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명을
임이 부르시면 달려가지요.
금띠로 장식한 치마가 없어도
진주로 꿰맨 목도리가 없어도
임이 오라시면 나는 가지요.
<모윤숙>
아재는 재테크에 실패했다. 아!재테크! 사십 년 전 오십만 원 주고 산 면허증을 반납하면서 10만 원을 받았다. 시간차나 이자를 따지면 완전히 망한 투자이다. 아재의 추천으로 지인들도 면허증을 샀다. 공소시효가 지나고 아재도 돌아가시고 이제야 나는 양심고백을 하는 바이다. 아재는 유난히 사람 좋고 바라는 것 없이 주변인들을 항상 챙기는 그런 분이었다. 그때 그 시절엔 운전면허 따기가 어려웠다. 운전학원도 없었고 모든 걸 혼자 알음알음해야 하던 어두운 시절이었다. 아재는 성품이 온화하고 정이 많아 화려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면허증을 판매하던 아재의 지인은 아직까지 누군지도 모르는 전설 속 공무원이라는 사실밖에 없다. 그나 그녀는 지인들의 구세주였다. 친인척들이 단체로 면허증을 공동구매했다.
경상도 상남자 아재는 논산 훈련소에서 근무하는 군인이었다. 카메라를 가지고 싶어 하던 나를 군대 PX(군대 면세점 Post eXchange)에 데리고 갔다. 소형카메라와 간식들을 사고 군용 차량을 타고 갔다. 아재가 갑자기 운전병에게 차를 훈련장으로 돌리라고 했다.
눈앞에 내 일생에 그렇게 많은 남자들은 처음이었다. 사업가이자 고고학자인 하인리히 슐리만(Schliemann, Heinrich)이 트로이의 유적 프리아모스궁을 처음 발견했을 때나, 프랑스의 식물학자 앙리 무오가 캄보디아 내륙에서 앙코르 와트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느낌일 것 같았다. 정말 진짜 나라에서 막 인두로 K.S. 마크를 이마에 달아준 그런 남자들이었다.
죄수처럼 머리를 빡빡 밀은 수천 명의 남자들이 겨드랑이 털을 휘날리며 어깨 위에 올리고 있던 통나무를 머리 위로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와 검게 그을린 남자들의 구호소리, 다 같은 얼굴이었고 모두가 군복차림이었다. 무엇보다 상체를 벗고 있었다. 갑자기 아재가 차를 세우고 나보고 내리라고 했다.
"맘에 드는 놈 있음 아무나 골라라! 다 니 거다!"
평소에 꿈꿔 왔던 일이지만 막상 경험하니까 그다지 멋진 일은 아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붉은 레드카펫을 밟고 걸어가는 아찔한 금빛킬힐을 신은 여배우가 되는 꿈처럼 자주 떠올렸던 환상이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다.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걷다가 범죄도시에 나올 것 같은 수많은 갱스터들을 만난 기분이었다. 혹시나 아들을 훈련소에 지금 막 보내고 그리워하시는 분들이 보신다면 이해 바란다. 무엇이든 용서될 것 같은 그때 난 갓 스무 살이었다.
아! 이제 막 여자가 된 아가씨인 나에겐 공포체험이었다. 차의 좌석에 꼭 붙어 절대로 내리지 않았다.
" 아, 아니 되시옵니다. "
논산 훈련소와 빡빡머리 남자들은 전부 같은 얼굴이었고 내겐 TV나 영화에서 본 머그샷 속의 악당들뿐이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여름의 땀 뻘뻘 흘리는 웃통 벗은 남자들은 그냥 다 같은 남자들이었다. 아재집에는 언제나 군인오빠들이 왔고, 김장도하고 도배도 했으며, 심지어 아재딸의 과외도 했다. 시골길 벌초를 하러 갈 때도 함께했다. 아재는 그들을 '아그"라고 불렀다. 아재는 월남전에 두 번이나 갔다 오고 재테크를 잘해서 부동산 부자였다. 취미로 군에 계신 것 같았다. 어린 병사들에게 용돈도 주고 밥도 많이 사주었다. 아재는 그런 사람이었다. 일생을 경쾌했고 소박했고 정이 뚝뚝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색다른 하루를 아재로부터 선물 받았다. 오십이 넘은 지금은 추억 속의 희화되는 코미디극일 뿐이다. 그리움은 그렇게 돌고 돌아온다.
지금 같으면 일부러 그런 자리 없나 찾아다니고 싶다. 하객룩 입고 나를 불러 주는 곳이 있다면 언제든 달려갈 것이다. 모윤숙의 시 <이 생명을>에서처럼 남자들이 부른다면 달려갈 것이다. 황금빛 추억은 나이와 함께 다시 그려지는 것이다.
임이 부르시면 달려가지요.
에르메스 벌킨백이 없어도
샤넬의 트위드 재킷이 없어도
임이 오라시면 벌거벗고서라도
나는 가지요.
<정온>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