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 조씨 세가 (2)
허인회는 서문자숙이 나가고 바로 뒤따라 나오다 한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조씨세가에서 왔다는 사람 곁에 서 있는 자를 허인회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자는 마차를 몰고 진평으로 와서는 모친의 죽음을 확인하고 모친의 품에서 전낭을 훔쳐 달아난 그놈이었다.
'처음부터 조씨 세가의 사람이었구나.'
허인회의 마음속에 조씨 세가에 대한 원망이 하나 더 늘었다. 허인회는 다른 사람들이 서문자숙과 조씨 세가 대공자와의 말에 관심을 두는 동안 객점을 나서 방물점으로 향했다.
방물점 점원 구칠이 인사를 하자 허인회도 미소 지어 보였다. 구칠의 마음에는 여전히 공포가 남아있는 듯 허인회를 볼 때마다 질려 있었지만 허인회는 그것을 고쳐주지 않았다.
구칠이 조팔삼이 있는 방의 문 앞에서 서둘러 인기척을 내고 들어가 알리자 허인회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조팔삼은 허인회를 무슨 일이냐는 듯 바라보다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너무 조급하신 것 아니오, 우리라 해도 그 많은 것을 이리 빨리 처리하지는 못하외다."
"그것은 서두르지 않아도 되오, 그보다 상락 조씨 세가에 대해 알아봐 주시오."
"상락 조씨 세가 말씀이시오?"
"어떻게 일어났고, 무엇을 취급하는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모두 알려주시오."
"이유가 있으시오?"
"이유를 알아야 하오?"
"알면 일의 진행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소이까?"
"있는 그대로면 되오."
"언제까지면 되겠소?"
"빠르면 좋고, 늦어도 사흘이오.“
"거래선까지 알아봐야 하니 빠듯하기는 하지만 은자 천 냥이외다."
"여전히 변하질 않는구려, 다른 사람에게도 그리하시오?"
"정보는 사고파는 사람의 관계에서 값이 결정되는 것이외다."
"도둑놈은 되고 싶지 않은 게지, 천하 전장에서 받아 가시오."
허인회가 돌아가려는데 조팔삼이 뒤에 대고 말했다.
"경사의 화접이 관심이 많은 듯하더이다."
"여인의 미소에는 독이 있지요, 더구나 화접이라니 얼마나 독하겠소이까? ............. 기회가 되면 들린다 하시오, 좋은 술에 미기를 마다할 사내가 있겠소이까?"
허인회의 곁에 서문자숙 뿐 아니라 용형호도 함께 했다. 용형호는 허인회의 호위를 자처하며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그런 용형호를 허인회는 받아주었다.
서문자숙이 성내에서 일하는 동안 허인회는 건곤장을 살펴봤다. 이제 제법 모양을 갖춰가는 것이 지난번 상상하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허인회는 연단로가 들어설 곳을 특별하게 살폈는데 연단실 뒤편으로는 대나무를 심고 앞은 소나무를 심어 언제나 정기를 잃지 않도록 세심하게 나무 하나의 위치까지 알려주었다.
깊은 밤 허인회의 기감에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허인회는 잠시 살피고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허인회의 말이 떨어지자 두 사람이 소리도 없이 들어와 군례 같은 모양으로 나직하지만 강하게 외쳤다.
"충, 천갑, 주군을 뵙습니다."
"충, 천을, 주군을 뵙습니다."
"일어들 나시고 다음부터는 편하게 하십시오."
"충"
천갑과 천을 두 노인은 마치 다른 말은 모른다는 듯 한결같은 목소리로 '충'이라고만 외쳤다. 허인회는 미소 짓고 말했다.
"이리 오셔서 편히 앉으시고 처리하신 것을 알려 주시지요."
"충, 주군, 주군께서 지시하신 대로 살막을 십 개 조로 나누고,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인급을 훈련원에 있던 아이들까지 포함시켜 육십 명으로 늘렸습니다. 각 조는 천급 한 명, 지급 한 명, 인급 여섯으로 구성했으며, 임무가 주어지지 않은 조는 모두 훈련원에 머물며 살막의 무공 외에 일반적인 무공을 익히라 했습니다. 살막에 속한 사람의 숫자는 모두 삼백이십오 명인데, 대부분 노인과 여인, 아이들입니다. 살막의 사내아이는 열 살이 되면 훈련원에 들어가게 되지만 자질이 맞지 않아 떨어지는 아이들이 절반을 넘습니다."
허인회는 살막의 인원이 생각보다 많은 것에 놀라고 있었는데 훈련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절반을 넘는다는 말에 놀라 말을 막았다.
"아~, 잠깐.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주공께서 어찌 생각하셨는지 모르지만 살막은 다른 살수 집단이나 소문과 같은 살인마가 아닙니다. 정보를 다루거나 산학을 가르쳐 살막을 운영하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아~!!!! 절반이 떨어진다면 그들의 숫자도 적지 않겠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절반 정도 떨어져 나가니 팔십 명은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 환갑을 넘긴 노인이 삼십여 명, 약관이 되지 못한 아이들이 이십여 명 섞여 있습니다."
"..........."
허인회는 뜻밖에 겪고 있던 어려움을 해결할 사람들을 찾았다 싶은 마음에 기뻐하며 말했다.
"건곤장을 짓고 있는 것은 보았습니까?"
"살폈습니다."
"석 달 안에 모두 완공될 것이니, 살막을 모두 그곳으로 옮기도록 하십시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것이니 이제는 한 울타리 안에서 가족이 되기로 하십시다."
무엇을 하라 해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천갑과 천을 두 노인은 허인회의 가족이 되자는 말에, 진한 감동이 밀려온 듯 눈시울을 붉히며 조금은 커져 밖에서 들릴 정도로 크게 대답했다.
"충"
"충"
이로써 허인회는 도와줄 머리 서문자숙에 이어 한쪽 팔을 얻었다.
"담진의는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군부 출신의 석덕우라는 자가 태자 담진의를 알아보고 맞아들였는데, 별다른 문제없이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모두 삼백 정도가 훈련을 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더는 볼 것 없으니 돌아오라 하십시오."
"충"
"당분간은 별일 없을 것입니다. 두 분은 돌아가시어 옮겨 올 준비를 하십시오."
"충"
천갑과 천을이 조용히 사라지자 허인회는 건곤장의 규모를 조금 더 늘리는 일을 생각했다. 기존에도 일꾼들을 들일 숙소가 있었지만, 마을 단위의 가족을 들이기에는 아무래도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허인회가 좌선에 들자 천갑과 천을이 즉시 돌아간 듯 지갑과 지을이 위치를 알려왔다. 허인회는 그들의 행동을 당연하게 여겨 그대로 두었다.
날이 밝아 서문자숙과 용형호가 들어오자 허인회는 용형호에게 건곤장의 상황을 살피고 오라 지시하고, 서문자숙에게 살막에 대해 설명했다.
서문자숙은 경국사에서 직접 본 것이 있었지만, 살막이라는 말과 살막이 해왔던 일에 대해 그동안 들은 말이 있었기에 허인회가 살막을 거두었다는 말에 눈도 깜박이지 못할 정도로 놀라 허인회를 바라봤다.
"주공, 주공께서는 정녕 신인이십니까?"
"운룡, 그들의 무공과 소생의 무공이 비슷한 길을 가졌기 때문이올시다. 길이 비슷하니 보이는 것뿐입니다."
"그렇다 하셔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살막이라니......"
"운룡, 설명 드렸듯이 살막의 구성이 그렇다 합니다. 마을 하나를 더 들여야 하는데 방법이 없겠습니까?"
"주공, 그들을 따로 두시렵니까?"
"아닙니다. 가족으로 맞아들이려 합니다."
서문자숙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주공, 차라리 장원의 규모를 조금 더 키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안채에 딸린 연무장을 반으로 나누어 머무르게 하고, 장원 밖에 연무장을 하나 더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맡은 일에 따라 나뉠 것이니 살막도 내외로 나누어 지내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역시 운룡이시오.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그대로 하시지요."
"예, 주공. 나가는 대로 건곤장으로 가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세 달이면 너무 촉박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을 더 쓰면 될 일입니다."
"조씨 세가에서 온 자는 어찌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을 만나며 주공께서 자신의 조카라며 호가호위하고 있습니다."
"........ "
"주공, 혹시 그들과 문제가 있으십니까, 그래도 외가 사람들인데 주공답지 않으십니다."
허인회는 서문자숙과 용형호를 보며 뭐라 말하기 어려운 듯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선연은 끝났고, 악연만이 남아있습니다. 하오문에 조사를 의뢰해 두었으니 결과가 나오는 대로 손을 보려 합니다."
허인회의 입에서 손을 보려 한다는 말이 떨어지자 서문자숙은 놀란 듯 바라보다 물었다.
"좋은 쪽은 아니겠군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문자숙은 그래도 외가인데 싶은 마음에 사연이 있다 하지만 도를 넘겨서는 되겠는가 싶어 물었다.
"어느 정도 혼을 내시려 하십니까?"
서문자숙이 의문을 갖은 채 물어 오자 허인회는 되돌리기 싫은 기억을 꺼내 들었다.
"소생은 세가가 무너지고 지금 와있는 조씨 세가 사람과 함께 온 마부가 모는 마차로, 모친과 함께 이곳 진평현 진가 의방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심적 충격이 크셨던 모친께서 진평에 이르러 진가 의방에 도착하기 전에 소생을 안으신 채 돌아가셨습니다. 진가 의방에 거의 다 왔을 때 마차 안을 살피던 마부놈은 모친께서 돌아가신 것을 확인했고, 그놈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모친의 품에서 전낭을 꺼내 들고 도망쳤습니다. 그 후 진가 의방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진가 의방에 들었고, 진가 의방에서 모친의 사망을 조씨 세가에 통보했지만, 조씨 세가는 화가 미칠까 두려웠는지 모친의 시신마저도 출가외인이라 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소이다. 이제서야 소생의 소문을 듣고 무엇을 요구하려는 저들을 소생이 어찌 좋게 보겠습니까?"
서문자숙은 표정을 굳힌 채 또박또박 말을 끊어가며 설명하는 허인회에게서 사무친 한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가 있었다.
차라리 분통을 터트리지 않고 설명해 나가는 허인회의 아픔과 맺힌 한이 절로 느껴졌다.
서문자숙은 허인회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에서 조씨 세가 사람들이 용서가 되지 않았고, 대가를 치르게 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