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식품 수출, 100억 달러 시대를 연다]
세계 식품 시장의 트렌드는 건강, 친환경, 유기농
사연 있는 식품이 세계를 지배한다
writing 안효승 aT(농수산물유통공사) 수출이사 hsahn07@kati.net
최근 세계 시장에서 곡물은 바이오에너지 원료화, 기상이변으로 인한 생산 감소 등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이 외에 식품과 관련하며 세계인이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식품의 안전 문제와 급증하고 있는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세계 시장의 유망 농수산식품도 이러한 트렌드를 고려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농식품 중 하나는 인삼이다. 삼국 시대부터 외국 교역물품이었던 인삼은 우리나라가 종주국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인삼제품 수출 대국은 인삼 한 뿌리 나지 않는 스위스다. 이 나라의 파마톤(Pharmaton, 현재는 베링거잉겔하임의 자회사) 사는 인삼 성분인 사포닌으로 ‘진사나(Ginsana)’라는 제품을 만들어 전 세계로 수억 달러어치를 수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 인삼제품 수출액이 1억 6천4백만 달러로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수출이 감소되다가 올해에 1억 달러를 회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인삼은 대단히 큰 수출 잠재력을 지닌 품목이다. 연구.개발(R&D) 기술을 이용해 고부가가치의 다양한 기능성 제품을 개발하고, 커피와 같이 누구나 쉽게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우선 국내 시장에서 반응을 살피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로 뻗어 나간다면 층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다.
인삼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김치는 그 유례가 드문 발효건강식품으로, 세계적인 건강 잡지인 미국의 <헬스>(Health)가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한 바 있다. 발효식품 김치에 들어 있는 항균, 항암, 비만 방지, 면역 활성화 등 다양하고 우수한 효능이 국내의 연구에 의해 밝혀지고 있지만 그것이 수출상품화로까지는 연결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우리나라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중국이 낮은 가격을 무기로 종주국인 우리나라 업무용 김치 수요의 대부분을 잠식했으며, 일본은 츠케모노(겉절이) 김치를 연간 30만 톤 생산하는 등 주변국들의 행보가 분주해지고 있다.
2003년 중국에서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생하였을 때 김치에 사스 예방효과가 있다고 하여 김치 구입이 크게 증가한 바 있다. 그 외에도 한국산 발효 김치의 우수한 효능에 대한 국내 연구가 많이 있지만 국제적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그러한 효능을 극대화해 상업화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R&D에 나서는 한편 세계적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김치 수출은 2004년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달성하였으나 다음해인 2005년 기생충 알 파동으로 수출이 급감한 후 아직까지 1억 달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김치의 경쟁력 확보와 세계화를 위한 소재 발굴이 필요하다.
국제당뇨병연맹(IDF)은 현재 전 세계 당뇨병 환자가 약 2억 4천6백만 명에 달하며 2025년에는 3억 8천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 7월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에서는 혈당 강화 기능성 ‘당조고추’ 개발 품평회가 있었다. 농진청 발표에 따르면 이 품종은 일반 고추와는 달리 완전히 익기 전 색깔이 연노랑이고 매운맛이 적어 파프리카처럼 생식이나 샐러드용으로 적합하다고 한다. 늘어나는 성인병 환자를 위한 병원의 환자식이나 가정의 식이조절용으로 사용하기에 제격인 식품이다. 그렇다면 이에 그치지 말고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보다 효능이 뛰어난 품종을 개발하여 ‘당조고추’의 잎이나 고추 열매를 재료로 한 ‘당뇨 예방 한국 김치’를 생산할 수 있다면 파마톤 사의 ‘진사나’ 이상의 수출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농수산식품도 남다른 구석이 있어야 팔린다
필자가 수년 전 동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근무할 때 킬리만자로 산기슭에 자리 잡은 장미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국회의원 부인인 케냐 출신의 농장주가 직접 농장을 운영하였는데 적도 바로 아래 해발 1천3백여 m의 고지대에 위치해 적도의 풍부한 햇볕은 그대로 이용하고 뜨거운 열대 기후는 피할 수 있는 절묘한 입지였다. 비옥한 킬리만자로 산의 토양 위에 지어진 비닐 온실에는 장미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농장주는 재배 기술은 선두주자인 이웃나라 케냐의 장미 수출 경험에서 배우고, 온실 자재는 이스라엘의 첨단 기술제품을 사용했다.
이른 아침에 수확한 장미꽃은 그날 밤 항공편으로 아루샤공항을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공항에 도착하면 곧바로 알스메르 꽃 경매 시장으로 보내지고 일주일 후에는 은행구좌로 대금이 입금된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강점을 외국의 노하우 도입, 첨단 자재 사용 등으로 극대화함으로써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기슭에서 키운 장미를 유럽 시장에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적절한 선택과 추진’의 논리가 적용된 한 예라고 하겠다.
상품의 고부가가치화, 고품질화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디자인이라고 하겠다. 유럽에서 근무할 때 이탈리아산 식초와 올리브기름을 산 적이 있다. 이탈리아의 ‘모데나’라는 작은 마을에서 만들어진 제품인데 최고급품은 예쁘게 디자인된 유리병에 담겨 있었고 뚜껑을 대신한 코르크 마개는 밀랍과 끈으로 봉인되어 한눈에 보기에도 제품에 신뢰가 갔다. 비록 가격이 일반 제품보다 세 배나 비쌌지만 고품질과 디자인이 잘 어우러져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우리도 품질을 고급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 걸맞게 포장, 용기 등 디자인에도 투자를 늘려 유사 제품과 차별화함으로써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즈음 세계적인 트렌드는 건강, 친환경, 유기농에 맞춰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수요를 높인다. 따라서 수출에 적합한 품목을 찾아내 생산에서 소비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신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몇 년 후 다가올 농수산식품 수출 100억 달러 시대에 대비한 제품의 상업화, 대규모화 역시 미룰 수 없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