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보도자료
문 진오 - 길 위의 하루
문진오의 음악은 늘 밝고 건강한 생활인의 정서에 기반하고 있다. 팍팍한 세상살이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다른 사람들과 삶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이들의 모습이 그 속에 담겨 있다. 그 세계에는 어떤 증오도 없고 원망도 싸움도 없다. 대신 햇살처럼 따뜻한 사랑과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역동적인 삶이 있다.
김 창남 (문화평론가/ 성공회대학교 교수)
1989년부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대표가수로 활동해온 ‘문진오’가 15년만에 출시하는 첫 솔로음반으로 ‘노찾사’ 멤버들을 비롯해 여러 음악인들이 헌신적으로 참여하였고,
故 김광석의 ‘꽃’, 정호승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수선화에게’ 등이 진솔한 삶의 일상을 그려낸 자작곡들과 더불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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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시선으로 삶을 관조하는 포크음반 ‘길 위의 하루’ 출시
-‘노찾사’ 대표가수 ‘문진오’ 15년만에 첫 개인음반 내고 본격적인 솔로가수 활동 시작..
지난 198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첫 음반이 세상에 나온 후 어느덧 20년이 지나갔지만 아직도 ‘노찾사’의 노래들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겨져 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노찾사 20주년’을 기념하는 음반도 발매되어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음반시장의 부활에 일부 기여하기도 했다.
‘노찾사’에서 배출한 솔로가수들은 그 전체 인원수(대략 150여명)나 년수에 비하면 얼마되지 않는다. 故 김광석과 안치환, 권진원은 이미 노찾사에서 나와 첫 솔로음반을 발표한지 10년이 넘었고, 몇 년전 억척스럽게도 혼자서 전체 성부의 화음과 악기 영역까지 아카펠라로 담아낸 신지아 정도가 전부였으니 ‘노찾사’의 대중적인 지명도에 비하면 ‘노찾사 출신 솔로가수’의 타이틀을 달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 것처럼 여겨질 만도 하다. 그 배경에는 ‘특정한 사람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모두’를 지향해온 ‘노찾사’만의 정서’때문에 ‘노찾사’의 누구누구를 기억하기란 당시에도 쉽지않았던 탓에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솔로가수로 활동해온 기존의 ‘노찾사’ 출신들도 당시에는 그저 ‘대표가수’ 정도로만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고, 사실 故 김광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오랜시간을 ‘무명’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며 서서히 인지도를 늘려간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노찾사’에서 소임을 다하고, 솔로가수로서 새롭게 시작하는 ‘문진오’.
‘문진오’는 그야말로 노찾사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해온 가수 중에 한 사람이다. 그는 1989년 노찾사 2집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시절에 합류해서 1994년까지 노찾사의 가장 바쁜 시절을 보내며 대표가수로 공인되었다. 또한 노찾사 3집과 4집의 녹음에는 메인 보컬로 참여했으며, 셀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크고 작은 공연에서 가수들의 맏형으로서 그 소임을 성실하게 다한 것이 그를 노찾사 내부에서도 ‘대표가수’로 인정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찾사 4집 음반에 실려있는 두대의 피아노 반주에 그가 노래한 ‘노래’를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솔로로의 전향을 권유했을 당시에도 그는 ‘노찾사’만을 생각하고 있을 만큼 우직한 성품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던 문진오는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실질적으로 ‘노찾사’의 활동을 쉬게 된다. 그 사이에 그는 ‘구로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직장인 포크 밴드 ‘햇빛세상’을 만나고 비록 ‘노찾사’처럼 일정 수준이 넘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곳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음악활동을 해오던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한 그는 자신의 기량을 그곳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문진오가 참여한 후에 ‘햇빛세상’은 세 장의 음반을 발표하고, 창작발표회, 정기 공연 등 일반 직장인들이 참여해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작업들을 연속해서 이루어내며 잠시나마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질박한 삶의 현장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었고, 수많은 연마를 거쳐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 작곡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개인음반’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단지 ‘햇빛세상’에서, 또는 ‘노찾사’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이었을 뿐. 그러던 그의 생각은 2001년 봄에 5여년간 근속했던 직장을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겨나면서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 의미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도 그 무렵이다. 그 이후로부터 서서히 음반작업이 시작된다.
- ‘노래’에 담아낸 진솔한 삶의 이야기 ‘길 위의 하루’
우선 노찾사의 음악감독을 역임했던 문대현, 이정석의 참여를 시작으로 먼저 개인음반을 발매했던 신지아도 흔쾌히 동참을 결정했다. 문대현은 그에게 자신이 만들었고 故 김광석이 불렀던 노래 ‘꽃’의 리메이크를 찬성했으며, 이정석은 프로듀서로, 신지아는 아카펠라 편곡과 코러스로 참여하였다. 이를 비롯해 노찾사 동료들인 송숙환, 김명식, 김은희, 엄기현을 비롯해 퓨전국악밴드 ‘그림’의 신현정, 조성우 등과 평소 문진오와 친분을 가져온 김영남, 신희준, 손병휘 등 다수의 음악인들과 시인 정호승까지 그의 첫 개인음반 작업에 지원을 보냈다.
어느덧 마흔을 눈앞에 둔 문진오의 음악은 ‘노찾사’시절 음악의 연속성과 차별성을 동시에 찾아 볼 수 있다.
우선 창법면에서는 노찾사 특유의 힘있는 보컬을 바탕으로 하지만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결합하여 감성적이며 여유롭고 아늑한 편안함을 준다. 무엇보다 꾸밈이 없지만 튼튼하고 힘있는 목소리가 주는 매력은 80년대에서 출발하여 현재까지도 음악적 긴장을 잃지 않은 소중한 진지함을 느끼게 한다. 바로 이 보컬의 매력이 음반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첫 번째 음악적 성과인데 많은 포크 가수들이 미사리라는 특정 지역에 묶여 정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시점에 자신의 음악과 소리를 끊임없이 갈고 닦아온 문진오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내용적으로는 노찾사가 지녔던 총론적인 가사를 기반으로 하는 유장미와 서사적 노래와는 차별성을 보인다. 소외된 혹은 소시민의 작고 일상적인 삶과 그 주위에 놓인 사물과 감정에 초점을 맞추며, 세상사에 대한 시각도 넓게 열려져 있음으로 좀 더 풍부한 이야기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깊은 사색이 곁들여진 가사의 내용도 억센 기운을 제거한 詩와 닮아있어 부드럽다. 민주쟁취가 시대의 요구였을 때의 노찾사 음악이 사회적으로 큰 성과물이었다면, 이제 40줄로 넘어간 많은 386세대들이 일상속에서 흔들리면서도 결코 놓치지 않는 진지한 감정들과 생각들, 삶의 이야기들을 그의 노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수록된 곡들은 음반을 준비한 기간이 길었던 만큼 다양하다.
통기타와 해금이 어우러진 ‘길’을 비롯하여 노찾사 시절의 화음을 느낄 수 있는 ‘나무’(신지아 아카펠라 편곡), 40대의 건강한 시각을 보여주는 ‘내 아이야’ 와 ‘마흔이 다된 나의 친구야', 정호승 시인의 대중적인 시 ‘수선화에게’에 곡을 붙인 ‘수선화에게’등 포크에 기반하지만 다양한 느낌의 곡들을 만날 수 있다.
- ‘노찾사’의 유장미에서 벗어나 ‘포크 음악’의 계보를 이어가는 문진오
특히, 아버지와 남편으로 또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건강한 삶을 살아온 그의 경험이 녹아있는 가사들은 듣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만들기도 한다. 포크 음악인으로서 그가 지향하는 음악의 결정체들이 삶의 현장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노찾사’ 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새 노래를 어떻게 들어줄지 사뭇 궁금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음반 출시를 계기로 문진오는 다양한 라이브를 통한 관객과의 만남을 가지려고 준비하고 있다. 음반 시장의 불황 속에서도 어쨌든 활로는 음악에서 찾아야 하고 라이브는 앞으로의 그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장이 될거라 믿기 때문이다. 음반 서문에 쓴 것처럼 ‘점점 좁아져만가는 삶의 광장위로 날린’ 노래들이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들의 가슴을 환히 비춰줄 수 있을지...두고두고 지켜볼 일이다.
김 선국 / Just Music & Publishing, Inc│JMI
창조적 음악성을 유지하면서 독자적 문화 영역을 일구는 음악인, 문진오.
문화평론가: 김 창남(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문진오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의 멤버로 활동했던 가수이다.
노찾사는 80년대 말부터 활발한 공연과 음반활동을 통해 제도권 밖에 머물러 있던 민중가요의 자산을 대중음악 공간에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우리 대중문화에 진보적 대중음악의 흐름을 일구어낸 노래 모임이며, 그 속에 몸담았던 많은 음악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활동을 전개하며 노찾사의 정신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계승하고 있다. 온통 10대 위주의 댄스와 발라드로 점철되면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가득한 대중음악 문화가 그 나마의 산업적 문화적 활력도 사실상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창조적 음악성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나름의 독자적 문화 영역을 일구고 있는 진보적 대중음악인들은 우리 문화를 위해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문진오가 바로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삶을 따뜻하게 관조하는 시선과 건강한 낙관의 음악.
문진오의 노래 <내 아이야>는 그의 음악이 지향하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그 세계에는 어떤 증오도 없고 원망도 싸움도 없다. 대신 햇살처럼 따뜻한 사랑과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역동적인 삶이 있다. 가을의 노란 들판을 그릴 줄 알고 눈 내린 겨울 추위에 떠는 이를 위해 노래 부를 줄 아는 사람, 그가 아이에게 바라는 소망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의 음악 세계가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곳이 되기를 바라는 시민적 의식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의 다른 노래들에서도 이런 모습은 일관되게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노래 <마흔이 다 된 나의 친구야>는 ‘뜨거웠던 스무 살’과 ‘땀 흘린 서른’을 보내고 ‘돈 버는 일과 아이들 외엔 관심조차 없어진’ 마흔살 친구의 삶을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한다. 그렇게 변해 버린 친구의 삶을 비난하지도 경멸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대 눈길 바라보는 곳 그대 발길 걸어가는 곳 언제나 내가 그대 곁에 걸어가고 있음을’ 잊지 말라고 당부할 뿐이다. 그는 무슨 거창한 구호나 이념을 이야기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여 남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공연한 허세도 없고 날카로운 금속성의 파열음도 없다. 대신 자신과 이웃의 삶을 따뜻하게 관조하는 시선과 건강한 낙관이 있다. 이는 그 자신이 일하며 살아가는 생활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멋지군요...화이팅!!!
헉! 이 글을 '회원에게 메일 보내기'로 보냈는데 메일을 받아 보니 사진이 안 보인다. 워째 그다냐.....
지노에게 축하를... 음반에는 대박을... 노찾사에게 영광을... 한번 모여야 되겠네...
짝짝짝~ 축하 축하! 앞으로 바쁠일만 남았네..
축하드려요. 사진얼굴이 참 멋있네요.갸름해보이시고^^ 홍보 많이 할게요
지노형!!! 더디어 해내셨네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글구 ㅊㅋㅊㅋ ~~~
대박대박 아쟈아쟈~~~!!!
축하한다 진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