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숙 작가가 그린 에곤 실레의 자화상 스케치)
(가족, 에곤 실레)
(한강의 '채식주의자' 표지, 에곤 실레)
몇 년 전부터 카페나 책방 등이 생기면, 앙리 마티스의 드로잉으로 벽을 장식하곤 했다. 그의 드로잉은 몇 줄 되지 않는데도,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런 마티스의 드로잉 옆에 드물게 에곤 실레의 자화상이 붙어 있기도 했는데, 그의 자화상의 얼굴은 편안해보이지 않고, 이런저런 선들과 색깔들로 침침하게 잘 보이지도 않기에,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 대한 관심을 꺼놓고 있었는데, 최근에 어떤 작가님이 에곤 실레의 스케치 그림이 스케치 교본으로 사용된다고 하면서, 직접 그린 스케치들과 책을 선물해주었다.
그래서 에곤 실레의 그림들을 대충 보지 않고, 자세히 보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그의 그림들은 장식용으로 그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이 아니다. 그래서 집중해서 보고, 공부해서 보면, 인간의 외면과 내면을 처절하게 깊이 후벼파보고, 인간의 고통 속에서 서서히 돋아나오는 맑아짐을 표현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괜히 미술사에서 표현주의의 대가로서 이름이 남은 게 아니다.
그는 성적인 표현의 그림들을 많이 그렸고, 그것들은 상당히 충격적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태생인 그는, 어릴 때부터 4살 차이의 여동생을 누드모델로 많이 그려서 근친상간의 의혹을 받기도 했고, 그의 스튜디오에서는 미성년자 모델들이 많이 벗고 있어서, 동네 주민들이 풍기문란으로 신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의 여자관계는 복잡하지 않았고, 성에 대한 인식도 보수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매독으로 사망한 아버지에게 너무나 냉담했던 어머니를 보며 충격을 받았고, 평생 동안 그녀와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녀와 서신 교환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하니, 어머니의 인정과 사랑에 굶주렸던 것 같다.
그는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28세에 사망했다. 그의 임신한 아내가 똑같은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지 3일 후였다.
그는 자화상들을 많이 그렸는데, 그의 자화상은 해부학 도감처럼 피부를 벗겨낸 후에, 핏줄로 얼기설기 드러난, 고통스러운 듯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또한 동성애 성향이 있던 누나의 영향이었는지, 동성애 그림들도 꽤 있다.
그는 인물화도 많이 그렸는데, 그나마 그의 그림들 중에서 가장 말갛고, 깨끗하게 표현된 것은 아이들이다. 그의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행복하지 못했던 그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태어나지 못한 아이와, 그의 아내와 그가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리며, 행복한 가족의 미래를 꿈꾸었을 것이다.
첫댓글
예술가들이란 참 순탄하지 않아요.
그래도 그 집중력과 순수함이란...
한강이는 한강에 들어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