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위도우 (Merry Widow)
1934년 미국영화
감독 : 에른스트 루비치
출연 : 모리스 슈발리에, 자넷 맥도날드, 에드워드 에버렛 호튼
우나 메르켈, 조지 바리에
아카데미 미술상 수상
에른스트 루비치는 무성영화 시대부터 유성영화 초기인 1940년대까지 코미디 장르 영화에서 가장 두각을 보여준 명감독입니다. 이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는 프리츠 랑과 마찬가지로 독일 출신입니다. 프리츠 랑 보다 10여년 일찍 미국에 망명하여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의 루비치 식 코미디가 미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1920년대-40년대 미국 코미디 영화는 에른스트 루비치식의 낭만주의 코미디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30-40년대 코미디 장르로 인기를 모은 스크루볼 코미디와는 또 다른 그만의 방식의 낭만적 코미디였습니다.
게리 쿠퍼, 제임스 스튜어트, 샤를르 보와이에, 그레타 가브로, 마를레네 디트리히, 클로데트 콜베르 등 여러 명배우들이 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감독과 가장 잘 어울렸던 배우는 바로 모리스 슈발리에와 자넷 맥도날드 콤비입니다. 둘은 비슷한 시대의 캐리 그랜트, 캐서린 헵번의 스크루볼 코미디 콤비와 비견될만한 명콤비를 이루었고, 조금 더 빨리 등장했습니다. 두 커플은 본인들의 이력을 에른스트 루비치의 영화들을 통해서 빛냈고, 감독 역시 배우가 출연한 영화에서 두각을 보이면서 할리우드 유성영화 초기에 굳건히 자리를 굳혀갔습니다.
능청스러운 플레이 보이 연기를 보여준
모리스 슈발리에
역시 재미난 연기와 노래를 보여준
자넷 맥도날드
베일을 쓴 과부의 외모가 궁금하여
작업을 걸지만....
노래실력과 연기가 모두 출중했던
자넷 맥도날드
우스광스런 캐릭터로 설정된 왕과 왕비
모리스 슈발리에 하면 우리나라 고전영화 팬들에게 '지지' '하오의 연정' '캉캉' '화니' 등 50-60년대 코미디의 비중있는 조연배우로 유쾌하고 능청스런 노인으로 많이 연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까지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으로 맹활약한 인물입니다.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프랑스 태생이지만 1차대전 당시 독일 포로수용소에 있을때 영어를 배운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근사한 목소리가 장점인 그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오는 20년대 후반, 목소리 연기를 하기 위해 미국에서 영화출연을 했고, 에른스트 루비치의 작품들로 인기를 누렸습니다. 40세가 다 되어서 인기배우가 된 대기만성형 배우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해외파인 에른스트 루비치와 모리스 슈발리에가 미국의 자넷 맥도날드와 함께 좋은 콤비를 이룬건 서로의 경력에 모두 도움이 될 절묘한 만남이었습니다.
자넷 맥도날드는 에른스트 루비치의 '러브 퍼레이드'로 데뷔했고, 이 영화에서 모리스 슈발리에와 공연했습니다. '메리 위도우'는 5년뒤인 1934년에 만들어졌고, 프랑스 버전과 미국버전이 동시에 제작되었습니다. 제가 본 것은 미국버전인데 영화의 배경은 가상의 국가와 낭만의 도시 파리입니다.
프랑스 클럽에서 유명한 캉캉 춤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미소를 짓는 바람둥이 다닐로
다닐로와 소냐는 사랑에 빠질듯 하지만....
1885년, 가상의 국가 마쇼비아에서 시작됩니다. 루마니아 북부의 서울정도 크기의 작은 왕국으로 설정되었지요. 그곳 왕실의 군인인 다닐로 대위(모리스 슈발리에)는 천하의 호색한으로 모든 여자들에게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새로운 사냥감으로 지목한 여인은 마쇼비아 최고의 부자이자 젊은 과부인 소냐(자넷 맥도날드), 늘 검은 상복과 검은 베일로 가린 얼굴 때문에 그녀의 외모가 무척 궁금했던 다닐로는 몰래 담을 넘어가 소냐와 마주치고 작업을 걸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합니다. 퇴짜를 놓긴 했지만 소냐는 다닐로의 입담과 매력에 넘어가서 그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정숙한 미망인 역할에 싫증난 그녀는 파리로 장기 여행을 떠나는데 이를 알게 된 왕실은 발칵 뒤집힙니다. 거의 나라 재산의 절반을 가진 그녀가 아예 파리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국가재정이 파탄나고 폭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 왕은 잘생긴 남자를 파리로 보내 소냐를 꼬시게 해서 데려오는 계획을 세우고 그 대상자로 왕비와 밀회를 즐기다 들킨 다닐로를 지명합니다. 국가의 1급 기밀인 소냐 꼬셔오기 어명을 받게 된 다닐로, 실패할 경우 감옥에 가야 합니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임무는 나중으로 미루고 단골 클럽에 가서 그를 숭배하는 클럽 쇼걸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습니다. 다닐로가 파리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냐는 그가 클럽에 갔다는 정보를 듣고 자신도 그곳에 갔다가 다닐로에게 접대부로 오해를 받고 피피라는 거짓 이름을 댑니다. 새로운 아가씨인줄 알고 꼬시려는 다닐로, 다닐로의 애정공세에 잠시 행복할뻔한 소냐는 다닐로의 방탕한 여성편력에 실망하여 클럽을 떠납니다. 다음날 다닐로는 프랑스 주재 마쇼비아 대사의 주선으로 소냐를 소개 받고 그녀가 피피였다는 걸 알게 됩니다. 하지만 소냐는 전날 다닐로에게 실망한데다 그가 왕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척 했다고 생각하고 실망합니다. 결국 소냐를 꼬시는데 실패한 다닐로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는데....
너무 재미난 코미디 영화입니다. 모리스 슈발리에의 너무나 능청맞은 호색한 연기는 정말 배꼽을 잡게 하죠. 아마도 유성영화 시대 원조 플레이 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근사한 목소리로 대화와 노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오히려 외국인 억양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자넷 맥도날드와의 밀고 당기는 로맨스가 볼만한데 천하의 플레이 보이가 진짜 사랑을 하게 되어 임무수행 보다는 당당히 체포되는 것을 택한 상남자 같은 행동도 합니다.
국가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술에 쩔어버린 다닐로
어렵게 다닐로와 소냐의 만남을 주재한 대사
하지만 이미 두 사람은 구면이었다.
계획적인 접근임을 알고 실망한 소냐
아주 엉뚱한 해피엔딩 내용
베일을 쓴 소냐를 꼬시기 위해서 그러싸한 대사를 늘어놓는 초반부 장면도 재미있고, 파리의 유흥클럽에 와서 많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다른 남성들의 부러움을 사며 행복하게 노래하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이런 플레이보이가 돈 많은 과부에게 진짜로 순정을 느끼고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해피엔딩입니다.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코미디이고 남성판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죠. 세상 모든 여자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남자가 그런 쾌락을 버리고 한 여자를 진지하게 사랑하게 되는데 그녀가 국가 최고의 부자이자 미모의 미망인인 것입니다.
뮤지컬 형식을 도입했기 때문에 노래하는 장면이 몇 번 등장하는데 할리우드 정통 뮤지컬 같은 형식은 아니고 모리스 슈발리에와 자넷 맥도날드가 몇 번 독창을 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두 배우가 척척 콤비가 잘 맞고 아주 능청스런 연기를 보여주는 모리스 슈발리에의 근사한 호색한 캐릭터가 볼만합니다.
이 영화만으로도 에른스트 루비치, 모리스 슈발리에, 자넷 맥도날드 세 명이 콤비를 이룬 작품에 대한 위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영화 이후로 모리스 슈발리에는 주로 프랑스 영화에 출연하게 되어 자넷 맥도날드와 다시 공연하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1929년부터 1935년까지 좋은 콤비로 몇 편의 영화에서 활동했고, 1930년대 미국 코미디 영화는 '스크루볼 코미디'와 '에른스트 루비치의 낭만코미디' 둘로 구분되어도 무방할 정도로 에른스트 루비치의 그 시대 코미디 영화에 대한 영향력과 상징성은 높았습니다.
ps1 : 모리스 슈발리에는 1차 대전에서 독일 포로가 되는 불운이 오히려 행운이 된 특별한 인물입니다. 거기서 같은 포로들에게 영어를 배운게 나중에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더구나 곡예사로 일하다 다쳐서 그만두게 되면서 오히려 배우로 크게 성공한 것이죠. 하지만 2차 대전이 다시 터지면서 파리함락이 되고 독일군에 협력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면서 거의 10여년 경력이 단절됩니다. 그럼에도 거의 70세가 되어서 다시 할리우드에서 조연배우로 제 2 인생을 살게 되고 '하오의 연정' '지지' '화니' '캉캉' 같은 작품은 남긴 것이죠.
ps2 ; 왕과 왕비 캐릭터가 진지하지 않고 매우 코믹합니다. 파리주재 마쇼비아 대사로 출연한 에드워드 에버렛 호튼의 연기도 재미있는데 이 배우는 같은 감독의 '푸른 수염의 8번째 부인' 에서 클레대트 콜베르의 아버지 역할로도 재미난 연기를 보였지요.
ps3 : 유성영화시대가 되면서 목소리가 좋은 배우들에게 좋은 기회가 온 셈인데 게리 쿠퍼, 모리스 슈발리에 같은 배우가 딱 자기 시대를 만는 셈이었죠. 특히 모리스 슈발리에는 무성영화 시대에는 두드러진 활동을 못했는데 유성영화의 도래로 4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출처] 메리 위도우(Merry Widow, 34년) 모리스 슈발리에, 자넷 맥도날드 콤비가 일품|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