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초반,
극상의 쇼오와(昭和) 아이돌,
소생에게는 큰 위로였던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惠)'를 소환,
아스라이 멀어진
辛苦의 일본 생활 초기를 회상해 본다.
가끔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라고
자문한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도 있듯
익숙하지 않은 곳에 발을 딛고,
미지의 환경에 들어서면 당연,
심신이 긴장하게 된다.
그래서
에너지 소비가 일상에서 보다
많아 '여행 피로'가 따른다.
도난, 상해, 심하게는 생명의 위험도
따른다. 그런 불안을 누르면서
돈들이고, 시간 품 팔아가며
'왜 여행을 하는가?'
눈동냥으로 얻은 꽤나 째나는 말.
'호모 비아토르 (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
인간에게는 여행 유전자가
있다는 썰인 거 같은디,
아닌 게 아니라 인생 자체가
'어딘가에서부터 지구별로 와서
여러 곳으로 이동하며 호모 즉,
사람들을 비롯, 많은 물상을 만나고는,
이 땅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져 가는
여행이겠구나고 생각 키는데 말여,,,
그리 거창하게 썰을 풀 일이
아닌 게
'우연히 구메지마(久米島),
거기에 친구가 있었고,
그가 사는 섬이 보고자픈
지적 호기심으로 갔더니
우리 때 교과서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았던 ,
고려의 삼별초와
조선의 홍길동이
류큐 열도의
정치적 중심 세력이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아서
보람과 즐거움이 있었다.'는 것이
소생 나름의 이 번 여행의 변이다.
이 날은 전윈 합승 버스를 탔다.
여행사 두 여직원과 친구가
돌아가면서 주변 설명을 한다.
교차로 신호등에 차가 정지하자
와타나베 씨가
'이 섬에 교통 신호등이 몇 개 있겠어요?'
'얼추 50개 정도 있겠지.' 했는데
단 네 군데만 설치되어 있단다.
아~ 이 홀가분한 기분!
첫 방문지 久米島 박물관
입장하자 입구 정면에 걸린
아래 경고 포스터.
섬뜩하다.
'지금 인류는 넘어서는 안 될
한계점에 서있다.'
- 今人類は
超えてはいけない 限界点に
立っている-
젤 위 외약 쪽 인류 진화 그림.
걸작이다.
직립 보행에서 인지 혁명을 거쳐
돼지털(digital) 정보 혁명기에
이르러서 한 치 앞도 안 보고,
스마트(?) 폰만을 보는 현대인의
저 왼쪽 발.
일촉즉발(一觸即發)이다!
누군가?
이를 디자인한 구메지人은?
만나보고 싶어 진다.
자연을 중시하는 섬주민들이 우리
모두를 향한, 간결하지만 절절한
외침 같아 가슴에 찡하게
와 닫았다.
한계점에?
소생이 겁보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 한계선을 과속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은디 말여!
언어부터가 대부분 알게 모르게
AI(인공지능)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영상화되는 말과 글들의 가상(Virtual)이
실제(Real) 보다 더 리얼한 전파력을
가져 정신을 못 차리는 세상!
사고의 중심을 잡지 못해
내가 나를 의심해질까 두려워지는 세상!
새삼 좋아하는 노자할아방의 썰.
無爲而無不爲
'자연 그대로 두어라!
허먼
찬찬히 다 잘 되어간다.'
(이 또한 극히 소생 개인적 썰입니다}
전시관 내를 혼자서 샅샅이 살펴보았다.
민속실에 전시된 구메지마人의
옛(?) 衣. 食. 住 생활 도구와 용품들
어떻습니까?
울 어릴 때의 생활 용품, 도구와
빼박으로 보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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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방문지는
류큐 중산왕국에서 구메지마 이 섬
요직에 있던 우에즈(上江洲 )의
전통 가옥인 우에즈게(上江洲家).
역사 지식이 없어 설명을 들어도
그저 그저였으나, 직감적으로
우리 제주도가 연상되었다.
약 37년 전,
직장에서 졸업 여행 인솔 차
매년 제주도에 들렸다.
그때의 기억
1. 주택 지붕이 낮고 진회색 현무암 돌담,
2. 돌들을 얹은 허술한 초가와
간간히는 기와 지붕. - 이를 또렸히
소환하게 된 것은,
이 구메지마(久米島)의
옛 집, 돌담 골목길 -
곳곳에서 제주도와
빼박이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高麗史라고 해야 아심아심하게
태조 왕건, 정중부
최 충원의 중기 무신정치,
말기 신돈, 공민왕 정도에
불과한 소생에게 '삼별초'가
류큐의 정치 사회의 중심이었다는 걸
확신 시켜주어, 제주의 삼별초
항몽 유적지를 보러 5월 4일~8일
제주에 입도했다.
또 하나!
오키나와 옛 민가의
돼지우리 겸 변소 FUURU와
37년 전 제주의 민가 화장실에서 돼지를
직접 키우는 걸 봤다.
지금은 제주 흑돼지라고 허나
그때는 똥돼지라 부른 것 같은디
여하튼
소생 가끔 즐기는 제주 흑돼지 김치찌개나
지금 류큐의 대표적 음식이 돼지 요리인 것!
전래의 住, 食도
두 섬이 일란성 쌍둥이다, 그래서
제주에서 1217(?) 년에 사라진
삼별초 잔존 세력이 류큐로 건넜다고
소생 나름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께
류큐에는 야마토 민족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피가 섞여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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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방문지는 우에(宇江) 성곽 유적
성벽이 고려, 조선의 성 쌓기 빼박 아닌가요?
2편의 또 다른 성 유적을 보면 더욱
확실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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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건 못 참고 촐랑대는
승질 머리라 몸이 좀 뭣해도
공부 삼아 제주에 갔습니다.
그곳이 알고 싶으면 그곳에 가라!
실내전시관(Exhibition Hall)
몽골에 대항하여 최후까지 조국을
수호한 삼별초의 항쟁,
원나라 침략에 맞서 끝까지
항거한 고려무인의
정서가 서린 삼별초군의 마지막
보루였던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
당시 세계 강대국이었던 칭기즈칸의
원나라와 맞서 끝까지 항쟁을
벌인 고려 무인의 드높은 기상과
자주호국의 결의를 항몽 유적지 안내,
삼별초의 대몽항쟁요도,
제주 항파두리 토성의 평면도 및
횡종단면도 등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토성(Exhibition Garden)
김통정 장군은 삼별초군의 거점지인
항파두리에 흙을 이용한 길이
3.8km에 달하는 토성을
쌓아 여몽 연합군에 대항하였다
발굴된 기와의 어골 무늬
다음 편
구메지마 具志川 쿠스크에서
발굴된 것과 판박이다.
깔끔하게 결론짓는 영상
-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귀중한
시간을 빼앗지는 않았는지요?-
<다음도 우리와 이 섬의
연결 역사 여행입니다.>
첫댓글 一雲 님: ' 슬픈 역사의 琉球 6 <久米島 3 - 제주도를 보다 1. '
一雲 님은 서두에서, '사서 고생 하는 여행을 왜 하는 가' 를 언급했습니다 만
一雲 님의 여행은 일반 사람과 다르게 단순한 관광에 그치지 않고, 여행지의
특성과 그 것에서 파생 되는 여러가지를 깊이 고찰하는 모습이 실로 놀랍습니다.
이 번에 기술 된 것만 해도, 久米島 전시관의 옛 생활 도구, 용품들 및 옛 오키나와
민가의 돼지 우리 겸 병소인, 이른 바, 돛시 (統西) ...아울러 제주도가 연상 되는
上江洲의 전통 가옥, 宇江섬의 유적 등에서 다시 제주도를 방문한 점이며, 특히
우리나라의 삼별초의 잔존 세력이 류큐로 간 사실과 류큐 최초의 왕묘에서 그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 등, 값진 여행의 경험담.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좋은 계절을 마음껏 즐기시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어르신은 참 성실하십니다.
외람되게 말씀드리오면
인류 문화, 문명도 강줄기의 물처럼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게 자연이라 생각합니다만
적어도 소생이 낫살들어 나름 깨달은 건 시대 시대에서 자연의 흐름을 가로막는 게
무력으로 권력을 쥔 집귄 패거리고
그들이 正史라고 해서 자라는 세대를 교육으로 세뇌시켜온 게 인류의 역사가 아닌가고 생각하네요.
해서 소생 눈으로 직접 확인하느라 부산을 떨었습니다.
과찬의 말씀에 부끄럽기도 하면서
기쁘기도 하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
내내 강녕하시옵기 기원합니다.
ㅇ
一雲님: 久米島探訪 3 편, 잘 봤습니다. 한반도 남해안에서 천킬로나 떨어진 絶海의 孤島에 우리 조상들의 자취가 남아있다니 놀랍습니다. 옛날에는 육로보다는 해상이 주교통로 였으니 배로 건너 갔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 먼 거리를, 그것도 그 유명한 구로시오(黒潮)의 흐름에 역행해서 어떻게 건너 갔을까 놀랄뿐입니다. 아마도 帆船기술에 능한 고려인들이 가을에서 겨울에 걸처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그 우수한 操船기술 때문에 몽고황제 "후비라이"의 일본정벌에 강제 동원되어 막대한 희생을 치렸습니다만.., 오늘에 남아있는 久米島의 맷돌이나 성곽, 돌담 등이 제주도의 그것과 닮은 것도 무리가 아닌것 같습니다. 지금은 없어젔지만 제주도의 그 유명한 "통시문화" 도 久米島에 있었다니 또한번 놀랐습니다.
아무튼 一雲운님의 예사롭지 안는 탐방기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어르신 !
안녕하시온지요 ?
대단하십니다 .
구로시오 .
계절풍.
고려인의 조선술과 범선.
고려의 수군을 앞 세운
쿠빌라이의 일본 침략.
이실직고 드리자면 소생은
친구의 구메지마에 가기 전은
삼별초는 그저 고려시대 난을
일으킨 집단.
홍길동은 실재했던 사람이 아니고 허균의 소설의 픽션 주인공 정도의
인식이었습니다.
실은 우리 대부분이 같은 정도의
인식입니다.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았으니까요.
충격이 커서 귀국 후 지금도 고려사,
광해군 때의 허균 ,연산군 때 홍길동 관련을 언필칭 교과서적 정사가 아닌
심층 공부를 하고서 자료를 을리고
있습니다.
하온데 어르신은 위에 언급 헀던
내용들을 이미 파악하고 있으시니
감복할 따름입니다. 소생에게서 많은
공부가 되신단 건 좀 그렇습니다.
아무튼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의 소통은 초기 말씀대로 늘그막 소소한
즐거움입니다.
감사합니다 .
내내 강녕하시옵기 기원합니다 .
一雲 님
모두의「いい日旅たち」는 소생이 엔카모임에서 부른 노래이기도 합니다.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를 읽고 선생의 여행관을 알 것 같습니다.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 하는 가?’라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했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우연히 구메지마(久米島), 거기에 친구가 있었고, 로 시작하는 구메지마의
여러 사진은 감상할 만 했고 특히 제주와 비슷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는
느낌은 소생도 동감입니다.
이 짧은 댓글로 감상한 소감을 적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어르신!
꼬박꼬박 주시는 댓글
고맙고 기쁩니다.
소생의 기행 졸문은
아무래도 하이쿠나 엔카 보다는,
현금 디지털 과속문화에서는 지루하고,
항차
무거운 역사 야그가 섞이면 더더욱
재미지지 않으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소생 이 카페의 주 콘텐츠에서 벗어난
주제라 알고 있어 올릴 때 마다
조심스럽긴 하옵니다만 엔카, 하이쿠
등 시문학, 특히 일문에서는 어르신들
앞에서는 쪽도 못 펴는 형편이고
우수 회원 완장을 채워주시고 여러 어르신들이
공감가는 댓글로 추임새를 주시어 계속
소생의 개인사를 여행기에 피력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것넘은 말이 길어졌습니다.
거듭 댓글 감사드리며 내내 강녕하시옵기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