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달방’서 혼자 사는 초등생 혜정이
- 가족은 있어도 돌보지 않고, 사회는 가족 있다고 보호 안 해줘
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2009.04.08 01:52
아홉 살 혜정이는 모텔이 집이다. 아버지·언니·오빠가 있지만 아버지는 배 타러,
언니·오빠는 공부한다며 떠나 혼자서 산다. 모텔에 들어가는 길이 무섭기만 하다.
#혜정이(9·가명·여·초등 3년·부산광역시)는 모텔이 집이다.
지난해 초 아빠 사업이 기울고 엄마가 돌아가시자 아빠와 함께 월세 35만원짜리 모텔 방으로 들어왔다.
지난해 말까진 아빠·오빠와 살아서 그나마 괜찮았다.
그러나 올 1월 아빠가 돈을 벌기 위해 배 타러 나가고 오빠가 부산의 모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혜정이는 혼자가 됐다. 서울의 K대에 다니는 언니는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저녁마다 공부방에서 돌아올 때 혜정이는 시장통의 좁고 어두운 골목을 지나 모텔에 들어간다.
파장 분위기의 을씨년스러운 시장통 골목이 무섭기만 하다. 집에 오면 6시부터 11시까지 TV를 본다.
휴일에 교회 가는 시간을 빼면 TV 앞에 앉아 있다. TV에 지치면 아빠가 멋진 배를 모는 모습을 떠올리며 잠자리에 든다.
오빠가 기숙사로 떠나면서 “문을 꼭 잠그고 자라”고 해 문을 잠그지만 무서울 때가 많다.
아빠는 가끔 전화해 혜정이의 안부를 묻는다. “굶지 마라”고 신신당부하지만 혜정이는 매일 아침을 굶는 게 습관이 됐다.
저녁은 공부방에서 먹거나 라면으로 때운다.
주인집 할머니가 빨래를 해 주지만 밀릴 때가 있어 양말을 신지 않고 학교에 갈 때도 있다.
한겨울에 홑겹 옷을 입은 적도 있다. 지난해 10월 인근 지역아동센터에 처음 왔을 땐 이가 득실거려
센터에서 이를 잡느라 법석을 떨기도 했다. 주인 할머니는 “혜정이가 모텔을 오갈 때 꼭 인사를 한다”며
“방세가 석 달치 밀렸지만 나가라는 말을 못해 그냥 봐 준다”고 말했다.
#창호(12·가명·전북 전주시)는 엄마는 없지만 아빠와 누나 셋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창호를 돌보지 않는다.
담배를 이틀에 한 갑씩, 어떨 때는 하루에 한 갑을 피우고, 선생님 돈을 훔치는 등 도벽까지 있지만
가족들은 그저 남의 일처럼 여긴다. 밤 12시에 돌아오는 아빠는 너무 지쳐 창호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누나들은 말썽 많은 창호가 부담스럽다. 그러다 보니 창호는 10살 때 피우기 시작한 담배를 끊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공부방 교사들이 “담배 끊으면 점퍼 사 줄게”라고 타일러봤지만 요지부동이다. 6학년이지만 덧셈·뺄셈을 못한다.
최근 수학시험에서 15점을 받았다.
혜정이는 아침을 항상 굶는다. 저녁은 모텔 방에서 라면으로 때울 때가 많다.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다. 가족과 함께 살지만 거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혜정이나 창호처럼 혼자 자란다.
5년 전 살기 어려워진 부모는 아이들을 아동보호시설에 맡겼다. 지금도 그렇긴 하다.
시설에 가면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지만 사회복지사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살면서 방치되는 아이는 법적 보호자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한다.
방임이 오래 가면 문제행동으로 나타난다. 중앙일보가 서울아산병원 유한익 교수 팀에 의뢰해
서울·부산·전북 지역 빈곤아동 124명의 정신건강을 분석한 결과 18.4%가
전반적인 문제행동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일반 아동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전주시 태평동 이병찬 솔로몬지역아동센터장은 “밤에 오줌 싼 옷을 그대로 입고 오거나
며칠째 씻지 않는 아이가 있다”며 “이 아이들은 저녁때 집에 가봐야 방치된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 꿈둥지지역아동센터 이재영 센터장은 “방치된 많은 아동들이 냄새 나는 옷을 며칠씩 입고,
씻지 않아 놀림을 받는다”고 말했다.
<comment>
위에 기사를 보며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이제 2학년이 된 어린 여자아이가
혼자서 모텔방으로 들어가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는 모습일 것이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한숨이 내쉬어 졌다.
이 어린 아이에게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험하게 느껴질지 공감이 됐기 때문이다.
실습을 할 때 부모가 없거나 저소득 가정의 초등학생들이 복지관으로 와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활동시간이 끝나도 집에 가지 않는 한 아이에게 왜 집에 가지 않는지
물었을 때 그 아이는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집보다 복지관에 와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얘기를 하고 밥을 먹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그 아이를 보며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부모님과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이들의 경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에 문제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방치된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만을 탓할 것이 아닌, 그 아이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무엇을 원해서 이런 행동을 했는지 그 원인부터 한번 쯤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며
방치된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적응하는데 있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지 않도록
학교안에 학교사회복지사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다.
첫댓글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