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의 입체적 표현과 발상
혜관(慧觀) 이상태
무릇 시의 평론에 임하는 접근방법에 있어서 작가론이나 역사적 사관에 기저를 둔 평론 관점은 따로 하기로 하고, 표현방법에 준거를 둔 작품론에 대하여 논의를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자세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한국 문단의 본질적인 과제로 영원할 것이란 전제 하에서 문학 창작의 출발이자 종착인 작품 그 자체의 표현에 관한 논의의 관점에서 논고를 시작하고자 한다.
문학에서 하나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하여 조립하는 식의 작품 창작법이거나 [심상]을 따라가는 식의 표현방법을 구사하거나 단지 주된 심상은 독자의 몫으로 두는 소재의 [이미지]를 표현해 가는 데 중점을 두는 창작방법을 사용하든 간에 표현방법에는 다양한 상황자체의 감각적 접목이나 대상물이 자리하고 있는 공간에서의 총체적 연계성을 빌어서 상황을 표현하거나 아니면 구체적 사건을 구상하여 그 이야기의 심상을 [접목]하여 표현하는 방안 등이 있을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의 입체적 표현을 구가하는 발상은 1차원은 한 점, 2차원은 점이 모인 선과 선이 만나는 면적, 3차원은 면적에 높이를 더한 공간, 4차원적인 공간에 시간을 통합한 차원적인 의미를 부여하였을 때, 평면적 표현으로 사물의 단면만 표현하거나 상투적인 일상을 표현하여 창의적이거나 독창적인 표현법이나 발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차원적인 심상을 사물이나 형상에 함수관계로 비유하기는 어렵겠으나. 지금 우리가 현존하는 곳은 3차원의 세계이고 만약에 타임머신이 있다면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4차원의 세계로 갈 수 있고 과거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생활 속의 4차원은 3차원에 새로운 시간적. 공간적 개념의 축이 추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4차원에 시간의 축 대신 공간의 축이 합쳐져 있다면 공간은 아마도 휘어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생활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덩굴이 있다. 덩굴의 모양을 보면 계속 휘어 올라가는데 이를 밀폐된 공간에 넣으면 바로 4차원을 보고 있는 것이다.
면보다 한 차원 높은 3차원에서는 공간내의 이동이 자유롭다. 그러나 시간의 이동은 불가능하여 시간이 축으로써 존재하는 공간은 시간을 넘어 다닐 수 있을 것이고 심상은 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는 4차원의 세계를 뛰어 넘나들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에 근접하여 지면 관계로 일반작가 시평을 받은 사람 등의 작품은 제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작가별로 작품에 대한 시평을 약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