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장(第二十八章). 출신내력(出身來歷).
이 수십 명의 사내들을 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체구가 깡마르고
광대뼈가 양쪽으로 툭 불거진 초로인(初老人)으로 두 눈에서 칼날
같은 안광(眼光)이 음험하게 번뜩이고 있었는데, 그 주위에는 아까
의 그 중년인을 포함하여 대여섯 명의 중년인들이 호위하듯 좌우로
늘어서 있었다.
초로인은 금몽추가 이제는 사내들이 자신을 포위하는 것을 개의
하지 않고 그저 만면에 여유가 가득한 채로 서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가볍게 냉소(冷笑)하며 입을 열었다.
"운룡대팔식에 신행미종보(神行迷踪步), 거기에다 소청검법(小淸
劍法)이라니, 너는 정녕 곤륜파의 무공(武功)을 배운 것이라는 말
이냐?"
금몽추는 담담히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 초로인을 발견하
자 이내 다시 신형(身形)을 바로세우며 대꾸했다.
"당신의 안목(眼目)은 제법 괜찮은 편이로군. 그 중에서 이 신행
미종보는 곤륜파의 장문인(掌門人)인 철적귀견수(鐵笛鬼見愁) 하철
생(何鐵生), 하대협(何大俠)이 직접 나에게 전수한 것이오. 왜냐하
면 내가 그의 손녀(孫女)인 하낭자(何娘子)와 그렇고 그런 사이이
기 때문이오. 당신은 이 말이 믿기지 않으시오?"
초로인은 즉시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소리쳤다.
"상황이 이미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렀는데 네놈은 어찌 감히 아
직도 헛소리를 지껄이려고 하느냐? 당장 네놈이 스스로 무공(武功)
을 폐지하고 순순히 항복한다면 목숨은 살려주겠거니와 만일 그렇
지 않고 끝까지 반항한다면 오늘 죽더라도 묻힐 곳이 없을 것이라
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금몽추는 잠시 멍하니 그 초로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듯하
다가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흥분하지만 말고 이 한가지를 생각해 보
아야 할 것이오. 곤륜파의 장문인 하철생이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그와 같은 신분의 사람이 대체 무슨 이익이
있다고 나와 같은 대수롭지 않은 사람을 상대하려고 하겠소? 그것
은 내가 그야말로 그의 가장 커다란 비밀(秘密)이자 약점이 되는
것을 한 가지 알고 있기 때문이오. 당신들이 만일 이대로 나를 해
치게 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실속이 없는 짓이고 또한 하철생으로
하여금 손도 안대고 코를 푸는 것과 같은 이득을 얻게 하는 것이
되지 않겠소?"
초로인은 그러나 오히려 크게 노한 듯이 두 눈에서 흉광(凶光)을
번뜩이며 고함을 질렀다.
"이 천하(天下)에 다시 없을 소악적(少惡敵)놈이 정말로 그 후안
무치(厚顔無恥)함이 끝이 없구나! 애들아, 더 두고 볼 것이 없다.
어서 저놈을 쳐죽여라!"
초로인의 지시가 떨어지자, 즉시 금몽추를 포위하고 있던 사내들
은 싸늘한 살기(殺氣)를 더욱 가중시키며 각자 신속하게 행동(行
動)을 개시했다.
일순간 그 수십 명의 사내들의 병장기(兵仗器)들에서 펼쳐지는
검기(劍氣), 검광(劍光) 등이 한꺼번에 종횡으로 짓쳐들며 난무(亂
舞)하자 금몽추는 마치 갑자기 아득한 어둠속으로 빠져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내가 그만 생각을 잘못한 것일까? 어째서 저 빌어먹을 늙은이는
내 말을 전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일까?......'
속으로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도 금몽추는 역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신행미종보와 태청검법(太淸劍法)을 펼쳐 그 수십명의 사내
들을 마주 상대해 나갔다.
그가 이번에 펼치는 태청검법(太淸劍法)은 그 변화(變化)와 위력
등이 조금 더 뛰어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아까 펼친 소청검법
(小淸劍法)과 이치(理致)가 그리 다른 것은 아니었다.
곤륜파에서는 본래 태청검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따로 소청검법이
라는 것을 만들었으며, 그 흐름이 비슷하기 때문에 소청검법을 배
운 사람이면 능히 태청검법을 배울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신행미종보와 태청검법이 비록 각기 곤륜파에서 거의 최상급에
속하는 무공절기(武功絶技)들이기는 해도 단지 그러한 것만으로 비
슷한 경지(境地)에 있는 수십 명의 사내들을 상대해 내기는 어려워
서 그들의 파상적이고도 강력한 합공(合攻)에 휘말린 금몽추의 모
습은 얼핏 보기에 마치 거대한 파도속에 휘말린 일엽편주(一葉片
舟)처럼 위태위태해 보였다.
하지만 사방(四方)에서 성난 파도처럼 계속해서 밀려들고 있는
공세(攻勢)에 의해 금방이라도 당할 것 같던 모습은 그저 잠깐이었
을 뿐, 이어 금몽추의 신형(身形)이 뜻밖에도 마치 물살을 가르며
자유로이 유영(遊泳)하는 물고기처럼 유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더
니 이윽고 여기저기에서 으악, 억, 하는 짧은 신음소리들이 터져나
오고 사내들이 하나 둘 쓰러져 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금몽추의 검법(劍法)을 보면 비록 사람을 진상(振傷)시킬
수 있는 검기(劍氣)를 사용하고 있다고는 하나 청해파에도 태청검
법의 위력에 결코 못지 않는 낙성십이검(落星十二劍)이라는 검법
(劍法)이 있고, 또한 보법(步法)이 현란(絢爛)하다고는 하나 역시
청해파에도 도채칠성보(倒 七星步)라고 하는 유명한 보법이 있는
만큼 그것들이 상대편 사내들의 것에 비해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
았는데도 느닷없이 그런 일들이 벌어져 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금몽추와 사내들의 검법(劍法)이나 무공경지(武功境
地)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유독 그가 운이 좋아서 실로 아
슬아슬한 차이로 사내들은 당하고 금몽추는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
며 사방(四方)을 누벼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비정(非情)한 강호무
림(江湖武林)에서 그것도 냉엄(冷嚴)한 격전(激戰) 도중에 한 사람
에게만 그와 같은 운이 계속해서 작용(作用)하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운이 아니라면 그것은 오직 실력(實力)에 의해서라는 말인데, 그
렇다면 금몽추가 펼치는 그 검법과 보법은 보기와는 달리 아주 놀
랍고 특별한 구석들이 있어서 정작 실전(實戰)에서는 그와 같은 기
이(奇異)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인가?
이른바 초식(招式)이란 연무(練武)중이라도 늘상 눈에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고 어떤 상황을 맞이해야만 비로소 그 변화(變化)가 드
러나는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있는 동시에, 끊임없이 그 흐름이 이
어지는 만큼 거의 무한(無限)하다고 할 수 있으므로 어떠한 무공
(武功)이든 초식(招式)이든 아무리 간단해 보이는 것이라도 완벽하
게 배운다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고, 게다가 그 헛점을 완전
히 없앤다고 하는 것 역시 결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대홍락(大紅落)의 광검(光劍)의 경지에 오르면 최상(最上)의 초
식(招式)을 펼칠 수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역시 완벽(完璧)하
다거나 헛점을 완전히 없앴다거나 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때
는 이미 초식이라는 것은 의미(意味)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도 있듯이, 대개 이 눈에 드러나지 않는 부
분들은 눈에 드러나는 부분들보다 훨씬 더 변화(變化)가 심오(深
奧)하고 또한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하나의 무공절기(武功絶技)가 얼마나 더 심오하고 훌륭하
게 펼쳐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말하자면 그 사람이 터득한 무학의
오의(奧義)와도 관련이 있다고도 할 수가 있겠는데, 그러나 그러
한 점과 초식(招式)을 얼마나 능숙하게 펼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는 비슷한 경지(境地)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므로 당금의 무림(武林)에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되어 오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금몽추의 검법(劍法)과 보법(步法)은 아무래도 사내들보
다 훨씬 더 익숙하게 펼칠 수가 있어서 그와 같은 위력(威力)을 발
휘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허나 그것은 역시 분명히 이치(理
致)에 맞지 않는 일이므로 지금 경악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초로인으로서는 결코 믿을 수가 없었고 또한 인정할 수도 없
는 일이었다.
그토록 기세(氣勢)가 대단하던 사내들의 숫자가 거의 반으로 줄
어들게 되자, 초로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좌우의 중년인들을 대
동하고 직접 전장(戰場)의 와중(渦中)으로 뛰어들어 금몽추를 향해
덮쳐가기 시작했다.
이 초로인의 무공(武功)은 확실히 다른 사내들의 것과는 달라서
접근하여 우선 쌍장(雙掌)을 번갈아 후려치자 마치 마른 하늘에 차
갑고 거대한 우박이 마구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소위 장강(掌 )이라고 하는 것으로, 무학이 백연탄(白筵
)의 경지에 이르러 장력(掌力)이 강기( 氣)처럼 변한 것인데 그
파괴력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금몽추는 이때 마침 두 사내의 전력(全力)을 다한 합공(合攻)과
지척에서 서로 맞부딪치고 있었던 중이었는데, 느닷없이 바로 뒤쪽
에서 그와 같은 어마어마한 장력(掌力)들이 밀어닥치자 그만 계속
해서 사내들의 사이를 유연하게 가르며 검법(劍法)을 펼치기가 어
려워졌다.
그는 두 사내의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면서 검기(劍氣)로써 그들
의 요혈(要穴)들을 각기 제압한 뒤 계속해서 나아가 다가드는 다섯
명의 사내들과 정면으로 격돌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앞쪽으로 쓰러질 듯 기우뚱거리며 흔들리던 금몽추의 신
형(身形)이 어찌된 셈인지 초로인의 장력들의 사이를 뚫고 뒤로 물
러나는 듯하더니 빙글 커다란 반원(半圓)을 그리면서 사내들의 뒤
쪽으로 돌아갔다.
그가 지금 펼치고 있는 보법이 신행미종보(神行迷踪步)라는 것이
기는 하지만, 사내들의 검세(劍勢)가 사위(四圍)를 뒤덮고 있는 가
운데 펼쳐진 지금의 이 한 동작(動作)은 마치 물 흐르는 듯 유연하
고 빨라서 마치 신기(神技)에 가까웠다.
초로인은 그가 자신의 태백신장(太白神掌)을 펼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사내들의 뒤로 돌아가 숨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즉
시 신형(身形)을 다시 높이 띄워올리며 노갈(怒喝)을 질렀다.
"이런 교활(狡猾)한 녀석! 네놈이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금몽추는 조금전의 그 신기에 가까운 동작으로 초로인의 기습을
피할 수가 있었지만, 이내 다른 사내들이 바싹 다가들었고 뒤를 이
어 덮쳐든 중년인(中年人)들의 검세(劍勢)가 그물망처럼 주위를 뒤
덮는 것을 느꼈다.
'이런, 어쩔 수가 없구나! 그런데 대체 이 궁구가란 녀석은 어째
서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지?'
금몽추는 마치 크게 당황스러워져서 갈피를 못잡는 듯이 주위를
빠르게 왔다갔다 하다가 느닷없이 부러진 금검(金劍)으로 은우비화
(隱雨飛花) 초식(招式)을 펼쳐 흡사 그림을 그리듯이 유연하고 넓
게 사방(四方)으로 휘저었다.
이 은우비화(隱雨飛花) 초식은 그가 이제까지 펼치던 태청검법이
아니라 옥심정양의귀일검법(玉心正兩儀歸一劍法)에 포함된 것으로
흔하게 볼 수 없는 곤륜파의 검초(劍招)였지만, 그러나 지금과 같
은 급박한 상황에서 마치 헛손질을 하고 있는 것처럼 실속이 없어
보여서 무슨 대단한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금몽추가 이어 다소 휘청거리는 몸짓으로 신형(身形)을
돌리려는 순간 으왁, 허억,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홀연 주위의 칠
팔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급살이라도 맞은 듯이 한꺼번에 쓰러져
땅바닥에 나동그라지는 것이 아닌가?
백연탄(白筵 )의 검강(劍 )이라도 일으켜서 펼쳤다면 또 몰라
도 그저 황화예(黃化 )의 경지(境地)에서 검기(劍氣)로 펼친 옥심
정양의귀일검법(玉心正兩儀歸一劍法)에 이와 같은 위력(威力)이 있
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고 역시 마찬가지로 믿기지 않는 일
이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 당한 그 여덟명의 사람들 중에는 아까 초로인의 주
위에 서있었던 그 중년인들 가운데 세 사람이나 끼어 있다는 점에
서 두 눈을 의심(疑心)하게 만들기에 족했다.
주위에서 다가들던 다른 중년인들과 사내들도 그러한 광경을 보
고 어찌나 놀랐는지 그만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바로 그 때 금몽추는 갑자기 주위가 어둠속에 휩싸인 듯 아득해
지고 숨막힐 듯이 공기가 가득 팽창된 가운데 거대한 기운(氣運)
하나가 위에서 자신을 짓눌러 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다가 일
순 다소 놀란 듯이 눈을 휘둥그래 떴다.
초로인이 허공(虛空)에 떠올라 그를 향해 시퍼렇고 투명(透明)하
게 변한 우수(右手)를 웅장하게 휘두르고 있었는데, 분명 장력(掌
力)은 그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건만 그 크기는 오히려 초로
인 전신(全身)보다도 더 커서 그를 가리고, 하늘을 가리며, 나중에
는 사방팔방(四方八方)을 모조리 가려버리는 듯하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바로 청해파(靑海派)에서 자랑하는 가장 강력한 무
공(武功)들 중의 하나인 청옥수(靑玉手)로, 마치 무쇠를 두부처럼
부수는 금강수(金剛手)인양 그 기세(氣勢)와 파괴력(破壞力)이 엄
청날 뿐만 아니라 변화(變化)마저 대단히 신묘(神妙)하여 누구라도
거기에 한 번 걸려들면 무사할 수가 없다고 하는 유명한 절기(絶
技)였다.
실로 이와 같은 엄청난 장공(掌功)의 세력(勢力) 아래 놓이게 되
면 보법(步法)을 펼쳐 피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웬만한 무공
(武功)으로는 상대도 할 수 없는 것이니, 최소한 백연탄(白筵 )의
검강(劍 ) 이상의 위력이 있는 무공(武功)을 펼쳐야만 비로소 어
느 정도는 대항할 수가 있다고 하겠다.
지금 황화예(黃化 )의 경지(境地)처럼 보이는 금몽추의 능력(能
力)으로는 검강(劍 )을 일으킬 수도 없으므로 그는 마치 속수무책
인 것처럼 위를 바라보다가 일순 좌수(左手)를 들어 가볍게 휘저었
는데, 그것은 별로 위력(威力)도 느껴지지 않고 안개기운처럼 허술
하기도 하여 일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최후(最後)의 발악같이 보이
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금몽추의 주위를 뒤덮던 거대한 기세(氣勢)가
갑자기 거짓말처럼 사라지더니 초로인의 경악에 가득찬 신음성이
들려왔다.
"으와악! 이, 이건 상청겁(上淸劫)...... 네...... 네놈이 상청
무상겁(上淸無上劫)을......?"
일명 상청무상겁(上淸無上劫)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상청겁(上淸
劫)이란 장공(掌功)은 그야말로 곤륜파의 거의 전설(傳說)로만 전
해오던 최고절학(最高絶學)들 중의 하나였다.
비록 황화예의 경지(境地)에 있고 그저 가볍게 휘두른 것 같았는
데도 그 가공(可恐)할 위력(威力)은 단숨에 청옥수(靑玉手)를 박살
내고 그 기세(氣勢)를 잠재웠으며 초로인에게 엄중한 내상(內傷)까
지 입혔던 것이다.
공중(空中)에서 초로인은 넋나간 듯이 중얼거리며 내상(內傷)을
입은 채로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으나, 금몽추는 그러는
동안에도 어느새 다시 신형(身形)을 움직여 다가드는 중년인들과
사내들을 상대로 마지막 격돌(激突)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번에 그가 펼친 검법(劍法)은 곤륜파의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최상(最上)의 검법인 상청무상검도(上淸無上劍道)였다.
실상 이번에 마주치는 그 세 중년인들 중에는 무공(武功)이 거의
초로인에 버금가는 사람이 둘이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상대방은 거의 항변도 못하고 있지만 기실 금몽추가 지금
펼친 상청무상겁(上淸無上劫)과 상청무상검도(上淸無上劍道)는 곤
륜파의 장문인(掌門人)만이 배울 수 있는 것으로, 비단 황화예의
경지에서는 펼칠 수가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설령 어찌해서
간신히 펼칠 수 있다고 해도 제대로 그 위력(威力)을 발휘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그 무공(武功)들은 이미 펼쳐졌고 상대방은
당하고 말았으며, 당한 자는 이제 아무런 이의도 제기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상청무상검도의 성하재천(星河在天)이라는 초식(招式)이 끝까지
다 펼쳐지자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 지고 사내들에 이어 마지막까지
버티던 세 중년인들이 쓰러졌으며, 또한 위에서 떨어져 내리던 초
로인의 육신(肉身)이 땅바닥위를 굴렀다.
금몽추는 검법(劍法)을 펼치고 난 뒤에 잠시동안 그 멋드러진 자
세를 유지하며 마치 조금전의 광경을 음미(吟味)해 보는 듯하다가,
이윽고 길게 한숨을 내쉬고 금검(金劍)을 거두며 신형(身形)을 움
직여 천천히 그 초로인에게 다가갔다.
초로인은 비록 엄중한 내상(內傷)을 입었으나 그것이 치명적인
부상(負傷)은 아니었고, 물론 그 외의 다른 사람들도 역시 금몽추
가 살인(殺人)을 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거의 그 정도에 그치
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를 당신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겠지. 당신은 그래 아
직도 자신이 패배(敗北)한 사실에 대해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말이
오? 으음, 그렇다면 나는 당신과 다시 한 번 싸워줄 용의가 있소."
초로인은 입으로 울컥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내더니 이윽고 악독
(惡毒)한 눈빛으로 금몽추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어서 나를 죽여라."
금몽추는 문득 몹시 언짢은 표정이 되어 눈살을 찌푸리다가 고개
를 들어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는 듯하더니 다시 말했다.
"당신 하나 죽이는 것은 나로서는 아주 간단한 일이오. 그저 이
렇게 별로 움직이지도 않고 손가락 하나만 사용해도 되겠지. 하지
만 나는 당신을 쉽게 죽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한 가지 이
유를 알아야만 하겠소. 당신들이 명문정파(名門正派)의 당당한 명
성(名聲)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면 구태여 말하지 못할 것도 없겠
지. 대체 당신들 청해파는 어째서 오늘 나를 이렇게 공격(攻擊)한
것이오? 당신이 대답만 잘 한다면 나는 당신을 고통(苦痛)없이 죽
여주겠소. 아니 그냥 이대로 당신을 살려줄 수도 있지."
초로인은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독랄한 표정으로 음
산(陰散)하게 웃다가 대꾸했다.
"네놈은 내가 대답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네놈이 내게 어
떻게 대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네놈에게 할 수 있는 말
은 네놈은 어쨌든 이제 머지 않아 죽게 된다는 것이다."
금몽추는 약간 담담한 표정으로 잠시 그를 주시하며 생각을 굴려
보는 듯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당신의 말대로 내가 어쨌든 머지 않아
죽게 되는 것이라면 당신과 여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먼저 처치
한 다음에 그에 대한 대비(對備)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자,
나는 우선 당신의 수하들부터 하나씩 제거하도록 하겠소. 당신은
그리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좋소. 당신의 수하들을 모두 제거하
려면 제법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느긋
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시오."
금몽추가 마악 지풍(指風)을 날려 먼저 가까운 곳에 있는 한 사
내의 사혈(死穴)을 짚으려고 할 때, 초로인이 어쩔 수 없는 듯 다
급하게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 네놈이 만일 무고한 그들을 해치려
고 한다면 나는 어쩔 수가 없겠지만 그것이야말로 네놈의 악명(惡
名)을 더욱 드높이는 결과가 될 것이다."
금몽추는 공력(功力)을 거두고 초로인의 앞으로 바싹 다가가 바
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은 뜻밖에도 마치 불에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지나치게 서
두르는군. 일부러 그렇게 피곤하게 할 게 뭐가 있소. 당신들이 곤
륜파(崑崙派)의 사주를 받아서 그러는 것이라고 한 마디만 하면 모
든 것이 해결될 것이 아니오? 으음......, 아무래도 당신은 노강호
(老江湖)답게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군. 하지만 나는 지금부터 여
기에서 당신의 수하(手下)들을 한 사람씩 지옥(地獄)으로 보낼 텐
데, 그러면 자연히 당신네 청해파의 장문인(掌門人)이 나타나게 되
지 않겠소? 아마도 그 장문인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므로,
나중에 당신이 무사하게 된다고 해도 아무런 죄도 없는 당신의 수
하들은 이미 많이 죽어 있을 것이오."
초로인은 음험(陰險)한 시선(視線)으로 금몽추의 얼굴을 마주 바
라보며 다소 생각을 굴리는 듯하더니 이윽고 싸늘하게 입을 열어
말했다.
"좋아, 어차피 이 일은 네놈도 알게 될 것이고 또한 네놈이 알게
된다고 해도 별로 상관도 없겠지. 본파(本派)는 당당한 명문정파
(名門正派)로서 결코 누구의 사주를 받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는
다. 다만 무림(武林)의 공도(公道)에 의해 사악(邪惡)한 놈의 종자
(種子)를 제거할 뿐이지. 네놈은 자신의 출신내력(出身來歷)에 대
해서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네놈이 더러운 발해왕국
(渤海王國)의 핏줄을 타고났다는 것을 아무도 모를 줄로 알았느
냐?"
궁구가는 어디에 가서 한 잠 자고 왔는지 나중에야 나타나 길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금몽추는 자못 심각해진 표정으로 궁구가를 나무랄 생각도 없이
그 녀석의 등에 올라탄 채로 계속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건 그야말로 좋지 않은 상황이로군. 어쩐지 그들의 행동이 곤
륜파의 사주를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체 누가 나
의 출신내력에 대해서 세상(世上)에 알린 것일까? 그 장생각(長生
閣)의 사람들일까? 아니면 곤륜파(崑崙派)의 녀석들이 일부러 그런
수작을 부린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어떤 사람들이 혹
시......, 휴우! 어쨌든 앞으로는 상황이 더욱 어렵게 되었다. 무
림맹(武林盟) 전체가 나의 적(敵)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앞으
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그들의 말은 그러고 보면 일리가 없
는 것은 아니었다......'
금몽추는 마음이 절로 답답해 져서 차라리 이럴 바에는 아까의
그 교활(狡猾)한 초로인과 청해파의 사람들에게 좀 더 손을 쓰고
오는 것인데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그 곤륜파의 녀석들이 수작을 부렸을 가능
성(可能性)이 가장 유력하다. 앞으로의 일이 어려워지겠지만 이제
는 그저 뚫고 나갈 수밖에 없게 되겠지......'
이제 곧 청해파(靑海派)의 주력(主力)이 들이닥쳐서 그를 포위공
격할 것이라는 생각에 금몽추는 암암리에 주위에 이목(耳目)을 곤
두세우며 느릿하게 궁구가를 타고 나아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그러한 예상은 빗나가서 이후 몇 시진의
시간이 흘렀어도 청해파의 사람들은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
고 또한 다른 문파(門派)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그들은 주인님이 너무 강적(强敵)이라는 생각에 감히 더
공격(攻擊)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일부
러 주인님의 심신(心身)이 지치기를 기다려서 공격하려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궁구가의 그러한 말에, 금몽추는 길게 한숨을 내쉬다가 그만 실
소(失笑)하며 대꾸했다.
"그들이 그런 고도의 심리전술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나를 대단하
게 보아준다는 말이니, 나로서는 감격하여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해
주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겠지. 하지만 이건 뭔가 아직 준비가
덜 된 듯한 분위기이니 그들은 혹시 먼저 나에 대한 결론을 내린
다음에야 움직이려고 할 지도 모르지. 청해파의 사람들도 말하기를
어째서 내가 하필이면 이쪽으로 왔느냐 하는 것이었다."
궁구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심어전음(心語傳音)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대체 그들이 지금 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
은 모두가 주인님을 상대하기를 꺼려하는 것일까요?'
금몽추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그들은 지금 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다만 지금 그들이 모두
노리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이익에 관한 것이지. 일단 나에 대한
현상금이 내걸리게 되면 그 어떤 문파(門派)라고 해도 나를 추적
(追跡)하기 위해 혈안(血眼)이 될 지도 모르지."
'정말로 분수를 모르는 더러운 녀석들이로군요.'
"그나저나 우리는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좀 더 빨리 가도록
하자. 어서 좀 더 큰 성시(城市)에 들어가서 하루정도 마음놓고 푹
쉬고 싶구나."
난주성(蘭州城)은 예로부터 교통(交通)의 요지(要地)로 문물이
번성하고 상업(商業)이 발달해온 곳이었다.
사막(沙漠)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곳에 머물면서 휴
식을 취하거나 물자를 조달했고, 게다가 서역(西域)을 오가는 상인
(商人)들도 이 곳에서 많은 물건들을 사들이고 또한 판매했다.
서역의 문물과 중원(中原)의 문물이 이 곳에서 서로 교환되고 함
께 어울려 발달했으니, 이 난주성의 풍물은 중원의 다른 성시(城
市)들과는 또 다른 맛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당금에 이르러 이 곳의 거리들이 더욱 번화해 지고 많은 부자(富
者)들이 생겨나니, 사람들은 드디어 이 난주성이 비로소 최대의 번
성기를 맞이하였다고 하기도 했다.
금몽추는 그 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오후무렵에 이 곳 난
주성에 도착했는데, 비록 거리마다 많은 눈이 쌓여 있었으나 여전
히 부지런히 오가는 마차와 사람들도 붐비고 있었고 누구도 청우
(靑牛)를 타고 있는 그를 주시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니 사람들
과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그 심정을 가히 알
것 같구나."
궁구가 역시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 말을 받아 말했다.
'하지만 주인님은 한적한 산속에서 살아오신 분이고 또한 앞으로
얼마 후면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 은거(隱居)하실 분이 아니십니
까? 이 곳에서 며칠 지내다 보면 과연 다시 삼성요(三聖 )로 돌아
가실 수가 있을까요?'
금몽추는 다소 멈칫해 하며 궁구가를 바라보다가 이내 눈살을 크
게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본래 이렇게 사람이 많고 번잡한 것은 싫어하는 성미이다.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사건들도 많이 일어나게 되는 법이지. 나는
별로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으니 너는 다시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말아라."
궁구가는 그의 기분이 갑자기 나빠진 것을 알고 감히 대꾸할 수
는 없었지만 속으로 못마땅해 져서 생각을 굴렸다.
'또 공연히 내게 화를 내신단 말이야. 솔직히 내가 다년간 따라
다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게 자신의 성격이 좋아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실로 오산(誤算)이지. 나는 그저 당신이 너무나도 외로
와 보여서 하는 수 없이 말동무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이지. 아아,
천하(天下)에 나처럼 인정이 많고 마음이 넓은 소는 다시 없을 것
이다. 아마도 고금(古今)에 드물거야......'
성시의 북쪽으로 황하(黃河)가 흘러가고 또 그 북쪽으로는 백탑
산(白塔山)이 있다.
가장 번화한 거리의 모퉁이에 있는 어느 커다란 객점(客店)에 여
장을 풀었는데, 그 객점의 이름이 서안반점(西安飯店)이었고 모두
삼 층으로 되어 있었다.
궁구가와 함께 들어갈 수가 없어서 금몽추 혼자서 안으로 들어가
니 일 층은 호화로운 주루(酒樓)였고 이 층과 삼 층에 객실(客室)
들이 있었다.
삼 층의 한 객실을 빌려서 점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과연 실
내가 넓고 방이 여러개였으며 가구나 장식 등이 호화롭기 짝이 없
었다.
"손님께서 어떤 것을 원하시든 간에 저희들은 가능한 한 신속하
게 모든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 또한 이 부근의 소저(小姐)들은
어떤 방면에서는 그 기술이 특출나기 때문에 저희들의 자랑거리이
기도 하지요."
점원은 금몽추가 젊은 나이인 데다가 혼자인 것을 알자 묻지도
않았는데도 그와 같은 말을 해대면서 은근히 그의 눈치를 살폈다.
금몽추는 체구가 호리호리하고 눈빛이 빠르게 굴러가는 그 점원
을 바라보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미소하며 이렇게 말했
다.
"당신은 혹시 돈을 좀 더 벌고 싶은 생각이 없소?"
점원은 마침 그러한 말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참이라 즉시 두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손님께서는 역시 특이한 재미를 원하고 계시군요. 어떤 방면의
소저를 원하십니까? 저희 객점(客店)에서는 따로 그와 같은 소저
(小姐)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헤헤, 그러나 소인의 또
다른 대인관계를 따를 수는 없는 일이지요. 청순하고 귀여운 소저
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마르고 용모(容貌)가 뛰어나며 그러한 기술
이 좋은 소저를 원하십니까? 어떤 것이든 손님께서 원하신다면 저
는 최상(最上)의 소저를 불러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다만 은자(銀
子)는...... 헤헤헤, 손님은 보아하니 생각보다는 부유(富裕)하신
것 같군요."
금몽추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나는 사실 곤륜산(崑崙山) 일대에서 활동하던 의원(醫員)으로
어느날 우연히 많은 돈을 벌게 되어 이렇게 중원(中原)을 유람(遊
覽)하기 위해 나온 것이오. 이 곳에서 최소한 며칠은 머물 생각인
데 난주성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어서 곤란(困難)한 점이 많을
것 같소. 그래서 만일 당신이 앞으로 며칠간 전적(全的)으로 나를
위해 일해 준다면 그 보수로 하루에 은자 백 냥을 주겠소. 하지만
당신이 이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점원을 대신 소개해줘
도 좋소."
점원은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다소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보수가 하루에 무려 백 냥이나 된다는 말을 듣고는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가 제아무리 수단을 부려서 손님들에게 재미를 본다고 해도 그
수입은 많아봐야 하루에 고작 열 냥 정도였던 것이다.
만일 금몽추의 말대로 하루에 백 냥씩 받을 수만 있다면 그는 심
지어 이 점원의 일을 그만둬도 될 텐데 어찌 그가 이 좋은 기회를
다른 점원들에게 양보하려고 하겠는가.
"정말입니까? 헤헤헤, 손님...... 손님께서는 정말 호쾌(豪快)하
시군요. 그런데 제게 무슨 일을 시키시려는 것입니까?"
금몽추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는 척하다가 약간 건
성으로 대꾸했다.
"뭐 대단한 일도 아니고 그저 사소한 심부름같은 것들이오. 당신
은 이 곳의 점원일을 하면서도 능히 그 일을 할 수가 있을 것이오.
나는 사실 당신이 유난히 총명(聰明)해 보이고 또한 재주가 많을
것 같아서 일부러 고용하려는 것이오."
보수가 너무나도 많을 뿐만 아니라 해야할 일도 더할 나위 없이
쉬워 보였기 때문에 점원은 오히려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보이다가
말했다.
"예...... 좋습니다. 오늘, 오늘부터 일을 시키실 것입니까?"
금몽추는 품속에서 천 냥짜리 은표(銀票) 한 장을 꺼내서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오늘 해야할 일은 우선 이것을 백냥짜리 은표(銀票)들로 바꿔오
는 것이오. 시간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당신은 아마도 서둘러야 할
것이오."
점원은 느닷없이 그와 같은 거액(巨額)의 은표를 받아들게 되자
그만 놀라고 경황이 없어 하다가, 다시 한 번 자세히 그것을 살펴
본 뒤 주춤주춤 방문쪽으로 물러났다.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지금 즉시 다녀오도록 하겠습니
다."
점원은 오늘 너무나도 재수가 좋다고 생각했다.
나이도 자신보다 그다지 많지 않은 녀석이 흐릿한 눈초리로 나타
나 비싼 삼 층의 객실(客室)을 내달라고 할 때부터 그는 이러한 오
늘의 운수(運數)를 어느 정도는 예감(豫感)했으며, 그리하여 일부
러 다른 점원들이 나서기 전에 스스로 먼저 달려들어 그 녀석을 객
실로 데려가지 않았는가.
하지만 설마하니 그 멍청한 녀석이 별로 힘도 들이지 않았는데도
처음부터 자신에게 무려 천 냥이나 되는 은표(銀票)를 내놓을 줄이
야 그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즉시 전장(錢莊)으로 달려가 백 냥짜리 은표들로 바꾸면서 확인
해 보니 그 천 냥짜리 은표는 놀랍게도 가짜가 아니라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