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 저녁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한국의 인물로
고 정주영씨의 인물소개와 과거 업적을 비교적
소상하게 소개하며 그를 평하는 한단어로
“BIG"이라고 하며 끝을 맺었습니다.
정경유착의 비리로 표현되기도 했던 그지만
50년대로부터 8년대에 이르는 한국의 경재성장을
이끈 주역임에는 누구도 반론을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나도 한동안 그를 곁에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지만
역시 탁월하고 대단한 거목이었습니다.
울산에 조선소를 짓고 있을 때 공사현장에서
먹고 자던 아산 정주영씨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지프를 손수 몰고 현장을 돌아보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추워진 11월 어느 날 새벽 바윗덩이를 피해
핸들을 꺾은 것이 바다 속으로 다이빙했고,
사투 끝에 수면 위에 떠오르고 보니 안벽과
200여 미터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철근 하나 붙들고 차가운 물살을 이겨내며
초소를 향해 사람을 불렀습니다.
『누구요?』
『나야!』
『나가 누구요?』
『누군지 알아서 뭐해. 빨리 밧줄이나 가져와!』
초소 경비와 나눈 대화입니다.
그때야 알아본 경비는
『그런데 회장님이 왜 거기 계신대요?』라고 물었고,
아산은 『이 자식아 빨리 밧줄이나 가져와』하여
구사일생을 했다 합니다.
왜 쇳덩이가 물에서 뜨나ㅡ 하는 소박한 질문에서
배를 만들기 시작했고,
만들면서도 이처럼 현장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서산 간척지 마지막 물막이 때도 갖은 수문학적
공법이 못해낸 일을 폐유조선 끌어다 선체로 막아
물살을 약화시키는 소박한 발상으로 성공시켜
정주영 공법을 창출해내기도 했습니다.
지성보다 실천, 이론보다 체험, 논리보다 행동을
우선하고 소중히 하여 경제사의 자락에 아산탑을
우뚝 세워놓은 아산인 것입니다.
그의 반지성의 실천철학은 바로 그가 살아온
일생의 귀결입니다.
소 한 마리 훔쳐 몰고 가출하여 막노동에서
엿공장 직공으로, 엿공장에서 쌀가게로 전전했습니다.
엿공장에 다니게 된 것도 기뻤지만,
쌀가게로 옮겼을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합니다.
전차 삯 5전을 아끼느라 구두에 징을 박고
다니면서도 신이 났고,
5전짜리 밥을 사먹다가 10전짜리를 사먹을 수
있게 됐을 때 그 행복함을 늙도록 기억했던
아산입니다.
미국의 위인들 배출 공약수로「통나무집 신화」를
듭니다.
개척시대의 미국사람들은 자신이 숲을 발견,
통나무를 베어 이를 조합해 만드는 통나무집을
스스로 지어 살지 않으면 안 되었듯이,
우리나라에서 격동의 20세기 중엽을 살아내는 데는
자력과 행동으로 뭣인가 일궈내는 실천적 문화가
필수요, 또 요구되었습니다.
한데 외래문화의 큰 파도에 휩쓸리고 안이한
편법상승에 물러져 자수성가 아닌 타수성가가
기승을 부려왔습니다.
그 와중에 한국적 통나무집의 신화를 일군
대표적인 인물이 아산이었던 것입니다.
첫댓글 네 고 정주영님 정말 그는 진솔한 경영인이었지요..조금은 사생활에 설왕설래하지만 그의 업적은 눈부십니다..잘 보고 갑니다..^^
요즘같은시기에 ...진정한 경제인 한사람 있으면 .....조금은 경제가 나아지려나 ???
동감합니다 전 그분 언젠가 출마해서 내세우던 출마공약 아직도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부산서 인천항까지 도로에 물류이동 밸트 설치.. ㅎㅎㅎㅎㅎㅎㅎ 그분아니면 그런 생각 못하지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