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야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불과 3·40년 전 까지만 해도 농사일이 한창인 들녘에는 어김없이 농기(農旗)가 펄럭이고 거침없이 퍼지는 풍물소리가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만드는 광경이 펼쳐지곤 했었다. 마을마다 농악단이 짜여 있었고, 이들의 연주는 일을 할 때는 노동의 음악으로, 풍년이 들면 축제의 음악으로, 마을 굿을 할 때에는 종교의 음악으로, 전장에서는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는 군악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어느 마을에서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수시로 풍물소리를 접할 수 있었지만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시대의 외면 속에서도 ‘우리 것’을 지키고 보급하는데 앞장서 온 이들이 있다. 바로 감곡산울림풍물단(단장 피세분·회장 박수경·운영장 이종택)이다.
■ 우리 가락으로 지역의 위상 높이는
감곡산울림풍물단
감곡산울림풍물단은 감곡을 대표하는 풍물단으로 이미 음성군 내에서는 유명세를 타고 있는 풍물단인지라 설성문화제, 품바축제, 감곡복숭아꽃축제, 세시풍속 행사, 반기문마라톤대회, 효도잔치, 면민화합행사 등 각종 축제와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 초대 돼 공연하는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연주 실력과 연출력도 뛰어나 지난 2008년에는 충북민속예술제에 가재줄다리기로 참가해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경연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지역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물론 쉽게 얻어진 성과는 아니다. 정식 창단은 2002년이지만 감곡산울림풍물단의 역사는 199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들로만 조직돼 활동해 오던 풍물단이 주민자치센터에 풍물교실을 열면서 남성 회원들을 추가로 모집하고 전문가를 초빙해 1년 간 실력을 갈고 닦았다. 이후 지금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실력 있는 풍물단으로 자리 잡았다.
■ 뜨거운 열정을 가진 단원들,
하루의 피로도 풍물로 풀어
단원들의 풍물사랑은 연습실의 열기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왕장리에 위치한 풍물단 연습실은 단원들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언제 공연 일정이 잡힐지 모르니 평상시 연습을 게을리 할 수도 없지만 단원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탓에 요즘 같은 농번기에는 낮에는 일하랴 밤에는 연습하랴 몸이 2개라도 부족하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회원들의 열정이 너무 뜨겁다.
감곡은 지역 특성상 복숭아 재배 농가가 많다. 당연히 가장 바쁜 철이다. 해가 길어져 8시가 되어야 일손을 놓는 단원들은 부랴부랴 저녁식사를 마치고 9시나 되어야 연습실에 모여 소리를 맞춰본다. 신입 단원들을 위한 교육은 매주 수요일(오후 7시)에 있지만 기존 단원들은 목요일을 이용해 연습을 한다. 신명나게 풍물을 두드리다 보면 어느덧 시곗바늘은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하루의 피로가 온전히 쌓일 시간이건만 단원들의 얼굴은 오히려 생기로 넘친다. 이 시간을 위해 남들보다 하루를 더 일찍 준비하고 매 순간순간에 더 충실하다는 단원들이다.
■ 단원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배우자
감곡산울림풍물단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면 부부단원이 많다는 것일 게다. 처음부터 같이 시작한 단원부터 배우자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 배우기 시작한 단원까지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일도 함께 하고 취미활동도 함께 한다. 그래서인지 모여 앉은 40대에서 60대의 단원들을 보면 흡사 잔칫날을 맞은 대가족을 보는 듯하다. 10여 년을 함께 얼굴을 맞대고 소리를 맞춘 사이기도 하거니와 모든 행사를 부부동반으로 치르는 이들이고 보니 다시 보면 얼굴마저도 닮은꼴이다.
올 봄 역시 부부동반으로 다녀온 한라산 등반은 단원들을 더 가까이 엮어주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이 여세를 몰아 2, 3년 후에는 백두산을 오르는 것이 단원들의 꿈이기도 하다.
단원가족들 간의 왕래가 잦아지면 또 하나 좋은 점이 있다. 연습시간은 물론이요 경연에라도 참가할라 치면 시간을 많이 빼앗기지만 이런 때에도 배우자의 활동에 깊은 이해와 공감을 표시한다. 든든한 후원자인 셈이다.
■ 취미생활에서 사회적 책임으로
처음 취미로 풍물을 접했던 단원들은 요즘 들어 어깨가 더 무겁다. 단순히 우리의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 못지않게 익힌 것을 발전시키고 보급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행사 외에도 풍물단은 짬짬이 꽃동네나 노인복지시설 등지를 찾아 우리 가락을 전한다. 본디 온 몸에 흥이 배인 민족인지라 어디에서건 한 자락 장구 가락에도 어깨춤이 덩실덩실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단원들은 좀 더 많은 이들이 우리 것을 익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리하여 사람이 모이는 마을마다 역동적인 풍물 소리가 가득하고 한가득 모여든 마을 사람들의 짙은 머리 위로 새하얀 백지오리가 언뜻언뜻 굽이치는 모습을 가끔씩 상상하곤 한단다.
미·니·인·터·뷰
자신의 손끝에서 나는 소리가
그간의 땀에 보답해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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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세분 단장 |
감곡산울림풍물단 피세분 단장은 신입단원 교육뿐만 아니라 노인복지관과 관내 학교에서 오랫동안 풍물 지도를 해 왔다. 다른 이가 내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어울리도록 자기의 소리를 싣는 풍물의 매력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처음 풍물을 접하는 이들을 위해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부단히 노력할 것”을 당부하는 피 단장은 “자신의 손끝에서 나는 소리가 그간의 땀에 보답을 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신에게 바람이 있다면 단원들 가정의 행복과 건강이지만 덧붙여 이만큼 활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 준 남편 장태준 씨에게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표했다. 피 단장 부부 역시 풍물단에서 함께 활동하는 잉꼬부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