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긴이(잉걸)의 말 :
나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온(100)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 손자병법 』의 구절이나, ‘적의 뛰어난 점을 배우고 베껴서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그것으로 적을 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로마군의 기본 법칙을 바탕으로 왜국(倭國) 정부/왜국 우익/왜국 왕실/대다수 왜국 언론사/대다수 왜인(倭人)들/친일국가 출신 사냥개들/한국 안의 종일파(從日派. 왜국을 [종처럼] 따르는 사람)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여겨, 엄연히 우리의 ‘적’인 왜구(倭寇. 나는 이 말을 왜국 정부나 우익이나 왕실이나 대다수 왜인들을 비난하는 말로도 쓴다)의 병법과 전법(戰法 : 전쟁이나 경기 따위에서 싸우는 방법)과 전술을 다룬 이 글을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부디 이 글이 여러분이 왜국/친일국가 출신 사냥개들/한국 안의 종일파와 맞서 싸울 때 도움이 되기를 빈다(단,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나는 이 글이 소개하는 왜구의 병법/전법/전술들 가운데 ‘일조돌변’과 ‘병이사립’과 ‘폭살왜성’과 ‘만육지락’은 배울 가치도, 따라 할 까닭도 없다고 생각하며, 그 셋을 뺀 나머지만 참고하고 왜구들에게 – 또는 우리의 다른 적들에게 - 써먹으라고 충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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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전쟁을 말하고, 전쟁으로 (다른 – 옮긴이) 전쟁을 설명한다.”
- ‘가토 요코(加籐 陽子[가등 양자 – 옮긴이])’ 도쿄대 조교수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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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건이 세운 나라인 후기 고리[高麗] - 옮긴이)와 조선(정확히는, 대한제국 – 옮긴이)을 연이어 붕괴시켜 버릴 정도로 극악스러웠던 왜구(여기서는 ‘해적으로서의 왜구’와 침략국이었던 ‘근대 왜국[倭國]’을 통틀어 일컬은 말로 쓰였다 – 옮긴이). 이 광포한 약탈/살인 집단은 우리에게는 일본(왜국[倭國] - 옮긴이)이란 나라의 이미지(인상 – 옮긴이)와 그대로 클로우즈 업 된다.
(중략)
이 점은 (중세 말기부터 – 옮긴이) 한반도(코리아[Corea] 반도 – 옮긴이)를 대상으로 일본이 지속적으로 야기한(끌어 일으킨 – 옮긴이) 침구가 원인(까닭 – 옮긴이)이었고, 그로 인해(그 때문에 – 옮긴이) 생긴 ‘불편한 관계’라는 점에서 ‘일본 책임론’으로 귀결된다.
이와 함께 우리(한국인/조선 공화국 공민[公民]들의 – 옮긴이) 인식도 담금질될 필요가 있다. 왜(倭)를 ‘심리적 혐오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글은 한국에 종일[從日] 정서가 널리 퍼지기 열한 해 전인 서기 2011년에 쓰였다 – 옮긴이)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자칫하다간 임진왜란(올바른 이름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근세조선 침략전쟁’/‘6년 전쟁’/‘아시아의 7년 전쟁’ - 옮긴이) 이후 사대부층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진 명분론처럼 ‘감정’에 치우칠 위험성마저 있다.
임란(6년 전쟁 – 옮긴이) 이후 조선(근세조선 – 옮긴이) 사대부들은 실제 외침을 당했지만, 심리적으로는 우리가 ‘이긴 전쟁’이라는 의식이 팽배했다(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왜군을 – 대마도는 빼고 – 철저히 깨뜨린 뒤 모든 근세조선 땅에서 몰아냈으니, 이긴 전쟁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근세조선 땅이 쑥밭이 되었고, 많은 근세조선 사람들이 죽거나 왜군에 포로/노예로 끌려 갔으며, 근세조선 땅에 있던 수많은 국가유산[‘문화재’의 새 이름]이 약탈당해 왜국으로 실려갔으니, 사실상 ‘상처뿐인 승리’였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 옮긴이).
일본을 얕잡아 보는 오만한 아전인수식 사고는 300여 년간 이어져, 근대 들어 무방비 상태도 왜의 침략을 다시 맞게 되는 배경이 된다.
오늘날에도 우리(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항일 민족주의 교육을 받아, 항일 의식을 지닌 한국의 4 ~ 60대 : 옮긴이) 인식은 서릿발같이 냉정하고 날카롭지 못하다(부끄럽지만, 그건 사실이다. - 옮긴이). 한일전 축구 경기를 관전하듯 ‘당연히 이겨야 한다.’는 당위론적 공감대만이 팽배하다. 모든 면에서 (왜국에게 – 옮긴이) 패배했어도(졌어도 – 옮긴이) ‘사실상 이긴 거’라는 자족적(자기만족에 바탕을 둔 – 옮긴이) 해석(풀이 – 옮긴이)을 내놓기 일쑤다. 이래서는 일본(왜국[倭國] - 옮긴이)의 침구 야욕에 맞설 수 없다. 감정보다는 왜구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인식을 통해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때에라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중략)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침구한 그들(왜구 – 옮긴이)의 ‘경쟁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점은 오늘날 일본의 ‘침략 경쟁력’과 전력(戰力. 전투를 할 수 있는 능력/싸울 수 있는 힘 – 옮긴이)을 아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본다. 나아가 독도 문제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나아가 넷우익이나 재특회의 반한[反韓] 활동이나 왜국 정부의 혐한 정책/왜국의 한국인에 대한 종일[從日] 강요 – 옮긴이)의 대처 방안을 제시해 줄 것으로 본다.
뼈아픈 고통을 안겨 준 이 ‘역사적 통점(痛點. 아픔[痛]을 느끼는 감각점[點] - 옮긴이)’을 (제대로 – 옮긴이) 아는 것이야말로 ‘대(對) 왜구전’의 출발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 옮긴이) 적을 이기려면 적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냉엄한 분석에 따른 계책만이 이 민족(겨레 – 옮긴이)[그러니까, 한국인을 비롯한 배달민족 – 옮긴이]의 생존과 번영을 지켜낼 수 있다.
오랜 역사상(중세 말/서기 1592 ~ 1598년/근대/서기 1965년 이후 – 옮긴이) 한반도(코리아[Corea] 반도 – 옮긴이)를 숱하게 침범한 일본의 ‘왜구 근성’과 ‘전략’을 알지 못한다면, (서기 – 옮긴이) 21세기 영토와 역사 전쟁은 물론(勿論. 말할[論] 것도 없고[勿], - 옮긴이) 정치/경제/문화 전쟁에서도(나아가 총칼을 들고 싸우는 진짜 전쟁에서도 – 옮긴이) 승리할(이길 – 옮긴이) 수 없다.
일본 내 ‘신(新) 왜구주의’(신국[神國] 사상을 비롯한 왜국의 우익 이념/군국주의/국수주의/일본주의 – 옮긴이)가 극성인 이즈음, 뼈를 깎는 지피지기(知彼知己. 적[彼]의 사정과 나[己]의 사정을 잘 앎[知] – 옮긴이)의 자세야말로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침략과 침구 면에서 지속성을 보여 준 왜구식 전략/전술을 살펴보자.
( → 1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