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손가락으로 찍으면 먹물이 묻어날 것처럼 잔뜩 찌푸린 하늘이었지만 춘자는 선그라스 챙겨 쓰는 걸 잊지 않았다. 운전은 이 멋에 하는 거지 뭐, 히힛.... 생각해보면 그 동안 잠자리 선그라스를 콧잔등이에 걸치고 바람처럼 도로를 질주하던 잘난 여편네들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왼쪽 사이드밀러에 자신의 맵시를 쓰윽 비춰보고 난 춘자는 흡족한 표정으로 기어를 넣고는 지긋이 액셀을 밟았다. 잘 훈련된 조롱말처럼 차가 스르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브레이크를 밟은 우측 발끝에 온통 신경을 모은 채 그녀는 조심스럽게 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왔다. 달포가량 쉰 끝에 잡은 핸들이라 그 감각이 사뭇 무뎌져서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드라이브는 언제나 그녀의 기분을 적이 흥분시킨다. 댓진 먹은 뱀대가리같은 남편이야 본시 천성이 그렇다 치고 요즘 들어 사사건건 어깃장만 놓는 종철이 녀석과 비교하더라도, 자신의 의도대로 한 치 오차없이 움직여주는 자동차라는 물건은 여간 기특한 놈이 아니었다.
뿐이랴,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기계치(機械癡)라는 비아냥을 일거에 날려버리고 자신이 대단한 기능인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순간이 또한 바로 이 순간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운전이라곤 솥뚜껑 운전밖에 더 할 일이 있으랴 여겼던 자신이 손수 자동차를 몰고 거리를 활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거니와 무언지 모를 자부심에 가슴까지 뿌듯해지는 춘자였다.
돌이켜보면 처음 운전을 배울 때의 그 아니꼽고 치사함이야 어찌 필설로 다 이를까 싶을 정도였다. 3년쯤 전 우여곡절 끝에 딴 2종 보통 면허를 ‘장롱’에 처박아 둔 지 2년째 되던 작년 봄의 어느 화창한 일요일 낮, 춘자는 약간의 망설임 끝에 해파리처럼 널브러져 풀코를 골아대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종철이 아빠요, 나 주행연습 좀 시켜줘요.”
“피곤해. 나중에.”
“아잉~. 이렇게 시간 있을 때 좀 갑시다. 날씨도 좋은데….
“좀 쉬자. 좀 쉬어.”
“아니, 내가 뭐 나만 좋으라고 운전 배우나? 내가 빨리 운전을 익혀야지, 당신 놀러갔다가 차 키 나한테 탁 맡겨놓고 좋아하는 쏘주도 한 고뿌 맘 놓고 걸칠 거 아니유? 당신이 한 고뿌 딱 하고 옆에서 두발 뻗고 쉬면 내가 집까지 차를 몰아오고, 그거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환상적이지 않아요? 자자 그러니 어여 일어나요, 고마~안.”
어떻게든 운전을 못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다해 요리조리 빼던 남편은 콧평수까지 넓히고 보들보들 접근해온 춘자의 사탕발림(평소 남편은 ‘차 키 맡겨놓고 쏘주 한 고뿌’를 노래 부르듯 했었다)에 홀라당 넘어가 결국 끄응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거, 귀찮게스리…, 그럼 가까운 데나 후딱 한 바퀴 돌고 오자고. ”
그렇게 해서 선택한 곳이 달방 댐에서 백복령 정상으로 이어지는 42번 국도였다. 대관령 옛길을 빼다 박은 난코스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소통량이 적어서 운전연습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어떤 집구석은 운전 연습하다가 갈라서기까지 했다지만, 우리 부부는 좀 다르지, 아암, 내가 워낙 참을성 강한 현모양처니까. 히히….
느긋하고 흐뭇하게, 마치 야유회라도 가는 양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목표지점에 도착하여 운전석으로 옮겨 앉을 때까지만 하여도 기분은 그야말로 ‘대낄이(大吉)’였다.
“어쭈, 스타트가 제법 부드러운데, 핸들도 좋고….”
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처음 얼마간 남편은 부드러운 격려의 말씀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으로부터 운전을 온전히 전수받기 위해서는 단순 무식한 인간으로 스스로를 내동댕이쳐대야 한다는 ‘선배들의 준엄한 가르침’을 절감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은 지 10분이나 족히 지났을까. 갑자기 하마처럼 생긴 화물차 두 대가 고막을 찢을 듯한 크락션 소리를 연속으로 울려대며 쏜살같이 휘익 스쳐 지나간 직후부터 남편의 말투가 갑자기 사나운 치와와 새끼처럼 돌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야! 운전한다는 여자가, 백밀러도 안 보냐? 도대체 뭐하는 거야? 백밀러는 쇠꼽(철)이 남아서 매달아 논줄 알아? 운전을 할라면 항상 뒤를 살펴야 할 거 아니야, 뒤를…, 내미. 그러니까 다들 널 보고 맹하다고 하는 거야. 이 사람아!”
“저 차들이 과속한 거지 그게 왜 내 잘못인데?”
“야!, 운전이 서툴면 백밀러로 뒤를 수시로 살피다가 옆으로 비켜설 줄도 알아야지, 니가 뭐 독일병정이냐? 죽어라 앞만 보고 달리게?”
“앞만 보기도 바빠 죽을 지경인데 백밀러는 언제 봐? 바쁘면 지들이 알아서 피해 가던가 해야지.”
이렇게 언성을 높이면서 앞서 지나간 화물차 뒤꽁무니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자니, 남편의 연탄집게 같은 한마디가 또다시 춘자의 비윗장을 사정없이 긁어버리는 것이었다.
“어이그그, 머리가 나쁘면 눈치라도 빠르던지, 어째서 너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냐? 고 따우로 맹하게 운전하니까 내가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하는 거라고. 너처럼 맹하게 운전 했다간 길바닥에 살아남을 사람 하나도 있겠다. 네미! 야야, 연습이고 지랄이고 그만 돌아가자. 멀쩡한 아 새끼들 생고아 만들어 동냥질시킬까 겁난다.”
아! 그때의 그 굴욕, 그 참담함이란…….
“그래, 나는 맹한 년이고,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년이다. 그러는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운전 잘했어? 필기시험에만 세 번씩이나 미역국 먹은 주제에. 나 더러서 운전 안해!, 요깐 운전 평생 안할거라고. 안하면 될 거 아니야……이씨.”
그러고는 차에서 불쑥 내려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쾅 닫아버리고는 휑하니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남편이 승차를 권유하면 세 번까지는 모질게 튕겨야겠다는 결의를 마음속으로 다지고 또 다지면서. 하지만 남편은 딱 두 번만 승차를 권유하는가 싶더니, 타이어 타는 냄새만 잔뜩 퍼질러 놓은 채 바람처럼 저만치 휘익 내달아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2
휴일 저녁나절이라 그런지 도로는 비교적 한산했다. 춘자는 자못 여유롭게 차를 몰았다. 차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들었다. 바람이 좀 찼지만 그녀는 일부러 창을 닫지 않았다.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렸다.
크라운베이커리 앞 네거리에서 차를 세우고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춘자는 급히 핸들을 틀어 감으면서 자동차를 U턴 시켰다. 그녀는 왔던 길을 거슬러 치닫기 시작했다. 목적지인 E마트까지는 2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했지만, 어차피 드라이브나 좀 즐기자는 심산이었으므로 목적지까지 우회해 가기로 하였던 것이다.
다시 H아파트 단지를 지나 좌회전신호를 받고 조심스럽게 7번 국도에 올라섰을 때, K시와 S시를 잇는 7번 국도는 예상과 달리 행락차량들로 꽤 혼잡스러웠다. 곳곳에서 짜증섞인 경적 소리가 연방 터져나왔다.
여성운전자라고 깔보는 것인지 뒤따르던 차량들이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끼어들기를 예사로 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다. 춘자는 핸들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정면을 응시했다. 코스를 잘못 선택했다는 후회가 엄습했지만 상황을 되돌릴 방도는 달리 없었다. 해서, 내친 김에 엑셀을 힘껏 밟아 앞서가는 승용차의 꽁무니로 바짝 따라 붙였다.
그녀의 차가 은광병원 앞 내리막길을 막 미끄러져 내려갈 즈음, 갑자기 앞 유리창에 빗방울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와이퍼로 물기를 쓰윽 닦아내며 춘자는 아연 긴장했다. 빗길 운전은 처음이거니와 와이퍼와 관련한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추억 하나가 불쑥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운전연습을 하던 날, 첫날의 아픈 기억 때문인지 남편의 태도는 한결 부드러웠고, 춘자 또한 소림사 중이 사부님 대하듯 고분고분 남편의 지시에 복종하여, 초장 분위기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한데, 좌우 깜빡이를 넣는 연습 도중에 또다시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춘자가 남편의 지시에 따라 좌측 깜빡이를 작동시키는 순간 느닷없이 와이퍼가 마구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머머, 이 차 왜이래? 깜박이를 넣었는데 왜 저게 막 움직이고 지랄이야? 나~ 참, 이 차 고장났나봐.”
춘자가 눈을 화등잔만 하게 치켜뜨고 이렇게 소리치자, 남편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더니 예의 지청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놀~고 있네. 야 이 미련한 화상아, 깜빡이를 넣으라 했지 누가 와이퍼를 작동시키라 했냐고. 그 따우로 운전하니까 내가 자꾸 맹하다고 하는 거라고. 아무래도 안되겠다. 운전이고 나발이고 다 관둬라. 니가 핸들을 잡지 않는 게 우리 혈통 유지하는 지름길이다….”
이쯤에서 상황이 정리되었다면 그녀는 어금니 한번 오지게 사려물고 운전연습에만 몰두했을 것이다. 한데, 상황은 꽈배기처럼 자꾸만 꼬여가기 시작했다. 춘자가 와이퍼에 신경을 쓰느라 미처 정면을 살피지 못한 사이 자동차는 어느새 중앙선을 훌쩍 넘어 신나게 역주행을 하고 있었고, 저만치서 달려오던 승용차 한 대가 기겁을 하여 황급히 갓길에 멈춰 서는 장면을 포착한 남편의 목소리가 다시 성난 치와와 새끼처럼 사나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야야얏~ 차 세워 당장! 어휴~ 나 아 새끼들 생고아 만들 생각 없다. 뭐해? 당장 차 세우라니까.”
그런데 더욱 황당스러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남편의 신경질에 울컥 오기가 발동한 춘자가 죽어라 브레이크 패달을 밟아버리자, 급제동에 휙 튕겨나간 남편이 하마터면 앞 유리창과 정통으로 박차기를 하는 대참사(?)까지 초래될 뻔 했던 것이다.
아! 이후의 사태들은 떠올리기조차 싫다. 좌우지간, 그날 야심해서야 연체동물처럼 기어들어와 춘자에게 온갖 갖잖은 시비를 다 붙이던 남편은 급기야 이불보따리를 챙겨서 딴방으로 가버렸고, 예정에 없던 생과부생활은 이후 일주일 간이나 계속되었으니까.
3
새로 지은 중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춘자는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초록색 불이 노란색으로 잠깐 떠올랐다가 이내 붉은 색으로 바뀌는 것을 빤히 보고도 그냥 지나치려다가 한 중년사내를 칠 뻔 했던 것이다. 다행히 사고는 면했지만 급히 브레이크를 밟는 통에 기어 옆의 작은 공간에 쌓여있던 카세트테이프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오금이 저려오면서 다시금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주욱 흘러내렸다. 가쁘게 목안에 고여든 숨을 천천히 내쉬며 백밀러를 보니 중년사내가 그녀를 향해 성난 얼굴로 뭐라고 지껄여대는 모습이 보였다.
휴~! 방심은 금물이다. 비록 3년 전에 딴 것이라곤 하지만 그동안 지갑 속에 장기 구금되어 있다가 얼마 전에야 비로소 햇볕을 보기 시작한 '장롱면허'가 아니던가. 춘자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안구에 잔뜩 힘을 준 다음 핸들을 바투 잡았다.
오늘만 해도 이 잘난 똥차 한번 얻어 타기 위해 남편에게 얼마나 맘에 없는 간살을 떨어야 했던가. 저희 입에 들어갈 반찬거리를 사러 나서는 길인데도 남편은 쉬 차키를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가까운 부식가게를 이용하면 될 걸, 왜 굳이 먼 데 있는 마트까지 가야 하느냐는 시비였다.
단돈 10원이라도 아껴보려는 현모양처의 충정쯤이야 내 알바 아니라는 듯 텔레비전화면에 눈길을 준 채 콧구멍이나 후비며 이렇게 딴전을 부리는 남편이 그렇게 밉살스러울 수 없었지만, 담배 두 갑을 사 바치겠다는 치사한 약조까지 한 연후에야 겨우 키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효자사거리 전방에서 갑자기 소통이 지체되기 시작했다. 사고라도 났는지 시속 2~30킬로미터의 서행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비로소 마음 한구석에서 여유가 생겨나면서, 주변에 늘어선 상가와 함께 시트 바닥에 널브러진 카세트테이프들이 하나 둘 시야에 들어왔다.
나훈아 히트퍼레이드, 주현미의 쌍쌍파티, 신바람 이박사 메들리, 배호의 골든디럭스 20, 추억의 살롱 무드음악…남편의 음악적 취향(수준)을 한 눈에 읽게 해주는 뽕짝 일색의 테이프들이었다. 그런데 그 테이프들 사이로 유독 시선을 끄는 CD가 하나 있었다. 인디언 연주음악을 담은 CD였다.
작년 여름휴가 때 울진에서 열린 농업엑스포장에 우연히 들렀다가 인디언들의 현장공연에 매료되어 즉석에서 구입하였던 CD인데, 인디언 특유의 영혼을 부르는 듯한 음색과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민속악기 소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매혹적인 음악들이어서 한동안 자주 듣곤 하던 기억이 새로웠다.
춘자는 안전벨트를 느슨하게 하고 CD를 집어 들기 위해 오른손을 뻗었다. 가을날에, 그것도 이렇게 가랑비까지 내리는 스산한 날에 이 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은 없을 것이었다.
바로 그때, 쿵 하는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갑자기 그녀의 몸이 앞으로 심하게 출렁거렸다. 깜짝 놀라 펀듯 앞을 바라보니 춘자의 차가 신호대기 중이던 검은색 승용차의 뒷 꽁무니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아뿔싸! 추돌(追突)사고였다. 온 몸에 퍼져있던 피톨들이 일제히 안면 쪽으로 쏠려 드는 느낌이었다. 낯빛은 금새 흙색으로 변했고, 심장은 콩닥콩닥 금속성의 울림으로 마구 달음박질을 했다.
선그라스까지 벗어젖힌 채 실눈으로 앞차의 꽁무니 깨를 찬찬히 살피던 춘자의 가슴이 또 한번 철렁 내려앉았다. CH로 시작되는 바로 그 차, 아! 체,체,체어맨이다. 조그만 지방도시의 웬만한 아파트 값과 맞먹는다는 문제의 그 차…. 아! 갑자기 머리가 속을 비워버린 수박처럼 텅 비어버리는 듯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조차 깜빡할 정도로 멍했다.
한데, 어떡해, 어떡해…만 연발해대며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한편으론 무언가 의아한 생각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춘자였다. 지금쯤이면 후다닥 뛰쳐나와 소란깨나 피웠음직한 앞차 운전자가 여태껏 코빼기조차 내비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부상…?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다시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마음이 조급해져서 춘자는 더 이상 차 안에 퍼질러 있을 수 없었다. 운전자가 가벼운 부상이라도 당했다면 이건 정말이지 ‘대형사고’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황급히 차에서 내렸다. 여전히 정지신호가 진행 중인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빗줄기는 제법 굵어져 있었다. 춘자는 손 삿갓을 한 채 충돌부위를 스치듯 흝어본 뒤 비척비척 앞차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사고는 경미해보이지만 상대 차량이 워낙 고가인지라 걱정이 온전히 가시는 건 아니었다.
자꾸만 경직되는 얼굴에 어색한 웃음을 덧씌운 채 엉거주춤 운전석 앞에 선 춘자는 짙은 썬팅으로 인해 사람이 탔는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 운전석 쪽을 향해 꾸벅 인사부터 올려 부쳤다. 결과적으로 제 얼굴에다 대고 인사를 올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녀는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어디…다치신 데는…없으세요?”
잠시 후 운전석의 창문이 스르르 내려가더니 운전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허우대 좋은 오십대의 대머리 아저씨였다. 춘자는 머뭇머뭇 그의 눈치를 살폈다. 창졸간에 당한 ‘변고(變故)’라서 그런지 눈자위 부근이 불그스레해진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사나운 눈초리로 춘자를 쏘아보던 대머리 아저씨는, 이내 왼손을 부채질하듯 살랑살랑 흔들면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주절거렸다.
“됐소…, 아줌마 그냥 가소, 가. 얼른….”
“네―?” 춘자는 무슨 말인지 도통 못 알아듣겠다는 듯 창문 가까이에 귀를 바짝 들이댄 채 반문했다.
“뭐, 뭐라고 하셨세요?”
“이 아줌마야, 그냥 가란 말이요, 얼른…, 후딱…. 뭐해요? 신호 바뀔 때 다 됐소. 얼른 차로 돌아가소.“
어안이 벙벙해 굽어보는 춘자를 향해 쥐어짜는 듯 잦아지면서도 위압적인 목소리로 다시 이렇게 주절거리는 사내의 눈자위 깨는 그새 더욱 벌겋게 상기되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사내가 말을 뱉어낼 때마다 그의 입에서는 알코올이 숙성되어 발효한 듯한 시큼텁텁한 악취가 솔솔 풍겨져 나오는 것이었다. 끝.
첫댓글 처음 운전면허증 받아들고선 세계일주라도 할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막상 도로에 나오니 온몸이 경직이되고 눈동자조차 곁눈질할 여유가 없었던 시절을 나도 겪었다. 차선을 바꾸긴 해야겠는데 뒷차와의 간격을 알지 못해 한참을 지나치고 뒤에 차가 없을 때 좌회전한 적도 있고.. 누구나 겪었을 왕초보시절을 생각하며 한참을 웃었다.
추돌당한한 차가 음주운전중이어서, 운수 좋은날이 된게야..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