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광신자들을 경계해야
칼 마르크스는 1883년 그가 사망하기 전에 그의 사위인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 라파르그(Paul Lafargue)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란 것이다(ce qu'il y a de certain c'est que moi, je ne suis pas Marxiste )"라고 썼다 한다. 마르크스의 평생 동역자 엥겔스(F. Engels)가 전해 준 것이다. 또 다른 출처에 의하면, 런던에 거주했던 한 설익은 독일 청년이 마르크스의 이론에 너무 심취해서 그의 시원찮은 영어로 『자본론』을 영어로 번역하겠다는 등 날뛰는 것이 거슬려서 마르크스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름과 이론을 이용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활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주장과 행동방식이 자신의 이론에도 맞지 않고, 자신이 추구했던 목적과도 다르다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것 같다. 자기의 의도를 숨겨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자신의 사위에게, 그것도 아주 단호하게( certain) 그렇게 말했다면, 그것이 그의 진심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를 연구한 사람들 가운데는 마르크스가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De omnibus dubitandum est)"는 원칙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으며 학문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그의 편지에 보면 그런 주장이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 레닌 등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정통적인 것으로 정착된 "변증법적 유물론( DIAMAT)"과 그의 이론을 빙자해서 수천만 명을 살해한 스탈린, 마오, 김일성 삼부자, 폴 포트 등의 폭행을 알았더라면 마르크스는 아마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마르크스주의만큼 정치,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미술, 영화, 심지어 고고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친 사상가는 없지 않았나 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런 영향이 자신의 의도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것은 역설 중의 역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역설의 단초는 마르크스 자신이 제공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이론을 나폴레옹이 폄하한 이념( Ideologie), 즉 하나의 "거짓의식"이 아니라 객관적인 학문이론(Wissenschaft)이라고 주장했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을 이해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의 "이론"은 "이념" 즉 "사명을 가진 정치이론( political theory with mission)"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론과 달리 이념은 "도덕적 정당성", "거룩한 확신"이 동반될 수 있고, 세상과 인류의 "공익"을 위한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무장되어 있어서 열정적인 폭력행사도 감행될 수 있다. 수천만 명을 살해한 스탈린이나 마오는 말할 것도 없고, 2021년 미국 의사당 습격 사건도 이념의 그런 특성을 잘 보여주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태극기부대"나 "개딸"도 경계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론가의 비판 능력도 갖추었고 식자의 양심도 잃지 않아서 추종자들의 잘못되고 과잉된 반응에 비판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트럼프나 상당수의 한국 정치인들은 그런 능력과 양식을 갖추지 못한 채 자신들의 권력 획득과 유지에 목을 매기 때문에 추종자들의 감정적인 과잉반응을 비판하고 만류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부추겨서 이용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
인간현실은 한없이 복잡하다. 몇 가지 이론으로 과거와 현실을 설명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만들겠다는 오만은 과거에도 위험했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큰 물리적 힘과 교묘한 선동수단과 동원력을 이용할 수 있게 된 오늘날에는 특별히 위험하다. 진정하게 "공익"을 위하는 지성인이라면 이 복잡한 현실 앞에 철저히 겸손해져야 하고,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거룩한 확신"을 가지고 날뛰는 이념 광신자들에게 주의와 경고를 주저하지 말아야 하며, 그들을 부추기는 정치인들의 무책임을 지적하고 제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