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대동문화1002 [한송주의 산사에서 띄우는 편지]
화엄鏡을 통해 ‘법정 아바타’를 보다
오랫동안 하도 야단법석들이길래 늦게나마 한 번 그 영화를 보기로 했어요. 보기 전에 아바타가 뭔 말인가 궁금해 인터넷을 뒤적여 보았어요. 그랬더니 아바타의 본디말은 산스크리트말로 아바타라(avataara)이며 그 뜻은 ‘내려온다’래요. 그리고 여러 가지 모습을 빌어 세상에 내려오는 신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발전했대요.
봤더니 그 영화 무지 재미있대요. 와,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 첨 봤어요. 얼마나 재미있던지 며칠 뒤에 그 긴 영화를 또 봤어요. 그래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고 새로운 재미가 새록새록 돋데요.
이제 영화 그만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헛소리를 맘대로 지껄이는데, 가령 피카소를 피날레로 미술사는 막을 내렸어야 한다, 서정주 이후의 시는 사족이다, 뭐 이 따위 말들이니 되나캐나 씨부리는 제 꼬라지에요. 많이 망가졌죠.
저는 세 가지 점에서 이 영화에 좋은 점수를 주었어요.
첫째, 주제가 소망스러웠어요. 저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걸 이 영화를 보고 새삼 깨쳤어요.
둘째, 전개가 신선했어요. 선악대결을 넘어선 자유로운 구조가 주제의 소망스러움을 살렸어요.
셋째, 섹스의 매춘화가 없어서 좋았어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몸사랑(男女相悅之事)을 부끄럽고 더러운 걸로 오염시키는 짓에 제가 잔뜩 질려 있었던 참이었거든요.
이렇게 이유 있게 감동을 받았던 터라, 이 영화에 대해 다른 이들의 감상은 어땠나 하고 신문을 뒤적여 보았어요.
그랬더니 참 재미있는 뒷담화들이 많이 나와 있더군요. 그 중에서도 종교적 해석들이 더욱 눈길을 끌었어요.
종교적 소재를 다룬 예술작품들은, 특히 그것이 대중들의 인기를 모았을 때, 종교집단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많았음을 우리는 잘 알지요. 영화의 예만 들더라도 근래 ‘다빈치코드’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며 ‘달마야 놀자’가 나온 뒤 종교집단들이 자기들 입맛대로 얼마나 심하게 주리질을 해댔습니까. 도마에 오른 작품들은 필화(筆禍) 수준의 졸경을 치렀더랬지요. ‘아바타’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제법 혹독한 ‘박해’을 받고 있더군요.
이 영화를 보고 바티칸이 발끈했대요. 자연을 우상으로 받드는 정령주의를 부추긴다며 정식 성명을 내 신도들에게 주의 주었어요. 그러자 생태계보호에 적극적이던 ‘녹색교황’ 베네딕토가 두 얼굴을 드러냈다고 환경단체에서 비아냥을 퍼부었다고 하데요.
또 어떤 이들은 영화 속의 공간이 에덴동산처럼 다가와 되레 ‘성령’을 느끼게 하던데 바티칸이 좀 편협하고 과민하게 반응한 게 아니냐고 꼬집었어요.
이럴 때면 중세 때 천사의 날개 길이를 관례보다 짧게 그렸다고 해서 화가가 처형되었다는 믿기 어려운 일화가 떠올라요. 씁쓸해요.
그런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생뚱맞은 ‘찬양’에 휩싸여 있더군요.
조계종 총무원에서는 이 영화를 보고 희색이 만면해 종도들에게 관람을 권했대요. 새 총무원장스님은 취임 백일잔치를 200여 종무원과 함께 아바타 극장에 가는 것으로 대신했대요.
그러자 동안거 중이던 노장산승들이 진중하기로 이름난 자승대덕이 바깥 경계에 휘둘리는 거 아니냐고 노파심을 냈어요. 또 어떤 이들은 이 영화가 겉으로 드러난 얼개만 그렇지 실속인즉 되레 불교의 철학과 어긋나는데 종단에서 좀 조급하고 경박하게 반응한 게 아니냐고 힐난했어요.
이럴 때는 오래 전 한 신문에 중 절 보기 싫으면 떠난다는 속담을 인용했다고 해서 기자가 사암연합회의 집단 항의를 받고 혼쭐이 났던 웃지 못할 일화가 떠올라요. 역시 씁쓸해요.
영화는 영화여요.
이삼천년씩 인류를 가르쳐 온 종교계의 어른들이 한낱 영화 한 편 갖고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자기 입맛에 맞는다고 좋아하고 안 맞는다고 토라지고 하지 마세요. 작은 코투리 하나 잡아서 아전인수 하지 마세요. 이녁 논에 물대다가 물쌈하지 마세요, 좀. 자꾸 그러시면 예수님이나 부처님에게서 꾸중 들어요. 그리고 종교를 헐뜯는 물신주의자들이 그 틈을 노려 ‘절집 안에 마구니 있고 교회당 안에 사탄 있다’고 하면서 끼어들어요.
저는 아바타라는 영화를 에덴동산에 앉아서 화엄경을 통해 보았어요.
그리고 그 에덴동산은 성경 속에 있는 먼 옛날 딴 나라의 동산이 아니고 제 어릴 적 우리 동네의 동산이었고, 화엄경은 팔만대장경 속에 있는 어려운 경전 말씀이 아니고 내 어릴 적 방물장수 아저씨가 보여주던 그 만화경(萬華鏡)이었어요.
요지경을 통해 보는 세상은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고 놀라운 것일 뿐 무슨 선과 악이 개입해서 좋은 편 나쁜 편을 나누는 복잡하고 피곤한 세계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아바타라는 건 우리 모두가 마음에 품고 있는 절대선의 존재가 하나의 전령이 되어서 사바세계에 현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때마침 우리시대의 멘토였던 법정스님이 입적해서 세상이 많이 슬퍼했어요. 참 착하고 멋있는 수행자였다고 모두들 오랫동안 그리워할 거예요.
그이는 맑고 향기로운 글을 많이 남겼는데 그 글들은 부처님 말씀인 불경을 우리말로 쉽게 옮긴 것일 뿐이라고 평소에 늘 말하곤 했다지요.
중생들이 얼른 알아볼 수 없는 한자판 팔만대장경이란 한낱 빨래판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불법을 쉽고 맛있게 풀어내는 작업을 일생동안 꾸준히 실천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법정스님의 수필집은 실은 역경譯經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엊그제 ‘비구법정’의 49재 막재를 그의 출가본사인 송광사에서 치렀습니다.
그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면서 승보현전僧寶現前의 ‘아바타법정’을 잠깐 보았더랬어요.
그러면서 아바타법정의 전갈은 결국 ‘자연 같아라’가 아니었나 생각해 봤어요.
그가 줄창 일깨웠던 무소유 정신도 갈무리하면 자연이 되어라는 권유였지 않나 싶어요.
우리 날마다의 생활을 맑고 향기롭게 가꾸면서 비구법정의 아바타를 늘 기억하도록 해요.
글 한송주(월간 송광사 편집장)
첫댓글 한송주 대기자...
갑장.
광주라는 이 골목 저 신문의 무대와 객석을 오르내리기도 했고
詩를 스치기도 맺기도 한 도반. 서로 참 닮고 넘 다른 벗.
아바타를 그미만큼 놀라고 아바타 2를 여차하여 못 본 것을 아쉬워하던 차
신 같은 미소를 안겨주는 2010년 영화감상문이다.
매일 아침 날려주는 메일 편지,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