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 젊은 음악도들이 세계 국제 음악콩쿨에서의 활약은 우리나라
음악사에 길이 남을 가장 뛰어난 해로 꼽힐 것이다. 긴 겨울이 끝날 3월 8일 이태리
제노바에서 날라온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쿨에서의 양인모 우승 소식은
국제 콩쿨중 첫번째 메이져급 콩쿨에서의 퀘거었다.
양인모.
그리고 봄이 완연한 5월 14일 그동안 세계의 변방에 머물렸던 우리나라의 관악분야에서
플륫과 클라리넷 부분 프라하 국제 콩쿨의 두분야 우승과 플륫부문에서는 2위까지 입상하여
우리나라 관악기 역사를 다시 쓴 정말 의미있는 날이었다. 플륫의 김유빈이 우승 2위에
조성현 클라리넷의 김상윤군이 우승, 이런 성과뿐만아니라 클라리넷 부문에서 13명의
우리나라 음악도들이 초대를 받아 1차 예선에서도 상위권에 포진되었고 플륫부문에서도
10명이 초대받아 가장 많이 초청받은 국가였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우리나라
목관파트의 젊은 연주인들이 세계속에서 우뚝선 의미있는 콩쿨이었다.
김유빈
조성현
김상윤
5월 4일 프라하 콩쿨보다 먼저 시작된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쿨 바이올린 부문에서
초대받은 61명중 21명이 우리나라 바이올린 연주가로 DVD심사를 거쳐 통과된 세명중
한명이 우리나라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이중 12명이 올라가는 결선에 김봄소리,
이지윤, 임지영이 올라가 임지영이 우승을 차지한다.
퀸엘리자베스 콩쿨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조금씩 안정기를 찾을때인 1951년 벨기에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부문에 한해씩 콩쿨을 시작하여 1987년부터 성악과 작곡분야까지를 넓혀 일년에 한분야 혹은
두분야씩 경연을 하는데 올해에는 바이올린 부문에서 경연을 하였다.
6월 15일 시작되어 7월 3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국제 콩쿨에서는
피아노,바이올린,첼로,성악의 네 부문에서 모든 부문에 우리나라의 음악도들이 참여를
해 피아노에서는 입상을 하지 못했고 바이올린 부문에서 4위에 클라라 주미 강이
5위에 김봄소리가 입상을 하고 첼로 부문에서 5위에 강성민이 성악 남자부문에서
유한성이 3위에 입상하였다.
유한성 바리톤.
2006년 우리나라에서만 교육을 받은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우승을 해 우리나라에서도
익히 알려진 영국 리즈 피아노 국제 콩쿨이 8월 26일에서 9월 13일까지 열려
우리나라의 18명의 음악도가 초청을 받아 김희제가 2위를 차지했다.
김희제
8월 25일 부터 9월 4일까지 이태리 볼짜노에서 열린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우리나라의 문지영이 우승을 홍민수가 4위를 차지한다. 피아니스트 문지영은
예선부터 출중한 연주, 다른 참가자들과는 확연한 실력 차이로 우승뿐만 아니라
별도의 5개 부상을 받는다.
8월 31일 부터 9월 18일까지 열린 ARD 국제 음악콩쿨에서는 올해 트럼본,풀륫,
피아노 듀오,성악 부문이 열려 피아노 듀오에서 우리나라의 신미정,박상욱이 2위
성악부문에서 이수연이 2위에 입상한다.
박상욱,신미정 이수연
10월 12일에 시작한 칼 닐슨 국제 쳄버콩쿨은 또다른 시각에서 우리나라의
관악기 역사를 새로쓴 중요한 콩쿨이었다. 변방에서만 있었던 우리나라 목관악기
부문에서 조성현,함경,김한,Ricardo Silva,Rie Koyama의 "Veits Quintet",
김지우,차시현,이진아,이지민,백성훈의 "Belle woodwind Quintet", 황순아,김대운,
최지훈,강민주,김수경의"Elas Quintet", 클라리넷의 김신아가 "TARQA"의 팀 일원으로
초대를 받는다. 이는 우리나라 목관계가 세계적인 무대에서도 서서히 두각을
나타낸다는 의미가 큰 일이었다. 조성현,함경,김한,Ricardo Silva,Rie Koyama의
"Veits Quintet"이 세팀이 오른 결선에 올라 2위를 차지한다. 국제 콩쿨이란 명칭을
사용하면서 심사위원 6명중 4명이 자국 심사위원으로 나머지 두명도 인접국가인
스웨덴,독일심사위원으로 채워 결국 자국 목관 5중주팀에 우승을 안긴다.
플륫의 조성현,오보에의 함경,클라리넷의 김한은 우리나라가 배출한 목관 연주자들의
미래에 희망을 본 출중한 연주로 앙상블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Veits Quintet 조성현,Ricardo Silva,Rie Koyama,함경,김한.
10월 1일 말타 아르게리히의 연주회로 시작한 제 17회 쇼팽 국제 피아노콩쿨에서도
9명의 우리나라 음악도들이 4월에 있었던 예선을 통과해 결선에 임한다.
문지영이 부조니 콩쿨에서의 피로 때문인지 참가를 포기해 안타까움이 있었으며
스테이지 3까지 한치호,김수연,조성진이 올라가 좋은 연주로 우리나라 피아니스트의
명예를 높여주었고, 4번에 걸친 예선에서 자신의 피아니즘을 세계 음악계에
확실하게 인식 시켜준 조성진이 결선에 진출하여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음악사에 남을 훌륭한 연주로 우승을 차지한다. 시상식및 입상자 연주회에서 폴란드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는 우승 메달을 받은 조성진은 바로 있었던 입상자 연주에서도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다시 연주해 모든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는다. 앙콜곡으로 폴란드의
자존심이 담겨있는 폴로네이즈 Op.53 no.6 A Major을 연주하여 폴란드 대통령 내외와
모든 청중들에 열렬한 환호의 기립박수를 받는다.
위의 글에서 보았듯이 올해는 우리나라 음악사에 남을 우리나라 젊은 음악도들의
세계 무대에서 활약이 대단한 한해였다.
5년만에 한번씩 오직 피아노 부문에서 또 쇼팽 피아노 작품만을 가지고 열리는 쇼팽 피아노
국제콩쿨은 1960년 6회때의 마우리치오 폴리니, 1965년 7회때 말타 아르게리히,
1970년 8회때 게릭 올슨, 1975년 9회때 크리스티안 짐머만, 1980년 10회때 베트남의
당 타이 손, 12,13회에는 우승자를 뽑지 못하고 2000년 14회때 중국의 윤디 리, 2010년
16회때 3위를 한 다닐 트리포노프, 역대 우승자들이나 입상자의 면모만 보아도 대단한
전문 연주 피아니스트들을 배출해 낸다. 이 콩쿨이 다른 콩쿨과는 차별된 세계 최고 권위를
가질 수 있었던 점은 폴란드가 자국의 작곡가인 쇼팽을 기리기 위해 국가적인 행사로
이 콩쿨을 치루는 점과 이 콩쿨을 주관하고 있는 쇼팽 인스티튜트가 입상자에 대한 관리,
서포트등이 다른 콩쿨과는 비교되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오랜시간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들 수 있을것이다. 우승을 한 조성진의 경우 우승 후 21,22,23일 3일에 걸쳐
있는 입상자 연주회를 통해 3번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다시 바르샤바 필과 연주 하고
조성진이 이 콩쿨에서 연주 했던 모든곡이 독일 그라모폰의 실황음반으로 다음달 출반된다.
세계 최상의 대접을 받고있는 로열 암스텔담 게보 오케스트라와 협연,파리, 런던, 브루셀,
서울,상하이,싱가폴,도쿄,오사카,나고야,사포로에서 열리는 연주회등에서 연주를 한다.
조성진이 이번 콩쿨을 통해 전세계 음악인들에게 심어준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모든 연주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쇼팽 해석을 확실한 자신의 언어로 제시한 점이다.
필자의 생각으로 그동안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제시한 쇼팽음악과 이번 출연자들의 연주
에서도 느낄수 있었듯이 멜랑콜리한 쇼팽, 여성스런 연약한 쇼팽, 루바토를 남발한 쇼팽이
아니라 최대한 로만틱적인 요소들을 절제를 통해 엑기스화 하여 그동안 천편일률적인 쇼팽을
벗어나 건강하고,맑고,밝고,거대한 내면의 에너지를 소유한 쇼팽을 웅변하고 제시한다.
마지막 쇼팽 협주곡 1번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조성진의 쇼팽이 표현되었고 그가 들려준
이곡의 울림은 현존하는 최상의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미지로 향한 개척 정신의
일부를 보는 듯한 대단하고 참신하고 건강한 울림이었다.
이렇듯이 조성진의 이번 콩쿨에서의 우승은 우승 그 자체에서도 빛나는 일이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음악적 완성도에서나 그가 앞으로 피아니스트로 제시할수 있는 또 다른
미지의 세계가 있음을 감지 할 수 있었던 점이 이번 콩쿨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21세의 어린나이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인터뷰에서
"음악가의 목표에는 한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유명해지는 게 매력적이긴 하지만 파리에서
유명 연주가들 공연을 보고 실망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좋은 연주자가 되기로 했다.
음악이 우선인 좋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 끝까지 좋은 음악을 연구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일년에도 수많은 콩쿨에서 수많은 우승자나 입상자들이 나오지만 정작 음악인이라
말할 수 있게 성장되는 연주자는 극 소수에 불과하다. 어린나이에 이런 사고를 할수있다는
자체가 앞으로 좋은 음악인으로써의 자질이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좋은 사고를
바탕으로 세계음악사에 남을 좋은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조성진의 퀘거에 못지않게 올해의 우리나라 젊은 음악도들이 세계 무대에서 보여준
많은 결과물들은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었다. 빼어난 실력으로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쿨에서 우승한 양인모, 변방국의 목관악기 역사를 다시쓴 플륫의 김유빈,조성현
클라리넷의 김상윤 특히 플륫의 김유빈,조성현은 세계 플륫계를 이끌만한 출중한 연주력
으로 높이 평가 해주고 싶은 결과였고, 최상급 콩쿨인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쿨에서 신데렐라
처럼 갑자기 혜성같이 등장한 바이올린의 임지영은 아직 검증이 덜 끝난 미완의 연주가로
생각되어지고, 확실한 자신의 그림을 그려내 부조니 피아노 국제콩쿨에서 우승한 문지영
또한 조성진과 더불어 가장 기대되는 피아니스트다. ARD 콩쿨 성악부문에서 2위를 한
이수연 역시 한국의 콜로라투라의 계보를 이을만한 훌륭한 자질을 보여 주었다.
칼 닐슨 쳄버 콩쿨에서 보여준 플륫의 조성현,오보에 함경,클라리넷의 김한의 앙상블은
세계 최상급의 목관 앙상블을 들려주어 우리나라 관악기 역사를 새로 쓸만한 귀중한 결과로
문지영,조성진의 성과에 버금가는 큰 결과라고 생각된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올 한해의 우리나라 젊은 음악도들이 이루어 낸
세계에서의 활약은 무었보다도 그 질에 있어 빼어난 결과여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꾸준한 자기관리와 좋은 사고를 통해 세계 음악계에 좋은 음악인으로 남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우승후 중앙일보와 인터뷰
“연주는 손이 저절로 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떨렸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이제는 행복하고 걱정도 된다.”
20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의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21)씨의 말이다.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에서 그는 2005년 쇼팽 콩쿠르를 보고 처음으로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음은 조씨와의 일문일답.
-피아니스트에게 꿈의 무대인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기분은 어떤가.
“처음에는 당연히 믿어지지 않았다. 현지 시간으로 20일 자정쯤 발표가 났고 새벽 1시에
기자회견을 하고 세시간쯤 잘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이게 혹시 꿈은 아닐까 싶어 뺨도
꼬집고 때려봤다. 그런데 지금은 걱정이 된다. 콩쿠르 덕에 앞으로 연주 기회가 아주
많아질텐데 그 때 나에게 기대했던 사람들을 실망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콩쿠르 우승을 예감했나.
“이달 초 열린 본선 1~3차 무대에는 엄청나게 떨었다.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내가
어떻게 연주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기억이 안 나서 나중에 유튜브를 찾아봤을
정도다. 원래 콩쿠르에서는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다. 마인드 콘트롤도 거의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하려고만 노력했다. 무대에 나가기 전에 초콜릿도 많이
먹고…. 그런데 네번째였던 마지막 결선 무대에서는 신기하게 안 떨리더라. 무대에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았다. 연주는 손이 저절로 하고 있었고, 나는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즐기면서
듣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한 건지는 진짜 잘 모르겠다. 가끔 저절로 잘 풀리는 연주가 있긴
했지만 이번 마지막 무대에는 확실히 만족스러웠고 내가 원하는 쇼팽 협주곡이 나왔다.”
-원래 콩쿠르에 출전하면 다른 참가자들 연주도 끝까지 듣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도 안 들었다. 너무 떨렸기 때문이다. 잘 치는 연주를 보면 더
떨릴까봐 걱정이 됐다.”
-쇼팽 콩쿠르를 10년 전부터 준비했다고 들었다.
“10년 동안 준비했다기 보다, 이 콩쿠르는 내가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던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여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순전히 취미였다. 진지하게
레슨을 받은 게 남들보다 늦은 편이었다. 2005년 한국의 임동민ㆍ동혁 형제가 나와 3위에
오른 쇼팽 콩쿠르 동영상을 보는데 그들을 ‘피아니스트’라 소개하는 걸 듣게 됐다. ‘아 저런
게 피아니스트구나’하고서는 나도 피아니스트가 돼서 나가보자고 생각했다.”
-불과 10년 만에 꿈이 이뤄진 건가.
“그 10년동안 청소년 콩쿠르, 일본의 하마마쓰 콩쿠르,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까지
나가면서 사실은 콩쿠르가 싫어졌다. 경쟁이 부담스러웠다. 계속 쇼팽 콩쿠르만 꿈꿨다고
할 수는 없지만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던 계기였던 건 맞다. 지금 아주 행복하다.”
-그동안 많은 작곡가의 작품을 소화해 무대에 올려왔다. 쇼팽 전문 연주자라는 인식은
별로 없었다. 이번 콩쿠르를 위해 특별히 어떻게 준비했나.
“사실 이번 대회에서 연주한 많은 곡이 어려서부터 친 것들이다. 폴로네이즈ㆍ연습곡ㆍ
녹턴 등이다. 그래서 딱히 집중적으로 준비한 건 아니었다. 짧은 피아노 인생에서 다뤘던
레퍼토리들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가장 준비를 많이하고 부담됐던 건 프렐류드 세 곡이다.
지난해 11월 시작해 연습했다.”
-이번 콩쿠르가 특히 부담이 되진 않았나.
“잘 못 느꼈다. 원래 예민한 편은 아니다. 한 콩쿠르에서 우승한 사람들이 다른 콩쿠르에도
자유롭게 나가는 시대 아닌가. 그런 점에서 마음을 비우고 출전했다. 다만 최선을 다했다.
음악을 잘 만들고 오자고 생각했다.”
-파리에서 공부한 경험이 이번 콩쿠르에 좋은 영향을 줬나.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의 파리 미셸 베로프 선생님은 나에게 강요하는 게 거의 없다.
토론식으로 이끌어낸다. 그래서 더 연구를 많이 하며 연주를 준비할 수 있었다. 또 콩쿠르를
앞두고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에게 조언을 들었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
-피아니스트로서 남은 목표는.
“음악가의 목표에는 한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유명해지는 게 매력적이긴 하지만 파리에서
유명한 연주자들 공연을 보고 실망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좋은 연주자가 되기로 했다.
음악이 우선인 좋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 끝까지 좋은 음악을 연구하고 싶다.”
-앞으로 연주 일정은.
“30일까지 폴란드에서 다섯 번 연주가 있다. 다음 달에는 런던에 데뷔한다. 이후에
암스텔담에서 로열콘세르트헤보우와 협연, 일본에서 NHK교향악단과 협연을 한다. 한국에는
내년 2월에나 갈 수 있다. 쇼팽 콩쿠르 입상자들과 함께 갈라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franciscopaik.
첫댓글 역시 ! 민토의 창♥
새로운것. 배우는저. 보고 느끼고 감탄의연속.....
너무고맙습니다
젊은 그대 대한의 힘..
자랑스럽습니다
자랑스런 한국인~^^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자신이 선택해서 최선을 다한 피아노 연주^^..
그래서 더 멋지다..천재란 99%노력과 1%의 영감..적용해본다..파이팅^^
와 정말 멋진 연주입니다. 표정 또한 기가 막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