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마태 11,28)
오늘 교회는 하늘의 모든 성인을 기억하며 대축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지상의 삶에서 모든 이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신 성인들이 하느님의 품에서 하느님이 주시는 영원한 위로와 위안을 받게 되기를 그리고 동시에 성인들의 간구를 통해 우리 역시 하느님과 함께 하기를 기도하는 오늘 우리에게 들려지는 하느님의 말씀은 진정한 행복의 조건, 곧 진복팔단을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요한 묵시록의 말씀은 요한이 본 환시를 통해 세상의 마지막 날 모든 이가 누리게 될 하느님의 구원의 모습을 전합니다. 하늘의 한 천사가 내려와 세상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네 천사들에게 세상의 마지막 순간, 하느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에 모든 것이 평화롭게 이루어지도록 명령한 후, 자신이 가지고 온 하느님의 인장으로 선택 받은 십사만 사천 명의 이마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불멸의 인호를 새겨줍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세상의 모든 이들이 희고 긴 옷을 입고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곳으로 다가와 하느님의 구원을 가져다 준 어린양 앞에 엎드려 하느님을 경배하는 모습으로 완성되는 구원의 그 날의 모습을 요한 사가는 자신이 본 환시를 통해 전합니다. 이를 통해 요한 사가는 마지막 날 하느님이 이루어 주시는 구원의 은총이 우리에게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묵시문학적으로 알려줍니다.
한편, 오늘 복음 말씀은 제 1 독서의 요한이 전한 환시를 통해 본 구원의 날의 모습이 하느님이 보내 주신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많은 군중들이 모여 들자 그들 모두를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하느님의 계시가 이루어지는 산이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예수님은 마치 구약의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하느님이 일러주시는 계명을 새긴 돌 판을 받아들고 왔듯이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진리를 모든 이들에게 계시하시듯 일러주십니다. 동시에 그곳에 모여든 모든 군중들이 이 계시의 말씀, 곧 예수님의 참 행복에 관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산의 중턱에 사람들이 모여 앉게 하시고 높은 곳으로 올라 모든 이들을 향해 참된 행복에 관한 8가지 선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진복팔단 선언이라고 알려진 예수님의 행복에 관한 이 말씀은 행복의 선언과 함께 그 행복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행복의 근거를 알려주는 반복되는 구조로 8가지의 참된 행복에 관한 설교입니다. 이와 같은 행복 선언은 이미 구약 성경에서부터 특정한 은혜를 받은 이에게 축하하거나 특정 범주에 드는 이들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에 쓰이는 고전적인 방식으로서 예수님은 바로 이 방식을 이용하여 자신을 향해 모여든 군중들에게 어떠한 이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데에 가장 유리한 상황에 있는지를 밝혀주십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의 이 행복 선언의 말씀, 그 가운데에서도 행복의 조건들을 듣고 읽다보면 우리들의 마음 속에 의문이 생겨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으며, 어떻게 슬퍼하는 이들이 그리고 주리고 목마른 이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심지어 박해를 받는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에 의문을 넘어 강한 반발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당신의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말씀하신 이 참된 행복의 조건, 곧 진복팔단의 말씀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이 이해하기 힘든 행복의 조건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어떤 진리를 일깨워주고자 하셨던 것일까요?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오늘 제 2 독서의 요한 1서의 말씀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사가는 마치 자신의 소중한 체험을 고백하듯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의 체험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불리움 받은 우리들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이미 받았으며, 그 사랑은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변화시켜 하느님이 오시는 날 그 분을 마주 뵙게 될 것임을, 그리고 그 희망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순결하게 될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요한 사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1요한 3,1-2ㄱ)
이로써 요한 사가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은총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그 분의 사랑이 우리에게 베풀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그 사랑의 힘이 현실의 모든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또 우리 자신의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순결의 모습으로 변화시켜 준다는 희망의 약속을 줍니다. 이로써 요한 사가는 오늘 제 1 독서의 묵시록이 묘사하는 세상의 마지막 날 구원을 얻는 이들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독서의 요한사가가 이야기하듯 하느님의 사랑이 넘치도록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 그 사랑은 세상의 모든 것을 이겨내는 사랑입니다. 그 어떤 고난이나 시련, 또 세상이 주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나만의 약점과 부족함으로 빚어지는 모든 아픔들을 이겨내고도 남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상황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그러기에 그 사랑으로 희망을 약속 받은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곳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진복팔단의 선언은 바로 이 진리를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저 너머의 행복, 지금이 아닌 먼 미래에 우리에게 주어질 행복이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이 곳에서 하느님이 주시는 행복이 무엇인지, 바로 그 비결을 일깨워주는 행복의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지금 이 순간 행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하늘의 모든 성인들이 하느님과 함께 우리에게 바라는 유일한 것입니다.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며 오늘 화답송의 말씀처럼 우리의 빛이자 구원이신 그 분께 모든 희망을 걸고 이 세상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곧 기도와 희생으로 하늘의 모든 성인들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의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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