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앙젤언니는 제 사촌언니지만
정신구조가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아니, 어째서 다 써 놓은 소설을 올리고
잠수탄다는 기본적인 발상을 하지 못한 겁니까!
프랑이가 다 아깝더군요...<-니가 참견할게 아니잖아;;
그러고보니 앙젤언니는 그동안 썼던
소설도 몽땅 지우고 아주 본격적으로 잠수 탔더군요.
휘장 1, 2편은 아마 앙젤언니 블로그에 있을 거예요.
사실 이건 저번 일요일에 디스켓에 넣어 왔었는데요.
혹시라도 사칭이라든가 기타 문제 때문에 논란이
빚어지기라도 할까봐 올리기를 주저하던 겁니다아.
문제 생긴다면 곧바로 자삭하도록 할게요.
6. A withered rose......and it is blue.
무의미한 수색은 파도처럼 기숙사 B5-t 안을 휩쓸고는 저 먼먼 어딘가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그 여운은 여전히 남아 있는 모양이다. 하긴, 애초부터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기숙사에 있던 소년 소녀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감정을 추스르러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지만. 어수선한 듯, 망연자실한 듯, 혹은 분개하고 슬퍼하는 듯 종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운 감정들의 여운은 아직껏 정적에 싸인 홀 안을 지배하고 있다. 폭풍이라도 한 번 지나간 양.
아니, 사실은 어쩌면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어쩌면 아직 폭풍은 닥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폭풍 전야일까.........
만일 폭풍 전야가 이렇다면,
정작 폭풍이 닥친다면 어떨까.......
막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지만,
막을 수 없다면.......?
그 결과는 분명 너무나도 뚜렷해 오히려 믿기 힘들지만,
과연 그 결과를, 자신이 막을 수 있을까.
모두 용의자로 지목되었기에,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지금의 상항을 타파할 수 있을까-
“하아.”
막시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불가능할 것임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기에. 무거운 한숨은 형체를 지닌 듯 공기 속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막시민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무턱대고 복도로 발길을 끌었다. 이제 아홉뿐인, 죽음을 피해갔으나 그것이영원하지 못할 것임을. 그리고 남은 시간은 생각보다 적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을 다른 이들이 그러했듯이.
단지 견딜 수가 없었기에 무엇인가를 할 필요성이 있었을 뿐이지만, 막시민의 발걸음은 지난 며칠간 가장 그의 발길이 많이 닿은 장소와 홀의 거리를 자연스레 좁혀가고 있었다. 거의 도달한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달은 막시민은 웅얼거리듯이 그의 하나뿐인 친구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아니, 불러 보았기보다는 되뇌어 보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조슈아 폰 아르님은, 대답해 줄 수 없을 테니까.
“조슈아.”
막시민은 살아 있을 때의 그를 부를 때와는 달리 심연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에서 건져올린 ,지금의 상황에 대한 그의 지치고 피로한, 그리고 공포와 그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에 대한 답답하고 막막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담은 낮은 어조로 이미 죽은 자를 불러 보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라지만, 네놈의 유령이 지금 여기에 떠돌고 있으면, 그래서 반드시 빌어먹어야만 할 이 살인자 자식의 가면을 벗겨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평소 현실주의자인 막시민답지는 않은 말이었다. 하긴, 최근 막시민이 그답게 행동한 적이라도 있었을까. 이 비현실적이고 일어날 수 없는 상황들 속에.
네냐플 안에서 장례식을 치룰 수는 없기에 모두 시체의 처리를 미루는 바람에 누구의 제대로 된 애도도 없이 두 구의 시체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아직껏 크게 부패하진 않았지만, 곧 시체는 썩고. 조슈아 그 자식이 생전 지녔던 무시무시한 재능과 같은 남자의 관점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아름다운 미소가 모두 근원으로 돌아가리라.
그렇지만.........붙잡고만 싶다.
아직껏, 솔직히 털어놓자면.
영영 조슈아의 존재가 잊혀져버릴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역시 네놈의 영향 탓이라고. 난 절대로 정상인이야.”
시체의 손을 꼭 붙잡고 온갖 독백을 해대는 그의 모습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목격했다면 자신의 시간의 소모와 입술 근육의 운동에 대한 귀찮음을 무릅쓰고 ‘미친놈이군.’이라고 한마디 던져주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은,
며칠 전에 있었던 일처럼.
조슈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올 것이라는
부질없는 희망을 갖고 있었던 걸까.
절대 충족받지 못할.
그리고.......
타다닥.
“응?”
한쪽 무릎을 꿇고 다른 한 쪽 무릎을 세운, 어찌 보면 공주님을 에스코트하는 기사의 포즈라고 말할 수 있을-그리고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다 그 광경을 목격, 진실을 솔직하게 진술한 자는 분명 타인의 손에 의한 살해로서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이다-자세를 취하고 있던 막시민은 아마도 천장에서 들려온 듯한, 무슨 물체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제길, 쥐새끼라도 있는 건가. 뭐가 대륙 최고의 학원이라는 거야?”
당연한 결과로 멀쩡하고 견고한 천장 이외에는 무엇도 발견하지 못한 막시민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발견했다.
“무슨......이게 말이 되는........?”
혼란 와중이었지만 막시민 리프크네는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어제, 루시안 칼츠의 죽음이 밝혀진 것은 저녁 무렵이었고 그 때 자신은 밀물이 닥치듯 밀려들어오는 수많은 감정들을. 패배감, 무력함, 분노, 슬픔, 혼란.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엄청난 감정들을 가누느라 경황이 없긴 했지만, 이것은 분명. 생전 루시안 칼츠라 불리었던 소년의 시체에 억지로 쥐여 있지 않았다.
바스락.
팔이 천천히 움직여 역시 죽은 자의 손에 억지로, 그리고 고의적으로 쥐어 준 듯 헐겁게 웅크려져 있는 손가락을 풀고 힘없이 늘어진 그 모종의 물체에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을 가져다대는 이 간단한 동작이, 왜 이렇게 힘들까. 왜 그 간단한 동작이 시행되는 시간이 영원보다도 더 긴 무한의 시간을 품은 듯 느껴지는 걸까.
어쩐지 이 물체가 혹시라도 부스러질까 조심스레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이, 분명 17년 동안이나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체가 아닌 그만의 의지와 영혼을 지닌 전혀 생소한 다른 존재처럼 인식되고 있었지만, 막시민의 안경 뒤에서 그의 갈색 눈동자는 이 물체를 응시하고 있었고 막시민의 두뇌는 어렵지 않게 그 물체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비록 매우 보기 드문 것이긴 했지만.
“이건........”
이미 꽃잎이 모두 시들어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지만,
아직 그 푸른빛은 알아볼 수 있을,
분명 시들었음에도 아름다운 푸른 장미가.
막시민 리프크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루시안의 옷 앞섶에, 핀으로 고정된 카드.
익숙하지 못한, 마구 휘갈겨진 글씨체-
<푸른 장미는 절대 스스로 그 아름다움을 빚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푸른 장미의, 그 아름다움에는 대가가 따르리라.>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구절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 구절에 인용된 단어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푸른빛, 푸른 장미.
분명 사람의 손으로만 그 푸른빛을 띨 수 있지만 단순히 푸른 잉크가 담긴 꽃병에 흰 장미꽃을 꽂아놓는 것만으로는 그 빛깔을 내기보다 먼저 시들어 버리는 까닭에 지금껏 한 번도 직접 보지는 못한 장미꽃이었다. 직접 본 푸른 장미는 상상보다 아름다웠다. 그 창백한 듯도 한 코발트블루가 흰 꽃잎에 훨씬 더 고고하며 우아한 여왕의 자태를 덧입혔다.
하지만 분명 부자연스럽다.
자연 속에서 피어나는 노을이 묻어나는 들장미나 수줍은 복숭앗빛을 얼굴에 몰래 드리운 처녀가 자연스레 연상되는 꽃봉오리나 반쯤 그 아름다움을 피워낸 나비 날개처럼 엷은 노란빛을 하늘대는 야생 장미와는 전혀 다른.
분명 들어 보았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아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 관련해서.
그리고 그 아름답지만 부자연스러운, 무엇인가 감춘 듯 신비로우면서도 포커페이스에 가려진 그 뒷면을 보기를 거부하는.
그 모든 것이 누군가를 꼭 빼닮은 듯 닮았다-
“푸른 장미는.......”
파스륵.
꽃잎에 그 우아한 자태를 잠시 내맡겼던 나비가 새로운 춤사위를 준비하며 날아오를 때, 그 여리디 여린 날개가 보드라운 꽃송이 위를 살짝 스칠 때 나는 소리처럼 가느다란 소리가 공기를 미약하게 진동시켰다. 시든 꽃잎은 소리조차 없이 그의 손바닥 위를 스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드문드문, 점점이 떨어진 푸른 꽃잎은 무늬라기에는 너무나 일관성이 없었지만 그러함에도 매끄러운 검은 대리석 바닥 위에 묘한 어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응시하며, 그러나 꽃잎이 떨어졌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듯한 멍한 시선을 고정시키며 초점 없는 눈동자로 무엇인가를 웅얼대려던 막시민의 독백은 이어질 수 없었다.
“꺄아아악!”
분명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은 이렇듯 길게 끌리며 섬뜩한 여운을 자아내는 비명을 한 번도 빚어낸 적이 없었다. 처음 들어보는 그녀의 비명은, 어쩌면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비명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는 막시민에게는 그딴 쓰잘데기 없는 감정 따위는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대신 멍하던 막시민의 눈동자에 잠시 부재중이던 이성을 돌아오게 하는 일에는 성공했다.
지금의 상황이 대충 파악되자마자 막시민 리프크네는 한참 동안 서 있어 무료해 보이던 그의 다리를 필사적으로 놀렸다. 계절과는 상관없이 늘 걸치고 다니는 트렌치 코트가 펄럭이며 어찌 보면 상당히 우스운 꼴이었지만, 그는 다른 사람의 이목 따위를 신경 쓸 정도로 여유로운 정신 상태를 가지지 못했다. 뭐, 본래 그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핵심을 꼬집는다면 반박하기 힘들겠지만. 막시민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그 사이로 짓씹듯 소리쳤다.
“이런!"
왜, 왜 각자에게 혼자 있을 시간이 주어지도록 허락한 거지?
분명 모두 용의자이자, 모두 희생자일 수 있는 것이다!
있어서는 안 되었을 실수는, 분명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부르는 법.
“클로에, 클로에 다 폰티나!”
6. As previously announced
누구에게라도, 죽음은 삶과 같이 공평하게 단 한 번씩 다가든다.
다만 태어남과 마찬가지로, 그 때만이 개개인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러나 그 죽음의 기회를, 아직 그 꽃망울을 제대로 터뜨리지도 못한. 그러나 그 어떤 꽃송이보다도 아름다웠던 푸른 장미꽃에게 베풀어야만 했을 이유가 있었을까.
아니, 그 이유가 아무리 타당하고 일목요연하다 해도, 그 한창 물 오른, 막 피어나고 있던 꽃가지를 꺾어야만 했을까-
생전 햇살이 부딪치면 정말 황금보다도 더더욱 찬란한 황금빛을 방울져 떨구며 나부끼던 금발은 아직껏 금빛 폭포보다도 찬란하고 풍성하지만 그 흘러내린 장밋빛을 띠는 팔은 밀랍 인형의 그것처럼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이미 생명은 다한 지 오래.
죽을 당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명을 흘렸던 도톰한 입술은 죽은 뒤에도 공허한 외침을 토하는 듯 반쯤 열려있다. 그러나 그 투명한 푸른빛을 은은히 드리우고 있던, 그리고 죽을 당시에는 이겨낼 수 없는 공포로 덮여 있던 눈동자는 잠자리 날개보다도 얇은 흰 눈꺼풀에 조심스레 감겨 있었다. 생전 사파이어보다도 더욱 아름답다고 평해질 정도로 기품 있고 우아하던 눈동자가 공허하게 열려 있는 모습을 누구도 견뎌내지 못한 탓이다.
누구의 눈가에도 때늦은 이슬이 구르고 있지는 않았다. 이제는 눈물샘도 말라버린 걸까. 너무나도 가혹하기 그지없는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었던 걸까. 발을 빼서 도망갈 수도 없이 모든 돌파구를 차단해 버린, 겨울보다도 매정한 운명, 아니. 어쩌면 숙명을. 도망치려면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으로 띄우는 순간, 그 사람은 즉시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다. 세 명의 살인자, 잔혹하기 그지없는 누명의 무게를.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없기에, 열한 명이 여덟 명으로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것이다. 예정된 희생자들과, 그에 섞인 한 명의 범인은.
그리고 여덟 명의 소년 소녀들에게는 주어져 있다.
최소한 아홉 번이 예비되어 있는, 살인자의 포박의 기회와.
여덟 번이 예정되어 있는,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할 기회가.
“.......아아. 클.......클로에.........”
티치엘의 입술이 다물리지 못한 채 의미 불명의 몇 마디만 간신히 토해냈다. 그제야 상황이, 이성은 아니나마 감성은 받아들이기 시작한 걸까. 눈가가 더없이 투명하게 덧칠되며 그렁거린다.
“.......그게.......혹시라도, 혹시라도 티치엘 착각이 아니라면.........관련이.........아니........”
역시 반쯤 넋을 놓고 있던 막시민의 귓가에, 티치엘의 몇 마디가 파고들어와 박혔다. 순간 막시민은, 이성이 관여할 여지도 없이 이미 티치엘에게 성큼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뭐, 관련? 무엇을 본 거지. 티치엘?”
막시민의 안경 뒤에서 그의 커피빛 눈동자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 형형한 안광에 놀란 티치엘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땋여진 플라티나 블론드의 머리카락이 허공 속에 걸려 흔들리다 멈추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막시민 아니라 누구에게도 티치엘의 말은 신빙성을 얻지 못할 것이 확연했다. 본래 티치엘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성격이 절대 되지 못했다. 겁에 물든 은빛 눈동자를 슬쩍 내리깔고 입속에서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변명도 될 수 없는 웅얼거림을 맴돌게끔 하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 아무것도 아니구나. 미안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리고 특히, 지금과 같이. 티치엘의 말 한 마디가 상황을 뒤엎고 더 이상의 죽음을 정지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역시 막시민 아니라 누구라 하더라도 더욱 윽박질르는 한이 있더라도 대답을 듣기를 요구하는 행동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이지? 티치엘, 네 말 한 마디가 여러 명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단 말야!”
그러나 막시민의 이성은 아직껏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러므로 막시민은 티치엘을 차분히 설득하여 결국 바라는 대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당연한 결과로, 티치엘의 어깨를 과격하게 쥐고 뒤흔드는 막시민의 행동은 결국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티치엘은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눈물로 가득 차 호수처럼 울렁대는 은빛 눈동자가 평소보다도 얼굴을 더 많이 차지하는 듯했다.
“훌쩍. 훌쩍. 티치엘은 말할 수 없어요! 훌쩍. 티치엘이 잘못 본 걸 거예요! 절대로, 쿨럭. 절대로 그게 사실일 리 없어요! 분명 그럴 거라고요!”
티치엘은 어깨를 부여잡은 막시민의 손아귀를 뿌리치고는 은빛 구슬을 점점이 흩뿌리며 복도 어딘가로 돌아나가버렸다. 양탄자 위에 가벼이 구르다 자신을 깨뜨리는 눈물방울들이 이슬처럼 동그마니 남겨져 있는 가운데. 홀로 망연자실이 남아 있던 막시민은 순간 퍼뜩 놀랐다.
“아니, 지금 혼자 있게 된다면!”
분명, 분명 티치엘은 무사할 수 없다!
특히나 그녀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의심되는 이 상황에서!
순간 티치엘을 찾으러 급한 발걸음을 내딛으려던 막시민은 멈칫했다. 자신이 왜 티치엘을 쫓아가야 하는가? 자신이 살인자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범인으로 오인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홀 안에 있는 이들 중, 자리를 뜨는 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아닌가? 만일, 만일 누군가가 화장실이 급하다느니, 혹은 몸이 좋지 않다느니, 티치엘을 쫓아가야 한다느니 하는 어설픈 핑계를 대고 복도 저만치로 사라져간다면.......
그는, 혹은 그녀가 바로 살인자인 것이다.
부정할 수 없이, 그보다 더 확실할 수 없는.
자신의 처신에 대해 훨씬 이득을 볼 수 있는 방안과 타협을 시도한 막시민 리프크네는 그대로 트렌치코트 주머니에 주먹을 찔러 넣고는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라도 이 홀 안을 벗어나 티치엘의 뒤를 쫓는다면 그는 막시민의 이목을 피할 수가 없으리라. 꼭 쥐인 손 안에 땀이 배어났다. 독수리나 매 등의 맹금류가 사냥을 할 때처럼 날카롭게 번득이는 눈동자가 혹시라도 불안한 표정을 하고 몸이 달아 홀 안을 오락가락하거나 초조하게 복도 쪽을 바라보는 이를 포착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나, 소년 소녀들은 저마다의 감정을 추스르기에도 힘겨운 듯 막시민에게서는 눈길을 떼어 버린지 오래였다.
그리고. 막시민은 기다렸다.
그렇게 정지된 시간이 흘러,
약 7~8분 정도, 지났을까.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복도를 공명시켜 메아리를 만들며 퍼져나갔다. 아니, 복도는 탁 트인 공간이다. 벽에 소리가 부딪쳐 그 반향이 이루어질 수 없지만, 막시민의 귀에는 그 비명이 한참을 머물로 메아리쳤다.
“티치엘!”
누구지?
누가 자신의 눈을 피해간 거지?
막시민의 눈초리가 하나 둘 익숙한 얼굴들을, 그 당혹, 놀람,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 뒤마저도 읽어내려는 양 훑어 내렸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다섯. 여섯. 티치엘과 자신을 포함하면 여덟. 여덟........?
“무슨?”
사라진 자는 없었다.
7. it is still in existence.
“........다행히도, 목숨은 붙어 있대.”
그러나 본명은 샤를로트 비에트리스 드 오를란느이나 이스핀으로 통칭되는 어린 공녀의 말은 그 내용이 담고 있어야 할 희망과 즐거움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티치엘이 깨어난다면 어쩌면 범인을 알 수도 있다는 거지.”
분위기를 개선시켜 보려는 밀라의 야심찬 시도는 먼젓번의 서너 번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녀의 표정 역시 기쁨 이외의 어두움을 너무나도 많이 띠고 있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한 논란이 있었을 텐데. 더 이상의 문제 제기는 용납하지 않겠어.”
막시민의 어조는 피곤함에 누렇게 찌든 듯 들렸다.
“우리들 중, 아무도 없었어. 자리를 뜬 자는.”
시벨린 우의 말투는 더 이상의 토 달기를 명백히 차단하는 못 박는 듯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말은, 보이지 않으나 공중을 떠돌고 있는 그 ‘의심’을 오히려 더 부추기는 듯했다.
“그렇지만. 외부인일 가능성은 없어.”
나야트레이의 말은, 평소 그녀의 말투대로 불필요한 수식어 따위는 모두 배제한 채로 아픈 요점만을 매섭게 후벼파고 있었다.
“.......진실이기에 반박하기 힘들군요.”
란지에의 손에는 최근 책이 쥐여 있지 못했다. 힘이 빠져 축 늘어진 왼손의 약간 어긋난 손목이 오늘따라 두드러진다.
아니, 오늘따라 두드러지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저 손목으로, 이 모든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에 대해 모두 조심스레 가늠해보는 것임이 거의 확실한 이 상황에서.
처음 조슈아의 목은 그렇다 치자. 그러나 두 번째로 희생당해야 했던 루시안의 가슴을 세련되지 못한 서툰 솜씨로 관통한, 대련용의 철검에 대해서는 분명 란지에에게도 공평하게 혐의가 주어진다. 그리고 세 번째의, 시들어버린 푸른 장미. 클로에 다 폰티나의 사인은, 와인잔속에서 검출된 청산가리로서 확연해진 셈이다. 독살은 이 홀에 모인 누구라도 간단하고 쉽게 행할 수 있는 살인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 티치엘의 심장을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간 단도 역시도.
그러나 그들 여덟, 아니. 티치엘이 제외되는 일곱에게는 모두 알리바이가 있다.
티치엘이 공격당하던 바로 그 시각, 그들은 모두 홀 안에 있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알리바이.
“유령이라도, 유령이라도 있는 건가........”
별 의미 없었던 밀라의 중얼댐은 갑작스레 증가 추세를 보인 주위의 시선들에 의해 점점 흐려지더니 결국에는 목구멍 안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가능성 없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
막시민 본인도 ‘유령 살해자’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 본 처지였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언제부터 그가 ‘인정할 것은 인정했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막시민은 자신이 내뱉은 ‘가능성’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여 겨우 목뼈가 꺾어지지 않을 정도로 급격하게 고개를 돌린 열네 개의 눈동자에 불편한 헛기침을 하고는 뒷말을 이었다.
“무엇보다도 조슈아 그 자식이 심심하면 유령한테 월세도 받질 않고 세를 놓곤 했으니까 말이야.”
막시민은 몇 초 전 자신이 평소 그답지 않게 하나밖에 없던 친구의 죽음 탓에 정신이 잠깐 이상해졌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갑작스레 ‘막시민 리프크네의 말에 충실히 귀 기울이는 여섯 방청자’를 자처하며 나선 여섯 명의 소년 소녀들에게 그 정도의 진실은 정말로 감질날 정도로 조그만 것일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눈빛으로 막시민이 알고 있는 진실을 모두 공유하자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막시민 리프크네의 말에 충실히 귀 기울이는 일곱 방청자’중 성질 급한 하나가 마침내 무언의 압박을 중지하고 유언의 압박에 돌입하자는 막시민으로서는 참으로 재고해 볼 가치가 무한한 판단을 내렸다.
“잠깐, 네 말은 지금 조슈아가 영매라는 얘기야?”
시벨린 우는 평소 그답지 않게 요점을 꼭 집어냈다. ‘막시민 리프크네의 말에 충실히 귀 기울이는 여섯 방청자’, 아니. ‘막시민 리프크네의 말에 충실히 귀 기울이는 여섯 방청자 중 시벨린 우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은 모두 그 말에 ‘내가 바로 그 말을 하고 싶었다고!’라는 의미와 동의의 마음이 함축된 동작을, 즉 고개를 끄덕이는 동작을 상당히 심각하게 실천해 보인 다음 다시 막시민 리프크네에게 더 많은 진실을 말해 보라는 압박적인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래.”
막시민은 상당한 떨떠름함이 묻어 있는 어투로 긍정을 표현했다.
“그럼 정말로, 여기 유령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예요?”
티치엘이 겁먹은 토끼마냥 은빛 눈동자를 커다랗게 뜨고는-막시민은 그 모습에서 처음으로 티치엘 역시 피해망상증이나 히스테리컬하다는 단어가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아니. 유령은 언제나 우리 주위에 있었어. 그러니까 조슈아는 그것의 존재를 알 수 있을 뿐인 것........”
막시민이 귀찮음이 정말로 티치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역력하게 배어나오는 어조로 그나마 자기 딴에는 친절하게 ‘조슈아라는 미친 자식을 어쩌다가 불운하게도 친구로 삼게 되면서 얻게 된 불운한 경험담’에서 비롯된 지식을 이야기해 주려는 찰나였다.
‘훅-’
아무도 켜져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던 촛불이, 그러나 누구나 티치엘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미약하게나마 자신의 얼굴 위에 재현하며 주위를 불안하게 둘러보았기에 알아챌 수 있었던 그것이 가는 한 줄기 연기를 허공 속에 흩뿌리며 꺼졌다.
‘벌컥-’
문 가까이에 앉아 있었던 이들은 문이 열리며 쏟아진 차가운 바깥 공기에 움찔했다.
“여......여기, 누군가.......누군가가 있는 거야?”
이스핀이 평소 그녀의 남자로 착각받곤 하던 당당하고 괄괄하던 이미지에 맞지 않게 이빨을 가볍게 부딪치며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마구 돌리면 보이지 않은 불청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처럼 마구 고개를 휘저었다.
보이는 적은 두렵지 않다.
보이기에, 그는 막아낼 수 있으며
또한 상대할 수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적은,
보이지 않는다는 바로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우위권을 점하게 되는 것이다.
순간 모두가 침묵했다.
첫댓글 소설이 왜 여기에 후덜덜 ㄱ-;;
..앙젤언니 거라서요. 소설게시판에 올리기는 좀 그렇더군요.
티치엘..'ㅅ'절대행운권이 있어서 다행..'ㅅ'테일즈의 티치엘은별로 바라지 않는거같지만.ㄱ-
우후.. 긴장했습니다; 끝에'그러나 보이지 않는 적은, 보이지 않는다는 바로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우위권을 점하게 되는 것이다.'에 올인 할께요; 와 그 끝대사에서 마음이 덜컹했습니다;
앙젤이 왜 저러지.. 혹시 요즘 갑자기 우울해졌다거나..<-
우아앙, 남자 같다고 놀린 것 때문인가. 돌아와, 앙젤아~ [울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