기에 라틴민족이 세운 도시국가 로마는 이후 급속하게 영토를 확대해 지중해를 에워싸는 대제국으로 발전했다. 큰 역할을 수행한 것은 당연히 군대였다.
로마군에는 공병대도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점령지와 로마를 잇는 도로를 만드는 일이었다. 공병대가 닦은 길은 정말 견고했다. 지면을 1~2m 파내려가 모래를 깔고 다졌다. 그 위에 30cm 정도의 자갈을 깔았는데, 모르타르로 접합되어 자갈엔 틈새가 없었다. 그 위에 다시 자갈과 모래를 깔았고, 끝으로 크고 평평한 돌을 깔았다. 로마 골목길에 잇달아 깔린 약 10cm 장방형의 돌들은 여전히 짱짱하다. 이렇게 닦은 길의 전체 길이가 8만 5,000km에 이른다. 지구를 2바퀴 돌고도 남는 길이다.
로마 시내에는 현지 사람들이 ‘뜨리덴트trident’라 부르는 삼각형 모양의 도로가 뻗어 있다(이탈리아 사람들은 알파벳 ‘p, t’를 ‘쁘, 뜨’로 발음한다. 이 기사에서는 국내의 외래어표기법과 달리 현지 발음을 기준으로 표기하겠다).
그 정점에 있는 곳이 바로 뽀뽈로 광장piazza Popolo이다. 한가운데 서있는 오벨리스크는 3,000년 전의 것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대전차 경기장을 장식하기 위해 이집트로부터 공수한 탑이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63~AD 14가 누군가. 카이사르가 공화파 귀족들에게 암살당한 후 공개된 유언장에서 그가 지목한 정치적 후원자는 채 20세가 되지 않은 옥타비아누스였다. 그는 결국 로마의 전권을 장악하고 제정로마시대를 여는 초대 황제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존엄한 자를 뜻하는 아우구스투스로 불렸다. 서양 달력에 ‘8월August’로서 그 생애의 족적을 영원히 남기고 있다.
![흔적만 남은 고대 유적지 일부가 로마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an.chosun.com%2Fsite%2Fdata%2Fimg_dir%2F2017%2F08%2F16%2F2017081601514_1.jpg)
![포로 로마노 유적지를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an.chosun.com%2Fsite%2Fdata%2Fimg_dir%2F2017%2F08%2F16%2F2017081601514_2.jpg)
아우구스투스 이후 로마는 200년간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평화를 구가했다. 이집트로부터 오벨리스크를 뽑아 옮기는 것쯤은 그에겐 일도 아니었다. 과거 교황청의 스페인 대사관이 위치해 있었기에 지금도 ‘스페인광장Piazza di Spagna’이라 불리는 이곳은 전 세계에서 로마로 몰려온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명소다. 바로 고전 명작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1953)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헵번이 단박 세계적 명소로 만든 곳은 그 인근 뜨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다. 고대 로마는 100만 명 인구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14개의 고가 수로를 건설했다. 뜨레비분수가 놀라운 점은 그 웅장한 규모의 거대 분수가 골목 어귀 하나를 돌면 일반 건물들 사이에서 갑자기 그 모습을 펼친다는 데 있다. 더구나 건물의 한쪽 벽면을 그대로 이용해서 만든 분수다.
관광객들은 로마에 다시 오기를 바라거나(첫 번째 동전), 평생의 연인을 만나기를 기원하면서(두 번째), 또 누구는 이혼을 바라며(세 번째) 분수에 연신 동전을 던지기 바쁘지만, 사실 뜨레비분수는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한 시기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장소다.
비단 이 분수만이 아니라 로마의 건축물과 조형물을 충분히 감상하려면 기본적으로 바로크baroque 양식에 대해 알아야 한다. 프랑스어 ‘바로크’의 원어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이베리아 말(지금의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다. 르네상스 전성기가 지난 16세기 말부터 17세기까지 유럽 건축미술의 한 특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뜨레비분수가 일반 건물들 사이에 웅장하게](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an.chosun.com%2Fsite%2Fdata%2Fimg_dir%2F2017%2F08%2F16%2F2017081601514_3.jpg)
![독립기념관에서 바라본 로마 시내 모습.](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an.chosun.com%2Fsite%2Fdata%2Fimg_dir%2F2017%2F08%2F16%2F2017081601514_4.jpg)
가령 음악 분야의 경우, 규모의 대형화와 웅대함, 극적인 작품으로의 변화 등이 특징으로 파이프 오르간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대규모의 합창이 강조되었다. 그래서도 로마 시내의 큰 성당에는 어김없이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돼 있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비발디(이탈리아), 바흐와 헨델(독일).
한마디로,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인 질서와 균형, 조화와 논리성과 달리 우연과 자유분방함, 기괴한 양상 등이 강조된 예술양식이다. 건축의 경우, 건물의 뼈대보다는 표면의 장식에 큰 비중을 두는 것이 바로크 예술이다.
그러나 바로크의 본령은 인간 육체의 감각이 맛볼 수 있는 최대의 황홀경과 환희 또는 반대로 인간의 육신이 겪게 되는 고통을 부정하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바로크는 바로 그 환희와 고통 속에서 영혼이 비상할 수 있기를 꿈꾼다.
뜨레비분수를 장식하고 있는 바다의 신 넵투누스Neptunus(포세이돈)와 뜨리톤Triton, 해마海馬의 조각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바로크가 표방하는 세계를 금방 알 수 있다.
![로마의 성당에는 천장화 감상을 위한 거울이 비치되기도 한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an.chosun.com%2Fsite%2Fdata%2Fimg_dir%2F2017%2F08%2F16%2F2017081601514_5.jpg)
![미켈란젤로가 ‘천상의 설계’라고 극찬한 빤떼온이 일반 건물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an.chosun.com%2Fsite%2Fdata%2Fimg_dir%2F2017%2F08%2F16%2F2017081601514_6.jpg)
르네상스 양식의 극치 베드로 성당
가톨릭의 총본산이자 전 세계 가톨릭 신도의 정신적 구심점인 바띠깐 시국市國, Citta del Vaticano. 교황의 본거지이자 인구 1,000명 정도의 세계에서 제일 작은 나라인 이곳을 빼놓고 로마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띠깐박물관Musei Vaticani과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Pietro로 대표되는 바띠깐 시국 얘기를 자세히 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스토리가 되고 말 것이다. 단상斷想 몇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고대 이집트 유물에서부터 르네상스의 걸작까지 망라하고 있는 바띠깐박물관의 입구에는 거대한 대리석 문이 있다. 그 문 위쪽에 두 인물, 라파엘로Raffaello(1483~1520)와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1564)를 확인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세계 가톨릭계의 상징적 건물에, 특정 예술가와 그들의 바띠깐 시국에 대한 공헌을 기리고 있는 조형물을 보며 이탈리아의 문화적 저변과 이탈리아인들의 깊은 예술 애호를 절감한다.
길이 21m, 천장 높이 45.4m로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베드로 성당 내부는 ‘위압’ 그 자체였다.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예수의 수제자이자 초대 교황이었던 성 베드로가 묻힌 이곳에 326년 처음 세웠던 이 성당은 교황에 의해 1506년부터 120년 동안 당대 최고 건축가들의 손을 거쳐 1626년 지금의 모양대로 완성되었다.
교회와 성직자의 축재蓄財를 위해 ‘면죄부免罪符’를 파는 등 막대한 돈과 인력이 투입된 이 성당의 위용을 직접 목도한 마르틴 루터가 1517년 비텐베르크대학 궁정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건 역사의 필연이었다.
한 번에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폭 240m의 ‘압도적’ 열쇠 형상(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부여한 천국문의 열쇠로, 가톨릭의 교권을 상징)의 성 베드로 광장Piazza San Pietro을 바라보며 루터를 다시 생각한다.
당대의 건축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G. L. Vernini의 숭고미崇高美, the sublime를 향한 12년에 걸친 혈투와 별개로, “교황은 어떤 죄도 사赦할 수 없다”면서 교황의 권위가 절대적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루터의 글은 참으로 ‘인간 정신’의 위대성을 보여 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한 인물의 천재성을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는 씨스띠나예배당Capella Sistina의 불후작不朽作 ‘천지 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 주는 한 예이다. 성 베드로 성당 개축에 일생을 바친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는 교황의 씨스띠나예배당의 장식 요청에 자신이 총애하는 라파엘로 대신 무척 사이가 안 좋았던 미켈란젤로를 추천했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800㎡나 되는 광대한 공간을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으로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순전히 혼자 힘으로 인류 예술사에 획을 그은 걸작들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예수를 기존의 수염 난 얼굴이 아닌 아름다운 육체의 청년으로 묘사하는 파격까지 보였다. 성화聖畫의 인물을 모두 나체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루터파라는 의심을 받아 종교재판을 받을 뻔하기도 했다.
![남부 시칠리아에서 로마 구경 왔다는 한 가족이 간이 점심을 때우며 파안대소하고 있다. / 5 즉석에서 석류](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an.chosun.com%2Fsite%2Fdata%2Fimg_dir%2F2017%2F08%2F16%2F2017081601514_7.jpg)
![이탈리아에 처음으로 1980년대 문을 연 맥도날드 매장. 이때 본격적인](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an.chosun.com%2Fsite%2Fdata%2Fimg_dir%2F2017%2F08%2F16%2F2017081601514_8.jpg)
스페인광장 바로 앞에는 꼰도띠 거리Via di Condotti가 있다. 유럽에서도 이름 난 명품 쇼핑거리다. 필자가 로마를 찾은 7월 초에는 이 거리의 상점마다 ‘Tutto Saldi’(whole sale)라 붙여 놓았다. 이탈리아에서는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 대규모 세일 기간을 갖는다.
이 세일에 맞춰 이탈리아 전역에서 쇼핑객들이 몰리고, 이 기간 중에 꼰도띠 거리는 행인과 쇼핑객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로마가 속해 있는 라치오주州는 7월 1일에 빅 세일을 시작해 한 달 동안 지속된다. 2~3일이면 주요 물품이 다 팔려나가지만, 날짜가 지날수록 할인 폭이 커지기에 쇼핑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1년 내내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빅 세일 기간에 점찍어둔 명품 구입하는 맛에 산다”는 이탈리아 젊은 층이 적지 않다.
우리한테는 그냥 ‘이태리 명품’이지만, 브랜드 별로 근거지가 모두 다르고 그에 따라 취향도 차이가 있다. “여성이라면 인생에 한 번쯤은 입어보고 싶어 할 드레스”를 만든다는 발렌티노Valentino와 가죽제품·신발에 강한 펜디Fendi가 이곳 로마에서 시작한 브랜드라면, 옷에서부터 향수까지 커버하는 프라다Prada와 관능적인 트렌드를 선도한 베르사체Versace는 패션의 도시 밀라노가 베이스다.
이른바 ‘선線의 순수함’을 추구한다는 정장 전문 아르마니Armani 또한 밀라노 베네찌아Venezia 거리에서 설립됐다. 시계와 주얼리에서 강한 구찌Cucci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주의 피렌쩨에서 출발한 명품 브랜드다.
꼰도띠 거리 인근을 돌아다니다 보면 세계 패션의 중심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디자인 로열티를 생산해내는 이탈리아의 진면모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로맨틱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2010)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는 무엇보다도 ‘먹어야’ 한다. “이탈리아에서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발리에서 자유롭게 사랑하는 행복한 인생”을 꿈꾼다면 말이다.
세계인이 즐겨 먹는 피자와 스파게티의 원조국 이탈리아의 음식 이야기를 풀어놓기엔 지면이 태부족하므로 한국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탈리아에서만 찾아볼 수 없는 것?”이란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스타벅스다. 미식가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는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들고 다니며 식혀 마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이탈리아 각 도시, 매 골목마다 노천카페 없는 곳이 없다. 거기에 앉아 “우노 까페Uno caffe(영어로 ‘A cup of coffee’)”라고 주문하면 나오는 게 앙증맞은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다. 진한 에스프레소를 그냥 들이키는 한국인이 적지 않은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함께 내오는 설탕 한 봉지를 통째로 넣어 마신다. 그대로 먹다간 “(독한 커피를 들이붓다니) 너 뭔 일 있느냐?”는 소리를 듣는다.
이탈리아는 커피를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로스팅 기술이 발달한 덕에 세계 3대 원두커피 제조업체, 일리Illy·라바짜Lavazza·킴보Kimbo를 모두 갖고 있다.
이탈리아 음식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메뉴판에서 바다를 뜻하는 ‘마레mare’라는 단어가 들어간 해산물요리를 시키면 의의로 심심한 그 맛에 한국인들은 실망을 느끼기 십상이다.
하지만 몇몇 이탈리아 음식은 짜다.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얇게 썬 상태로 주로 멜론과 같이 첫 번째 코스 요리로 제공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햄 쁘로슈또prosciutto Ham, 소고기·돼지고기를 염장鹽藏, 훈제시켜 건조한 살루미Salumi가 모두 그렇다. 이는 조리과정에서 설탕을 넣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탈리아 음식은 상당히 ‘꼬리꼬리’ 하다. 양젖으로 만드는 이탈리아 대표 치즈 뻬꼬리노pecorino는 지방함량이 40%나 된다. 진하고 자극적인 맛과 향은 익숙해지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탈리아를 방문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스파게티 까르보나라carbonara를 주문할 때 조심해야 한다. 한국 파스타 집에서는 봉골레Vongole(이탈리아어로 ‘모시조개’)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지만, 이탈리아 본토의 까르보나라는 노린내가 진동한다. 삼겹살·달걀 노른자·뻬꼬리노 치즈·후추, 단 4가지 재료만을 사용해 만들며, 마치 우리네 짜장면처럼 국물 없이 비벼먹는 게 현지 방식이다.
이탈리아인들은 부족한 설탕을 ‘돌체dolce’(영어로 sweet)라 부르는 디저트를 통해 보충한다. 특히 아이스크림 젤라또gelato, 치즈와 크림을 섞은 카스텔라 과자 띠라미수tiramisu를 즐긴다.
참고로, 피자가 땡기면 ‘Pizzeria’라 쓰인 간판을 열심히 찾으면 된다. ‘Piazza’(영어로 ‘square’, 광장)라는 안내판 쫓아가봤자 길거리만 뱅뱅 돌게 될 뿐이다.
![빤떼온 천장에 뚫려 있는 지름 9m 구멍](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an.chosun.com%2Fsite%2Fdata%2Fimg_dir%2F2017%2F08%2F16%2F2017081601514_9.jpg)
허기도 채웠으니 로마의 명소를 한 군데 더 들러보자.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설계’라 극찬했을 만큼 완벽함을 자랑하는 로마 건축의 백미 빤떼온Pantheon이다. ‘모든 신의 신전神殿’을 의미하는 이곳은 기원전 27년에 처음 세워졌고 큰 불을 겪은 뒤 서기 125년에 재건됐다.
이 건물의 경이로움은 높이 43.2m의 건물 안에 기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반원형의 지붕과 아치의 원리를 이용, 오직 벽만으로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 돔은 건물 전체 높이의 정확히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내부 원의 지름과 천장의 높이는 똑같이 43.2m로 균형을 이룬다. 돔 가운데 뚫린 지름 9m의 둥근 구멍 오쿨루스oculus를 통한 자연 채광만으로도 조명이 가능하다.
빤떼온은 여타 로마 시내 건물들과 달리 대리석 아닌 화강암으로 지어졌다. 이탈리아에 질 좋은 대리석은 많아도 화강암은 태부족한데, 로마제국의 절정기인 ‘5현제 시대’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빤떼온 재건을 위해 이집트에서 화강암을 공수했다.
이곳에서 만난 젊은 독일 관광객 호프만 부부는 “1,900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거의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면서 “정말 경이로운 건축물”이라고 놀라워했다.
로마의 상징물인 꼴로쎄움Colosseo에 대해선 생략하겠다.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육체에 깃든다”는 말로 유명한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D. J. Juvenalis의 풍자적 표현을 빌어, 로마 시민들을 상대로 ‘빵과 서커스Bread and circuses’를 실현한 공간치고는 기하학적으로 너무 아름다웠다는 말만 기록하고자 한다.
‘로마’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로마는 그리스에서 태어난 서양 정신문화의 싹을 로마제국이라는 방대한 영토에 널리 옮겨 심어 온 유럽에 골고루 퍼지게 한 전달자이자, 서양 문명을 그리스-로마적으로 통일시켜 ‘하나의 세계One World’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유럽에 심은 곳이다.
미국이 대통령제를 발명한 나라라면, 로마는 아테네와 더불어 인류 최고最古이자 지고至高의 정치체제인 공화정共和政을 만들어낸 나라다. 현재의 유럽연합EU은 로마가 체계화한 공화정과 ‘One World’의 결합이 아니던가.
사실 모든 길은 굳이 로마가 아니라 서로 통한다. 하지만, 서양문명의 근원에 이르는 길은 반드시 로마로 통한다. 이미 2,500년 전에 인간사회 제도문명의 기본 틀을 구축해 놓은 로마가 2017년 7월 섭씨 33도 무더위에 헐떡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