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을 훌쩍 넘긴 건물. 이제는 흔하디 흔한 침대도, 체력단련장도, 노래방도 찾아볼 수 없다.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침상형 생활관에는 10~15명의 해군·해병대 병사들이 콩나물 시루처럼 빼곡하다. 하지만 불평불만의 목소리는 없다. 이들은 살을 맞대고 살아가며 ‘한뿌리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누구보다 돈독한 전우애를 나누고 있다. 제주방어사령부(제방사) ‘해군·해병대 한마음 생활관’ 병사들이 주인공이다.
사라져가는 침상형 생활관에서 전우애 다지며 군생활 ‘이색 풍경’
일과 마치고 함께 모여 타악 합주 신나게 북 두드리며 스트레스 ‘훌훌’
상호 근무체험·한마음 월드컵 등다채로운 프로그램 활용 화합 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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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제주방어사령부 1생활관에서 해군·해병대 병사들이 자유시간을 이용해 장기를 두고 있다. 해군·해병대 병사들은 이곳에서 동고동락하며 전우애를 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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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해병대 병사들이 한마음 월드컵 경기에 앞서 기념촬영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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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후 전문강사 지도 아래 타악 협주를 배우고 있는 해군·해병대 병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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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해병대 조리병들이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
침상형 생활관, 화합의 밑거름
폭염이 내리쬐는 지난 4일. 제방사 해군·해병대 병사 30여 명이 국립제주박물관에 모였다. 8월에 일병으로 진급하는 병사들이 ‘한마음 갖기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 이들은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 항일운동 등에 대한 문화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자신이 근무하는 지역의 특성을 확인했다. 오후에는 올레길을 걸으면서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된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만끽했다.
지난 1일 오후. 제방사 소속 해병대원 20여 명이 항만경비정에 올랐다. 이들은 긴급출항·전투배치·사고처치 등 함정에서 이뤄지는 각종 훈련을 체험했다. 해안방어·상륙작전 등을 수행하는 해병대원들은 1박2일 함정근무 체험을 통해 해군의 특성과 작전환경을 이해했다.
해군 병사들은 해병대대를 찾았다. 이들은 해병대 제식훈련과 상륙기습기초훈련을 받았다. 입에서는 단내가 났지만 같은 생활관, 같은 침상에서 생활하는 해병대원들의 강인함을 몸으로 느끼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일과를 마친 시간. 본부 대강당 한라관에 웅장한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삼삼오오 모인 해군·해병대 병사들이 전문강사의 지도 아래 타악 합주(난타)를 연습 중이었다. 병사들은 서투른 솜씨지만 북을 두드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한 후 서로를 격려하는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한마음 갖기 운동과 상호 근무 체험, 난타 공연, 풋살·농구·족구로 구성된 한마음 월드컵…. 해군·해병대는 태생적으로 한뿌리에서 시작됐다. 제방사 해군·해병 병사들은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다.
특히 사령부 본부 1생활관은 ‘한마음 생활관’으로 불릴 정도로 해군·해병대원들의 전우애가 두텁다. 침상형 숙소가 밑거름 역할을 했다. 침상은 침대와 달리 여러 명이 같은 공간에서 살을 맞대며 생활한다. 이로 인해 해군·해병대라는 벽은 자연스럽게 허물어지고 ‘우리’라는 화합의 장이 펼쳐지는 것은 당연지사.
자대 배치를 받은 병사들은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놀라기도 하지만 해군·해병대 선임병들이 허물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고 곧 동화된다. 그리고 ‘전우’라는 알토란 같은 열매를 수확하는 데 공동의 노력을 기울인다.
6·25참전용사 후손 4인이 말하는 나에게 해군·해병대 전우란?
1생활관에는 6·25참전용사 후손이 유독 많다. 권찬근·성사도 상병, 강승호·이재원 일병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60여 년 전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전장을 누볐던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끈끈한 전우애로 똘똘 뭉쳐 있다. 이들에게 해군·해병대 전우는 어떤 존재인지 들어봤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kookbang.dema.mil.kr%2Fnewspaper%2Ftmplat%2Fupload%2F20140710%2Fthumb1%2FBBS_201407100433051680.jpg)
“해군과 해병대, 이순신 장군 후예로 한 핏줄”
본부대에 근무하는 성사도(사진 오른쪽) 상병 역시 해군 병사들과 근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같은 부대, 같은 생활관, 같은 침상에서 살을 맞대고 24시간을 함께 생활하며 해군을 이해하게 됐다. 또 해군과 해병대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예로 같은 핏줄이라는 동질감을 확인했다.
“해군·해병대는 한뿌리 공동운명체입니다. 해군은 바다를 지키고, 해병대는 이를 토대로 상륙작전을 전개하는 국가전략기동부대입니다. 이제 해군은 제 군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 됐습니다. 수행하는 임무와 머리 모양, 입는 옷은 다르지만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해군은 내 인생 최고의 파트너입니다.”
“‘무적해병’과 함께 물샐틈없이 바다 지킬 것”
강승호(사진 왼쪽) 일병은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제주도는 해병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6·25전쟁 당시 제주도에서 교육훈련을 받은 해병대 3·4기는 수많은 전쟁터에서 용맹성을 발휘했다. 강 일병은 이 같은 무용담을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용맹스러운 해병대에 지원할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오랜 친구 같은 바다를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좀 더 먼 바다를, 더 넓은 바다를 체험하고 지키고 싶어 해군을 선택했습니다. 다행히 부대에는 해병대 전우가 많아 간접 체험하는 느낌으로 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일석이조입니다.”
강 일병은 6·25참전용사인 할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손자, 필승해군 전통을 계승하는 정예 해군이 되기 위해 오늘도 전투화 끈을 질끈 조여 맨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자유 수호를 위해 총성이 가득한 전쟁터에 뛰어드셨습니다. 저 역시 해병대와 함께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무적해병’과 함께 우리의 바다를 물샐틈없이 지키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kookbang.dema.mil.kr%2Fnewspaper%2Ftmplat%2Fupload%2F20140710%2Fthumb1%2FBBS_201407100436137090.jpg)
“피 나눈 친형제보다 더 의미 있는 존재들”
해병대 교육훈련단을 수료하고 자대 배치를 받은 권찬근(사진 왼쪽) 상병은 해군 선임병들의 환대에 적지 않게 놀랐다. 당연히 ‘돌격머리’끼리 훈련 받고 생활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해병보다 해군이 더 많은 자대 생활이 낯설었습니다만 이런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함께 일과를 진행하고, 먹고 자고, 몸을 부대끼며 동고동락하다보니 피를 나눈 친형제보다 더 의미 있는 존재들이 됐습니다.”
권 상병은 바다가 좋아 해병대에 지원했다. 해군을 선택하지 않았던 이유는 ‘남자’로서 로망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군과 함께 생활하면서 바다에 대한 열망이 강해졌고, 내가 해군에 입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물음표를 던져보기도 했다.
“휴가 때마다 친구들에게 해병대 자랑을 늘어놓지만 해군을 소개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저 때문에 해군에 입대한 친구도 있습니다. ”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해병대 지원하겠다”
이재원(사진 오른쪽) 일병의 친할아버지 고(故) 이상봉 옹은 6·25전쟁 때 황해도에서 남으로 내려왔고, 육군에 지원해 소총수로 활약했다. 이 일병은 전쟁에서 부상한 할아버지가 강인한 정신력으로 후유증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군인정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저는 입대해서 또 다른 군인정신을 목격했습니다. 바로 해병대입니다. 강한 훈련을 이겨내고, 전역 후에도 그들만의 뜨거운 전우애로 뭉치는 의리파 해병대. 정신력과 체력 무엇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 해병대 전우는 정말 군인다운 군인입니다. ”
이 일병은 군악대원으로 임무를 수행 중이다.
“만약에 대한민국 남자로 다시 태어난다면, 어차피 가야 할 군대라면 해병대를 지원하고 싶습니다. 어떤 임무가 주어져도 반드시 완수하는 해병대, 소수 정예 강한 군대. 이들과 함께 남은 군 생활을 후회 없이 멋지게 보내겠습니다.”
<사진 제공=권용식 중사>
첫댓글 좋은정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