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류: 10년 만에 기회가 왔다.
- CJ대한통운, - HMM, - 팬오션, - 현대글로비스, - 삼성에스디에스
혹시 당신은 일 년에 택배를 몇 번 주문하는지 세어본 적이 있는가? 20여 년 전에 당신은 택배로 물건을 산 적이 얼마나 되는지 기억나는가? 숫자는 명확히 기억이 안 나겠지만 택배 주문이 20여 년 전보다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사실은 직감적으로 알 것이다.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2000년에는 국민 1인당 연간 택배 주문량은 2.4회에 불과했으나 2021년에는 무려 70.3회로 30배 이상 증가했다. 고무적인 것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온라인 쇼핑에 거부감이 있었던 부모님 세대까지 편리함을 깨닫게 되면서 고객층이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택배 산업을 비롯해 각종 물류 산업을 훑어보며 어떤 기업이 포진되어 있는지 알아보자.
2010년 30조 원 규모였던 국내 온라인 유통 시장은 올해 200조 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택배 물동량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택배 기업들은 과도한 경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실제로 택배 단가는 2012년 2500 원에서 2020년 2200 원으로 떨어졌다. Q가 증가하는 만큼 P가 감소하면서 매출이 올라가는 속도를 영업이익이 따라가지 못하는 수익성 낮은 비즈니스로 전락한 것이다. 2020년 기준 택배 산업은 CJ대한통운(50.1%), 한진(13.8%), 롯데글로벌로지스(13.4%) 상위 3개 업체가 과점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부터 CJ대한통운이 점유율 고수에서 수익성 추구로 전략을 수정하면서 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CJ대한통운의 사업부문에는 TPL(제3자 물류)라고도 부르는 'CL', 포워딩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그리고 '건설'도 있지만 기업의 실적을 좌우하는 건 전체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는 '택배'이다. 물가와 임금이 꾸준히 상승했고, 상위 사업자로 구조조정이 상당히 진행되었고, 업계 선두인 CJ대한통운이 수익성 전략으로 선회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택배 산업은 거의 10년 만에 가격 인상 사이클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CJ대한통운의 택배 단가는 작년 4월 약 200 원 오른 데 이어 올해 1월 약 100 원 추가로 올랐다. 그동안은 Q 성장을 P 역성장이 방해했지만 앞으로는 P와 Q가 함께 성장하면서 실적이 크게 반등할 것이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이 택배 단가 인상을 주도하면서 수익성을 개선하는 와중에 하위 업체가 점유율을 확대하겠다고 택배 단가 인하를 감행하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물류 자동화 및 효율화에 성공한 쿠팡이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여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게다가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택배 노조 파업은 갈 길 바쁜 CJ대한통운의 발목을 잡고 있다. CJ대한통운은 Multi-Point 허브에서 분류 작업을 자동화하고 e-Fulfillment 센터에서 집화 작업을 효율화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휴먼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무인 물류센터가 현실이 되면 인건비와 감가상각비가 떨어지면서 영업레버리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한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침체에 빠졌던 해운업이 들썩이고 있다. 2020년 전세계에 코로나19 공포가 드리우면서 선박들이 바다 위에서 꼼짝도 못했다. 게다가 2021년 에버기븐호가 수에즈운하에서 좌초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와 인테리어 수요는 오히려 증가했고,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급등했다. 심지어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대체할 석탄과 우크라이나의 옥수수를 대체할 곡물 수요가 증가했고, 발틱운임지수(BDI)도 급등했다. 참고로 SCFI는 컨테이너선 운임에, BDI는 벌크선 운임에 선행하는 경향이 있다.
HMM의 매출액 대부분은 컨테이너선에서 나오고 벌크선 매출액은 미미하다. 업계 1위 한진해운이 파산하고 HMM(당시 현대상선) 역시 한국산업은행 채권단의 관리를 받으며 연명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2020년 업계 호황에 힘입어 10년 만에 영업이익 흑자로 전환했고 그 규모는 무려 1조 원에 달했다. 선복량 기준 세계 8위에 올라선 HMM은 컨테이너선에 편중된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벌크선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한편 팬오션은 HMM과 반대로 벌크선이 주력이고 컨테이너선은 보조 역할이다. 또한 팬오션은 2014년 이후 꾸준히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고 하림그룹에 편입된 이후 곡물트레이딩 사업에도 진출하여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한편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와 기아의 반제품을 수출하는 CKD 사업 뿐만 아니라 오토벨이라는 플랫폼을 통한 중고차 사업, 비철금속을 중계무역하는 트레이딩 사업도 영위한다. 유통업을 기반으로 물류업과 해운업으로 확장한 현대글로비스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현대차그룹의 중추로 부상하고 있다. 다음으로 삼성에스디에스는 삼성그룹의 비즈니스 솔루션과 IT서비스 아웃소싱을 담당하는 업체로 잘 알려져 있지만, 물류 사업 매출이 절반 가량 된다. 삼성전자라는 든든한 고객사를 등에 업은 삼성에스디에스는 자체 개발한 물류 통합관리 플랫폼과 AI, 블록체인, 클라우드 등 IT신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4PL 리더로 도약하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요소 중에 네트워크 효과라는 게 있다. 보통 네트워크 효과라고 하면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을 떠올리지만, 물류 산업에서도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데이터 기반의 자동화 및 효율화가 이루어지면서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네트워크 효과의 이점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전국 각지로 택배를 보낼 수 있는 창고와 기사 등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는 물류 기업은 이제 데이터 역량까지 확보하면서 물류 시스템을 고도화시켜 진입장벽을 더욱 높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부진했던 산업에서 큰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죽기 직전에 되살아나면서 화려하게 부활하는 턴어라운드 주식을 함께 찾아보자.
■ 상사: 기업의 뿌리에서 기업의 줄기로 탈바꿈하다.
- 포스코인터내셔널, - LX인터내셔널, - 삼성물산, - SK네트웍스, - 효성티앤씨
영업사원이라 하면 흔히 고객 앞에서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계약까지 이끌어내는 치열한 현장을 떠올린다. 그렇게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제품을 판매하는 영업맨들이 모인 곳이 바로 종합상사이다. '라면부터 미사일까지, 이쑤시개부터 인공위성까지'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종합상사는 말 그대로 팔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취급한다. 일본이 세계대전 패배 이후 망가진 경제를 빠르게 복원할 수 있었던 데에는 종합상사의 역할이 컸으며, 우리나라도 일본의 영향을 받아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만물상 성격의 종합상사가 탄생했다. 이번에는 상사 업계의 암울해진 현실로 시작하여 기대되는 미래로 마무리할 것이다.
상사는 물건을 팔아주고 마진을 남기는 아주 심플한 비즈니스이다. 2000년대 이전에는 해외영업이라는 개념이 낯설었기 때문에 수출입을 전문적으로 하는 상사는 높은 프리미엄을 받았고, 상사맨은 금융맨과 더불어 대학생들의 선망의 직업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국내 대기업이 해외법인과 해외지사를 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찾아오면서 무역량이 급감하자 상사업계는 장기 불황에 빠졌다. 입지가 약해진 상사 업계 상위 기업들의 재무구조를 살펴보면 매출액은 수십조 원에 이르는데 영업이익은 억 단위에 그친다. 상사 업계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저마진을 탈피하고자 사명에서 상사를 떼고 신사업 발굴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는 대기업 계열의 7대 종합상사가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이병철 창업주가 1938년 설립한 삼성상회를 모태로 하며 건설, 패션, 리조트와 함께 상사 부문을 두고 있다. SK네트웍스도 SK그룹의 최종건 창업주가 1953년 설립한 선경직물을 모태로 하며 휴대폰 유통, 자동차 정비, 정수기 렌탈과 함께 글로벌 트레이딩 사업을 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SK네트웍스 안에는 여러 사업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높지 않은 상사가 기업 전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이외에도 효성티앤씨, GS글로벌, 현대코퍼레이션 있지만 여기서는 상사를 주력 사업으로 하는 포스코인터내셔널과 LX인터내셔널을 집중적으로 알아볼 것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대우그룹 김우중 창업주가 설립한 대우실업이 모태이다. 대우그룹이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2000년 대우인터내셔널, 포스코그룹 편입 이후 2016년 포스코대우로 사명을 변경했고, 2019년 대우그룹의 흔적을 지우고 포스코인터내셔널로 새단장을 마쳤다. LX인터내셔널도 LG그룹 구인회 창업주가 설립한 락희산업이 모태이다. 럭키금성그룹이 그룹명칭을 변경하면서 1984년 럭키금성상사, LG그룹 출범 이후 LG상사로 사명을 변경했고, 2021년 LX그룹의 간판을 들고 LX인터내셔널로 새출발을 알렸다. 자동차, 철강판, 석유화학, 전기전자가 주요 수출품인 우리나라에서 상사 빅2가 대우와 LG에서 기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무역 부문, 에너지 부문, 투자 부문으로 구분된다. 무역 부문에서는 철강 원료, 자동차 부품, 식량 소재를 주요 품목으로 트레이딩하고, 에너지 부문에서는 천연가스나 수소 인프라를 개발 및 운영하고, 투자 부문에서는 구동모터코아나 팜오일 사업을 영위한다. 작년 세넥스에너지를 인수하고 올해 포스코에너지를 합병하면서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자회사 포스코모빌리티솔루션을 통해 전기차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구동모터코아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다. 각 사업부의 영업이익 기여도가 비슷해진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실적의 안정성과 성장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X인터내셔널은 에너지/팜 부문, 생활자원/솔루션 부문, 물류 부문으로 구분된다. 에너지/팜 부문에서는 석탄과 팜오일 무역을 담당하고, 생활자원/솔루션에서는 석유화학 제품, 전기전자 부품, 헬스케어 기기를 주요 품목으로 트레이딩하고, 물류 부문에서는 해상운송과 항공운송을 관리 및 운영한다. 올해 포승그린파워와 한국유리공업을 연달아 인수하면서 신재생 발전 사업과 친환경 소재 사업에 진출했다. 게다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에 해당하는 니켈 광산 투자를 검토하며 탈석탄 시대에도 대비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LX인터내셔널은 이번 실적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2022년 지정학적 갈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Fed 금리인상으로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상사 업계는 뜻밖의 수혜를 입었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 LX인터내셔널 모두 3분기까지 호실적을 발표하면서 영업이익 1조 클럽 진입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사상 최대 실적에도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고 달러 강세로 전환되면 실적 타격이 불가피하고, 아직 신사업은 본궤도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현실이 되면 15년 전처럼 무역량이 급감하고 불황기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 따라서 상사 업계는 실적이 좋은 지금 겨울나기하는 마음으로 신성장 동력을 장착하고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것은 바로 종합상사였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섬유를 짜서 옷과 가발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어느덧 반도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을 수출하는 제조업 강국이 되었다.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LG화학 같은 굴지의 대기업을 낳은 상사는 기업의 뿌리에서 기업의 줄기로 탈바꿈해야 한다. 상사의 진짜 가치는 트레이딩으로 벌어들이는 돈에 있지 않다. 전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상사 네트워크와 인프라를 활용하여 신사업을 발굴하고 산업 간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룹 내 상사의 역할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상사의 변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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