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산 보경사
보경사(寶鏡寺)는 경상북도 포항시의 내연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포항에서 가장 큰 사찰이라 오어사와 함께 포항을 대표하는 절이다. 내연산은 계곡이 아름다운 산으로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이에 따라 보경사 입구 쪽에는 음식점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포항 보경사를 가보셨나요’라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은 사찰에 대한 이야기보다 보경사 계곡과 소나무숲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합니다. 보경사를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면 ‘글쎄’하는 것으로 말을 마칩니다. 보경사가 우리들에게 준 기억보다는 계곡이 주는 아름다운과 소나무 숲이 자아내는 멋과 맛이 강력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보경사를 잘 살펴보면 평생 잊어지지 않는 신앙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보경사에는 신앙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전각이 있으니, 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보경사는 불자들의 주 신행공간이 특이하게도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즉 본존불을 모신 전각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 참배객들을 당황하게 합니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부처님을 봉안한 대웅전이 있으면,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적광전이라고도 부름)은 없습니다. 해인사에는 대적광전이 있으나, 대웅전이 없고, 쌍계사에는 대웅전이 있으니까 대적광전이 없는 것처럼 두 전각이 한 사찰에 없는 것이 사찰건축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보경사에는 둘이 다 있습니다. 왜 두 전각이 같이 있을까요.보경사의 적광전과 대웅전은 건축에서도 다릅니다. 적광전은 창건시 본존각으로 건립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지은 대웅전이 더 위엄 있어 보입니다. 적광전은 지붕이 맞배지붕이지만, 대웅전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적광전은 평지에 세워져 있는 반면 대웅전은 기단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중생들도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현실에서 나타나 증명해준 분이기 때문에 불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신앙의 대상입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가르침을 설하신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을 모신 전각은 시대마다 신앙의 대상마다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사찰들은 전각을 지어 불보살님을 봉안하여, 미타전 지장전 관음전 등 다양한 전각이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찰을 참배할 때마다 전각에 모신 부처님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공부가 될 것입니다.
대웅전(大雄殿)
현재 보경사의 가람구성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적광전·영산전·팔상전·명부전·산령각·원진각·천왕문·범종각·비각 등의 전각과 수월당(水月堂) 등의 요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 밖에 보물 제430호로 지정된 원진국사 부도와 보물 제252호 원진국사비, 오층석탑, 부도 등의 유물이 경내에 있다.
명부전(冥府殿)
한편 지장보살은 지옥중생을 구제하기 때문에 지옥의 세계인 명부세계 주존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그래서 지장전은 명부전(冥府殿)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그리고 명부전에는 망자를 심판하는 열명의 심판관이 들어서 있으므로 시왕전(十王殿)이라 지칭하기도 합니다.
보경사 탱자나무
탱자나무는 주로 영, 호남지방에 분포하며 일본, 중국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나 있어 과수원 울타리용으로 적합하다. 보경사의 탱자나무는 보경사 경내 천왕문 오른쪽 동편 종무소를 사이에 두고 두 그루가 마주보고 있다. 대웅전 쪽의 나무는 지상 160㎝ 위치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원형으로 왕성하게 자라고 있으며, 맞은편의 나무는 지상 40㎝ 위치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탱자나무로는 보기 드물게 오래된 것으로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전체 높이는 6m 정도이다. 탱자나무는 수령이 오래된 것이 희귀하므로 1972년 경상북도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산령각(山靈閣)
한국의 불교사찰에 있는 산신각은 고유신앙의 수용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민간의 신앙이 두터운 칠성(七星)도 같이 모셔졌다. 그 명칭은 산신각·칠성각(七星閣)·삼성각(三聖閣) 등 일정하지 않다. 현재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外護神)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대부분의 사찰에는 산신각이 갖추어져 있으며, 자식과 재물을 기원하는 신신기도가 많이 행해지고 있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閣)이라 하는데, 이는 한국 불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 한국 불교의 토착화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보경사 산령각(山靈閣)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20세기 초의 건물이다. 안에는 근대에 조성한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영산전(靈山殿)
미륵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아 미래에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부처님이 되실 분이고 제화갈라보살은 아득한 과거 석가모니부처님이 수행자이던 시절 장래에 부처님이 될 것이라고 수기를 주신 분이다. 따라서 석가모니부처님과 더불어 이 두 협시보살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상징하고 있다. 법주사, 쌍계사, 운흥사, 선암사, 범어사, 보경사 등의 팔상전이 알려져 있다.
오층석탑(五層石塔)
보경사 경내에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약간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원진각(圓眞閣)
원진각(圓眞閣)은 원진 국사의 상과 영정을 중심으로 고승 16명의 영정을 봉안한 전각으로,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의 규모를 하고 있는 조선시대 후기의 전물이다.
원진국사비(圓眞國師碑) 보물 제252호
보경사에 있는 고려 중기의 승려 원진국사의 탑비이다.
원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로 예우하고, 시호를 ‘원진’이라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비몸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넓다란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거북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에는 6각형의 무늬마다 ‘왕’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으며, 등 중앙에는 연꽃을 둘러 새긴 네모난 받침대를 조각하여 비몸을 끼워두게 하였다. 비몸의 둘레에는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비문에는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가 지었고, 김효인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종 11년(1224)으로 원진이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원진국사비 귀부부분
비석은 귀부(龜趺)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栗首)가 없는 간결한 모습을 하고 있다. 비신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규수형(圭首形)이라 부르는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비신의 상단에는 ‘원진국사비명(圓眞國師碑銘)’을 전자체(篆字體)로 횡서(橫書)하였으며 비문(碑文)은 ‘고려국보경사주지대선사증시(高麗國寶鏡寺住持大禪師贈諡) 원진국사비명병서(圓眞國師碑銘疊序)’로 시작되고 있다.
널찍한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귀부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 머리를 하고 있다. 등에는 육각형 무늬마다 ‘왕(王)’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으며, 등 중앙에는 연꽃을 둘러 새긴 네모난 받침대를 조각하여 비신을 끼워두게 하였다. 비신의 둘레에는 덩굴 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원진국사 부도 보물 제430호
보경사 뒷산의 중턱에 서 있는 묘탑으로, 원진국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적광전(寂光殿)
화엄경에 등장하는 주존 부처님인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법당입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이란 태양의 빛이 만물을 비추듯이 우주의 일체를 비추며 일체를 포괄하는 부처님입니다. 진리의 본체라 하여 법신불(法身佛)이라 일컫기도 하지요. 이 법신부처님은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혀 설법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법신불의 미간 백호에서 광명이 비춰 나와 시방 세계의 모든 나라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침묵 속에서 찬란한 진리의 빛을 발한다 하여 이 법신불을 모신 큰법당을 대적광전, 적광전, 대광명전(大光明殿), 보광전(普光殿)이라고도 부릅니다. 비로전(毘盧殿)이라는 명칭도 있습니다.
건축 양식을 보면, 기둥 위에서 지붕을 받치는 공포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며 천장은 뼈대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다포 양식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연등천장으로 만든 점 등은 옛 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기단은 외벌대로 아주 낮게 조성하였는데 기단 위에 전돌을 깔고 원좌(圓座)가 있는 사각형 주초(柱礎)를 놓았다. 주초 위에는 원주(圓柱)를 세웠는데 우주(隅柱)의 안쏠림과 귀솟음이 뚜렷하다. 앞면 중앙 칸의 하방(下枋) 양쪽에는 동물 형상을 한 둔테목을 설치하였다. 공포는 내외 2출목이며, 주두(柱頭) 위쪽을 봉두(鳳頭)로 장식하였다. 그런데 이 적광전에서 특이한 점은 기단부 석재가 모두 옥석(玉石)이라는 점인데, 다른 전각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재질이다. 연두색을 띤 이 옥석은 지금도 내연산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팔상전(八相殿)
'팔상전(八相殿)'이란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단계로 구분하여 묘사한 팔상도(八相圖)를 봉안한 전각을 말한다.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걸려 있어 '영산전'이라고도 한다. 천태종에서는 본존으로 삼고 있다. 주불은 석가모니불이며,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좌우에 있다. 불상은 있으나 불단이 크지 않으며, 벽에 붙은 팔상도와 불상 뒷면의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가 주된 경배 대상이다.
팔상도(八相圖)란,
1)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
2)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에게 태어나는 장면,
3)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궁궐의 네 문밖으로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장면,
4)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5)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설산에서 고행하는 장면,
7)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성불 후 녹야원에서 초전설법하는 장면,
8)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는 장면 등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팔상도는 화폭에 문자로 그림의 내용을 써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그린다. 현재 법주사.통도사.쌍계사.운흥사.개심사.선암사.송광사.해인사 등의 팔상도가 전해진다. 우리나라의 팔상전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이다.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후 수리한 것이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으며, 법주사의 현판은 우리들 마음의 '상(相)을 깨뜨리자'는 의미에서 '깨뜰릴 팔'을 써 '팔상전(捌相殿)'이라 이름하였다.
서운암 범종-보물 제11-1호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사인비구가 만든 종 중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꼭대기에는 종을 매달기 위한 둥근 고리가 있다. 어깨 부분에는 인물상이 새겨진 40개의 연꽃잎을 세워 두어 넓은 띠를 형성하였다. 이 띠 아래로는 일반적으로 9개의 돌기가 있는 것에 반해 5개의 돌기를 가지고 있는 사각형 모양의 유곽이 4곳에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부처의 말씀인 진언을 새겨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사인비구의 초기 제작기법을 볼 수 있으며, 아울러 조선 종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의 동북쪽에 위치한 내연산(710m)은 12개의 폭포를 간직하고 있으며, 해발고도만 따지면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다. 하지만 해안 가까이에 솟아올라 있어 내륙의 엇비슷한 높이의 산보다는 휠씬 더 높고 우뚝해 보인다. 이 내연산 자락을 굽이굽이 감돌며 40리 가량 흘러내리는 골짜기가 바로 청하골이다. 내연산말고도 문수산(622m), 향로봉(930m), 삿갓봉(718m), 천령산(775m)등의 높직한 준봉들이 반달모양으로 둘러져 있어서 청하골은 여느 심산유곡 못지않게 깊고 그윽하다. 특히 이곳에는 폭포와 소(沼)가 많기도 하거니와 이곳처럼 다양한 형태의 폭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도 달리 찾기가 어렵다. 청하골은 천년고찰 보경사(寶鏡寺)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절은 신라 진평왕 때에 지명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스님이 중국에서 가지고 온 불경과 팔면보경(八面寶鏡)을 연못에 묻고 지은 절이라 해서 보경사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대웅전 적광전 천황문 요사채 등의 당우(堂宇)가 여러채 있지만, 연륜에 비해 큰 규모의 사찰은 아니다. 경내의 문화재도 고려 고종 때의 고승인 원진국사의 비석(보물 제252호)과 부도(보물 제430호)를 제외하고는 딱히 내세울 만한 게 없다. 그러나 절집의 분위기가 번잡하거나 호사스럽지 않아서 좋고, 절주변의 수림(樹林)이 울창하여 염천의 불볕더위를 식히기에 아주 그만이다.
보경사를 지나 물길과 나란히 이어지는 등산로를 1.5km쯤 오르면 제1폭포인 쌍생폭포가 나온다. 그리 우람하지는 않지만 두물길이 양옆으로 나란히 떨어지는 모양이 단아하기 그지없다. 이 폭포를 지나면 잇따라 보현폭포(제2폭포) 삼보폭포(제3폭포) 잠룡폭포(제4폭포) 무봉폭포(제5폭포)가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잠룡폭포 주변의 골짜기는 영화 ‘남부군'의 한 장면, 곧 지리산의 어느 골짜기에 모인 남부군 대원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발가벗고 목욕하는 장면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청하골의 열두 폭포 가운데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은 관음폭포(제6폭포)와 연산폭포(제7폭포) 언저리이다. 쌍폭인 관음폭포 주변에는 선일대 신선대 관음대 월영대 등의 천인단애가 장성처럼 둘러쳐져 있고, 폭포수가 만들어 놓은 못 옆에는 커다란 관음굴이 뚫려 있다. 이 굴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쪽입구를 가린 채 떨어지는 폭포수 줄기를 볼 수 있다. 관음폭포 위에 걸린 적교(吊橋·구름다리)를 건너면 높이 30m, 길이 40m에 이르는 연산폭포의 위용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청하골에서 가장 규모가 큰 폭포인데, 학소대라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커다란 물줄기가 쏟아지는 광경에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관음폭포 앞쪽 암벽의 벼룻길을 지나 다시 15분 가량 물길을 따라가면 또하나의 폭포를 만나게 된다. 이 폭포는 숨겨져 있다고 해서 은폭(隱瀑)이라 하는데, 가지런한 물줄기가 시퍼런 소(沼)로 떨어지는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이곳 위쪽으로도 시명폭 제1복호폭 제2복호폭 제3복호폭이 이어지지만, 거기까지 찾아가는 이는 드물다. 지금까지 보아온 8개의 폭포만으로도 내연산 청하골의 진면목을 실감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연산 12폭포
내연산(710m) 기슭, 보경사 상류 쪽에 있다. 절에서 위쪽으로 약 2km 계곡까지 12개의 폭포가 연이어져 있어, 이 계곡을 폭포의 왕국이라고 부를 정도이다. 폭포수의 높이는 각각 5~30m에 이른다. 절에서 1.5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제1폭포인 쌍생(상생)폭포를 비롯하여 삼보·보연·잠용·무풍·관음·연산·은·시명 등의 제9폭포까지 있으며, 제10~12 폭포는 제 1~3복호폭포라고도 한다. 제10폭포부터는 제9폭포에서 1km 상류쪽으로 더 올라간 지점에 있다. 사철경관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계곡의 기암절벽을 따라 12개의 폭포에서 동시에 떨어지는 웅장한 물줄기가 일대장관을 이룬다. 특히 가을단풍과 어우러진 폭포의 경치가 뛰어나다. 제5폭포는 보경사의 나이애가라라고도 하며, 제6폭포가 있는 암벽에는 10평가량의 관음굴이 있다. 또한 제6폭포와 제7폭포 사이에는 구름다리인 연산교가 있으며, 암벽 학수대는 높이가 100m 정도 된다. 계곡 입구까지 도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보경사 경내에는 원진국사비(圓眞國師碑:보물 제252호)·부도(浮屠:보물 제430호) 등이 있다.
보경사 답사기
햇살이 따가워 눈이 부시다. 아니,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기에 꽤 힘든 날씨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의 질병을 막기 위해 썬 글라스를 쓰는 가 보다.입추도 지났고 말복도 지났다. 그러면 더위는 한 풀 꺾여야 되는 거 아닌가??어떻게 더 뜨겁고 더울 수가..8월의 중반 더운 여름의 산사의 모습은 어떤가 포항으로 떠나본다.포항은 솔직히 이번이 딱 3번째이다. 어릴 때 칠포 해수욕장에 한번 그리고 오어사 답사때 한번 그리고 지금 보경사로 세 번째 포항을 찾는다.포항은 지도상 보았을 때 대구보다 훨 면적이 넓은 것 같다. 포항 터미널에서 보경사까지 가는 버스는 한시간에 한 대씩 있는데 이 버스로 보경사까지 약 한시간 5분정도가 소요된다.그런데 보경사는 포항 소재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상으로 보나 이정표를 보나 영덕에서 더 가까운 위치에 놓여 있다.대구에서 영덕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바로 보경사 까지 간다면 그건 어떨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너무 멀기에....
버스에서 지루하게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 한 두분 씩 타기 시작하니까 운전하는 아저씨는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소위 말하는 뽕짝 메들리를 트셨다.마치 시골 장터의 버스를 탄 듯한 느낌이었다.
보경사 주차장에 내려서 사찰까지는 5분에서 10분 걸리는 거리였다. 올라가는 길에는 온통 음식점과 민속품을 파는 가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주문에 도착한 나는 마치 수목원에 온 듯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약 800년 정도가 된 소나무들이 일주문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햇살이 들어올 틈도 주지 않고 소나무의 가지와 가지로 양산을 만들어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사찰 경내로 들어서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천왕문과 4물을 보관하는 누각..그리고 적광전,미술전시관 이다.지극히 나의 생각이지만 보경사를 3부분으로 나눠서 건물 배치를 한 것 같았다.
첫 번째 영역이 바로 천왕문과 적광전 사이의 보경사 5층석탑 영역이다.
"적광전"은 경상북도 지방 유형 문화재 제 254호로 지정 되어 있는 당우였고 "5층석탑" 역시 경상북도 지방 유형 문화재 제203호에 지정되어 있었다.
지금 적광전 앞에는 한 처사께서 기와불사를 접수 받고 있는데 사람들의 소원은 제각각 인 듯 했다. 건강발원에서 지혜발원 그리고 사업성취 까지..모두의 소원이 이뤄지길 바란다.
두 번째 영역은 목이 마른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물 샘터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대웅전과 당간지주 그리고 근래에 세워 놓은 듯 한 5층석탑을 중심으로 한 곳 이다."대웅전"은 문화재 자료 제231호에 지정되어 있는 당우이다. 계단을 올라가서 3번째 영역을 만날 수 있긴 하지만 석축을 쌓아 만든 사찰도 아니고 계단식 산지지형도 아니기 때문에 몇 개의 계단으로 영역을 나누어 놓은 것 같았다.
3번째 영역을 보자마자 느낀 것은 바로 부산 범어사의 사찰 가람 배치..비슷한 느낌...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죽 일렬로 건물을 하나씩 하나씩 배치해 놓은 구조인데 이런 배치는 잘 볼수 없는 건물 배치이다.늘 똑같은 구조에 형식에 배치해 놓은 사찰은 조금은 식상하기 마련인데 가끔씩 색다른 모습을 보면 내 가슴이 뛸 정도로 기쁘고 재미있다고 나 할까?^^
공간 활용을 잘 한 듯 보이는 구조이고 사찰을 좀 더 풍성하게 보이기 위한 배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오른쪽부터 원진국사비, 명부전, 응진전, 원진각, 팔상전, 산신각이 죽 위치해 있다.원진국사비는 보물 제 252호에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 였고 팔상전은 보통 사찰에서 드문드문 볼 수 있는 당우이다. 이 당우는 서가모니의 일대기가 그려진 경전을 바탕으로 세워진 건물이다.원진국사비는 원진국사를 기리기 위해 절 측에서 세운 비석으로 원진국사가 보경사에 미친 영향 정도를 알 수 있다.대구불교방송국 6월호 회보를 보면 보경사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을 알수 있는데..원진국사는 보경사의 주지스님을 엮임 했고 보경사가 보경사 다운 모습을 보이기까지 중창, 중수의 노력을 거듭했던 분이셨다.원진국사 이래로 퇴락 하면서 중수의 모습을 거쳐 오늘날의 보경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보경사를 등 지고 20분 정도 산으로 올라 가게 되면 내연산의 자랑 12폭포를 만날 수 있다.상생,삼보,내연폭포등의 5미터 정도의 폭포의 장관을 볼수 있는 곳이다.나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보경사 답사를 끝으로 대구로 가야만 했다.폭포의 모습을 보면서 시원한 물 속에 발도 담그는 상상을 하면서 일주문을 다시 등지고 주차장으로 뛰어야만 했다. 차 시간이 자칫하면 차를 놓칠수 있는 시간이었다
첫댓글 푸대님 자료 감사합니다
어제 곡차 한잔하죠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