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비를 타고
원제 : Singin' in the Rain
국내 개봉제 : 비는 사랑을 타고
1952년 미국영화
감독 : 진 켈리, 스탠리 도넨
음악 : 레니 헤이튼
출연 : 진 켈리, 데비 레이놀즈, 도날드 오코너
진 헤이겐, 시드 차리스, 밀라드 미첼
리타 모레노
1927년 미국에서 '재즈 싱어' 라는 영화가 등장하면서 세계 최초의 '유성영화'가 탄생했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영화탄생은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활동사진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이후 영화산업은 급진적으로 발전했고, 1910년~1920년대에는 무성영화들이 다수 제작되면서 20세기의 새로운 인기 문화상품으로 자리잡으며 무대 공연을 압도했습니다. 그러다 스크린에서 직접 배우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는 유성영화가 탄생했으니 굉장히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죠.
진 켈리와 스탠리 도넨이 공동 연출한 뮤지컬 영화의 걸작 '사랑은 비를 타고'는 이 시기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성한 작품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가상의 할리우드 영화사이고, 그곳에서 영화제작이 벌어지는데 '재즈 싱어'로 인하여 유성영화 시대가 도래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급조하여 유성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겪는 해프닝이었습니다.
유성영화의 도래는 영화사에서 새로운 신상품을 내놓을 기회이기도 했지만 적지앟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연기를 녹음하기 위해서는 곳곳에 마이크 등 장비를 설치해야 했으므로 촬영이 훨씬 난이도가 높아졌습니다. 화면에 마이크나 전선이 보여서도 안되고, 대사가 정확히 녹음되기 위해서는 배우의 발음이나 연기도 중요했습니다. 우리가 유성영화 초기의 1930년대 영화를 보면 마치 과잉연극을 하듯 목소리를 톤은 크게 높이고 빽빽 소리를 질러대른 어색한 연기가 나오는 이유는 숨겨진 마이크에 명확하게 녹음이 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30년대 초기까지 이런게 무척 심했죠. 그래서 30년대 중반 이전의 영화를 보면 그 과잉되고 어색한 연기 때문에 이질감이 많이 나지요.
좋은 콤비를 보여준 진 켈리와 도날드 오코너
'사랑은 비를 타고' 에서는 이러한 유성영화 초기의 어려움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는 부분은 바로 목소리와 발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인기 여배우 리나(진 헤이겐)에 대한 부분입니다. 무성영화 시대의 톱 스타인 리나는 목소리가 심하게 듣기 싫은 단점이 있어서 무대인사를 할 때나 대중들의 앞에서 절대 말을 하지 말라는 제작진의 당부를 받을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성영화 시대가 도래하니 이 여배우에 대한 활용이 골치거리로 부각됩니다. 리나와 황금콤비로 유명한 돈 록우드(진 켈리)는 춤과 노래에 능한 다재다능한 인물이라서 오히려 유성영화에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리나가 큰 문제였습니다. 그렇다고 황금콤비로 활약해 온 두 사람을 분리할 수도 없고.... 이 상황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로 영화를 만드는데 바로 리나의 목소리를 다른 배우가 더빙하여 따로 녹음하는 방법입니다.
더빙 후시녹음은 70년대 후반까지도 우리나라 영화제작에서 많이 쓰인 방식입니다. 신성일, 남궁원 같은 60년대 톱 배우들이 다른 성우의 목소리로 녹음을 했고, 자기 목소리로 연기한 배우들도 동시녹음이 아닌 후시녹음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나 홍콩 같은 곳에서도 후시녹음 더빙은 일상적이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배우의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장비의 기술적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거대하고 훌륭한 세트를 구비한 할리우드는 일찍감치 동시녹음 시스템을 갖추었지만 그런 세트없이 현장로케를 감행해야 한 이탈리아나 한국은 야외 동시녹음의 기술을 갖추기 어려웠지요. 일종의 립싱크를 통하여 영화를 제작한 것이죠.
이 영화의 주인공 돈이 몰려오는 팬들을 피하려다 우연히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여인 캐시(데비 레이놀즈)는 연극배우였는데 돈과 약간의 언쟁을 가집니다. 캐시는 영화배우가 말을 안하고 모션한 취하기 때문에 실제연기가 아니라고 반박하는데 직접 말과 연기를 함께 하는 연극의 경우는 발성능력을 필히 갖추어야 했죠. 캐시의 말처럼 유성영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실제로 배우의 발성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캐시는 리나의 목소리 대역을 맡게 되는데 그때 이미 캐시와 돈은 연인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리나는 캐시를 질투하고 그녀를 자기 목소리 대역으로 평생 활용하려고 계획하지만 오히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악수를 두게 됩니다.
진 켈리와 데비 레이놀즈
영화속에서 영화촬영하는 장면
캐시와 돈의 달달한 로맨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질투하는 악녀 리나의 이야기가 코믹하게 펼쳐지는데 그런 와중에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변화하는 시대의 상황을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용도 참 재미있고, 굉장히 버라이어티한 영상이 펼쳐지는데 특히 진 켈리와 시드 차리스가 중심이 되어 펼치는 시퀸스에서 꾸민 무대의 규모는 정말 입이 벌어질 정도이고 이 엄청난 무대쇼를 연출한 건 오로지 진 켈리의 완벽주의적이고 세심한 연출에 의해서입니다. 이 영화는 이 무대쇼 때문에 가장 많은 의상비가 들어간 영화이기도 합니다. 할리우드 클래식 시대의 각선미의 여왕으로 알려진 시드 차리스는 이 영화에서 대사 한장면 없이 이 버라이어티한 쇼 장면중 일부에서만 등장하지만 그 잠깐의 등장에서 빼어난 각선미와 출중한 안무실력으로 존재감있는 화면을 장식합니다. 이 영화를 빛낸 여배우로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한 데비 레이놀즈와 진 헤이겐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이 잠깐을 위해서 혼신을 다한 시드 차리스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파리의 아메리카인'의 주인공이었던 진 켈리가 이듬해 출연한 야심작으로 직접 공동연출까지 담당했습니다. 진 켈리는 굉장히 완벽주의자로 알려졌는데 20세의 나이에 이 영화에 주인공으로 발탁된 데비 레이놀즈는 진 켈리와 작업하면서 굉장히 많이 혼나고 엄청 혹독한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꿋꿋이 견디어 내면서 좋은 연기와 안무, 노래를 결국 만들어냅니다.
사랑에 빠지는 연인은 연기한
진 켈리와 데비 레이놀즈
노래, 춤, 연기, 외모 등 모든 면이 무난한
데비 레이놀즈는 팔, 다리가 짧은게 흠이다.
영화에서는 달달한 연인이었지만 실제로는
감독을 겸한 진 켈리에게 데비 레이놀즈가 치를 떨 정도로
엄청 혹독하고 힘든 경험을 했다고 한다.
마이크 처리가 난감한 유성영화 초기의 장면
진 켈리, 도날도 오코너, 데비 레이놀즈
세 사람이 펼치는 '굿모닝' 노래와 안무가 일품
데비 레이놀즈는 지금은 꽤나 생소한 배우처럼 느껴지지만 50년대 상당한 재능을 보여주면서 인기를 얻었던 스타로 우리에게는 '서부 개척사'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유일하게 등장하는 배우였고 그 영화에서도 출중한 노래실력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키스로 시작되었다' 에서는 글렌 포드과 밀고 당기는 달달한 사랑을 유쾌하게 연기했고, '인생의 조건' 에서는 토니 커티스와 같은 호텔방에서 경계를 만들어 방을 나눠쓰는 가난한 댄서로 달콤한 사랑을 벌입니다. 전성기 후기 작품인 '노래하는 수녀'에서는 '도미니크' 라는 노래로 알려진 실존인물인, 시스터 스마일 이라고 불린 수녀를 모델로 한 역할로 기타와 노래 연기를 인상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렇듯 재능많고 좋은 인상을 가진 여배우로 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이스 켈리가 활약하던 가장 막강한 할리우드 여배우 시대에 재능으로 살아남았던 배우입니다. 원래 춤연기에 능한 편이 아니었지만 진 켈리의 매우 혹독한 연출을 참아내며 노력을 해서 결국 영화를 빛나게 했는데 진 켈리, 도날드 오코너와 함께 셋이 안무와 노래를 펼치는 '굿모닝' 노래 장면에서의 연기와 호흡은 훌륭합니다. 노래 실력도 출중한 데비 레이놀즈인데 이 영화에서는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두 곡은 전문 가수가 더빙했다고 합니다.
스토리, 안무, 노래, 촬영, 의상 등 모든 부분이 완벽했고 흠잡을 곳 없는 훌륭한 영화입니다. 많은 곳에서 선정한 할리우드 최고의 뮤지컬 영화 1위로 꼽히고 있고 미국 역대영화 베스트 10에도 심심찮게 끼는 걸작입니다. 특히 진 켈리가 우산을 소품으로 삼아서 비를 맞으며 노래하는 장면은 역대 뮤지컬 영화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입니다. 다른 뮤지컬 영화에 비해서는 노래가 많이 나오는 편은 아닌데 노래보다 안무에 더 많은 치중과 노력을 기울인 영화입니다. 진 켈리와 도날드 오코너가 보여주는 탭 댄스도 일품이고.
영화사의 명장면이 된 빗속에서 노래하는 장면
할리우드 클래식 시대의 각선미 여왕인 시드 차리스가
대사없이 안무로만 출연하는데 진 켈리와
환상의 호흡을 맞추며 각선미를 자랑한다.
마를레네 디트리히, 시드 차리스, 셜리 매클레인으로 이어지는
각선미가 좋은 배우의 계보, 다만 다른 두 배우와 달리
시드 차리스는 톱 배우가 되지 못했다.
당대 영화중 의상비가 가장 많이 들어간
작품중 한 편
립싱크가 탄로나는 코믹한 장면
1952년 같은 해 제작된 영화중에서 아카데미 작품상은 세실 B 데밀의 '지상 최대의 쇼'가 차지했고 감독상은 '아일랜드의 연풍'의 존 포드가 차지했지만 제가 보기엔 두 편에 전관예우 프리미엄이 들어갔고 실제 가장 잘 만든 작품은 이 '사랑은 비를 타고' 라고 생각됩니다. 후대에 받은 평가는 단연 '사랑은 비를 타고'가 높죠. 아카데미상에는 단지 여우조연상(진 헤이겐)과 음악상 2개 부문만 후보로 올랐는데 촬영상과 의상상, 미술상의 수상은 커녕 후보에도 못 오른 건 분명 넌센스지요.
우리나라 극장 개봉시에는 '비는 사랑을 타고' 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는데 어느 순간 제목이 '사랑은 비를 타고' 라고 슬쩍 바뀌었습니다. 비디오가 그렇게 출시되었기 때문일텐데 사실 비가 왔다 보다 사랑이 왔다 라고 해야 더 어울리긴 합니다. '사랑이 비를 타고 나에게 왔다' 라는 의미가 훨씬 어울리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사랑은 비를 타고'가 더 적합한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데비 레이놀즈의 이름을 알리고 그녀가 십수년간 주연급 배우로 활동하게 한 영화인데 진 켈리와 공연하면 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44년 '커버 걸'의 리타 헤이워스, 1951년 '파리의 아메리카인'의 레슬리 캐론에 이어서 데비 레이놀즈가 그 자리를 이어받은 셈입니다.
1953년 시네마스코프 대형화면 시대가 열리기 전에 4:3 화면으로 제작된 뮤지컬 중 가장 규모있고, 멋지게 잘 만든 작품입니다. 스탠더드 화면 비율 뮤지컬중 가장 알차게 화면을 활용한 영화이고 이후 뮤지컬 영화는 2.35 : 1 화면에서 더 웅장하고 더 화려한 스케일과 안무로 활용되었습니다. 유성영화와 무성영화가 교차하는 시대를 담은 내용이었지만 화면비율의 변화를 앞둔 교차시대의 끝에 존재했던 뮤지컬 장르의 불멸의 걸작이 된 영화지요.
평점 : ★★★★ (4개 만점)
ps1 : 실제 유성영화 시대가 도래하고 대사가 안되어 도태한 배우들이 꽤 많았다고 합니다. 반면 무성영화 시대에 출발한 배우지만 매우 근사한 음성 때문에 유성영화 시대에 물 만난 물고기가 된 배우가 바로 게리 쿠퍼 같은 인물이지요.
ps2 : 듣기 싫은 목소리를 가진 여배우를 연기한 진 헤이겐은 실제로는 괜찮은 목소리를 가졌고 이 영화에서 '근사한 대역목소리'로 나오는 부분에서의 목소리는 실제 그녀의 음성이었다고 합니다.
ps3 : 찰리 채플린 같은 경우는 유성영화 시대가 도래했어도 한동안 무성영화 스타일을 고수한 배우였습니다. 유성영화시대를 맞이하여 가장 득을 본 배우들이 아마도 무대에서 연기한 연극배우들이었을 것 같습니다.
ps4 : 혼자 보기 아까운 흥미롭고 멋진 영상들입니다.
[출처]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 52년) 뮤지컬 최고 걸작 중 한편|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