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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 짝지도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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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о좋은생각공유글 스크랩 천년역사의 고도, 경주 남산 (고위산 - 금오산) (2014. 1. 5)
웃자 추천 0 조회 36 14.01.06 07:29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2014. 1. 5. 경북 경주 금산 (용장마을 - 고위산 - 금오산 - 삼릉)

누구랑 : 목포새천년산악회와 함께...

어디로 : 용장마을(09:13) - 용장사지 갈림길(09:19) - 천우사(09:34) - 전망바위/쉼터(10:11) -

            고위봉(10:42) - 백운재(11:00) - 봉화대(11:13) - 칠불암 갈림길(11:25) -

            능선/중식(11:50-12:10) - 이영재(12:17) - 임도시작(12:21) - 대연화좌대(12:34) - 

            용장사지 갈림길(12:39) - 용장사지 삼측석탑(12:46) - 용장사지 갈림길(12:56) -  

            금오산(13:07) - 상사바위(13:23) - 바둑바위(13:28) - 상선암(13:37) -

            석불좌상(13:49) - 선각육존불(14:02) - 마래관음보살상(14:08) - 삼릉(14:16) -

            경애왕릉(14:25) - 주차장(14:30) 

산행시간 : 5시간 20분 (중식시간 24분 포함) 

날씨 : 맑음  

어디로 : 목포에서 경북 경주 용장마을까지 산악회 버스로 약4시간20분 소요 (조식시간 40분 포함)

 

천년역사의 고도, 경주에 있는 남산 산행이 있다고 하여 풀피리와 같이 신청을 하고 새벽일찍 집을 나선다. 목포 버스터미널에서 4시30분 버스 승차, 새벽 못 잔 잠을 자다보니 7시가 조금넘은 시간에 진영휴게소에 도착, 이곳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경주로 향한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경주시 내남면에 있는 용장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산행준비를 한 다음 고위산을 향하여 산행시작...

 

^ 산행지도...

 

^ 용장마을 주차장과, 산행 들머리, 천우사 이정표가 있다...

 

^ 용장사지 갈림길, 우리는 고위산을 향하여 직진...

 

^ 뒤로 멀리 금오산을 얼굴을 내밀고 있다...

 

^ 오름길 옆으로 소나무가 멋지게 자라고 있다...

 

^ 천우사 앞 화장실에서 마지막 속을 비우고...

 

^ 조용한 천우사...

 

 

^ 가까이로는 천마산 백운산, 멀리로는 영남알프스 산군들이 조망된다...

 

 

 

 

 

^ 쌍봉을 배경으로...

 

 

^ 조망터에서 바라본 고위산/왼쪽

 

 

 

 

 

^ 조망터 쉼터에서 웃자...

 

 

 

 

 

 

 

^ 용장마을에서 고위산까지 오르는데 10여차례 이렇게 로프를 잡고 올라서야 한다...

 

^ 바위틈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

 

^ 금오산이 조망된다...

 

 

고위산(高位山)은 금오산(金鰲山)과 더불어 산들과 계곡 전체를 통칭하여 남산이라고 한다. 높이는 494m이다.

용당마을에서 이무기능선으로 오를수도 있으며,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려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 고위산 정상에서 웃자와 풀피리...

용장마을 입구에 도착, 주차장에서 산행준비를 한다음 용장마을 길을 따라 천우사까지 오른다. 조용한 천우사 구경을 한다음 바로 오름길에 오른다. 용장마을에서 고위산까지 오르는 능선은 이무기능선으로 로프를 잡고 올라서야 하는 곳이 10여곳이 있다.

중간 조망좋은 곳에서 쌍봉과 멀리 금오산을 조망할 수 있다. 오랫만의 산행이라 땀을 질질흘리며 고위산에 오른다.

 

^ 봉화대로 가는 길에 있는 바위...

 

^ 소나무 숲길을 따라서...

 

^ 백운재...

 

^ 봉화대로 가는 길에 바라본 고위산...

 

 

경주 고위산 봉수대(慶州高位山烽燧臺)  경주시 남산(南山)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고위봉(高位峰)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이다.
경주시 남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고위봉(高位峰:높이 494m. 일명 고위산이라고도 한다)에 있는 봉수대이다. 경주부(慶州府)에서 관할하였으며, 부에서 남쪽으로 25리 거리에 있었다. 동쪽으로 토함산의 동악(東岳) 봉수, 남쪽으로 소산(蘇山: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서하리) 봉수, 서쪽으로 내포점(乃布岾:경주시 광명동) 봉수에 응하였다. 조선 팔도에서 서울의 목멱산(木覓山:남산)까지 전달되는 5개의 봉화로 중 경상도 동래에서 충청도 내륙을 거쳐 도달하는 제2거로(第二炬路)의 직봉(直烽)으로, 동래 다대포진(多大浦鎭)에서 출발하여 양산의 위산(渭山), 울산 부로산(夫老山)·소산(蘇山) 등을 거쳐 온 봉수가 이곳을 지나 안동과 충주로 이어졌다. 현재는 소나무 숲 한가운데 축대의 흔적만 남아 있다.

 

^ 봉화대에서 셀카로 웃자...

 

 

 

^ 칠불암 갈림길, 칠불암을 보지 못하여 너무 아쉽다...

 

^ 금오산을 조망하고...

 

 

 

^ 금오산을 배경으로 웃자와 풀피리...

 

 

 

 

 

^ 멋진 소나무 앞에 앉아서...

 

 

^ 능선에서 맛있는 점심을...

 

^ 과메기 쌈에 소주 한잔....

 

^ 이영재...

 

 

^ 넓은 임도 길이 나온다...

 

 

 

 

^ 대연화좌대...

 

 

^ 용장사지 갈림길...

 

 

 

 

 

 

^ 용장사지 삼층석탑 앞에서 웃자...

 

 

^ 임도길에서 왼쪽길로...

 

금오산(金鰲山) 경북 경주시의 남쪽인 월성동과 황남면 및 내남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 : 468m). 남산을 이루는 산 중 고위산(495m) 다음으로 높다. 금오산의 이름이 처음으로 기록된 문헌은 『세종실록지리지』(경주)로서 형산과 함께 기록된 2개 산 중 하나다. 그만큼 금오산이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의미이며, 세주에는 "경주 중심지의 서남쪽에 있는데, 신라 시조의 궁전 터가 있다. 후대 사람들이 그곳에 창림사를 세웠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시의 배동 남산자락에 창림사지 3층석탑과 주춧돌들이 남아 있는데,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가 전해지는 나정으로부터 동남쪽으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경주)에는 금오산이 8번째로 나오며, 세주에는 "혹 남산(南山)이라고도 하는데, 부의 남쪽 6리에 있다."는 내용과 금오산 이름이 유래된 최치원의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금오산은 경주의 남산을 지칭하는 이름 중의 하나였으며, 현재 금오산이라 부르는 것은 최고봉을 기준으로 재설정된 것이다. 신라 수도와 가까워 절터와 석탑을 비롯하여 많은 유적이 계곡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이는 468m로 고위산(494m)과 함께 남산을 이룬다. 타원형으로 이루어졌으며, 금거북이가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편하게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남산으로 표현되어 있다. 고위산을 포함해 부르는 남산에는 불상 118체, 탑 96기·석등 22기·연화대 19기가 남아 있고, 절터 147곳·왕릉 13기·산성터 4곳이 있어 흔히 노천박물관이라고 불린다.

 

 

 

 

 

^ 금오산 정상에서 웃자와 풀피리...

고위산에서 소나무 능선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백운재가 나오고 백운재에서 조금 더 오르면 봉화대 능선이 나온다. 봉화대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약300m정도 진행하면 봉화대가 나온다. 봉화대터만 있으며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다시 봉화대 능선을 따라 금오산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칠불암 갈림길이 나온다. 어찌하여 칠불암은 가지 못하고 금오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쉬움 하나를 남기고 간다. 이 아쉬움에 다시 경주 남산에 올 일이 있지 않을까...

 

중간 능선에서 일행들과 많있는 중식을 하고 다시 금오산으로 향한다. 이영재를 지나자 넒은 임도길이 나온다. 걷기 좋은 임도길 그러나 등산로로는 별루다. 대연화좌대에 올라 좌대의 웅장한 모습을 바라본다.

용장사지 갈림길에서 용장사 삼층석탑을 보기 위하여 내려갔다 온다. 용장골을 한눈에 바라보는 멋진 조망터에 있는 삼층석탑 신라인들의 대단한 불심을 느낄수 있었다.

삼층석탑에서 다시 풀피리가 기다리는 금오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금오산 정성에서 풀피리와 정상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삼릉 방향으로 내려온다.

 

 

 

^ 상사바위...

 

 

^ 마애불상...

 

 

^ 바둑바위...

 

 

^ 바둑바위에서 조망한 경주시...

 

^ 상선암...

 

 

 

 

 

삼릉계곡 선각육존불(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경주 남산 삼릉 계곡 입구에 있는 선각(線刻 : 선으로 새김)의 마애불상군이다. 불입상이 본존인 삼존상과 불좌상이 본존인 삼존상이 각각 다른 바위 면에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명칭은 따로 불러야 옳을 것이다.

 

좌측(위사진)의 조금 돌출된 바위 면에 새겨진 불입상의 삼존불은 좌우의 두 보살이 무릎을 꿇고 꽃 쟁반을 받쳐 들어 꽃 공양을 하는 모습을 대담한 곡선의 선각으로 표현하였다. 삼존 모두 둥근 두광(頭光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이 있으며, 본존 불입상은 얼굴이 둥글고 신체도 풍만한 곡선으로 처리되었다. 상들이 머리와 몸체에 알맞은 비례감을 보여 준다.

편단 우견(偏袒右肩 : 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가 드러남)의 착의법에 왼쪽 어깨를 넘어가는 대의(大衣 :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의 옷단이 삼각형으로 접혀 있다. 허리 밑에서 발 윗부분까지 U자형의 곡선을 그리며 늘어져 있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 들어 올렸고 왼손은 배 앞으로 들어 양손을 마주하고 있다.

보살상은 가슴 앞에 세 개의 구슬이 달린 목걸이를 하고 있다. 어깨를 감싸고 양쪽 겨드랑이 밑으로 빠져나가는 천의(天衣 : 천인이나 선녀의 옷) 자락이 몸 옆으로 큰 곡선을 그리며 유연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하체는 연결이 불분명한 부분도 있으나 밀착된 군의(裙衣)를 통하여 드러나는 신체를 표현한 듯, 다리의 윤곽이 간간이 새겨져 있다. 삼존상 모두 특징적인 부분을 포착하여 간략하면서도 균형 잡힌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오른쪽(아래사진) 뒤의 큰 바위 면에 선각된 불좌상 본존의 삼존상도 착의법이나 표현 기법이 거의 같으나 묘사력에서는 뒤떨어지는 편이다. 본존좌상보다 입상의 보살상들이 조금 작게 구성되었고, 삼존 모두 둥근 두광을 새겼으며 본존상에만 신광(身光 :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을 표시했다.

좌협시는 바위 면의 균열로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다. 본존상은 우견 편단의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에 오른손을 앞에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바닥을 위로 하여 배 앞에 들고 있다. 상체에 비해 무릎 폭이 좁고 하체의 표현은 치졸한 편이다. 보살상은 오른손을 가슴 앞에, 왼손은 손끝을 밑으로 하여 배 앞에 대고 있다.

이 상들의 표현은 보살상의 착의법이나 목걸이 장식, 여래상의 소발(素髮 : 민머리)의 표현과 풍만한 신체 표현이 통일신라 초기의 경주 안압지 출토 금동삼존판불(雁鴨池出土金銅三尊板佛)과 가깝게 보이며, 우견 편단의 착의법만 다르다. 따라서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의 제작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꽃 공양의 보살상은 드물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三陵溪谷磨崖觀音菩薩像) 경주시 배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경주 남산 서쪽 사면의 삼릉계곡에 있는 큰 바위의 윗부분을 쪼아내어 부조한 관음보살상이다. 오른손은 설법인을 취하고 왼손은 감로병을 들었다. 높이 1.5m.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

전체 윤곽이 광배(光背) 형태로 마무리되어 있으며, 오른손은 들어 가슴에 대고, 왼손은 내려 정병(淨甁)을 든 모습이다. 얼굴과 몸의 윗부분은 비교적 고부조로 입체감이 있게 표현되었으나, 허리 아래 부분은 윤곽이 불분명하고 표면이 거칠며, 왼쪽 다리 옆의 정병만 고부조로 표현되어 확실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머리에 보관(寶冠)의 표현은 없고, 육계(肉?)처럼 솟아오른 민머리[素髮]이다. 입이 작고 입 끝을 살짝 오므려 미소짓고 있는 얼굴은 비교적 길고 통통하여 자비스러운 모습이다. 천의(天衣)는 왼쪽 어깨에서 가슴을 비스듬히 지나면서 넓게 도드라져 있다. 하체에는 군의(裙衣)를 묶은 띠가 허리에서 무릎 바로 위까지 늘어져 있고, 양 다리에 각각 U자형 주름이 새겨져 있는데 선각(線刻)에 가깝게 표현되어 있다.

 

천의가 입혀진 형식이나 손바닥을 앞으로 내보이면서 정병을 들고 있는 손모습은 통일신라 8세기 관음보살상의 전형적인 표현인 경주의 굴불사지사면석불(掘佛寺址四面石佛) 중 서쪽면의 왼쪽 관음보살상이나 칠불암마애삼존불(七佛庵磨崖三尊佛) 중의 정병을 든 보살상 등과 유사하며, 불상의 비례와 착의법(着衣法), 그리고 지물(持物) 등 에서 8세기 후반경의 제작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삼릉이 가까워지자 멋진 소나무 숲길이 나온다...

 

 

 

 

경주배동삼릉은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밑으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다.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신덕왕릉이라 전해오는 가운데의 무덤은 1953년과 1963년에 도굴 당하여, 내부를 조사한 결과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임을 확인하였다. 무덤에는 돌방 벽면에 병풍을 돌려 세워 놓은 것처럼 동·서 양벽의 일부에 색이 칠해져 있는데, 이것은 본격적인 벽화는 아니지만 벽화가 그려지지 않은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는 처음 발견되는 것으로 주목되는 자료이다. 색은 붉은색, 황색, 백색, 군청색, 감청색으로 되어있고, 12폭으로 되어있다.

배리삼릉의 주인공이 신라의 박씨 3왕이라 전하고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고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무려 700여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신라 초기에는 이와 같은 대형무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 삼릉에서 웃자...

 

사적 제222호. 경애왕의 성은 박씨(朴氏), 이름은 위응(魏膺). 아버지는 신라 제53대 신덕왕이며, 어머니는 의성왕후(義成王后)이다. 또한, 제54대왕 경명왕의 아우이다. 경애왕은 924년 왕위에 올라 927년 포석정에서 연회를 하다 견훤(甄萱)의 습격을 받고 붙잡혀 자살한 왕이다.

 

능은 경주 서남산 삼릉계곡 입구의 소나무 숲 안에 있으며, 형태는 외형이 일반민묘와 같은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별다른 특징은 없다. 지름 13.8m, 높이 4.2m로 일반민묘보다는 규모가 크나, 신라왕릉으로는 빈약한 편이며 발굴된 적은 없다.

 

『삼국사기』에는 경애왕을 남산 해목령(蟹目嶺)에 장사지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의 경애왕릉에서 남산쪽으로 2㎞ 정도 거리에 해목령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해목령의 서북쪽으로 200∼300m 거리에 있는 지금의 일성왕릉(逸聖王陵, 사적 제173호)을 경애왕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삼릉 앞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 한다.  

금오산에서 삼릉방향으로 향하는데 일요일이라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상사바위 옆에서 바라본 상선암 마애불, 멀리서 바라본 모습이지만 멋진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곳에 불상을 새기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불상을 새기고 있었을까...

바둑바위에서 경주 시내를 조망하고 상선암으로 내려선다.

삼릉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석불, 선각육존불, 마애보살상 등 많은 문화재를 보며 내려온다.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삼릉을 구경하고 옆에 있는 경애왕릉까지 구경을 한 다음에야 주차장에 도착한다.

목포에서 멀리 경주까지 아쉬움도 있고, 멋진 모습을 구경한 즐거움도 있는 산행, 뭔가를 빠트리고 간 아쉬움때문에 나중에 경주 남산을 다시 찾게 되겠지...

그리고 다리가 불편하여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내내 같이 걸어준 사랑스러운 풀피리,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

 

남산은 경주시의 남쪽에 솟은 산으로 신라인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개의 계곡과 산줄기들로 이루어진 남산은 남북 8㎞, 동서 4㎞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타원형이면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정상을 이룬 직삼각형 모습을 취하고 있다. 100여 곳의 절터, 80여 구의 석불, 6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는 남산은 노천박물관이다. 남산에는 40여개의 골짜기가 있으며, 신라 태동의 성지 서남산, 미륵골·탑골·부처골 등의 수많은 돌속에 묻힌 부처가 있는 동남산으로 구분된다.

 

남산 서쪽 기슭에 있는 나정은 신라의 첫임금인 박혁거세의 탄생신화가 깃든 곳이며 양산재는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6촌의 시조를 모신 사당이다. 포석정은 신라 천년의 막을 내린 비극이 서린 곳이다. 동남산에는 한국적 아름다움과 자비가 가득한 보리사 석불좌상, 9m 높이의 사면 바위에 탑과 불상 등을 새긴 불무사 부처바위, 바위에 아치형 감실을 파고 앉은 부처골 감실석불좌상이 있다. 남산에는 미륵골(보리사) 석불좌상, 용장사터 삼층석탑, 칠불암 마애석불을 비롯한 12개의 보물, 포석정터, 나정과 삼릉을 비롯한 12개의 사적, 삼릉골 마애관음보살상, 입골석불, 약수골 마애입상을 비롯한 9개의 지방 유형문화재, 1개의 중요 민속자료가 있다.

 

유적 뿐만 아니라 남산은 자연경관도 뛰어나다. 변화무쌍한 많은 계곡이 있고 기암괴석들이 만물상을 이루며, 등산객의 발길만큼이나 수많은 등산로가 있다.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워 남산을 일등으로 꼽는 사람들은 "남산에 오르지 않고서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고 한다. 곧, 자연의 아름다움에다 신라의 오랜 역사, 신라인의 미의식과 종교의식이 예술로서 승화된 곳이 바로 남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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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1.06 21:53

    첫댓글 두분 반갑습니다...새해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작성자 14.01.07 08:35

    감사합니다.
    갑오면 새해에도 짝지도팍이 더 활성화 되어 항상 즐거운 일만 있었으면 합니다.

  • 14.01.16 09:16

    멀리 경주까지 원정산행다녀오신 풀피리&웃자남의 다정한 모습~~
    산행의 즐거움이 넘쳐흐르니 삶의 맛이 더할듯합니다 ㅎㅎ

  • 작성자 14.01.16 18:15

    경주는 수학여행의 기분으로 갔다 온 역사여행이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불국사가 있는 토함산에 한번 갔다 올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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