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핸드폰 촬영.
손기정이 기증한 그리스 투구.
손기정(孫基禎,1912~2002) 선생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입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는 금메달과 함께 그리스 청동 투구를 부상으로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손기정 선수는 그 투구를 받지 못했습니다.
50년이 지난 1986년 투구를 돌려받은 손기정 선생은 이를 국가에 기증하기로 결심하여,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투구를
기증했습니다. 선생은 투구가 지닌 역사적 의미와 공공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이 기증한 그리스의 고대 청동 투구를 통해 우리는 선생을 기억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선수로 참가할 수밖에 없었지만, 당당하게 내달려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한국 청년을 떠올립니다.
이처럼 문화유산 속에는 사람이 들어 있습니다.
선생이 기증한 투구는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미래를 다짐하는 표상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청동 투구 / 그리스, 기원전 6세기, 청동, 1994년 손기정 기증, 보물.
손기정 선생이 기증한 청동 투구는 기원전 6세기 무렵 그리스에서 만든 것입니다.
눈과 입만을 드러낸 채 머리 전체를 감싸는 '코린토스 양식' 투구로, 목으로 이어지는 아랫부분이 잘록하게 들어가다가
나팔처럼 벌어져 있습니다. 이 투구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의 우승자에게 주는 부상이었습니다.
당시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가 받아야 했으나, 전달되지 못한 채 베를린 샤를로텐 부르크 박물관에 50년간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안 손기정 선생은 이 투구를 돌려받고자 여러모로 노력했고,
그 결실로 1986년 베를린 올림픽 개최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마침내 선생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1987년 정부는 손기정 선생의 올림픽 우승을 표상하는 이 투구를 나라의 '보물'로 지정했습니다.
이 청동 투구는 2,600여 년 전 그리스에서 제작되었습니다. 투구 전체가 일체형으로 만들어졌으며, 눈과 입을 제외한
머리 전체를 감싸는 형태를 띱니다. 머리 아래가 잘록하게 들어가고 목 부분이 나팔처럼 퍼진 모습이 특징입니다.
뒷면 안쪽에는 두 개의 동판에 간략한 투구 설명과 함께
이 투구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의 우승자에게" 주는 것임을 알리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투구는 당시 마라톤 경기의 우승자였던 손기정 선생에게 바로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그 후 투구를 되찾으려는 선생의 노력 끝에 50년 뒤인 1986년에야 정식으로 투구를 되돌려 받을 수 있었습니다.
손기정 선생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며 1994년 투구를 국가에 기증했습니다.
최초의 우승, 함께한 우승.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6년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올림픽 종목 가운데 마라톤을 가장 주목했습니다.
8월 9일 열린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 선수는 2시간 29분 19초 2라는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했습니다. 함께 참가했던
남승룡(南昇龍.1912~2001) 선수도 동메달을 따면서, 마라톤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동시에 따는 기록도 함께 세웠습니다.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을 더욱 잊을 수 없게 만든 사건은 국내 신문에서 우승 소식을 전하며 사진 속
선수복의 일장기를 지워버린 일이었습니다. 먼저 <조선 중앙일보>가 1936년 8월 13일 자 기사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했습니다.
며칠 뒤 <동아일보>는 8월 25일 자에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완전히 지운 사진을 실었습니다.
이 기사 때문에 두 신문은 강제로 폐간되거나 휴간되었습니다.
이 일은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불리며 1930년대 항일 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올림픽 마라톤 우승과 3위라는 쾌거를 국민들에게 선물한 두 사람은 광복 후인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했습니다.
손기정 선수는 감독으로, 남승룡 선수는 코치이자 선수로 활약하여 서윤복(徐潤福, 1923~2017) 선수가 우승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국적으로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당당히 이룩한 첫 우승이었습니다.
투구의 여정.
1936년 7월 27일 그리스의 '이 브라디니' 신문사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 우승자에게 그리스 청동 투구를 주겠다는 기사를
냈습니다. 이 투구는 1875년 독일 고고학자 에른스트 쿠르티우스(1814~1896)가 이끄는 조사단이 그리스의 올림피아에서
발굴한 것으로, 이후 브라디니 신문사가 투구를 갖게 되었습니다.
투구 안쪽에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의 우승자에게"라는 글귀를 새겨 놓아
마라톤 경기의 우승자가 곧 투구의 주인임을 밝혔습니다.
투구는 마라톤 경기의 우승자였던 손기정 선생에게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아마추어 선수에게 메달 이외에 어떠한 선물이나 기념품도 공식적으로 줄 수 없다'는 규정을 내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손기정 선생도 투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투구는 독일 국가올림픽 위원회(NOC)의 관리하에
베를린에 남았고,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베를린에 있는 샤를 로텐부르크 박물관에 전시되었습니다.
손기정 선생은 우연히 투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 보관처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76년 재독 교포인 노수웅씨의 노력으로 투구의 소재를 알게 된 손기정 선생은 투구를 되찾고자 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결실로 1986년 베를린 올림픽 개최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손기정 선생에게 투구가 헌정되었습니다.
이듬해 정부는 50년 만에 돌아온 투구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보물'로 지정했습니다.
새로운 기억, 새로운 이야기.
손기정 선생이 투구를 되돌려 받는 과정에서 마음속에 깊이 품고 있던 생각은 보다 많은 국민이 투구를 볼 수 있도록 국가에
기증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투구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는 생각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던 손기정 선생은
1987년 투구를 독립기념관에 위탁했다가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투구는 이곳 박물관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투구를 기증 문화재실에 전시했습니다.
투구는 2009년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전과 2011년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기념전에 출품되기도 했습니다.
2022년에는 기증관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독립적인 전시공간에 놓았습니다.
기증관을 찾는 많은 관람객들이 손기정 선생이 기증한 투구를 바라보며 선생을 기억합니다.
선생이 망국의 설움을 딛고 힘차게 내달려 이룩한 올림픽 마라톤 우승의 순간을 떠올립니다. 당시 부상으로 받지 못한 투구는
50년 만에 선생의 품으로 돌아왔고 다시 선생의 뜻에 따라 국민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 모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선생이 기증한 투구에 들어 있습니다.
투구와 관련된 기억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새로운 기억이 되었습니다. -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작성자 : 바위솔
첫댓글 그리스 청동투구, 보물중에 보물.
손기정님 자랑스럽습니다. 👍
일장기 지운 동아일보도 옛날엔 일 잘했는데.ㅎ
요즘엔 조.중.동. 소리 들으니...ㅠ
그리스 신문사가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세
그리스청동 투구를 주겠다는
공식 기사가 있었음에
IOC 는 왜 어떠한 기념품도 줄 수 없다는
규정을 내세워 주지 않았을까?...
그래도 50년간 베를린박물관에 전시 보관했던
청동투구를 50년 만인 1986년에
손기정님께 헌정되었다는
사실은 억울했을 뻔한
대단한 노력이고, 감동입니다.
당시, 일제강점기를 지낸
우리 국민들의 억압, 분노...
항일 운동...
여지껏 몰랐던 청동투구 사실,
바위솔님 글로 잘 알고 가니
너무 감사합니다.
그때 줬다면 그 청동투구는 일본 박물관에 소장 됐겠죠?
나라 잃은 슬픔의 약자.
@유하 개인에게 준 것을
빼앗었을까?...
손기정 선수가 일본에게 순순히 헌납(기증)했을까?..
(그랬었을 수도...)
식민지라고 그걸 일본이 빼았었다면 해방되고 그것부터 찾는다고 줄 때 까지 또 만고의 노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