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 태종대 |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전망로 118 |
아름다운 암석 절벽으로 이루어진 절경을 가진 명승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해안경관이다. 울창한 해송 숲과 함께 기암절벽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강한 파도가 부딛히며 생겨난 해식 동굴, 해식애 절벽 등 아름다운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남부지역의 숲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곰솔군락, 팽나무과 함께 훌륭한 경관을 보이고 있다. |
영도의 기암절벽, 부산 태종대 부산 앞바다에는 지척의 큰 섬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우리 국민 모두에게 매우 잘 알려진 섬이다. 그 유명한 영도대교로 연결되어 있는 섬, 바로 영도다. 부산이 임시수도였던 시절 영도대교 주변은 전국에서 모여든 피란민으로 가득 찼으며, 영도는 이들의 애절한 사연이 얽힌 곳이 되었다. 당시 영도 출신인 인기 가수 현인이 부른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는 온 국민의 심금을 자극해 깊은 감동을 주었으며 영도라는 섬을 온 나라에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
태종대는 바로 이 섬 영도에 위치해 있다. 선박이 통과할 때 마다 상판을 번쩍 들어 올리는 부산의 명물 영도대교를 건너 섬이 끝나는 데까지 내려가면 태종대에 이른다. 태종대는 영도의 끝부분에 형성된 해안 지형을 이르는 명칭이다. 아름다운 암석의 단애로 이루어진 절승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경승지라 할 수 있다. 태종대는 오랜 세월에 거친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기암절벽이 말로 형연할 수 없는 절경을 연출하는 곳으로, 비경의 해안 석벽과 우거진 곰솔 숲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는 장소다. 태종대가 위치한 지역은 본래 군사보호 지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태종산을 중심으로 하는 태종대 지역에는 다행히 지금도 일반 민가가 없다. 1970년 순환도로를 따라 산책로와 유원지를 개발하면서부터 태종대는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됐다. 이 지역을 한 바퀴 순환하는 도로로 구성된 산책로를 따라 섬의 끝부분에 이르면 해안선이 맞닿은 곳에 위치한 넓은 언덕에 다다른다. 이 일대가 바로 태종대다. 이 언덕에는 자살바위로 알려진 바위가 있다. 과거 이곳에서 투신해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이 많아 자살바위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현재 이 바위 위에는 태종대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태평양의 너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가슴이 뚫릴 정도로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는 탁월한 조망 지점이다. 전망대에서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가면 깎아지른 해안절벽 아래 자리 잡은 큰 바위를 볼 수 있다. 신선암 또는 신선 바위라 불리는 윗부분이 넓고 평탄한 이 바위는 해안석벽의 아랫부분이 돌출된 것으로, 바닷물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신비스러운 해식 지형을 보여준다. 신선암으로 연결되는 길은 바닷가 낭떠러지에 만들어놓은 좁은 벼랑길로 되어 있다. 마치 중국 쓰촨성에서 티베트 고원으로 올라가는 험로에 설치된 촉도(蜀道)처럼 아슬아슬한 모습의 잔도(棧道,절벽을 파내고 건설한 길)다. |
신선암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암이다. 바위의 단면 구조를 보면 여러 겹으로 형성된 퇴적암층이 마치 시루떡의 측면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바위 윗부분의 평탄면은 높이 쌓아놓은 신문 뭉치의 표면과 같은 암반 형태를 띤다. 이처럼 신비스러운 신선대 퇴적암의 표면에서는 근래에 매우 중요한 고생물 흔적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 남해안 일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공룡 발자국이 바위 위쪽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는 이곳에 지층이 과거 얕은 호수 바닥이나 호수의 가장자리였으며, 공룡이 활동하기 좋은 장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랜 옛날 호수의 바닥이었던 지층이 지질활동으로 융기된 후 다시 침식되어 오늘날의 지형을 이룬 것이다. |
신선암과 영도등대는 태종대를 구성하는 중요한 경관 요소다. 이 등대는 신선암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다. 1906년에 처음 설치됐을 때는 매우 소박하고 간소한 형태였으나 2004년 규모가 큰 현대식 등대로 다시 지어졌다. 100년 가까이 부산항의 길목에서 배를 인도하는 불빛을 비춰왔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부산항의 규모가 커지고 항구를 드나드는 배의 수도 크게 늘자 예전의 등대로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어 현대식 등대로 교체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 등대와 함께 규모가 큰 건물도 지었는데, 이 건물이 태종대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해치고 있는 점은 다소 아쉽다. |
태종대는 부산8경 중 하나다. 이곳에서 신라 태종 무열왕과 조선 태종에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영조 16년(1740)에 작성한 [동래부지(東萊府誌)]에 따르면 “태종대는 府 남쪽 30리 절영도 동쪽에 있는데… 속전에 신라 29대 태종 무열왕이 삼국 통일의 위엄을 성취한 후… 잠시 소일하며 활을 쏜 곳이라 하여 이로써 이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태종대는 무열왕과 관련해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다른 주장도 있다. 조선의 임금인 태종이 이곳을 유람했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래를 지닌 태종대는 가뭄이 심하게 들었을 때 이 고을을 관장하던 동래부사가 기우제를 지낸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태종대가 위치한 영도는 본래 목도(牧島)라 부르던 섬이었다. 예로부터 말을 사육하는 목장으로 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육된 말이 명마인지라 너무나 빨리 달려 말의 그림자처럼 볼 수 없기에 절영도(絶影島)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고종 18년(1881) 이 섬에는 당시 이름을 딴 절영도진이라는 군진이 설치되었다. 영도라는 명칭은 절영도에서 ‘절’자를 뺀 것으로, 1951년 9월 한국전쟁 중에 영도출장소가 공적 행정기구로 설치되어 영도라는 이름을 섬을 상징하는 공식 행정명칭으로 사용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태종대는 바다의 비경을 눈과 귀로 감상할 수 있는 빼어난 해안이다. 태종대 바닷가 암벽에서는 해안절벽에 거친 파도가 부딪혀 내는 우레와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일망무제의 탁트인 바다 경관도 조망할 수 있다. 이처럼 태종대는 경승지로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다. 왼쪽으로는 부산만을 넘어 오륙도가 가깝게 보이고, 눈 앞으로는 주전자 모양으로 생긴 조그마한 무인도가 짙푸른 망망대해에 외로이 떠 있는 모습이 보이며, 맑은 날씨에는 일본의 대마도가 조망되는 매우 탁월한 장소다. |
이처럼 빼어난 경승지로서 가치가 있는 태종대는 남해의 난류가 올라오는 길목에 위치해 따뜻한 기후에서 자라는 난대성 식물이 많이 자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태종대에는 난대성 상록활엽수를 비롯해 곰솔, 생달나무, 사스레피나무 등 120여 종의 다양한 수목이 분포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신비스러운 비경, 그리고 탁월한 전망을 지닌 태종대는 일찍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72년에 부산시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에는 다시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비경을 갖춘 태종대는 국토의 자연 경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시기에 과도한 이용과 개발로 피해를 입은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경승지를 유원지라는 개념으로 개발하고 활용하던 시기에 태종대도 유원지라는 이름으로 개발을 진행했던 대표적인 곳이다. 그래도 태종대 지역은 군사시설이 있어서 개발을 제한한 덕분에 현재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더욱이 전망대, 등대, 신선암 등이 위치한 곳은 대체적으로 보존이 잘 돼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나라 제1의 항구 도시를 대표하는 해안 경승지 태종대, 부산팔경의 하나인 태종대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존하는 것은 명승으로 지정된 국가유산의 위상을 높이고 영원히 국민의 사랑을 받는 장소로 지속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