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시대 합창으로 열어가야죠”
합창은 탁월한 힐링의 용광로 - 용서, 사랑, 배려, 치유, 화합의 실체
TV 방송 <남자의 자격>으로 스타덤에 오른 합창계 원로이자 巨匠(거장) 윤학원 지휘자는 요즘도 몇 개의 스케줄을 소화해 내느라 무척 바쁘다. 그의 정식 직함은 인천시립합창단 예술 감독, 서울코러스센터 이사장이다.
선명회 합창단을 40년이나 이끌며 전 세계에서 수백회 순회 연주를 가진 클래식 韓流(한류)의 원조 격인 윤학원 지휘자를 탁계석 음악평론가가 만났다. <편집부>
합창은 화합과 소통의 최고 명약
탁계석 평론가(이하 탁) : <남자의 자격> 이후 합창이 놀라운 속도로 증가추세에 있습니다. 어린이합창단, 초, 중, 고등학교 합창단, 지역의 洞(동)과 구청마다 합창단이 생기고 아버지합창단, 어머니합창단, 기업합창단, 가는 곳 마다 합창페스티벌이 열리고 합창이 국민들 속에 깊이 파고들면서 새 문화 트렌드로 떠올랐는데요. 합창의 힘, 합창의 매력이 무엇이 길래 이처럼 좋아하는 것입니까.
윤학원 지휘자(이하 윤) : 세상에 돈 안들이고 이만한 기쁨을 느낄 것이 없지요. 오케스트라는 악기를 구입해야 하지만 합창은 목소리가 악기니 돈이 많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저비용 고효율인 셈이죠. 합창단 운영에 지휘자와 반주자만 대우하면 작게는 40~50명, 크게는 100명이 넘는 합창단이 모두 행복하니 이만한 것이 또 어디에 있나요.
우리나라 사람만큼 목소리 좋고, 노래를 좋아하는 국민이 없습니다. 함께 노래하면 외롭지 않고 건강에도 좋습니다. 서로 표정을 보면서 노래하는 것, 아름다운 화음, 이게 ‘행복’이죠.
요즈음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우울증인데. 합창을 하면 확 날아가버립니다. 술로 풀면 중독이 되고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지만 합창은 기업 총수라도 혼자서 못하잖아요. 그래서 합창은 평등해 집니다. 지위가 높다고 더 큰 소리 내는 것도 아니고, 몇 사람 분의 소리를 내지 않지요. 조금이라도 튀면 화음을 방해해 문제를 일으키죠.
어릴 때부터 이런 훈련이 되면 남에게 배려하고, 남의 소리를 듣는 ‘경청 훈련’이 되죠. 우리는 정치가나 누구나 할 것 없이 남의 의견을 잘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잖아요.
민주주의가 왔지만 의식 깊은 곳의 민주주의는 오지 않은 겁니다. 혼자서 마음의 것을 털어내지 못하니까 병이 생겨요. 서로 눈빛을 보고 섬세한 소리로 예민하게 소리를 듣는 훈련은 그래서 합리적인 민주주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일본 2만개, 한국 500개국민 합창으로 확산돼야
탁 : 저도 13년 전 IMF가 터졌을 때 한 지휘자와 함께 아버지합창단을 창단한 적이 있는데 이후, 아버지합창단은 13개 단체 이상으로 늘어났고 지금도 왕성한 사회봉사를 하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시름에 빠져 있던 아버지들이 모여 노래하니까 자녀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가정이 건강하게 회복이 됐으니까요.
윤 : 이미 역사적으로 합창강국들은 합창을 통해 국민 통합과 국민 정신건강의 토양을 만든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히틀러가 전후 흩어진 국민들의 통합을 위해 합창을 강조한 것은 다 아는 이야기 아닙니까. 오늘날 독일이 합창 강국이죠.
또한, 북유럽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덴마크가 모두 합창 강국입니다. 에스토니아는 10만 명의 합창으로 소비에트연방 탈퇴를 외칠 정도로 합창이 대단한 나라죠.
탁 : 가까운 일본 만해도 2만개의 합창단이 있는 합창강국이 아닙니까. 이들은 매년 5천 명, 1만 명 합창을 정기적으로 하고, 국민들 여가문화에 합창이 뿌리가 내렸죠. 우리나라에서 합창 전성시대라면 아무래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음악을 좋아해 펼친 새마을합창 운동이 아닐까 합니다.
70년 말에 오늘날의 국립합창단, 시립합창단들이 생겨나 지금은 60개가 넘는 튼튼한 뿌리가 된 셈이죠. 직장, 구청, 학교마다 합창대회가 있어 지휘자들이 몇 개의 합창단을 맡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그 때의 몇 분의 1도 안될 만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있어요. 초, 중, 고는 거의 전멸 상태지만 실행하고 있는 학교들은 모두 분위기가 좋다고들 합니다. 합창 운동을 다시 살리면 학교 문제도 풀릴 것으로 보입니다.
윤 : 좋은 합창운동이 지속되지 못하고 입시에 밀린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요즈음 초등학교에서 합창을 하려면 점심시간을 조금 할애 받아서 너무 힘겹게 하고 있어요. 학부형들이 공부해야 한다고 못하게 하니 학교장들도 어쩔 수 없다며 무관심해버리는 것이죠.
그러니까 학교에서 왕따, 폭력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실제 합창을 하면 남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서로간의 조화를 배우며, 절제력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거친 정서가 순화됩니다.
요즈음 아이들 컴퓨터 게임 말고는 친구가 없어요. 교육부에서 부활시키고, 어떤 방법으로든 학부형을 설득해야 합니다.
인천시, 대전시 洞(동)합창단 만들기 붐
탁 : 요즈음 洞(동)합창단 만드는 풀뿌리 합창 운동이 확산되고 있어 희망적입니다. 윤선생님의 인천시에서도 동합창단을 만들고 대전시는 지난해 동합창단 42개를 만들어 페스티벌을 했으니 市(시), 郡(군) 區(구)가 모두 만들면 수 천개의 합창단이 탄생할 것 같은데요.
윤 : 단원들이 너무 행복하다며 시장님에게 감사를 전하고 있어요. 다른 市는 이런 좋은 행정을 왜 펼치지 못하는지 안타깝네요. 서울시는 문용린 교육감이 새로 오셨으니 학교 문예정책에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방송에서 청춘합창단을 보고 하루는 인천시 문화국장이 찾아왔습니다. 洞합창단을 만들자는 거예요. 마침 2014년 올림픽도 있고 해서 우선 시범적으로 만들었는데 반응이 뜨겁습니다.
주민들이 합창을 통해 즐겁고 행복하다고 하니 행정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은 거죠 . 어디든 리더가 뭘 알아야 문화가 발전합니다. 올해는 수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일본이 2만개 합창단이 있지만, 우리는 지금 5OO여 개도 안되기에 합창단 수는 얼마든지 늘어 날 수 있다고 봅니다.
탁 : 우수한 합창 지휘자도 많고, 또 지휘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서울코러스센터 합창 교육 프로그램 과정이 좋아서 많은 분들이 배우고 있는데 어떤 과정인지요.
윤 : 6학기로 3년 과정으로 마스터 합니다. 기본 지휘 테크닉, 소리 만들기, 바로크합창 실습, 합창 레퍼토리 문헌, 세계 합창 역사 등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음악대학에도 이러한 심화 과정이 있는 곳은 없습니다. 현재 22기를 배출했습니다. 자격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공부를 하는 곳입니다.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또 유학을 다녀왔지만 전공과 병행해 합창을 하려는 사람들이 옵니다. 물론, 여기서도 오디션을 해서 적정 인원을 가르칩니다.
또한, 이곳에서는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쓰게 해 합창 지휘자와 소통의 구조를 만들어 주기도 하죠.
기업 합창단 복지 차원에서 확대 가능성
탁 : 합창은 기악과 달리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좋은 사례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윤 : 한번은 BMW사원들을 대상으로 합창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립합창 단원들을 파트별로 한분씩 배치해 개인 훈련을 시켰죠. 아주 만족했고 좋은 결과를 보였습니다.
기업들이 사원을 뽑을 때 합창을 해 본 사람들을 뽑아 합창단을 만들어 퇴근 후에 운영하면 멋진 합창을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있는 인력과 시설을 활용해 할 수 있고 직장은 물론 가정까지 즐거운 행복 바이러스가 전파될 것입니다.
예전에 MBC <우리들의 노래>라는 합창단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사회 건강과 건전 문화를 위해 방송에서 음악을 살려준다면 국민들이 무척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탁 : 저도 지난해 KBS홀에서 삼성합창단을 본적이 있는데 모차르트 ‘레퀴엠’과 ‘웨스트사이즈 스토리’ 뮤지컬을 각색해 연주하는데 직업합창단 못지않게 톤 컬러도 좋고 신선했습니다.
이런 합창이 지속적으로 많이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계열사 여러 곳에서 단원들이 모였으니 업무 관계도 원활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한국 합창 수준이 세계적이라고 합니다. 인천시립합창단이 미국 공연에서 우효원 작곡가의 작품으로 기립박수를 받았는데, 과거 해외에 나가려면 부채춤이나 사물놀이, 판소리, 가야금의 전통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역수출하는 ‘K-Classic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윤 : 선명회 합창단이 투어 할 때는 한번 가면 70일에 34회씩 공연을 했습니다. 가난한 시절에 합창단을 보면서 교포들은 눈물을 흘렸고 미국 할머니들이 몇 달러씩 손에 쥐어 주던 그런 시절에서 보면 격세지감이죠. 선명회는 BBC방송으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2010년 2~3월 미국합창지휘자협회(ACDA, American Choral Directors Association) 컨벤션홀에서 6,000명의 세계 각국의 합창단원이 모였는데 하루 3,000명씩 2회의 연주를 했습니다. 캐나다, 영국, 베니스, 한국의 인천시립이 무대에 섰는데 첫 곡 우효원 작곡가의 ‘메나리’가 끝나자 일제히 기립 박수를 쳤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닥터 맥코이 회장이 찾아와서 “당신이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 아느냐, 이 홀이 생긴 50년 만에 첫 곡이 끝나고 기립 박수를 받은 것이 처음있는 일”이라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어요. 우리 작품이 세계로 나갈 수 있으니 대중문화도 좋지만 엄선된 한국작품들을 그들이 원하고 있죠.
또한, 순회 공연 이후 미국 대학 교수들과 각종 대학 합창단이 ‘합창클리닉’을 받겠다고 몰려왔습니다. 작년에는 컨커디어 대학 합창단이 70명의 단원을 이끌고 한국에서 합창 클리닉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 나서야
탁 : 이렇게 좋은 합창을 가지고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행정의 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 자살률 1위, 우울증, 청소년 폭력, 왕따 문제, 선거후의 갈등 등의 문제해결에 합창이 좋은 처방이 될 것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이를 체계화 해 국민운동을 펼쳤으면 합니다. 지금 막 떠오르는 것은 ‘국민행복합창운동’ 본부 같은 것을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미국 합창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Singing Country’라고 말하는데 한국처럼 노래를 좋아하는 국민이 없으니 우리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하의 탁한 공기, 음주 노래방, 자기만 부르는 통조림 음악에 비하면 이것은 고품격 문화죠. 인간 수명이 계속 늘고 있는데 보건복지부나 국민건강보험에서 이런 것을 개발하면 엄청난 예산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인수위의 정책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으니 국민통합을 위해, 또 국민의 복지와 건강을 위해 이런 융합적 아이디어를 내 놓을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에 했던 것 중에 좋은 것은 그 전통을 부활시키자며 ‘제 2의 한강의 기적’을 말했으니까 합창운동도 살아 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실 합창운동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고도의 정신문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윤 : 이렇게 언론에서 앞장서서 문화를 선도해 주신다면 전문가들이 훨씬 더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창조직의 시스템화는 대환영입니다. 저희는 합창교육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고 모범을 보이며, 작품을 개발하는 것에 주력하고, 탁 선생님께서 많은 네트워크를 현실화하고 홍보한다면 문화부, 교육부 등 정부정책도 따를 것으로 봅니다.
탁 : 긴 시간 열정적인 대화에 감사를 드리며 대한민국이 합창강국으로 가는데 더욱 힘을 쏟아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평론가 탁계석 musict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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