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자연속학교 [10. 17 –10. 23]
가을 자연속학교를 잘 마쳤다. 코로나19 시대, 자연속학교 속에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함께 살고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코로나 1단계 생활 수칙을 지키지만, 행여나 다시 코로나가 확산될까 마음을 조렸더랬다. 코로나 청정구역 하동, 제주, 춘천가는 길에서 자기 앞가림과 함께 살기를 실천하며 재미나게 살다 왔다. 특별하게는 제주도 졸업여행 자연속학교는 우은영 부모 자원교사 도움을 크게 받았지만, 하동과 춘천은 오롯이 교사들의 힘으로 다섯 밤 엿새 낮 동안 어린이 삶을 가꾸었다.
아이들 성장이 눈부시다.
자연속학교 때면 늘 크게 주목받거나 더 많이 돌봄의 주인공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어린이 저마다 성장이 눈에 띄게 크게 보여 모두가 화제의 인물이었다. 1학년은 언니 누나 오빠 형 품속에서 쑥 자랐고, 2학년은 이 년 동안 자연속학교를 다닌 힘이 더 단단하게 자리잡았다. 3학년은 4학년을 도와 이끔이 노릇의 맛을 알아버렸고, 4학년은 이끔이의 긴장과 흥분을 그대로 보여주며 동생들의 든든한 형님들로 익숙해간다. 5학년은 한강을 따라 춘천까지 걸으며 길 위에서 자신과 동무들을 보고 걷는 여행인 자람여행를 실컷 누리고 왔고, 6학년은 졸업여행 자연속학교답게 한라산 백록담을 만나고 제주의 역사와 문화 속에 빠져 살며 아름다운 추억을 쌓고 돌아왔다. 코로나 해 세 곳에서 건강하게 자기앞가림과 함께 살기를 실천한 아이들의 성장이 눈부시다.
교사들 호흡과 역량
자연 속에서 스물네 시간 아이들 돌봄과 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선생들이 있기에 자연속학교가 있다. 자연속학교 때마다 그렇지만 올해는 코로나 해이다 보니 어느 때보다 아이들 건강과 안전에 집중해야 하는 긴장이 컸다. 자연속학교 때마다 부모자원교사들 덕분에 큰 힘을 받는데, 이번에는 코로나로 자연속학교 날짜가 바뀌어서 교사들끼리 살았다. 몸은 더 더 부지런히 놀렸겠지만 교사들의 호흡과 역량이 돗보이는 자연속학교였다. 교사들의 자부심이 그대로 교육의 성장으로 이어지리라 믿는다.
코로나19 시대 작은 학교와 교육공동체가 교육의 대안이다
코로나 단계마다 조치에 따라 움직였지만 아이들 건강과 안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건강과 안전을 중심으로 모든 자연속학교 일정과 흐름은 바뀌었고, 그에 걸맞게 채비했다지만 교육공동체의 힘이 있기에 자연 속 여행 기숙학교가 가능했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교육의 출구는 작은학교와 교육공동체, 마을에 있다 믿는다. 하나하나 살피고 부족한 것을 채우고, 서로를 북돋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가 교육의 채비이다. 맑은샘 교육과정의 힘은 맑은샘교육공동체의 힘이다.
2020. 10. 17. 토요일. 날씨: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지만 가을 날 답다.
가을 자연속학교가 시작됐다. 청소년교육과정 6학년은 졸업여행 자연속학교를 제주도에서 시작한다. 토요일이라 부모님들의 배웅을 받고 떠나는 6학년 표정을 보니 환하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가는 졸업여행도 여섯 번째인가보다. 코로나 본디 계획했던 졸업여행 자연속학교 목적지가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이렇게 제주도로 가는 것도 참 좋다. 요즘에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더욱이 여러 사정을 겪은 과정을 알기에 더 애틋하다. 건강하게 아름다운 추억 가득 쌓고 돌아오리라 믿는다. 문득 6학년 모둠 선생일 때 쓴 졸업여행 계획을 쓴 글이 떠올랐다. 덕분에 추억에 잠긴다.
“2008년 1회 졸업생부터 시작된 지리산 종주와 겨울 마무리 졸업여행은 지금껏 역사로 남아있고, 2010년 백두산 졸업여행부터 시작된 6학년끼리 여행도 해마다 바뀌어왔다. 그래서 2010년부터 우리학교 6학년은 졸업여행을 세 번 간다. 그동안 졸업여행비를 벌려고 대나무활과 활통, 음식, 밀랍초, 나무목걸이, 손팔찌, 천연염색 손수건과 스카프, 레몬청, 장아찌, 꽃차들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부족하면 부모님 도움을 받았으나 언제나 아이들과 선생이 열심히 일을 한 뒤 일이었다. 부모와 함께 가는 지리산, 선생들과 함께 가는 겨울 졸업여행, 그리고 모둠끼리 가는 졸업여행이 글모음 속에 그대로 담겨있다. 지리산, 소백산, 덕유산, 백두산, 설악산 곰배령, 태백산, 제천, 제주도, 경주, 장흥, 연대도까지 모두 뜻이 넘치고 추억이 가득한 졸업여행이었다. 올해 6학년은 백두산, 지리산, 연대도를 꼽고 있는데 주제학습으로 잡은 역사와 과학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조사하고 정리하고 발표할 게 많다. 아이들인 제안한 무인도는 요즘은 쑥 들어가고, 축구 좋아하는 두 소년은 손흥민 고향인 충주와 유럽축구의 고장 영국을 자꾸 말하고, 한 소녀는 제주도 할머니집에서 자고 먹고 놀자는 제안도 한다. 아이들 의견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모둠끼리 준비하는 졸업여행이 모둠선생 공부 밑그림과 뜻이 많이 반영되었듯이 선생은 모둠끼리만 가는 여행은 백두산을 생각하고 있다. 역사의 현장인 고구려와 발해 유적지, 압록강을 가고, 한민족의 명산인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보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북한과 중국을 공부할 수 있는 역사와 자연 여행으로 뜻도 충분하고 무엇보다 우리 땅이지만 가볼 수 없는 북녘 자연속학교의 또다른 형태를 졸업여행으로 채워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언제나 비용이 어려움이나 정성을 다하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 3회 졸업생들과 백두산을 오른 기억이 또렷하다. 최선을 다하고도 이루어질 수 없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졸업여행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설렘과 도전이다.” (2016. 3. 29)
내일은 동생들이 떠난다.
2020. 10. 18. 해날(일요일). 날씨: 가을날답다.
[가을 하동 자연속학교 첫 날, 놀고 놀고 또 놀았다.]
코로나 때문에 고속도로 쉼터에서 밥을 먹지 않고 하동에서 먹기로 해서 때마다 아이들에게 오전 새참을 안겨준다. 화장실도 사람들 없는 쉼터를 골라 갔고, 1시쯤에 하동 잠집에 닿아 맛나게 점심을 먹었다. 오래만에 온 잠집이라 더 반갑다. 공간이 충분해서 다섯 밤을 지내기에 편안하겠다. 밥 먹고 짐 푼 뒤에는 바로 마음껏 뛰고 놀 수 있는 운동장으로 갔다. 한동안 늘 잠집으로 썼던 하동학생야영수련원에서 자유롭게 놀고, 다 함께 축구 한 판 하고, 자연에서 먹을 걸 찾아낸다. 메뚜기, 여치를 잡아서 튀겨달라고 하고, 추자 먹는 법을 가르쳐주니 추자 잔치를 벌인다. 여기저기서 돌을 구해와 추자를 깨서 먹는다. 석기시대 도구로 꺼내먹는 방법을 아는 자연을 닮은 어린이들답다. 언젠가는 어릴적 감성과 추억을 꺼내리라.
잠집에 돌아와 함께 살 모둠을 정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첫 날 다 함께 마침회를 했다. 집을 떠난 첫 날은 늘 그렇듯 돌아갈 날을 꼽지는 않는다. 낮에는 그렇게 잘 놀다가도 저녁이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리운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 재미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잠자리에 누워 선생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거나 이야기가 끝나면 잠이 들곤 하는데, 이번에도 고소성의 얽힌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준다. 날마다 다음 편을 기대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이번에는 돌아가는 날까지 마무리까지 지어야겠다.
2020. 10. 19. 달날(월요일). 날씨: 맑고 푸른 가을 하늘과 햇살이 곱다.
[감 따서 먹고, 섬진강 물놀이]
아침 일찍 일어나 노는 어린이들 소리에 잠이 깬다. 7시 30분 최참판댁 가는 길 쪽으로 아침 산책을 다녀와 아침을 먹고 자유롭게 쉬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선생을 찾지만, 찾지 않고 알아서 쉬지 않고 스스로 잘 놀고 어울려 논다. 정자 옆 잔디밭에서 야구를 하는 어린이, 정자에서 공기놀이를 하는 어린이, 메뚜기를 찾아다니는 어린이, 아이들마다 제 기운껏 노는 게 참 보기 좋다. 공기놀이 하는 아이들 곁에서 공기놀이를 하는데, 어린이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재미난 이야기를 쉬지 않고 들려준다. 아이들 속에 푹 빠져 웃음이 절로 난다.
아침나절 공부는 성두마을 둘러보기다. 하동 자연속학교가 가능하도록 도와주시는 왕규식 악양농산물꾸러미 생산자 농부이자 맑은샘 악양배움터 선생님 덕분에 성두마을 감밭에서 실컷 감을 따 먹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며 밤을 주웠다. 늘 가던 대나무 옆길로 올라가는 탐험을 하는데 우리 1, 2학년은 가보지 못한 길이다. 지난해 지리산 종주 다녀와 낮은 학년 자연속학교에 결합한 탓에 성두마을 길을 안내하지 못한 탓이다. 성두마을 길을 구석구석 아는 사람만이 알려줄 수 있는 길이 제법 있다. 올라가는 길에 탱자를 주워 아이들에게 냄새를 맡게 해줬더니 먹어보고 싶단다. 옛날 어떤 형이 말 안 듣고 먹다가 배가 아파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니 더 먹겠다 하지는 않는다. 마을 가장 위쪽 제각을 지나 늘 가던 작은 골짜기로 가서 밤과 추자를 주웠다. 물 속에 있어 밤 상태가 좋다. 추자 맛을 안 태훈이는 추자를 줄곧 줍는다. 밤을 한가득 줍고, 밤벌레를 찾기로 했다. 섬진강 낚시에 밤벌레만한 미끼가 없다. 밤을 많이 주워서 제법 무거운데 선율이가 들고가겠단다. 언제나 늘 마음을 내서 선생들을 돕고 어린이들을 돕는 어린이답다. 내려가다 넘어졌는데 다행히 괜찮다. 또르르 굴러가는 밤을 모두가 함께 줍는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함께 해서 즐겁다.
낮에는 섬진강 물놀이다. 날이 차가워 물속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는데, 괜찮아서 여기저기서 물놀이를 한다. 나중에 들으니 섬진강 재첩이 이번 큰물로 다 떠내려가 잡을 게 없단다. 그래도 어린이 손이 많아 찾아낸다. 낚시 채비를 해갔는데 떡밥을 챙기지 못해 족대질로 물고기 잡았다. 족대질 하겠다며 족대를 들고 간 1학년 현준이는 물놀이에 빠져 족대가 흘러간 줄로 모르고, 1학년 현준이가 잃어버린 족대는 3학년 현준이가 아래쪽에서 찾았다. 섬진강 덕분에 실컷 물놀이와 모래놀이를 했다. 여러 번 족대질을 한 탓에 제법 물고기를 잡았다. 족대를 잡은 김에 아이들과 함께 여러 번 물고기 몰이를 했다. 아이들을 위해 물고기 많은 곳을 찾다가 정말 큰 물고기가 족대 그물로 들어왔다 나가는 걸 보고 혼자서 환호성을 질렀다. 큰 놈을 봤으니 잡아서 어린이들과 관찰하고 그림을 그린 뒤 맛있는 새참으로 먹을 생각에 욕심이 났다. 그러나 여러 번 족대질을 했으나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친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포기하고 더 낮은쪽으로 내려가 아이들과 몰이를 한 끝에 또 여러 마리를 잡았다. 작아서 손질하기가 귀찮긴 하지만 튀김용으로 충분하겠다.
왕규식 선생님이 한 바구니 감을 따주신 덕분에 잠집에 돌아와 아이들이 또 얼마나 감을 먹는지, 제철과일 먹는 맛을 안다.
2020. 10. 20. 불날(화요일). 날씨: 가을 하늘이 정말 좋다.
[함께 살기, 고소산성과 밤 탐험]
학교는 자기앞가림과 함께 살기를 배우고 실천하는 교육 현장이어야 한다. 날마다 밥때에는 다른 이보다 일찍 밥상을 차리고 뒷 정리를 하는 어린이들이 있고, 설거지와 빨래는 저마다 하고, 청소도 일을 나눠 척척 한다. 선생은 그저 모둠을 나눠 이끄미들과 같이 척척 일을 나눠하는 모습을 보고 도울 뿐이다. 학생 자율과 자치, 교사의 개입은 늘 경계에 있다. 아침 당번 차례라 6시 30분 일어났는데 아이들이 5시 30분부터 일어나 부스럭거리며 옷을 갈아입는 덕분에 늘 잠이 문제다. 모두를 위해 정성껏 밥상을 차리는 일만큼 귀한 함께 살기는 없다. 평소에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을 받고 사는지 아이들과 선생들은 배우고 있다.
아침 공부로 어제 잡은 재첩과 물고기를 관찰해서 그렸다. 특징을 잡아내어 그리는 살아있는 그림 솜씨들을 보니 역시 어린이는 화가다. 그림을 그린 뒤 물고기는 손질해서 그대로 튀김 새참이 되고, 재첩은 푹 끓인다.
낮에는 고소산성에 갔다. 악양에 오면 꼭 가는 곳이다. 요즘은 알려졌지만 예전에는 아는 사람만이 악양벌판과 섬진강의 절경을 보기 위해 오르는 곳, 고소(산)성이다. 가야시대 때 지은 걸로 짐작하는 산성은 가파르지만 눈과 온 몸에 선물을 가득 준다. 가만히 앉아서 명상도 하고, 바람 맞으며 드러누워 파란하늘을 올려다보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우리 어린이들이 그걸 안다. 잠깐 오를 때 힘들다는 것이 어떻게 바뀌는 가는 올라보면 알 수 있다. 15년 동안 하동 올 때마다 꾸준히 찾아가는 까닭이기도 하다. 맛있는 새참을 먹으며 멀리멀리 굽어보며 시를 쓰고 풍경을 담는다. 하동 밤과 감을 먹으니 입이 즐겁다.
저녁에는 어린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밤탐험이다. 역시 맛있는 밤참이 있다. 별자리 공부도 하고, 밤이 주는 어두움과 신비로움을 겪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밤참을 스스로 채비하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깡통화덕에 생협라면을 끓여서 모둠마다 먹는다. 고소성 내려오며 주운 나뭇가지로 불을 피워야 하니 쉬운 과제는 아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니 재미나고, 그 불을 피워야 좋아하는 라면을 먹을 수 있으니 집중도가 대단하다. 모둠마다 알아서 고소산성 내려올 때 나뭇가지를 줍고, 다 함께 척척 일을 나누고, 사이좋게 나눠 먹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곁에서 부지런히 돕는 선생들도 그 모습에 신이 난다. 스스로 불을 피워 먹는 라면이니 더 맛있단다. 하루가 긴 날이다.
2020. 10. 21. 물날(수요일). 날씨: 흐리더니 낮에 비가 온다.
[자기앞가림과 음식 잔치]
아침 산책으로 걷다가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갔다. 메뚜기를 잡고 싶은 어린이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논에서 뛰고 달리고 싶어서다. 택견으로 몸을 풀고 나오다가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윤슬이가 메뚜기가 없다며 약 치는 논이란다. 아는 게 많은 자연인이다. 메뚜기를 잡아서 튀겨먹는걸 좋아해 날마다 메뚜기를 찾고 있는 메뚜기 박사다. 메뚜기 소리만 들리면 눈이 커진다.
아침나절 공부는 빨래와 글쓰기다. 서로 도와 빨래하며 도란도란, 자연속학교 되돌아보는 글을 쓰며 돌아갈 날을 꼽는다. 점심 먹고 또 감을 따러 갔다. 아이들에게 하동은 감이 생각날 정도로 많이 먹는다. 모두 악양농산물꾸러미 왕규식 선생님 덕분이다.
낮에는 하동학생야영수련원에 갔다. 넓은 운동장이 없는 도시 속 작은 학교 어린이들에게는 언제나 날마다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이 소중하다. 다 함께 한 판 재미나게 놀고, 비가 올 때 잠집으로 돌아와 음식만들기 잔치를 벌였다. 음식 만들기는 어린이들이 놀기와 같이 가장 좋아하는 거라 자연속학교 때마다 크게 잔치를 한다. 이번에는 네 모둠으로 나눠 감튀김, 생협라면파스타, 라볶이, 햄떡햄떡을 만들어 저녁으로 먹었다. 따로 음식 재료를 사지 않고 있는 재료로 했다. 스스로 만든 맛있는 음식이 식기 전에 먹어야 해서 더 일찍 저녁을 먹었다. 맛난 음식잔치라 왕규식 선생님 부부를 초대했다. 우리 아이들은 정말 잘 먹는다. 부모를 떠나 긴 시간 함께 사니 먹을 것이 부모의 사랑을 대신한다. 그러니 선생들은 틈만 나면 먹을 거를 채비하는 요리사가 된다.
이제 돌아갈 채비를 할 때가 되어간다.
2020. 10. 22. 나무날(목요일). 날씨: 비온 뒤로 바람이 불고 기온이 차다.
[동생들이 형들을 돕고, 자연의 기상을 느낀다]
어제 밤에 비가 오더니 날이 차다. 지리산자락 구름이 신비롭다. 아침나절 직조와 바구니 교실을 열어 재미나게 놀았다. 솜씨좋은 우리 1학년 현준이는 손뜨개질을 어머니에게 배웠다며 형들을 가르친다. 1학년 하린이도 오빠들을 돕는다. 2학년 윤슬이도 선생님이 됐다. 놀랍지만 서로 익숙한 모습이다. 누구라도 배움을 나눠주는 작은 학교 풍경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만하라고 해도 멈출 줄을 모른다. 한 번 손맛에 빠지면 그렇게 된다. 원하는 집중은 언제나 놀랍다. 또아리, 차받침, 손뜨개목도리가 뚝딱 나왔다. 1학년 현준이는 어머니거 아버지거 만들어서 가져간다고 손을 쉬지 않고 놀린다.
낮에는 성두마을에 들려 감 따서 먹고, 왕규식 선생님 창고에 가서 인사하고, 천연기념물 491호 문암송을 갔다. 축지리 문암송은 612년 된 바위틈 소나무다. 언제 봐도 기상이 대단하다. 위대한 자연의 풍경 아래에서 숨바꼭질 네 판을 하고 자유롭게 놀다가 명상하고 내려왔다.
세 곳에서 열린(하동, 제주도, 춘천) 자연속학교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날. 좋은 날씨에 다들 무탈하게 마치니 고마울 뿐이다. 작은 학교와 교육공동체의 힘이다.
어린이들과 선생들이 자연속학교 동안에 누군가를 줄곧 돕는 수호천사 놀이를 했는데 서로 궁금해 한다. 나는 하린이를 뽑았는데, 하린이도 나를 뽑았단다. 서로 모른척 부지런히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들이 다 재미났다.
2020. 10. 23. 쇠날(금요일). 날씨: 날이 차다.
가을 자연속학교 엿새째, 가장 먼저 자람여행 자연속학교를 마친 5학년이 먼저 과천에 닿았고, 차례로 하동과 제주도에서 돌아왔다. 모두 안전하게 건강하게 돌아와 집에 가니 긴장을 쓸어내린다. 아름다운 추억과 자연의 감성을 가득 쌓고 또 훌쩍 자랐다. 이제 겨울학기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