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제국' 에스티 로더 회장 윌리엄 로더
"우리 회사는 역삼각형 매장 직원이 가장 위 난 맨 밑 꼭짓점"
할머니는 늘 제품 갖고 다니며 길거리·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여성들에게 직접 화장해주면서 소비자 감성에 '하이 터치'
지난달 18일 아침 8시 30분 서울 강남의 파크 하얏트 호텔 22층. 구두 뒷굽이 파묻힐 만큼 푹신한 카펫을 밟으며 긴 복도를 따라 인터뷰 약속 장소인 '프레지덴셜 스위트'로 들어섰다. 예상치 못하게 대여섯명이나 되는 사람들로 호텔방 안이 북적댔다. 작은 서랍장만한 크기의 화장 도구를 펴놓고 윌리엄 로더(William P. Lauder) 회장을 화장시켜 주는 메이크업팀까지 출동한 것이다."아니, 평소에도 그렇게 화장하고 다니시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 신문의 인터뷰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화장품 회사답게,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화장품그룹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Estee Lauder Companies)의 윌리엄 로더 회장과의 인터뷰는 이렇게 좀 색다른 준비 과정을 거쳐 시작됐다.
윌리엄 로더 회장은 성(姓)에서 짐작하듯, 창업자 에스티 로더 여사의 손자다. 에스티 로더는 1946년 뉴욕에서 에스티 로더 여사가 남편 조셉 로더와 함께 창업한 64년 역사의 화장품 브랜드요, 회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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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화장품그룹 에스티 로더의 윌리엄 로더 회장은 창업자이자 할머니인 고(故) 에스티 로더 여사에 대해“소비자들에게 감성을 파는‘하이터치’에 일찍 눈뜬 분”이라고 회고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클리니크(Clinique), 오리진스(Origins), 아라미스(Aramis), 랩 시리즈(LAB Series), 맥(M·A·C), 바비 브라운(Bobbi Brown), 라 메르(La Mer), 아베다(Aveda), 토미 힐피거(Tommy Hilfiger) 향수 등등…. 백화점에 가면 볼 수 있는 이 낯익은 화장품과 향수 브랜드들이 몽땅 이 회사 소속이다. 총 27개 브랜드를 거느리고 지난해 전 세계 시장에서 73억달러(약 8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글로벌 화장품 그룹이다. 매출 규모는 세계 4위. 하지만 P&G와 유니레버 같은 대중 제품 메이커를 제외하면, 프랑스 로레알에 이어 세계 2위의 고급 화장품 메이커다.
미국에서 '아름다움의 제국(帝國)'을 일군 여성 기업인을 꼽는다면 에스티 로더 여사가 시기적으로 맨 처음은 아니다.
1946년 창업한 에스티 로더 여사보다 한 세대 앞선 20세기 초반 미국 화장품업계에는 캐나다 출신의 엘리자베스 아덴, 폴란드 출신의 헬레나 루빈스타인이라는 두 여걸(女傑)이 등장해 뷰티 산업의 역사를 개척해 나갔다.
하지만 창업자 사후(死後) 세 회사는 너무나 다른 길을 걸었다. 100년 이상의 브랜드 역사를 가졌지만, 엘리자베스 아덴과 헬레나 루빈스타인은 창업자와 멀어져 버렸다. 헬레나 루빈스타인은 프랑스의 화장품 그룹 로레알 소속이 됐고, 엘리자베스 아덴은 몇 번의 손바뀜을 거쳐 마이애미의 향수 회사 FFI에 매각됐다. 반면 3세대를 잇는 '패밀리 경영'의 가치를 살리면서, 세계 5위권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큼 도약한 곳이 바로 에스티 로더다. 그러니 창업자의 손자인 그에게, 에스티 로더 여사의 얘기부터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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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움의 제국’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를 일군 로더 가문의 1972년 당시 가족 사진. 맨 오른쪽이 에스티 로더, 맨 왼쪽이 남편 조셉 로더이고, 왼쪽에서 두 번째가 어린 시절의 윌리엄 로더 회장이다. /에스티 로더 자서전‘에스티-성공 스토리’중에서
―에스티 로더 여사의 자서전을 봤어요. 여기 이 책에서 회장님의 어릴 때 사진, 그리고 21세 생일 때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찍은 사진도 봤습니다. 창업자인 할머니에 대한 기억 중에 특히 여성 기업인의 모습으로 가장 강렬한 기억이 무엇인가요?
"할머니에 대해서는 너무너무 많은 기억이 있어요. 할머니는 6년 전에 돌아가셨지요. 제 인생 내내 할머니를 볼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답니다.
여성들이 비즈니스를 하기가 훨씬 힘들었던 그 시절에 할머니는 제품을 팔러 기차를 타고 뉴욕까지 간 분이었어요. 단 5분간의 면담 시간을 얻어내려고 바이어 사무실 밖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곤 했지요.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웃었지만, 마음속에는 속상함으로 가득했었다는 얘기를 종종 들려주곤 하셨어요.
단언컨대, 할머니는 소비자에 대한 '하이 터치(High Touch)'를 제일 먼저 생각한 사람 중의 한 분이었습니다. 가게에 들르고, 소비자들을 만나고, 소비자들을 직접 '터치'하면서 최고의 제품, 최고의 서비스를 고민했지요."
―그렇다면 화장품 제국을 일군 로더 가문에게 가장 중요한 '경영의 DNA'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품질, 최고의 경험, 최고의 서비스, 최고의 가치를 주겠다는 것, 이건 단지 할머니만의 가치가 아니고,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오는 우리 가문의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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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티 로더의 윌리엄 로더 회장.
가족이 힘이다. 에스티 로더 가문에는 특히 그랬다.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ELCA)의 역사는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고, 직접 만든 크림을 동네 미용실 손님들에게 팔면서, 급기야는 자신이 만든 크림과 스킨로션으로 뉴욕에서 회사를 창업한 한 용감한 여성에게서 시작됐다. 절반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장편 드라마가 된 건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에스티 로더 여사의 자서전에는, 회사 초창기에 고등학생이었던 장남 레너드가 매일 학교를 마치고 부모 일을 거든 얘기, 가업(家業)에 뛰어들기로 24세 때 진로를 정한 얘기, 그리고 공무원의 길을 택한 차남 로널드도 일찍이 남다른 비전으로 회사의 성장에 기여한 얘기가 자랑스럽게 나와 있다.
1958년 입사해 반백년 동안 부모가 시작한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인물이 장남 레너드 로더 명예회장이었다. 그의 장남 즉, 에스티 로더 여사의 장손(長孫)인 윌리엄 로더 회장(50)도 1986년 가업에 뛰어든 뒤, 2004년 7월 CEO(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라 5년간 회사를 이끌었다.
그런데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속에, 지난해 7월 에스티 로더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글로벌 기업 P&G 출신의 전문 경영인 파브리지오 프레다(Fabrizio Freda) 사장에게 CEO 바통을 넘겨주고, '패밀리 3세' 윌리엄 로더는 회장이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에스티 로더가 패밀리 아닌 전문 경영인을 내세운 것은 창사 이래 두 번째다. 2년 전부터 예고했던 이 리더십 변화를 통해 에스티 로더는 '패밀리 경영'의 색채를 다소 털어내면서 전문 경영인 출신의 새 CEO를 중심으로 4년간의 전열 다듬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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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6년 자신의 이름을 딴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 로더를 창립한 에스티 로더 여사의 생전 모습.
■인내심을 갖고 투자하는 것이 패밀리 경영의 장점
―'패밀리 3세'로서 회사와 가문의 핵심 DNA를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키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 성공 요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그것을 전 세계에, 우리의 모든 브랜드에 '복제'하는 것입니다. 창업 당시 회사는 하나의 브랜드, 하나의 제품에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27개 브랜드에, 2만2000개 제품을 세계 140개국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복잡해졌지요. 우리의 핵심 성공 요인 즉, 훌륭한 직원, 훌륭한 제품, 하이 터치의 서비스, 훌륭한 가치가 전 세계 시장, 모든 브랜드에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성공의 필수 요건입니다."
―유럽에 비하면 미국에는 가족기업이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에스티 로더처럼 '패밀리 경영'의 전통이 강한 회사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는 분기별이 아닌, 세대에 걸쳐 생각합니다. 화장품 사업도, 소비자도, 그리고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도 우리는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시장을 보다 넓은 관점에서 봅니다.
인내심, 그러니까 우리의 상상력을 브랜드로 개발해서 성공시키기까지 인내심을 갖는다는 점도 무엇보다 장점으로 들 수 있습니다. 내 사촌 제인이 브랜드 '오리진스'를 책임지고 있는데, 우리는 올해 중국에서 오리진스를 론칭했습니다. 미국에서 이 브랜드를 시작한 지 20년, 일본에서 론칭한 지 15년이 지난 시점이지요. 한국에서는 오리진스를 1999년에 론칭했지요. 그만큼 브랜드를 성공시키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합니다. 우리는 전 세계 매출의 70% 이상을 우리가 만든 브랜드에서 올리고 있지요."
―조부모 세대부터 이어진 가치를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21세기의 달라진 경영 환경에서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패밀리 3세로서 제 역할은 전략과 비전을 설정하고, 조직 내에서 그것이 명확하게 소통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글로벌 기업이 되면서 전 세계에서 매일매일 너무나 많은 의사 결정이 일어나고 있지요. 따라서 명확한 기준과 전략을 수립하고, 조직이 올바른 방향대로 나아가도록 직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회사가 순조롭게 성장해왔지만 지난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특히 화장품 산업에는 타격이 컸을 것으로 짐작됩니다(줄곧 성장세를 보여온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의 매출도 지난 2008년 79억달러에서 2009년 73억달러로 감소했다).
"경제적 도전을 맞아, 우리는 경영 효율화를 위한 비용 절감에 나섰습니다. 6%의 인력 감축도 해야 했지요.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비록 지금이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도 자긍심을 잃지 않도록 애썼습니다. 그런 구조조정의 결과로 오늘날 흡족한 결과를 얻고 있습니다. 좋은 모멘텀이 오면서, 가령 한국 같은 시장에서 좋은 실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걸 직원들 스스로가 알고 노력한 결과이지요. 직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지요."
■27개 브랜드는 각각 포지션이 다른 야구팀 같아
에스티 로더에서 가장 성공한 스타 제품의 하나가 '에스티 로더 갈색병'이라고 불리는 스킨 케어 제품이다. 1982년에 나온 이 제품은 연간 162만개, 그러니까 전 세계에서 분당 3병씩 팔린다. 이 회사가 인수한 브랜드 맥의 아이섀도는 2초당 하나씩 팔려나가는 또 다른 스타 제품이다.
로더 회장은 "회사 매출의 70%가 직접 개발한 브랜드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자체 개발한 브랜드로는 에스티 로더(1946년), 클리니크(1968년), 프리스크립티브(1979년), 랩 시리즈(1987년), 오리진스(1990년) 등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90년대 중반부터 M&A(기업 인수합병)에도 적극 나서 맥, 바비 브라운, 라 메르, 아베다 등과 같은 화장품 브랜드를 사들였다. 27개 브랜드 중에, 한국에는 13개 브랜드가 진출해 있다.
―에스티 로더 그룹의 성공을 가능케 한 '스타 제품'들이 많지요. 어떻게 '스타 제품'을 개발하고 또 명성을 지속해 나가나요?
"재능 많고 상상력 넘치는 우리의 과학자들이 기술력을 활용해 신제품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350명이 넘는 박사들이 있고, 전 세계 60여개 대학 연구소와도 손잡고 제품을 개발합니다. 매출의 2%가량을 R&D(연구 및 개발)에 투자합니다."
―27개나 되는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데 어떻게 다 관리하나요?
"각각의 브랜드는 고유의 포지션을 갖고 있습니다.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야구에서 필드의 모든 선수들이 각각의 포지션을 맡은 것과 비슷합니다. 브랜드들이 서로 상충되지 않고 파트너십을 발휘할 수 있지요. 이 각각의 브랜드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을 다 모으면, 전체 소비자가 되는 구도입니다."
―27개 브랜드 중에는 맥, 바비 브라운처럼 M&A를 통해 인수한 브랜드도 있지요. 다른 브랜드를 더 인수할 계획도 있나요?
"항상 새 브랜드를 물색하고 있습니다. 대략 제 시간의 4분의 1 또는 3분의 1 이상을 새 브랜드 기회를 물색하고, 인수 전략을 짜는 데 쓰지요."
―성공적인 M&A를 위한 기준이 있나요?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우선 '카테고리의 다변화'라는 기준을 적용합니다. 가령 해당 브랜드가 스킨케어 브랜드인지, 메이크업 브랜드인지를 따집니다. '지역적 다변화'도 봅니다. 이 브랜드가 아시아에서 강한지, 유럽에서 강한지를 따지지요. '유통채널의 다변화'도 인수 잣대의 하나가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앞서는 기준이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는 브랜드인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모든 인수가 성공적이었나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유럽 여성과 아시아 여성은 마스카라 사용도 달라
―미국 회사로 출발했지만, 이제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이 해외 시장에서 나오지요? 어떤 시장이 가장 역동적인가요?
"2004년 제가 CEO를 맡을 당시, 북미를 제외한 나머지 해외 시장에서의 매출이 49% 정도였습니다. 해외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드라이브를 건 결과 오늘날 해외 매출이 거의 60%에 달합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 중국, 그리고 일부 일본에서 실적이 좋았고 영국, 스페인, 독일 등 유럽의 비즈니스도 괜찮은 편입니다. 중동, 러시아 등에서도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습니다."
―소비자들의 피부가 나라마다, 인종마다 매우 다릅니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어떻게 현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는 제품을 내놓고 있나요?
"우리는 몇 년 전에 상하이에도 리서치 센터를 열었습니다. 아시아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하고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합니다. 아시아 소비자들의 피부나 제품에 대한 수요는 서구 소비자들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같은 아시아 소비자라고 해도 한 유형만 있는 게 아닙니다. 한국이나 일본, 중국 북부처럼 겨울에 건조하고 여름에 습한 북쪽 지역 소비자들과 덥고 습한 남쪽 지역 소비자들의 요구가 또 다르지요.
그래서 현지 소비자에게 맞는 제품의 '적절함'을 중시합니다. 각국의 브랜드 매니저들이 끊임없이 해당 지역 소비자들의 욕구를 이야기하지요. 혁신적인 제품 중의 많은 수가 아시아 시장에서 개발되고 있습니다. 가령 아베다 일본팀이 한국팀과 손잡고 개발한 제품이 있는데, 매우 성공적입니다. 한국은 아시아 내에서 아베다 1위 시장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마스카라 제품을 개발할 때도, 아시아 여성들이 사용하는 방식에 맞는 제품을 내놓습니다. 서구 여성과는 사용하는 방식이 매우 다르거든요."
―세계적인 화장품 그룹으로 성장했는데, 누가 최대의 경쟁자인가요?
"우리는 세계 최대의 고급 화장품 메이커입니다. 시장별로, 브랜드별로 너무나 많은 경쟁자가 있고 매일매일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여기 한국 시장만 봐도, 경쟁 상대인 한국 기업이 탁월하게 잘하고 있어요."
―대중 제품 시장에 뛰어들 계획은 없습니까?
"우리의 강점은 고급 화장품 시장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잘하는 것에 계속 주력할 생각입니다."
■우리의 성공 요인은 소비자의 '감성'을 두드린 것
로더 회장은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의 성공 비결을 "소비자들과 '감성'으로 연결된 덕분"이라고 압축했다. 가령 매장에서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직접 화장을 해주며 소비자들을 사로잡는 브랜드 '맥'의 마케팅 방식도, 이 회사의 핵심 전략인 '하이 터치(High Touch)'에 꼭 들어맞는다.
'하이 터치'의 선구자는 에스티 로더 여사였다. 그녀는 늘 가방 안에 자사 제품을 갖고 다니다가 길거리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여성한테도 화장품을 발라주면서 미래의 소비자들에게 다가갔다. "신제품 설명을 듣겠다"고 찾아온 콧대 높은 잡지 편집장의 얼굴에, 장황한 신제품 설명 대신 "피부가 너무 약해져 있네요"하고 얼굴에 신제품을 발라주는 것으로 그를 단박에 사로잡은 일화도 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최상의 것을(Bringing the Best to Everyone We Touch)'이란 회사의 모토는 이렇게 해서 생겼다.
로더 회장은 두 손을 들어올려 "우리 회사 구조는 이렇게 생겼다"면서 손가락으로 역삼각형을 그려 보였다. "나는 (역삼각형의) 맨 밑 꼭짓점이고, 우리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맨 위에 있는 이 선, 그러니까 매일 소비자들에게 '하이 터치'를 전달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나 매장 직원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전문성을 높여줘야 우리의 성공이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CEO 자리를 넘겨주고 회사의 큰 비전을 그리는 회장직을 맡으면서 전보다는 여유로워졌다는 로더 회장은 "내 시간의 가장 많은 부분을 '직원 교육'에 쏟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말했던 '패밀리 3세'로서의 역할, 그러니까 회사의 비전을 설정하고 그 방향대로 회사가 움직이게 조직원들을 설득하고 명확하게 소통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신화적인 성공 스토리를 남긴 창업자의 손자라서, 그리고 첫 대면에 화장하는 모습부터 보게 된 탓에 다소 드라마 같은 인터뷰를 예상했었는데, 기대는 빗나갔다. 성공 DNA가 흐르는 사업가 집안에서 자랐고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MBA(경영학 석사) 출신이라서 그런지, 로더 회장과의 인터뷰는 경영학 강의를 듣는 것처럼 다소 건조하면서도 질서정연했다.
매일 사용하는 화장품 브랜드가 아주 많다는 것만 여느 기업 총수들과 좀 달랐을 뿐이다. 로더 회장은 "아이섀도와 립스틱만 빼놓고 회사 브랜드를 거의 다 바꿔가면서 매일 써본다"고 했다.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 누군가 "그 제품 좋더라"고 하면 경쟁 회사 제품도 꼭 써본다.
에스티 로더 여사는 아들 둘, 손자 손녀 넷을 뒀다. 그 넷 중에 윌리엄 로더 회장과 사촌 에어린, 제인 등 3명이 에스티 로더에서 일한다. 로더 회장의 남동생 게리는 벤처 투자가이다. 로더 회장은 "자라면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은 적도 있었고 야구 선수를 하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대학원에서 MBA를 마치고 마케팅에 관심 갖게 되면서 가업(家業)에 뛰어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전문 경영인을 중심으로 새 호흡에 나선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에서 앞으로 '로더 패밀리'는 어떤 정도의 무게중심을 유지해 나갈까? 로더 회장의 자녀들 세대에서도 '패밀리 경영'의 전통이 강하게 이어질지를 묻는 질문에 로더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 제겐 딸이 둘 있는데 아직 10대들입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