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짐>, 2001-플로랑스 오빈 |
20세기 음악의 역사를 이제는 무의미한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의 구분에서 벗어나서 볼 때, 그것은 한편으론 기존에 음악적이지 않은 소리로 간주되던 영역으로 음악의 확장이었고, 동시에 반대로 음악에서 배제됐던 소리와 논리가 다시 음악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온 역사였다.
전자는 바로 '전자음악'의 역사로서 아직 전(자)기를 이용해 소리를 전달하고 증폭하던 기술이 발명되기 이전에, 그리고 아직 전자음악에서 말하는 방식으로 음을 합성하기 이전 시대에 소음으로서 음악의 확장을 음악이 나아가야 할 미래라고 주장했던 미래주의 화가이자 음악가 루이지 루솔로의 1913년 선언문 <소음의 예술>(L'Arte dei rumori)에서 시작돼 슈톡하우젠 등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전위음악, 그리고 세기말에 등장한 샘플링 음악, 예를 들어 존 오스왈드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실현돼온 경향이다.
영국 실험음악 작곡가이자 공산주의 정당운동에 투신했던 코넬리우스 카듀의 책 <슈톡하우젠은 제국주의에 봉사한다>(1974)의 제목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전자음악은 새로운 소리의 영역을 향해 마치 제국주의처럼 팽창해나갔다. 물론 음악이 단순히 악음(樂音) 외부에 있는 소음과 잡음의 영토를 향해서만 확장된 것은 아닌데, 전자음악 기술 발전의 초기 단계부터 음악의 소리와 잡음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소리의 미시적이고 물리적인 세계로도 진출했기 때문이다.
모든 소리는 음악이다
하지만 결정적 전환점은 음악의 객관성 영역, 즉 소리의 물리적 영역의 외연적인 확장에 의해서만 촉발되지는 않았다. 논리적으로 봤을 때,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런 음악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악 주체성의 전환, 혹은 위기를 가장 첨예하게 드러낸 사람이 바로 존 케이지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오해의 대상이다. 그의 대표작인 <4'33">(1952)는 '침묵도 음악이다'라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해석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기술의 보급과 확산을 통해 세기말에 이르러서야 음악에서 샘플러와 컴퓨터가 보편화되기 훨씬 전에 이미 '모든 소리가 음악일 수 있다'는 명제가 '모든 사람이 음악가가 될 수 있다'는 명제와 직결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음악을 새로운 영토로 급진적으로 확장시키려 했던 전위음악에서 여전히 음악가, 혹은 작곡가의 지위와 정체성이 유지된 것과는 정반대 방향의 전개였으며, 특히 '모든 소리'를 통해 음악과 음악가의 정체성 내부에 중대한 균열을 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존 케이지에게서 21세기 실험음악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일본의 온쿄(音響) 운동- 그중에서도 특히 다쿠 스기모토와 다쿠 우나미, 그리고 반델바이저 그룹의 작곡가들에 이르기까지 음악에서 침묵의 적극적이고 전면적인 활용은 침묵 그 자체가 음악이 될 수 있다기보다는 <4'33">가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존에 우리가 음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어떤 것을 중단(TACET)시킴으로써, 그로부터 배제됐던 '모든 소리'가 음악의 무대 위로 역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해왔다.
음악 없이도 소리를 듣는 경험을 창출함으로써 침묵은 음악이 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침묵은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즉 소리를 듣지 않을 방법은 없고 이런 '비가청성의 불가능성'이 바로 음악의 미래 조건이라는 것이 케이지의 생각이었다. (이와 달리 '침묵도 음악이다'는 식의 대책 없이 낭만주의적인 해석은 '침묵을 위한 침묵', 혹은 정말로 '순수한 침묵'이 중국의 폭스콘 공장에서처럼 노동자의 삶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상황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4'33">를 초연한 피아니스트이자 실험음악 작곡가 데이비드 튜더는 듣는 행위가 심지어 반드시 고막을 통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자신의 작품 <우림>(Rainforest·1964)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침묵의 도입을 통해 음악가, 혹은 음악의 행위자를 연주자와 작곡가로부터, 음악적 의미와 가치를 알 수 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청취자로 돌려놓은 이 전환은 음악 관련 DIY 기술의 보급과 확산 이전에 이미 음악가와 비음악가 사이의 구분을 허물기 시작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볼 때 1960∼80년대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 자유즉흥음악(Free Improvisation)운동은 대가와 초보자를 나누는 마지막 장벽을 무너뜨렸다고 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봤을 때, 예컨대 미국 시카고의 AACM(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reative Musicians)이나 프리재즈운동이 흑인 민권운동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던 점이나, 영국의 작곡가 카듀가 중심이 되었던 즉흥음악운동과 급진적인 정치운동의 연관관계를 봤을 때, 자유즉흥음악은 음악에서의 68혁명이라고 말해도 크게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음악가다
그 자신이 이런 음악의 1세대 음악가이기도 했고 즉흥음악의 철학자라고까지 할 수 있을 기타리스트 데릭 베일리는 기존 장르의 규칙과 문법에 포섭되지 않는 순수한 즉흥음악(Non-idiomatic Improvisation)이 훈련과 연습을 통해 실력을 갈고닦은 연주의 대가와 그렇지 않은 초보자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을 제거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또한 스스로도 이런 방향으로 자신의 음악을 전개시키는 실천을 지속시켰다.
마찬가지로 재즈의 악기 편성에서 벗어나 라디오나 일상의 물건들을 악기로 동원했던 최초의 선구적인 전기-전자 즉흥음악 앙상블 중 하나였던 1960∼70년대의 AMM과 이후 AMM을 벗어나 스크래치 오케스트라(Scratch Orchestra) 같은 음악가와 비음악가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실현하려는 유토피아적 전망의 음악 공동체를 실험했던 카듀, 혹은 그와 유사한 정치적 입장을 공유했던 크리스천 울프, 프레데릭 셰스키 같은 실험음악 작곡가들은 모두 이런 흐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68혁명의 완전한 정치적 패배와 함께 자유즉흥의 유토피아적인 미학운동도 더 순수한 음악적 세련화로 돌아설 무렵인 1970년대 말에 와서, 지금 우리가 '노이즈 음악'이라고 부르는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음악이 대중문화의 지하실에서 자라나게 된다. 공포영화의 영상을 제거하고 사운드트랙과 효과음만을 남긴 다음 이를 수십 배의 음량으로 증폭한 것과도 같은 이 듣기 괴로운 반(反)음악은 영국에서는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장르가 되어버린 초기의 '인더스트리얼 음악'과 함께 등장했고, 미국 서부에서는 LAFMS(The Los Angeles Free Music Society)를 중심으로 1970년대의 실험예술 끝자락에서 완전히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폭발의 진짜 진원지는 일본이었고, 결국 이는 '재패노이즈'(Japanoise)라는 신조어를 낳는다. 이 흐름의 대표자가 된 마사미 아키타, 일명 '메르즈보'(Merzbow)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것을 추동한 욕망을 요약한다. "일본 문화의 결과로 모든 곳에서 너무나 많은 소음이 난다. 나는 내 노이즈로 침묵의 상태를 만들고 싶다. 아마 그건 소리의 파시스트적 사용법일지 모른다."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수백 장의 음반에 담긴 음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곧바로 알아챌 수 있다.
'눈에 눈, 이에는 이'라면 바로 '귀에는 귀'인 셈이다. 말하자면 노이즈 음악은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존 케이지의 급진적 미학이 소리의 상품화를 완성시키는 자본주의 유토피아로 전도되면서 거리·상점·카페·식당 등 어디에서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음악을 들어야만 하는 반동적 상황에 맞서 자행되는 일종의 미학적 테러 활동인 셈이었다.
'우월한 음악'과 '열등한 소리' 사이에서
이제 우리는 대학에서의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음악운동이나 언더그라운드에서의 전위적이고 전복적인 시도가 모두 역사가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의 노이즈 음악과 즉흥음악을 포함한 다양한 언더그라운드의 실험적이고 급진적인 음악 운동 및 활동('개나 소나 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가치판단이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음악)이 특정한 전 지구적 장르의 국지적 시뮬레이션으로서의 성격을 극복해 자기 발로 서는 것이 가능해진 시기는 공교롭게도 전세계적으로 더 이상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 주류와 비주류가 특정 제도나 기관, 장소로서 구분될 수 없게 된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것은 이제 모순되고 필연적으로 비일관된 태도이자 관점으로서만 존재하고 실천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청력을 손상시킬 것 같은 엄청난 소음과 완전한 침묵, 고도의 복잡성을 담고 있는 무조의 노이즈와 미니멀한 구조의 펑크나 테크노, 작곡된 음악과 미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범람하는 환경 소음 사이에서 어느 한쪽만 선택하고 다른 쪽을 배제할 수 없다. 노이즈 음악가 최준용의 말을 빌리면, 현재 우리의 위치는 '우월한 음악'이라는 가상과 '열등한 소리들'의 현실 사이를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