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 🌟
2024년 6월 30일 주일 예배
( 인도,설교: 정성욱 선교사 )
🌟 다 같이 기도함으로 6월 30일
주일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6월
마지막 주 주일을 허락해 주시고 전국
각지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에 다 함께
모여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시간 저희들에게 임재하여 주셔서
저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고 저희들이 주께 드리는 기도의
응답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시는 말씀의 은혜받게
하옵시고 저희와 가족들에게 주의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찬송가
https://youtu.be/e4G8B_pFZck?si=mPk7HFL3RxVt2Ow8
🌟 교독문입니다.
시편 48편
1.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2.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3.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요새로 알리셨도다
4. 왕들이 모여서 함께 지나갔음이여
5. 그들이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지나갔도다
6. 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
7.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스페인)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8.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리로다 (셀라)
9.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10.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
11. 주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12. 너희는 시온을 돌면서 그 곳을 둘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 보라
13. 그의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의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
14.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 본문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장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한 주간도 주 안에서 평안하셨는지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분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으시길
축원드립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1장 상반부
말씀을 주해를 인용해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사도행전의 서론부(1:1-11)는 앞에 있는 누가복음과 뒤에 있는 사도행전 다른 부분들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에서 누가복음을 "먼저 쓴 글"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데오빌로"
수신자를 한 번 더 언급합니다.
(눅 1:3 데오빌로 각하에게, 행 1:1)
1절 "데오빌로여" (헬- 오! 데오빌로여!)
눅 1:3에서 데오빌로는 우리말로 ‘각하’로 번역된 수식어가 붙습니다.
이 수식어(Luke 1:3 kra, tiste Qeo, file)는 사도행전에서 벨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에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행 23:26 24:3, 26:25).
데오빌로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가 있던 사람으로 보이며,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으로 생각됩니다.
누가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할 수 있도록 재정을 후원해 준 사람이거나, 혹은 누가-행전을 수신하기로 된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데오빌로라는 이름의 어원적 의미는 “하나님의 친구, 혹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뜻.이 이름의 뜻을 바탕으로 데오빌로가 한 개인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공동체에 쓴 서신이라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데오빌로는 상징적이고 가상적인 인물일까요? 데오빌로라는 이름은 B.C. 3세기 전부터 한 개인의 이름으로 쓰였습니다. 누가 당시에는 책을 사람들에게 헌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데오빌로는 가상 인물이 아니고 실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일 것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심을
시작하심부터"
행하시며, 가르치심- 행적과 말씀(deed and word)=말과 행동
이 주제는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예 눅 4:16-30 가르치심, 눅 4:31-44 행적).
[눅24:19] 가라사대 무슨 일 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 늘
[행 7: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즉, 한 사람이 하는 일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행적: 예수의 기적들(miracles)과 고난 받으심(the passion)이 주 내용
가르치심: 하나님 나라가 중심 주제입니다.(행 1:3)
"시작하심부터"
사도행전을 이해하는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함축한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언뜻 보면 단지 예수의 공생애 시작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고, 이렇게 보면 공생애 시초부터 승천까지의 기간을 설정하는 표시어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고 나서 승천까지 기간만 활동하신 것으로 보지 않고, 대신에 사도행전에서 부활/승천하신 예수의 사역이 성령을 통해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의 사역의 시작 그리고 승천까지의 일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사역은 누가복음의 승천으로 끝나지 않고, 사도행전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의 지상 사역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역이 성령을 통해 계속해서 사역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보게 만듭니다.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누가가 첫 번째 글인 누가복음의 기록을
<요약>하는 내용입니다.
예수의 사역~ 승천까지의 일이
그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공생애 시작단계를 의미합니다.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 눅 24장에 기록된 내용 즉 예수의 지상 생애 마지막까지의 시점을 말합니다.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40일 동안 하신 일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부활을 증명하심(3 절상): 사도들에게(혹은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많은 증거로 자신이 살아계심을 증명하셨습니다.
(2)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심(3 절하): 40일 동안 사도들에게(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예수께서는 부활 후 약 10회 자신이 살아있음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즉, (1) 부활절 무덤에서 여인들에게, (2) 막달라 마리아에게 (3) 엠마오 도상의 2 제자들에게 (4)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에게 (5) 열 제자들에게: 도마가 결석한 자리 (6) 11 제자들에게(눅24) (6) 갈릴리에서 고기잡던 7 제자들에게, (7) 갈릴리에서 11제자들에게 (8) 500명에게(고전 15) (10) 주의 형제 야고보에게(고전 15) cf. Kistemaker (1990:48)
부활 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일이 자신의 육체적 부활을 여러 증거로 증명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문자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들을 말씀하셨다고 번역됩니다.
하나님 나라 = 하나님의 통치, 그리고 이를 통치가 실현되는 영역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은 책의 초두와 말미에 하나님
나라를 언급합니다. 행 1:3 그리고 사도행전 28:31(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바울의 로마에서의 사역 요약 대목).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지시하셨습니다.(4-5절)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누가복음 마지막 부분과 사도행전 초반부에 언급합니다.(눅24:47,49/ 행 1:4,8).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행 1장이 눅 24장에 나오는 예수의 명령을 회상시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4-5절 사도와 함께 모이사
예수님과 11 제자들 사이에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내용을 이 두 구절은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사도행전에서 맨 처음으로 직설화법으로 말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행 1:1-2)는 누가의 목소리를
통해 부활 이후의 사건이 기록되었는데, 여기서는 예수께서 직접 이야기하시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눅 24:48-49에 기록된 예수님의 명령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함께 관련지어 읽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시작되는 장소입니다. 구약이나 유대교 문헌에서 예루살렘은 세상의 중심으로 묘사됩니다(겔 5:5, 38:12, 1 에녹서 26:1, 희년서 8-9/ 사 2:2-4, 미가서 4:5, 신 32:8).
열방들이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으로 순례해 온다는 사상이 구약성경에 존재합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약속하신 것= 5절을 근거로 볼 때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에 관한 약속을 담은 구약의 구절들입니다. (요엘 2:28-32 사 44:3, 사 32;15)
사 44: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사 32:15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5절은 헬라어에서는 호티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이라고 번역됩니다. 따라서 4절과 5절은 왜냐하면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 하는데, 왜냐하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 날이 못되어"= 약 10일 정도
(좀 더 정확히 하면 약 7일)
유월절과 오순절은 그 기간이 50일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을 지상에서 부활을 증거 하셨기 때문에 40일을 빼면 약 10일 남는데, 예수께서 무덤에 3일 계셨습니다. 따라서 7일 정도가 남습니다.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6-11 예수님의 승천과 약속입니다.
이 단락은 사도들을 향한 예수의 마지막 당부와 명령과 함께 그의 승천 역시 역사적 사실임을 소개(‘보다’ 동사를 반복하여 사용)합니다.
앞 단락과 뒷 단락에 공통적으로 언급된 것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1:4,5), 즉 “성령”(1;4,8)입니다. 예수의 사도와
제자들이 예수의 증인으로 이 세상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6절-11절
누가는 부활 후 예수께서 하신 일을 다시 한번 반복해서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40일을 지상에 계시면서 부활을 증거 하신 기간 중 승천하시기 바로 직전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 24장에서도 부활과 승천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도행전 1:6-11에서 승천을 한 번 더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연결시키는 고리가 바로 부활과 승천 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로따로 떼어 놓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읽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6-8절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과 명령(약속)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문맥상 예수께서 말씀하신 (1) 하나님 나라(3절)와 (2) 약속하신 성령(4-5절)이 임하신다는 말씀이 기초가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곧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의 질문은 유대인으로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구약- 말일에 이스라엘이 지복의 상태로 회복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렘 16:15; 31:27-34 [새 언약], 겔 34-37. 사 2:2-4 아모스 9:11-15. 또한 초기 유대교 문헌들- 시락서 48:10, 솔로몬 시편 17-18. 1 에녹서 24-25, 토빗 13-14)
이 지복의 상태, 말일이 될 때 논쟁거리는 과연 이방인들의 상태가 어떻게 되는가 였습니다. 즉 이방인들은 심판을 받는 것인가, 구원을 얻을 것인가? 이것은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자들은 성령의 오심을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으로 보았습니다. 지복의 상태, 정치적 해방의 상태로 보았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성령의 오심과 선교(복음 증거)를 연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7-8절: 예수님의 답변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이들의
초점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8절
예수의 직접화법으로 된 말씀입니다.
승천 전에 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기도 합니다.
8절은 사도행전 전체의 주제를 요약해
보이는 구절입니다.
사도행전의 구조를 보여주는 구절
(지리적 구분)
(1) 주제: 땅 끝까지 증인이 돼라!
사도행전의 나머지 내용은 이 명령이
실제로 실현되어 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여기서 성령과 권능이 하나로 묶어 있습니다. 성령이 권능과 동일시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4절). 그리고 성령이 너희에게(제자들과 제자들이 대표하고 있는 공동체) 임하시면, 그 결과로 권능을 받는다. 즉, 권능을 받는다=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주심을 의미합니다.
핍박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일에 관한 내용을 증거 하면서 용감하게, 대담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권능(power)이라는 단어는 사도행전에 10회 사용(2:22; 3:12; 4:7; 8:13; 10:38; 19:11. 기적을 나타날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말과 행동에 나타는 능력(권능)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의 성령론이 어떤 성령론인가에 대한 논쟁이 진행 중입니다. 막스 터너는 사도행전의 성령은 “예언의 영”이라고 주장합니다. 성령 받으면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예언” 구약의 선지자들이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어떤 핍박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대언하였습니다. 이 구도가 사도행전에 동일하게 나옵니다. 사도를 선지자로 생각합니다. 사도행전에는 “복음을 전하다”라는 표현보다 “하나님의 말씀(4:31)을 전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복음이라는 표현 대신 하나님의 말씀(6:2, 8:14, 11:1, 12:24, 13:5,7,44,46,48, 17:13,18:11)/주의 말씀(15:35,36)이라는 표현 사용합니다.
복음이라고 표현해도 되는데 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을까요? 사도들을 구약의 선지자로 봤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도에게 성령이 임하셨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동일한 패턴입니다.
“능력”이 무엇일까요? 문맥상 복음 전하는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보면 핍박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용감하게 증거 하는 힘이 능력입니다. 예언, 방언, 축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임하셨을 때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가 말씀을 전하는 자로 변했습니다.
나의 <<증인>>이 되리라 martyres.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리라 - 사도행전의 중심 주제를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눅 24:47-48에서 예수께서 하신 명령과 약속이 여기서 반복됩니다.
이 단어는 구약에 뿌리는 두고 있습니다(법정에서의 증인 예 민 35:30. 신 17;6, 사 43:10-12; 44:8-9). 이 단어는 예수와 바울이 공히 법정에서의 증인이라는 문맥에서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마 18:16, 고후 13;1).
따라서, <증인>은 증인 이하는 증거의 객관성과 사실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 때문에 맛디아를 사도로 선택할 때, 예수의 지상 생애에서의 말씀과 가르침을 직접 경험하고, 또한 부활을 목격한 사람을 사도의 자격으로 세운 이유입니다. 사실성과 객관성입니다.
또한 영어의 순교자(martyr)라는 말이
"증인"이라는 헬라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증인은 순교적 자세를 가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해야 함을 암시합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제자들이 담대하게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땅 끝"
지리적 의미: 스페인(서바나)?, 로마?
인종적 의미: 이방인들?
스페인?- 사도행전에서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 지역입니다. 따라서 스페인은 배제되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로마?
사도행전의 후반부(행 27)에서 등장하며, 바울이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으로 사도행전이 마무리됩니다. 복음이 마침내 이방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 들어가는 것으로 사도행전의 이야기의 흐름입니다.
즉 세상의 중심, 당시 세계의 중심인 로마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사도행전의 문맥과 어울립니다.
또한 세계를 대표하는 로마에 복음이 들어감으로 이방 세계에 복음이 확산된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땅끝= 인종과 지역을 초월한 모든 사람들 모든 지역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 로마로 보면 사도행전은 현재에는 더 이상 복음 전파가 필요 없다는 암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그런가요? 사도행전 마지막 장의 마지막 구절의 미완성은 독자들도 이 복음 전파를 위한 증인으로 참여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로마가 땅 끝인가? 로마가 땅 끝이면 사도행전에서 끝납니다. 로마는 땅 끝의 시작입니다. 사도행전 전체 구도는 땅 끝에 복음 전하는 일에 너희도 참여하라는 부름으로 끝납니다. “요약 진술문”(6:7, 9:31, 12:24),
사도행전의 마지막은 새로운 사역에 초대함으로 끝납니다. “Acts 29”는 사도행전의 내용을 잘 요약한 것입니다. 로마는 땅끝이 아니고 땅 끝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또한 사도행전에 나오는 제자들은 과연 "땅끝"까지를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 모든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 사도행전의 내용이 전개되는 것을 보면, 모든 지역의 모든 사람이 아니라, 모든 지역에 있는 유대인(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이해한 듯합니다. 사도행전의 내용은 이런 유대인들(제자들 포함)의 생각을 바꾸어 놓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과연 유대인인 예수님의 제자들은 ‘땅 끝’을 로마의 이방인으로 이해했을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로마의 이방인으로 이해했다면 베드로가 왜 고넬료의 집으로 가면서 갈등했을까요? 안 가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땅 끝을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땅 끝을 2가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누가의 차원, 그리고 (2) 제자들의 차원!
하나님과 누가의 차원 → 모든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방인들 포함),
제자들의 차원 - 모든 지역의 유대인들.
사도행전 1장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마지막 때를 맞아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여 우리 교회와
동역자들은 예수님의 증인들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이
28장으로 끝이 나고 로마 1차 투옥에서 풀려난 뒤에 서바나 지금의 스페인으로 선교를 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말성경 로마서 15장
24. 내가 스페인에 갈 때 여러분을 방문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내가 지나는 길에 여러분에게 들러 얼마간 여러분과 기쁨을 나눈 후에 여러분의 후원으로 그곳에 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그들에게 이 열매를 확실히 전달한 후에 여러분에게 들렀다가 스페인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 당시 스페인은 예루살렘에서는
세상의 "땅 끝"이었습니다.
부족한 저도 스페인 선교를 갔었고
이번에 우리 전도지가 스페인어로
번역이 되어서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스페인은 오래전 무적 함대로
수많은 식민지를 지배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남미에 있는 브라질 등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 현재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5억 명이나 넘습니다.
우리는 스페인어 전도지로
많은 나라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땅 끝은 제가 오래전
전도 갔었던 남해에 있는 땅 끝 마을
해남이듯이 스페인 지역에서 땅 끝은
스페인에서 분리된 포르투갈입니다.
청년 시절 저는 스페인으로 선교를
갔다가 세상의 땅 끝인 포르투갈까지
선교를 갔었고 거기다가 유럽의 땅 끝으로
알려진 포르투갈의 땅 끝 마을인
"까보 다로카"까지 복음의 옷을 입고
갔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포르투갈은 15~16세기에는 남미의 브라질 등 전 세계에 걸쳐 식민지를 건설해 거대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친동생으로 추정하는
사도 도마는 동쪽의 "땅 끝"인 우리나라에
선교를 왔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땅 끝"은
우리나라에서 정확하게 12시간이
차이가 나는 우리나라 반대편에 있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었던 브라질입니다.
제가 오래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러
브라질로 선교를 갔다가
2억 명이 넘는 그곳 사람들이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에 무척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전도지를
포르투갈어로 만들게 되어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고
포르투갈과 브라질과 아프리카 등에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2억 8천만 명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마라나타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승천 장면을 기록하고 이후
제자들의 반응을 내용으로 합니다.
이 장면에서 주목할 동사는 "보다"라는 동사입니다. 3구절에 매 구절마다 보다는 동사가 등장합니다. 9절, 10절에 1회, 11절에 2번씩 사용됩니다. 각각 다른 동사가 사용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이 외에 9절에 "그들의 눈에서부터" (=우리말 번역은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라고 번역된 표현도 보다는 의미와 유사한 표현입니다. 이런 현상은 예수의 승천 사건이 역사적인 사건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부활이 육체적이고 실제적인 사건이었고, 이제 승천도 육체적이고 실제 있었던 사건임을 본문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이 사건의 중요성은 내 증인이 되리라는 명령이 단순히 예수의 지시에 근거한 것 일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하늘에 들어가심 즉 우주적 통치(행 2:33)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증인 됨의 전제 조건은 예수님의 승천, 즉 예수님의 주되심, 하늘에서 통치하심입니다. 그렇기에 성령이 오셨고 우리가 증인 되는 것입니다.
승천- 성령- 증인 됨.
9절-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려져 가심 + 구름 = 구름에 감싸여 하늘로 올리어져 가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9절은 상반절과 하반절로 나눌 수 있는데 둘 다 예수의 승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는데 상반적은 예수의 승천에 대해서 요약적으로 설명(what) 한 반면, 하반절은 예수의 승천이 어떻게(how) 일어났는가를 설명합니다.
또한 구름은 승천의 수단이었을 뿐 만 아니라, 구약에 뿌리를 둔 용법에 의하면 하나님의 천상의 영광을 상징하기도 합니다(출 16:10, 시 104:3, 눅 9:34-35, 계 11:12).
더 나아가 이 승천 장면은 구약의 사역의 승계 기사와 유사합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에 보면 엘리야가 자기 사역을 엘리사에게 승계하는 장면입니다.
즉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자신의 권능과
권위를 엘리사에게 승계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은
성도들의 부활과 살아있는 우리들의
휴거를 연상시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구름속으로
승천하셨는데 살아있는 자들의 휴거도
구름속으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0절-11절은 승천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자세히 쳐다보다” 동사(Acts 1:10 avteni, zontej [UBS] avteni, zw fix one's eyes on, look straight at, stare)
누가는 이 동사를 자주 사용합니다. 신약성경에 14회 등장하는데, 12회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만 등장하고, 사도행전에만 10회 사용됩니다(행 3:4, 12; 6:15; 7:55; 10:4; 11:6; 13:9; 14:9; 23:1) 고후에 2번 사용됩니다(고후 3:7,13).
이 동사의 의미는 “눈을 고정하다”는 의미. “굉장히 중요한 것을 뚫어지게 바라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재롱잔치에서 우리 아이만 보이는 것 과 같은 의미입니다.
두 천사의 등장(10 하반절)
우리말에는 번역이 안 되었지만, 헬라어 원문에 등장하는 동사- 보라! (Acts 1:10 ivdou.). 이 동사는 두 천사들이 갑자기 등장했음을 뜻합니다.
두 천사는 유효한 증인의 숫자와 관련이 있습니다(신 19:15).
11절은 천사들이 예수의 승천 장면에 모여있던 군중들을 향해 말한 내용입니다.
천사들의 메시지는 2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가 더 이상 성육신
하신 지상의 예수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천상적 존재가 되셨음을 지적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지적: "그대로" (Acts 1:11 o] n tro, pon)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느냐 “
why? → 천사들의 부드러운 책망. 하늘만 쳐다보고 있지 말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너희들에게 주어진 일을 해라.
하늘만 쳐다보고 있지 마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 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주님의 오심이
가깝다고 해서 어떤 사람들처럼
하늘만 쳐다보아서는 안 되며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부활, 승천하시고
세상 마지막 때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마지막 때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이 부활 승천하시고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마라나타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마지막 때를 맞은
우리들에게 큰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으로 주님께 헌신하여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상급을 받는 저와 모든 성도분들과 동역자분들이 되시길
축원 드리겠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마라나타
🌟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저희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고 권능을 주셔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여, 기도하옵기는
저희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옵시고
건강과 사역에 필요한 물질을 주셔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저희들의 가족들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의 복음 전파로 뭇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깨어나게 하옵소서!
역사하여 주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