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
난 캥거루였다. 유대목이었고 긴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캥거루의 아픔과 고달픔과 배고픔과 서러움을 잘 알고 있다. 빼빼 마른 배고픈 캥거루가 주머니 가득 근심을 담고 뛰어다니면 다들 배부를 것이라 생각하겠지. 고통이 배를 기생충처럼 가득 메우고 배만 볼록하게 나온 1960년대 빈곤층 아이도 행복하다고 생각하겠지. 사람은 언제나 그러하듯 자신을 중심으로 지구를 회전시키고 살고 있으니까! 120년 전부터 인간과 권투 시합을 해온 싸움꾼 캥거루였다. 난 그냥 "모른다"였다. 정말 모른다. 인생이 왜 이런지도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도 왜 이렇게 처절해야 하는지도 정말 모른다. 모르는 게 정답이다. 난 캥거루다
이제 누군가 싸움을 걸어온다면 그냥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글로브를 끼고 상대가 인간이어도 인간이 아니어도 먼저 걸어온 싸움을 피하진 않을 것이다. 1891년 호주에서 사람과/함께 복싱을 한 잭이라는 캥거루가 있었다. 그 당시 잭은 대스타였다. 발은 용수철이 달린 듯이 통통 튀고 꼬리는 균형을 잡아준다. 난 위대한 복서 캥거루 이제 세상을 받아칠 것이다. 캥거루 이름의 어원은 "모른다"이다. 백인들이 호주 원주민들에게 "저 동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나도 모른다."로 말했고 그게 이름이 되어버렸다. 난 이제 모른다. 과거도 모르고 현재도 모르고 미래도 모른다.
이 놀이가 지겨워지면 삶도 그때엔 재미 없어질 테지.
초등 동창이 작달막한 키에 몇 달 만에 20kg이 쪄서 모임에 나왔다.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정신과 약을 먹다 보니까 달달한 것들이 당겨서 이 지경이 되었어."
검은 모피코트를 입고 왔는데 나름 귀엽고 통통한 수달 같았다. 다른 동창이 말했다.
"넌 밤에 돌아다니지 마라. 포수가 곰인 줄 알고 쏘겠다."라고 말해서 다들 웃었다. 난 그냥 아무 생각 없었다. 먹고 싶은 게 많아서 트라우마를 덧입힌 나의 사랑스러운 짝꿍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 세상에 트라우마는 없고 목적을 가진 인간이 합리화 시키기 위해 지어낸 행동이라 생각했다. 먹고 싶은 욕망이 스트레스를 만들어내고 핑곗거리에 맞게 계속 먹는 거라 생각했다. 트라우마에 대한 환상을 망치로 깨부숴버렸다.
어느 날, 나도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정신과 약을 먹고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밤새 먹을 것 생각하고 우적우적 먹었다. 매일 밤, 배고픈 애벌레로 살았다. 약을 먹고 15분 후면 딩, 딩, 딩, 딩 그분이 오신다. 남편이 볼까 봐 방문부터 닫는다. 그 순간부터 미뢰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살아난다. 일 년에 3개도 안 먹었던 아이스크림을 한 번에 다 먹는다. 새우깡 세 봉지, 커피 번, 단짠단짠한것들을 한가득 식탁 위에 쌓고 먹기 시작한다.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쓰레기통을 보고 식신 에릭식톤111 같은 나를 기억한다. 3년 넘게 이렇게 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다 냄새가 몰려왔다. 염분에 절은 짜고 불쾌한 해조류의 악취가 나를 따라다녔다. 어느 날부터 낭만적인 바다가 아닌 죽음과 썩고 뷔페 한 바다가 늘 함께했다. 하루하루가 힘들어서 강렬하고 고통스러운 주파수를 뿜어대는데 가해자는 모른다. 잘 살고들 있다. 다들 매일이 축제이다. 나도 피의 축제이다. 수면제 먹고 화장실 하수구에 누워자다가 세면대 시멘트에 머리통이 깨졌다. 찐득한 피가 관자놀이에 흐르고 한 달 넘게 누런 멍이 양볼을 타고 내려왔지.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를 들으면 소름이 돋지. 트라우마를 믿지 않았는데 이제 신봉하게 되었지. 3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집 나간 삶은 돌아오지 않았다.
<트라우마 길들이기>
극한의 혼돈에서 살아 돌아온 적이 내게 있다. 어린 시절, 기차 사고에서였다. 갑자기 좌석들이 도미노 무너지듯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수십 년 전 완행열차의 좌석은 초록색 비로드 천으로 만들어졌다. 손으로 쓰다듬는 재미가 있었다. 갑자기 달의 기운에 미쳐 춤추는 파도처럼 좌석들이 달려왔다. 그 당시 인기 있었던 종이 뚜껑이 달린 우유병이 날아가 사람의 눈알을 향해 박히고 좌석에 다리가 끼여 피가 솟았다. 내 푸른 원피스가 피로 물들었다. 난 죽음에서 살아온 자이다. 이제는 살아서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자이다.
유명한 심리학자 아들러는 트라우마는 없다고 했다. 그냥 목적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뇌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내가 미치고 싶어서 미치는 것일까? 초등학교 동창이 정신과 약을 먹고 식욕이 폭발해서 살이 많이 쪘다고 했을 때 사실 난 믿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을 합리화 시키고 싶어서 핑곗거리를 찾는 거라 생각했다. 정말 그랬다. 밤마다 무언가를 먹고 싶어 하는 자신이 창피해서 핑곗거리를 만들어내는 거라 생각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부정하고 시작했다. 난 언제나 그랬다. 오만했고 시건방졌다.
내 모든 비딱함을 처 철하게 깨뜨린 것은 바로 불운이었다. 연속적인 불운은 손을 잡고 왔다. 아니, 미친 것들이 단체로 왔다. 불운의 이유는 없다. 결론은 과거를 샅샅이 파헤쳐 보았고 많은 불행하게 살다간 이들의 과거를 보고 알았다. 누군가가 치밀하게 계산해서 덧셈, 뺄셈, 나눗셈하듯이 나누어 준 것이 아니었다. 이제 모든 것을 자신 있게 말한다. 인생이 절대 긍정한다고 해서 잘되고 꿈꾸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헛소리해서 책 팔이하는 사람들은 반성하기를 바란다. 내 트라우마의 이름은 캥거루이다.
세계의 많은 재앙을 보고 그 가운데 섰던 자들이 비관적이거나 꿈꾸지 않아서 불행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것은 아니었다. 그냥 운명이 어느 날 우연히 검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사자처럼 온 것이다. 중세 암흑시대에 성직자와 교황이 다 같이 흑사병에 걸리고 나서야 알게 된 인간들, 죄를 지어 병에 걸리거나 불운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멍청한 것은 없다. 그런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맹목적인 맹신이 가장 두렵다.
외삼촌과 시골로가는 길, 극한의 혼돈에서 살아 돌아온 적이 내게 있다. 어린 시절, 기차 사고에서였다. 갑자기 좌석들이 도미노 무너지듯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초록색 비로드 천으로 만든 의자들이 달의 기운에 미쳐 춤추는 파도처럼 달려왔다. 그 당시 인기 있었던 종이 뚜껑이 달린 우유병이 날아가 사람의 눈알을 향해 박히고 좌석에 다리가 박혀 피가 솟았다. 내 푸른 원피스가 검붉게 물들었다.
유명한 심리학자 아들러는 트라우마는 없다고 했다. 그냥 목적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뇌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내가 미치고 싶어서 미치는 것일까? 초등학교 동창이 정신과 약을 먹고 식욕이 폭발해서 살이 많이 쪘다고 했을 때 사실 난 믿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을 합리화 시키고 싶어서 핑곗거리를 찾는 거라 생각했다. 정말 그랬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부정하고 시작했다. 난 언제나 그랬다. 오만했고 시건방졌다.
세계의 많은 재앙을 보고 그 가운데 섰던 자들이 비관적이거나 꿈꾸지 않아서 불행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것은 아니었다.
매일 꼬박꼬박 운동하기
영어 500문장씩 듣기
오늘 하루만 잘 살기
이번 주에 산 책들 다 읽기
몰입할 일 찾기
무의미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