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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복울 세어보아라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새 찬송가 429장1절)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면 복 까분다. 복 나간다 할 것이다. 물론 겸손 하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 글을 쓰고 있으니 하나님이 복을 배나 더 주시리라 믿는다.
요사이 살림을 거의 내가 다하고 있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냉장고 문을 열면 하도 복잡하게 많이 들어 있어 무엇을 찾으려면 짜증이 났는데 어제는 일기를 쓰다가 가만히 생각을 하니 냉장고에 들어있는 것이 생각이 났다. 세어보니 소고기불고기, LA갈비. 돼지고기, 돼지고기 볶음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어묵, 동태, 갈치 고기종류만 10가지이다. 만두는 왕만두 작은 만두 그 외에 떡국도 더 있는데 다 아들딸들이 택배로 보내 준 것이다. 냉장고에 있는 것을 새어보다가 문득 하나님이 주신 복을 새어보았다.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물에 대한 복도 귀중한 복이지만 이것보다는 먼저 하늘에 신령한 복을 세어보았다. 나는 철저한 유교 가문에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아버님 밑에서 한문을 배우고 자랐는데 19살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장성하여 사회에 나오니 정신적인 지주가 없이 살아가는 것이 불안하였다. 물론 어머님이 절에 다니시면서 내 이름을 절에 올리기도 하셨지만 한 번도 절에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신앙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오랫동안 생각을 하다가 그때만 해도 현대화 근대화란 말을 많이 할 때라 현대화 근대화의 뿌리가 기독교란 생각이 들어 교회에 나가기를 결심했다.
34세에 이웃집 권사님의 인도를 받아 처음 나가 등록을 한 교회가 울산제일교회이다. 담임 목사님이 연세가 좀 많으신 김상섭 목사님인데 나를 잘 보셨는지 1년이 되어 집사직분을 주시고 우리 내외를 찬양대에 앉혔다. 처음 1년간은 주일은 지켰는데 1년이 지나니 세상의 직위는 오르고 술좌석을 자주 하고 하니 교회는 멀어졌다. 거의 주일을 지키지 않고 있다가 직장이 옮겨짐에 부산으로 갔다.
나는 부산으로 가는 이삿짐 싸는 날을 잊지 못한다. 어떻게 아셨는지 노 목사님이 오셔서 부산 가면 이 교회에 가라고 하시며 편지 한 통을 주셨다. 전혀 신자 같지도 않은 나에게 장로가 될 씨앗을 발견하신 그 영적인 눈을 갖으셨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김상섭 목사님이 써주신 편지를 갖고 가서 등록을 한 교회가 부산 사상동에 있는 대광교회이다. 담님 목사님은 박종석 목사님이시다.
이 목사님은 1년에 한번씩 40일 금식기도를 하시는 대단한 목사님이시다. 40일 금식기도를 하시면서도 주일예배 강단을 지키시는데 3주가 지나면 마른 나무막대기에 옷을 걸쳐놓은 것처럼 옷이 헐렁했다. 예배당을 신축한 부채로 고생을 하셨는데 나중에 들으니 안동에서 큰 교회 담님을 하셨다고 하였다.
부산에서 서울로 와서 몇 교회를 찾아다니다가 최후로 안착한 교회가 천호제일교회이다. 등록을 하고 며칠이 못되어 담님 목사님이 가정심방을 오셨는데 이때 오신 목사님이 박형식 목사님임이시다. 이때 심방예배에 부른 찬송이 503장(지금 새 찬송은 373장)인데 나는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찬송이다. 이 찬송을 부를 때 내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렸다. 내가 교회에 나와서 처음 흘러본 눈물이다.
그저 그때만 흐르고 만 눈물이라면 순간의 감상이라고 생각을 하겠는데 내가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다. 1)그렇게 좋아하던 술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었다. 2)성경과 기독교서적 외에는 일체 읽지 않았다. 3)세상에 음란한 것 속된 것은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 4)공 예배에는 최선을 다하여 참례하였다. 5)특별한 일이 없으면 새벽기도 하였다. 6)십일조 하였다. 내가 신자가 되려고 교회에 나갔으나 내가 하려고 하였을 때에는 안 되어도 찬송가 한 장이 나를 신자를 만들었다. 성령님의 역사라고 믿는다. 이때 내 형편이 부산에서 2층집 떨어 먹고 서울에 와서 지하샛방으로 이사 왔을 때이다.
목사님이 심방 오셔서 부르는 찬송은 찬송이고 기도이고 예언이라고 믿는다. 지금도 373장은 나의 찬송이고 우리 가정에 찬송이고 나의 기도이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란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내가 등록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박형식 목사님은 돌아가시고 김인식 목사님이 오셨다. 김인식 목사님은 내가 가장 오래 섬기던 목사님이고 가장 가까이 지내던 목사님이시다. 김인식 목사님 밑에서 나의 신앙이 성숙하게 되었고, 영적으로 눈이 열리게 되었다. 신앙이 성숙하고 영적으로 눈이 열리니 세상일도 열리게 되었다.
늦게 들어간 회사가 장로님이 경영하시는 중소기업으로 매주 월요일에는 아침에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를 하는 교회 같은 회사였다. 과테말라에 투자를 하여 나를 자금담당으로 보내주셨다.
과테말라에 가서 처음 나간 교회가 과테말라 한인교회 담님 목사님이 김상돈 목사님이신데 어느 고등학교 교목으로 계시다가 과테말라에 오셔서 한인교회를 처음 개척하셨는데 무 교파로 참으로 편하게 신앙생활 하는 교회였다. 한 달에 한번 씩은 야외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야외예배까지는 참겠는데 주일 예배를 드리고는 그늘 밑에 모여앉아 소주잔 옆에 놓고 손가락에 담배 끼우고 화투치는 광경은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1년을 참았는데 누가 새로 목사님이 한 분 오셔서 교회를 개척하셨는데 사랑의 교회라고 한다.
처음 가니 가정집 거실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10여명이 모였다. 내가 가고 2주일쯤 되니 30여 명이 되고 1년이 지나니 100여명이 되었다. 사랑의 교회 담님 목사님은 이철수 목사님이시다. 몇 년 있다가 이철수 목사님은 국내에 장인이 시무하시던 삼애교회에서 은퇴를 하시게 되어 후임자로 가시고 이철수 목사님 후임으로 유인섭 목사님이 오셔서 시무를 하실 때 나도 정년이 되어 귀국을 하게 되었다.
과테말라 6년은 나의 신앙생활에 참으로 소중한 기간이었다. 세상사람 들처럼 술자리에 어울리지 않으니 나의 생활 반경은 집, 직장, 교회이고, 가지고 간 책은 성경밖에 없으니 성경만 읽게 되고, 목사님이 어디 멀리가시면 수요예배 새벽기도 인도도 해야 하니 기도도 많이 해야 하고 성경도 많이 읽어야 했다. 사랑의 교회에서 장로직분도 받았다.
귀국하여 천호제일교회에 돌아와 섬기다가 은퇴할 나이가 되어 노후를 산촌생활을 하기 위하여 찾아다니다가 산촌생활 준비운동으로 경기도 여주에 나와서 6백여 세대가 되는 임대주택 아파트에서 꼭 2년을 살았다. 아파트 상가 2층에 새로 생긴 교회에 등록은 하지 않고 새벽기도 수요예배를 드렸다. 그 교회가 경기도 산본교회에서 창립 50주년에 세운 교회라 희년교회라 하고 담님 목사는 김현달 목사님이시다.
희년교회는 내가 비 등록교인으로 2년밖에 섬기지 않아도 마음에 깊이 남아있어 지금도 매일 기도하는 교회이고 목사님이다. 2005년 풍기에 집을 사고 이사준비를 다 하고 목사님에게 말씀을 드리니 그때의 목사님 표정은 영영 잊어지지 않는다. “장로님 이사 안 가면 안 됩니까” 이 늙은 장로에게 무슨 기대를 많이 하셨는지 그 기대가 다 무너지는 것 같은 화가 난 표정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가 이사 온 후에도 심방을 오셨다.
2005년9월30일 풍기로 와서 박현진 목사님을 모시고 풍기제일교회를 섬긴지가 어언 14년이 접어들었다. 나의 신앙생활에 감상섭 목사님, 박종석 목사님, 박형식 목사님, 김인식 목사님, 과테말라에서 김상돈 목사님, 이철수 목사님, 유인섭 목사님, 여주에 와서 김현달 목사님, 풍기에서 박현진 목사님, 9분의 목사님을 모셨는데 다 훌륭한 목사님으로 나의 신앙생활에 좋은 거울이 되어주신 것이 나에게는 제일 큰 복이다.
또 한분 목사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과테말라에 있을 때 만난 안명수 선교사님이다. 처음에는 충현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임기가 끝나고, LA 충현교회에서 재 파송한 선교사님인데 과테말라 깐디 란 소리를 들을 만큼 존경을 받고, 2000년 뉴 밀레니엄 기념으로 KBS에서 년 초에 해외교민 다큐 1번으로 1주일 방송이 나간 유명하신 선교사님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교류하고 내가 매일 기도하는 목사님이시다. 사모님과는 매일 페이스 북, 카카오톡으로 통하고 장로님과 권사님을 생각하면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하시며 국내에 오시면 꼭 우리 집을 들리신다.
나의 신앙생활은 울산제일교회에서 영적(靈的) 유아기(幼兒期)를 지나고, 천호제일교회에서 영적(靈的) 장년기(壯年期)를 지나고, 이제 풍기제일교회에서 영적(靈的) 노년기(老年期)를 지나고 있다. 노년기(老年期)가 노쇠기(老衰期)가 되지 않고 노숙기(老熟期)가 되기를 기도한다. 끝까지 제일교회만 섬기기를 기도한다.
내 걱정 근심을 쉬 없게 하시고 내주여 어둔 영혼을 곧 밝게 하소서.
이 세상 고락 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주소서.
여러 목사님에게 사랑 받은 것이 늘 감사하여 김인식 목사님에게 “저는 여러 목사님과 좋은 관계를 갖고 사랑을 받았다” 고 하니 “장로님과 좋은 관계를 갖지 않고 사랑하지 않은 목사가 어디 있겠어요.” 하셨다. 내가 가장 오래 섬기던 목사님이 인정하셨으니 하나님도 인정하실 줄 믿는다. 성내교회 홍성기 목사님 설교에 목사님을 잘 섬기는 성도는 자기가 개척하여 39년 간 목양을 하면서 경험한 바에 자손들이 잘 되더라고 하셨으니 나도 자손들이 잘 되는 복을 받으리라 믿는다.
한 푼 물러준 것 없어도 두 아들 두 딸이 잘 살고 막내 사위는 목사님이고, 손자 손녀 6명이 아무 흠 없이 좋은 대학 다니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자라고 있으니 땅에 기름진 복도 받은 줄 믿는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할렐루야!
2019년 4월 10일 春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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