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의 음악가의 집과 베르디의 묘
베르디는 이태리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 이다. 많은 오페라를 만들고 그 속에 주옥같은 아리아를 탄생시킨 베르디는 오페라를 좋아하는 이태리 사람들에게는 거의 영웅같은 존재이며, 그의 오페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여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태리의 북부 부세토(Busseto)에서 가까운 작은 농촌마을인 론콜레(Roncole)라는
곳에서 태어났지만 밀라노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하다가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가까운 그랜드 호텔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가 18세에 입학시험에 떨어졌던 "밀라노 음악원"은 지금은 "베르디 음악원"이라고 불리고 있다. 베르디는 말년에 자신의 재산을 투자해서 은퇴한 음악가들이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음악가 휴식의 집(Casa di riposo per Musicisti)을 밀라노에 마련하고 자신도 죽은 후 이곳에 묻히기를 원하였다고 한다. 베르디는 평소 베르디에게 자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가난한 음악가들을 위해 안식처를 마련해 준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음악가의 집"은
현재 약 55명의 은퇴한 음악가들이 살고 있고 베르디도 그의 아내와 함께 이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하고 있다.
"모두를 위해 울었고 사랑했다"
베르디와 그의 두번째 아내 주세피나(Giusepina Verdi Streoini)의 묘는 대리석으로 되어있었고 그의 묘 위에는 쓰여있는 碑銘은 "모두를 위해 울었고
사랑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가 작곡 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1840년 대는 유럽 여러나라에서 왕정에 맞서는 진보적 사상의 물결이 일던 시대로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태리에서도 조국 통일을 열망하기 시작했다. 애국심이 유난히 강했던 베르디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오페라를 통해서
이태리의 독립과 통일을 소망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조국을 사랑했고 조국을 위해 울었던 베르디의 오페라에 담겨진 애국심은 오페라가 공연될 때마다 온 국민들을 울렸고 베르디에 대해 열광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장례식(State Funeral)에는 정부 고위 관리를 비롯한 수만 명의 행렬이 이어졌고
지휘자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는 전국에서 온 음악가들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구성하여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일명 "가라, 내 꿈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를 지휘했다고 한다. 그의 유해는 장례식 후 밀라노의 Cinitero Monumentale에 안치되었다가
1개월 뒤 베르디보다 4년 전에 죽은 아내 주제피나가 잠든 이곳, 음악가의 집에 이장되어 영원한 안식을 하고 있다.
"아, 그 사람인가, 그 사람인가
내 마음을 이렇게 뒤흔드는 이
사랑의 고민 속에 사로 잡는 이
내 맘을 산란케 하는 이가
그이였던가, 그이였던가
상냥한 그의 음성이
사랑을 속삭이고 나를 위로했네
그대가 내 영혼 모두 빠앗아갔네
내 가슴 깊은 사랑의 궁전에
그이로 가득찼네, 오 그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