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이는 자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를 않았다.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다가 급기야 영화나 보자고 텔레비젼을 틀었다. 마침 광고채널에서는 속옷 선전을 하고 있었다.
" 네. 너무 예쁘죠. 이건 단순히 속옷이 아니예요. 여자의 자존심이죠. 마치 크리스탈 같지 않아요. 이게 어떻게 속옷이라고 할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너무 아름답죠. 한셋트 한셋트 정성도 정성이지만 캐미칼 자수가 너무 고급스럽죠. 거기다가 여길 보시면 가슴이 빈약하시신 분도 자신감을 가질수 있게 에어패드를 드리거든요. 여러분 에어패드 아시죠. 이걸 보세요. 그냥 솜으로 만든거랑은 틀려요. 이건 웬만한 압력에도 끄떡이 없다니까요. 네에. 정말 그렇죠. 어머 벌써부터 주문 전화가 많아요. 이런 기회는 드물어요. 여러분 성탄절도 얼마 안남았는데 친구분들과 나누어 입으셔도 좋구요. 아니면 엄마와 딸이 같이 입으셔도 좋겠지요. 네 네. 주문이 너무 밀린대요. 저라도 뛰어가서 전화를 받아야할 상황이네요. 여러분 신용카드 준비하시고요. 자동전화로 이용하세요. 그러면 삼천원의 할인혜택도 누리실수 있거든요. 삼천원이 어디예요. 자 빨리 전화주시고요. 그리고 저는 더 소개를 할께요. 여러분 속옷을 잘 입어야 정말 아름다와 지는거예요. 아름다움이란 스스로 가꾸어야 하는 거죠. 거기다 몰드브라 한셋트도 가거든요. 거기에 쉘브라도 있으니까 연말 모임 드레스 입으실때 착용하시면 좋겠지요. 네 벌써 오백셋트가 나갔답니다. 그리고 사은품으로 좀 보세요. 이 슬립 정말 예쁘죠. 나이트 가운으로 사용하셔도 손색이 없을 것 같네요. 아마 시중에서는 이슬립하나 가격이 십만원 홋가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오늘 기회가 너무 좋아요. 앞으로 사은품 받으실 분이 얼만 남지 않았네요. 이런 기회는 아마 올해안은 더는 없을것 같네요. 마지막일거 같거든요. 자 여러분 빨리 주문하세요. 보정력도 좀 있기 때문에 몸매도 확실히 잡아 주거든요. 너무 예쁘죠. 빨리 전화주세요......"
쇼호스트는 거의 숨을 안쉬고 리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옆에 나와 서 있는 연예인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간간이 한마디씩 거들고 있다. 쭉쭉 빵빵 팔등신 외국인 미녀는 속옷만 입고도 당당한 아름다움을 뽑내고 있었다.
수빈이는 심장이 콩닥 거렸다. 지금 놓치면 안될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자려고 누운것도 다 잊어 버리고 수화기에 손이 저절로 왔다 갔다 했다. 눈으로 보기에도 너무 예쁘고 실제로 시중에서 사려면 비쌀건데 저렇게 한꺼번에 장만하면 두고 두고 입을것 같은데 사야 할지 망서려 졌다. 다른곳으로 채널을 돌려보고 그때도 생각이 나면 사야지 하고 리모콘을 찾았다.
"네 안녕하세요? 여러분 반갑습니다. 다른곳으로 돌리시지 말고 끝까지 방송을 시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 이시간은 놓치시면 정말 후회하실거니까 잘 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편안히 앉아서 돈 벌어 가시는 거예요. 자 영화한편속으로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듯한 음악이 깔리고 뒤에는 패션쇼 무대처럼 T자형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패션쇼 진행처럼 모델들이 등장을 했다. 화려한 조명에 키큰 모델들이 워킹하는 모습은 정말 옷을 살려주었다.
수빈이는 꼭 갖고 싶었던 트렌치형 롱코트에 눈이 가 멎었다. 긴 길이감에 더블에 스포츠 카라에 엉성해 보이지 않고 짱짱해 보이는 바는질에 유독 카멜색이 눈에 띄었다. 한편에서는 가죽 재킷이 선보였다. 롱코트에 멋들어지게 숄을 걸친 모습이 너무 근사해 보였다. 가죽 재킷에는 크로스백을 맨 모습이 너무 캐주얼 해보이는 것이 이십대 젊음이 다시 돌아 올것만 같았다.
" 네. 너무 근사한 롱코트죠. 올 겨울에 이만한 가격하나로 따뜻하게 보내실수 있고 멋들어지게 보이실수도 있으니 일석 이조 입니다. 더구나 롱코트를 사시는 분들께는 사은품으로 숄이나 와이드 팬츠 둘중 하나를..... 네? 아아 제가 실수 했네요. 여러분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둘다 다 드린답니다. 아마 이런 기회는 전무 후무 한걸로 알고 있는데 저도 하나 주문 해야 할것 같아요. 울함량을 보시면 아마 놀라실겁니다. 이코트는 모 영화배우가 멋들어지게 입었다해서 정통 뉴욕커처럼 입으실수 있거든요. 아마 멋쟁이 소리 들으실겁니다. 그리고 이 양피 재킷은 올해 하이넥이 강세 인데다가 짚업 스타일이라 너무 활동적이게 보이고 신선해 보이죠. 그런데 양피하면 꺼리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었는데 전혀 그러실 필요가 없어요. 이 양피는 이렇게 스크레치에도 강하답니다. 더구나 오일프리 가공을 거쳤기 때문에 비나 눈에도 다른 제품보다 월등히 강하기 때문에 굉장한 부가가치를 지녔다고 말씀드릴수 있거든요. 자 그리구요. 이 재킷을 구입하시면 크로스백을 드린답니다. 이건 명품인 프라다에서나 볼수 있는 그런 소재로 만들어진 백인데요. A4용지는 너끈히 들어갈수 있기 때문에 대학생 여러분들에게도 아주 좋겠네요. 자 그러면 수능시험 끝난 학생들에게 입학 선물로도 아주 좋을것 같은데요. 자 주문 받겠습니다. 네 롱코트는 카멜, 블랙 두가지 칼라가 있고요. 양피재킷은 먹불루, 오렌지, 와인, 블랙, 베이지 이렇게 다섯 칼라 입니다. 특히 올해는 먹블루가 아주 강세라고 말씀 드릴수 있을것 같습니다. 또한 공정도 까다롭다고 하거든요. 네. 뭐라고요? 아 사은품이 뭐냐고 시청자 분께서 문의전화가 들어왔답니다. 다시한번 말씀 드리면......."
수빈이는 곧 동이 날까봐 마음이 조마 조마 했다. 매진되면 어쩌나 하고 가슴이 졸여왔다. 반코트밖에 없어서 롱코트하나 구입하고 싶은데 망설여 졌다. 다시 생각해보자고 다른 채널로 돌렸다.
" 네 여러분 좀 있으면 입학시즌이 돌아올텐데 그 때 구입하시면 아마 가격이 지금 보다 많이 업될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꼼꼼이 따져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건이 아주 좋습니다. 무이자 십개월에 해드리기 때문에 아시다시피 십개월 이자는 저희가 내드리니까 염려 마시고요. 이자도 만만치 않습니다. 잘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컴퓨터는 A/S 가 문제인데 저희는 이십사시간 대기 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고장 접수 가능하고 사신후 일년까지는 무료로 고쳐드리니까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래서 대기업제품이 좋은것 아닙니까. 자 그러면 여러분께서 꼼꼼히 따져 보세요. 오늘 팩키지로 드리니 기회가 좋습니다. 스캐너,프린터, 광마우스 그리고 DVD가 장착되고 CD-RW는 물론 장착해 드리고요. 메모리도 SDR이 아니고 DDR램이기 때문에 병목현상이 적어서 좋은것 다 아시죠. 그리고 좀 전까지는 완평도 이가격에 드렸는데 오늘은 아주 책 두께만큼 얇은 모니터 LCD를 드리니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한번에 완벽하게 구입하시는 겁니다. 더구나 백과사전도 CD로 드리고요. 뭐 끝이 없습니다. 윈도우 XP야 기본이고 이컴퓨터 구입하신다면 당분간 업그레이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것 같습니다. 최신사양이니 더 바랄게 없을것 같습니다. 네 그리고 추첨이 있다고 하네요. 추첨에 당첨되시면 책상과 의자가 간다고 합니다. 네 십분마다 추첨을 하니 먼저 전화주시면 그만큼 누적이 되니 당첨률에 있어서 유리하다는 사실 꼭 인지 하시기 바랍니다. 자 전화 받겠습니다. "
낡은 컴을 바꿔달라는 아들얼굴이 떠오른다. 공부를 제대로 할수가 없다고 너무 낡아서 다운도 잘되고 용량이 작아서 바꿔달라고 했는데 기회가 참 좋다 싶다. 어쩔까. 그냥 컴퓨터를 구입할까. 더구나 인터넷 한달 무료 사용권까지 준다는데 잘하면 책상과 의자까지 덤으로 딸려올수 있는 기회도 있는데....... 수빈이는 잠이 더 달아났다. 컴퓨터도 사야할것 같고 속옷도 사야할것 같고 롱코트도 하나 구입해야할것 같다. 좀더 생각해보자 하고 다른 채널을 돌렸다.
"네. 여러분 이제 오분 밖에 안남았네요. 할리웃스타들의 비밀을 알고 싶으시죠. 다름아닌 화장품에 있답니다. 이화장품은 콜라겐을 비롯하여 아하 성분과 하이루론산등이 들어 있어 주름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미백효과 또한 아주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이거든요. 제가 한달 사용해보았는데 정말 제 얼굴 보이시죠. 탱탱해졌거든요. 주름 걱정만 한다고 될일이 아닙니다. 빨리 조치하시는게 현명한 일이지요. 그리고 요 파우다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미세한 입자가 너무 곱게 보이지요. 뽀송한 피부를 만들어주거든요. 그리고 볼파우다 비싼거 아시지요. 그냥 드려요. 이건. 그리고 화운데이션이 얇게 발리우면서 커버력이 아주 우수해서 웬만한 점 여드름 커버 된답니다. 여러분 두껍게 바를일이 없어요. 이제 여배우 부럽지 않으실걸요. 기초세트가죠. 그리고 메이컵제품 가죠. 이만하면 아주 럭셔리한 제품들 이거든요. 아 그리고 향수하나가 또 간답니다. 네 뭐 이만하면 한라인으로 다 끝내실수 있겠네요. 네에 그리고 다이야몬드 주얼리 추첨도 있답니다. 너무 너무 좋은 기회이거든요. 자 주문전화 받겠습니다. "
수빈이는 달랑 달랑한 스킨을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벌써 사고도 남음이 있으련만 한번쯤 망설여지는건 왜 일까. 카드값이 장난이 아닌데 그래도 할부로 구입하면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나가서 매장에서 사면 하나 값으로 여러개 살수 있는 기회인데도 자꾸 생각을 번복한다. 자신한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는데도 습관이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버리기가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날이면 날마다 광고는 유혹을 하고 어느새 세뇌당해서 그제품을 구입하면 자신이 귀족이 된듯한 착각속에 빠져 버린다는 사실을 인식하기까지 얼만큼 출혈이 심한지 경험한 탓이다. 다시는 카드 구입은 안한다고 맹세를 하고서도 돌아서면 광고의 홍수속에서 자신을 지켜내기란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으로 되지 않으니 그게 문제였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쇼호스트의 멘트에 무심코 전화부터 해야지 직성이 풀리니 그것 또한 큰 문제면 문제였다. 자신의 지불능력을 생각해야하는데 그것보다 우선 물건이 먼저 눈에 들어오니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으니 사고가 생기는 터였다. 그렇다고 남편의 능력은 불보듯 뻔한 수준인데 소비수준만 앞서니 머리만 깨질듯 아파서 다시는 이라고 입에 달지만 결국 자신도 모르게 사고야 마는 습관을 탓할수 밖에. 여기 저기 광고성 채널이 늘어나면서 가만히 앉아서 무슨 선물 받는 기분에 젖어서 구입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서 매장매출을 위협한다고 하니 그 위력이 새삼 실감이 된다.
수빈이는 몇일전 놓친 목걸이 반지 세트가 눈에 자꾸 어른 거려서 가슴이 아팠는데 이번도 그럴것 같아서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은 이런 마음을 눈치챌리도 없고 아마 헤아릴지도 모를것이다. 이런 낙이라도 없었으면 아마 알콜중독증이 되었던가 담배를 좋아하는 애연가가 되었던가 아니면 다른 남자랑 놀아났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을 합리화 시켰다. 이건 스스로에게 보상하는 거라고 다짐하면서 한정된 시간에 물건이 다 팔려 나갈까봐 조바심이 일었다.
'그래. 될대로 되라지. 사고 싶은건 사는 거야. 사랑없는 남편, 헤아릴줄도 모르는 이기적인 남편과 헤어지지 않는것으로도 나는 충분히 할일 다하고 있는 거야. 집을 나가지도 않았고 아이를 버리지도 않았잖아. 그래 사고 싶은건 사는 거야. 내가 죽고 나면 다 무슨 소용이야. 죽으면 그만이지. 나만 불쌍하지. 알게 뭐야. 사보는 거지. 그리고 그 다음은 어찌 되겠지뭐. '
결국 수빈이는 켬퓨터와 속옷셋트와 롱코트와 헐리웃의 비밀인 화장품까지 다 신용카드로 결재를 해버렸다. 그리고 일주일안은 행복할것이라고 생각했다. 갚을때 힘들것은 까맣게 잊어 버리고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마치 일주일뒤 죽어서 책임이 면제될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이 홈쇼핑 중독자임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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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러고 보니 난 홈쇼핑으로 산 물건이 단 하나도 없네!! 나 같은 넘 있음 경제가 개판일고야!! ㅎㅎㅎ 하지만 나도 중독자임에는 확실한거 가토.... 동기 카페 중독!
대단...한번도 안 사봤다고? .....이거 몇년전에 삼십분만에 쓴글이라 나도 새삼스럽네..좀 내용이 뒤떨어지지...? 그중독증은 걸려도 되는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