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탐미주의자의 영화 사랑 추모, '행동하는 지성' 수전 손택 | ||
[필름 2.0 2005-01-17 19:10] | ||
미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비평가이자 소설가 수전 손택이 지난 12월 28일 백혈병으로 타계했다. 스타일로서 예술을 열렬히 옹호하고 사진과 영화를 아우르는 시각 매체를 진지하게 사유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존경받은 손택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1988년 8월 30일 AP통신은 서울발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미국의 작가 수전 손택과 7개국에서 온 작가들은 오늘 밤 5명의 남한 문인 투옥 사건을 극화하기 위해 국제펜클럽회의에서 리셉션을 열었다.' 그때 수전 손택은 국제펜클럽 미국지부 회장으로 참석해 “우리의 동료들이 전부 펜과 종이를 빼앗기고 일부는 병이 든 채 감옥에 앉아 있는 가운데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우리 대부분에게 상당히 절망스럽고 도덕적으로 불편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 즈음 수전 손택은 이란 작가 샐먼 루시디가 <악마의 시>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자 그 부당함을 밝히는 데 앞장섰다. 손택은 미국 지성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1960년대 후반부터 강철 같은 펜을 든 액티비스트로 활동했다. 많은 이들이 손택을 ‘행동하는 지성’으로 기억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해야 했던 인생의 황혼녘에 수전 손택은 인류 문명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낸 책인 <타인의 고통>(2003)은 전쟁과 폭력이 사진을 통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비극으로 몰아넣는지를 탐색했다. 2004년 5월 23일 자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기고한 글 ‘타인의 고문에 관하여(Regarding the Torture of Others)’는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자행된 미군의 포로 학대 사건이 디지털 사진을 통해 유포된 현 문명의 참상을 진단한다. 손택은 비통한 어조로 이렇게 썼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그 사진들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포되고 보여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재미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재미라는 아이디어는 더욱더 미국의 진정한 본성과 정신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폭력의 판타지와 실행이 좋은 오락물이자 재미로 여겨지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대중문화의 퍼스트 레이디 수전 손택은 소설가이자 비평가, 에세이스트로 명성을 얻었다. 소설 <화산의 연인>(1992), <미국에서>(2000), 에세이집 <해석에 반대한다>(1966),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1969), 비평집 <사진론>(1977), <은유로서의 질병>(1978) 등으로 서구 지식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예술에 온 정신이 팔린 심미가”라고 불릴 정도로 영역과 경계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인 비평 활동을 펼쳤다. 무엇보다 그는 유럽의 현대 사상과 예술을 미국에 부지런히 소개했다. 카뮈의 소설과 이오네스코의 희곡, 사르트르와 루카치의 철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나름의 감식안으로 읽고 소화해냈다. 그러나 유럽 문화에 대한 단순한 추종이 손택의 비평을 튀어 보이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늘 동시대 미국에 도래한 새로운 문화적 감수성을 간파하고, 문화를 통해 발현되는 미국의 사회 정치적 조건을 성찰했다. 수전 손택을 뉴욕 문단의 결정적인 스타 평론가로 만든 글은 ‘캠프에 관한 단상’(1964)이다. <해석에 반대한다>에 수록된 이 글은 당시 미국에 새로이 나타난 문화적 스타일이자 감수성인 ‘캠프(camp)’를 면밀히 분석한다. ‘캠프’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 게이 커뮤니티의 중추적인 취향으로 주목받았다. 물론 시각적으로 과장되고 조야하며 탐미적이고 유쾌한 이 스타일은 단지 게이 커뮤니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수전 손택은 ‘캠프’로 분류 될 수 있는 예술 작품들을 거론하면서 그것이 ‘고급 문화’와 ‘아방가르드’의 이분법을 가로지르는 제3의 감수성이라고 정의한다. 손택은 '캠프는 좋은 취향이 단순히 좋은 취향인 것은 아니라고, 실제로 나쁜 취향에 관한 좋은 취향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나쁜 취향에 관한 좋은 취향을 발견하면 사람은 아주 큰 자유를 얻는다'고 썼다. 이 같은 문화적 이분법에 대한 저항은 수전 손택의 초기 비평 활동을 특징 짓는 요소였다. 그는 언제나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 과학과 인문학, 예술과 도덕, 지성과 감성의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경계를 허물어뜨리고자 했다. 손택은 ‘하나의 문화와 새로운 감수성’(1965)이라는 글에서 C. P. 스노우의 책 <두 문화>로 유명해진 과학 문화와 인문 문화의 전통적인 이분법을 비판한다. 그는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문화의 충돌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감수성의 탄생'이라면서, '오늘날의 예술은 의식을 조절하고 새로운 양식의 감수성을 조직하는 새로운 도구'라고 덧붙였다. 이런 정의는 미학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했던 손택의 예술론을 뒷받침한다. 또 다른 대표적 평문 ‘해석에 반대한다’(1964)에서 그는 예술이 ‘현실의 모방과 재현’이라는 관점을 반박한다. 서구의 전통적인 예술론이었던 이 관점은 예술의 ‘내용’을 중시했으며, 따라서 감상자로 하여금 그 예술 작품을 ‘해석’하도록 부추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택은 이런 ‘해석’이야말로 예술에 대한 폭력이자 호전 행위라고 주장한다. 예술에 완전히 몰입하기 위해서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그것은 미학을 고리타분한 윤리학의 구속에서 해방시키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시네필리아여, 부활하라 ‘해석에 반대한다’는 미국 지성계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핵심에는 영화가 있었다. 손택은 자신의 예술론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늘 영화를 이야기했다.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그는 '영화가 가장 활기에 넘치고 가장 흥미진진하며 작금의 모든 예술 형식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된 이유'는 예술로서의 영화가 해석을 거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좋은 영화에는 언제나 해석의 충동에서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키는 직접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손택은 그 예로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앵바드에서>, 잉마르 베리만의 <침묵>, 그리고 고다르, 트뤼포,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꼽았다. ‘스타일에 대해’(1965)는 더욱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여기서 손택은 '우리가 예술을 통해 얻는 지식은 우리가 아는 어떤 것의 형식, 즉 스타일에 대한 경험이지, (가령 사실이나 도덕적 판단같이) 어떤 것 그 자체에 대한 지식은 아니다'라고 썼다. 그리고 나치 연루 혐의를 받던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와 <올림픽 경기>의 형식적 위대함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손택의 이런 시각은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이후 손택은 파시즘을 비판한 다른 글에서 자신의 입장을 재고한 바 있다. 손택은 소설이나 연극과 비교해 영화의 본성을 사유하는 두 편의 글을 남겼다. <해석에 반대한다>에 수록된 ‘소설과 영화에 관해 한마디’(1961)는 위대한 소설가와 영화감독을 비교하고, 영화를 다양한 문학 형식에 비유해 해설한 짧은 글이다. 여기서 손택은 문학적인 영화와 시각적인 영화를 나누는 상투적인 분류법을 반박한다. 대신 그는 ‘분석적’인 영화와 ‘묘사적’인 영화를 구분하면서, 카르네, 베리만, 펠리니, 비스콘티의 영화가 전자에, 그리고 안토니오니, 고다르, 브레송의 영화가 후자에 속한다고 말한다.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에 담긴 ‘연극과 영화’(1966)는 필름과 카메라, 배우와 극장 등 물리적 조건에 보다 집중하되, 경쟁적인 장르로 여겨졌던 연극과 영화의 교류 가능성을 타진한다. 또한 손택은 1950~1960년대 유럽영화의 열렬한 애호가였다. 그는 고다르와 베리만과 브레송과 레네의 영화에 대한 글쓰기를 즐겼다. 프랑스 누벨바그와 이탈리아 모더니즘 영화에 대한 손택의 비평은 실로 방대하고 두터운 교양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들이다. 손택은 직접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우디 앨런의 <젤리그>에 실명으로 출연해 주인공 젤리그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는 연기도 보여 주었다. 무엇보다 손택은 네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영화감독이었다. 스웨덴에서 제작한 두 작품, 즉 독일 정치 운동가의 폭력적인 심리 상태를 탐색한 데뷔작 <듀엣 포 카니발 Duet for Cannibal>(1969)과 정신적 결함이 있는 발레 선수와 두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브라더 칼 Brother Carl>(1971)은 비교적 호평을 받았다. 이스라엘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약속된 땅 Promised Land>(1974)에서 손택은 참여 지성인으로서의 활동 영역을 스크린으로 확장했다. 하지만 이후 손택은 영화 시나리오 대신 소설 집필에 더욱 몰두했다. 물론 손택의 영화 비평은 소설이나 사진에 대한 글보다 훨씬 주목받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손택이 미국 현대 영화에 대한 평론을 꾸준히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수전 손택이 열렬한 시네필이었다는 점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손택은 1996년 2월 25일 자 ‘뉴욕 타임스’에 발표한 ‘영화의 부패(The Decay of Cinema)’에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영화의 위기를 진단했다. 손택은 20세기 예술의 대표주자였던 영화가 점차 타락하게 되었으며, 그 이유는 영화를 사랑하는 정신, 즉 ‘시네필리아’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손택이 주목하는 시기는 1950년대 중반부터 약 15년 동안의 기간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젊은 시네필들이 영화를 보고 사유하며 토론하는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그러나 손택은 1970년대 이후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영화가 예술이 아니라 산업으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개탄한다. 그것은 영화를 단지 1회성 소비 상품으로 전락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시네필리아의 종말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는 열정적인 목소리로 영화에 대한 사랑을 회복할 것을 제안한다. 그 뜨거운 정신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일 시네필리아가 죽는다면 영화도 죽는다. 좋은 영화가 얼마나 많이 만들어지든 마찬가지다. 만일 영화가 부활하려면,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영화 사랑의 탄생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수전 손택(Susan Sontag) 연표 1933년 1월 28일 뉴욕 맨해튼 출생 1951년 시카고대학 졸업 1954년 하버드대학원 영문학 석사 1955년 하버드대학원 철학 석사 1963년 소설 <은인 The Benefactor> 1966년 에세이집 <해석에 반대한다> 1967년 소설 <죽음의 장비 Death Kit> 1969년 비평집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 1969년 영화 <듀엣 포 카니발> 1971년 영화 <브라더 칼> 1974년 영화 <약속된 땅> 1977년 비평집 <사진론> 1977년 에세이집 <은유로서의 질병> 1983년 영화 <안내 없는 관광 Unguided Tour> 1988년 에세이집 <에이즈와 은유들> 1992년 소설 <화산의 연인 The Volcano Lover> 1993년 희곡 <침대 속의 앨리스> 1999년 소설 <미국에서 In America> 2001년 에세이집 <강조해야 할 부분> 2003년 에세이집 <타인의 고통> 2004년 12월 28일 뉴욕 사망
|
첫댓글 oh , goo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