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지도, 검지도 않은 회색 늑대들에게
- 전성태의 '늑대'를 쫓는 몽골 기행
이시백
요즘 나는 몽골병에 걸렸다.
마당에 심어 놓은 콩 졸가리가 바람에 넌출거리는 것만 보아도 고비 벌판에서 무시로 흔들리던 풀들이 생각나 눈가가 질척거리고, 줄 풀린 개가 저물녘에 집 주변을 어정거리는 걸 보아도 바끄가즐링 촐로에서 보았던 늑대가 찾아왔나 싶어 달려나가기를 일삼는 것만 봐도 그러하고, 저 하늘나라의 목부들이 펼친 가죽덮개가 오래되어 새금새금 구멍이 난 틈으로 모닥불 빛이 새어 뵈는 것이라던 반구 충만한 별들에 취하여 대중없이 마셔대던 칭기스 보드카 때문에 소주 마시기를 맥 빠져 한다던가, 동대문 시장에서 행여 몽골말을 쓰는 이를 보면 이역만리에서 제 동족 만난 것처럼 손부터 붙들고 싶어 어쭙잖은 몽골말을 건네며 자꾸 따라다니는 증세만 보아도 이미 중증임에 틀림없다. 아직까지 치유약이 없다는 고질에 걸렸으면 팔자소관으로 여기고 시난고난 병고를 견딜 것이지 어찌하여 무고한 이들에게 자꾸 몽골에 가자고 꾀거나, 가 봐야 볼 것 없다는 이에게 불뚱가지까지 내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참 심각한 병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요즘 말로 내가 몽골에 한방에 '훅' 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내 사는 곳이 어떤 연유로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타르 시와 자매결연을 맺어 영문도 모른 채 소떼 같은 청소년들을 거느리고 팔자에 없는 목동 노릇 삼아 간 것이 2005년 여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몽골에 관한 내 지식은 '몽고간장'과 몽골반점, 원나라에 충성할 충자를 박아 넣은 고려의 왕들과 삼별초처럼 동강난 것들이었다.
막상 몽골의 풍광을 처음 접한 것은 단골로 드나들던 대포집에서였다. 방앗간자리에 우묵하니 들어앉아서는 시큼한 막걸리에 제 남편도 먹지 않을 시어터진 오이지 쪼가리를 안주랍시고 내놓는 '왕언니집' 담벼락에 걸린 달력에서 나는 몽골을 처음 보았다. 한 마장 거리에 있는 몽골문화촌에서 거저 얻어왔음직한 달력에는 '저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말 몇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달력 속의 몽골은 비록 파리똥이 여기저기 붙어 있기는 했지만 얼큰하니 취한 눈에도 심히 광활하고 장대했다.
몽골은 그렇게 멀지가 않았다. 일없는 글쟁이들이 공연히 밭두렁에 거름 내는 나를 불러낼 적마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 나가던 마포 어름보다 외려 덜 먹히는 시간이면 가 닿았다. 상봉동 시외버스 터미널을 꼭 빼닮은 칭기스 국제공항을 빠져나와 몽골과 첫 대면을 하던 나는 비행기가 회항하여 다시 내 살던 동네로 돌아온 줄로만 알았다. 엊그제 술 마시고 헤어진 친구들 면상을 닮은 얼굴들이 아무 데나 침을 뱉으며, 교통신호와는 관계없이 차도를 어슬렁거리며 횡단하고 있었다. '붉은 영웅'이라는 뜻의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신길동, 낙성대' 라고 적힌 한글 표지판을 그대로 붙인 중고 버스들과, 한국 중고 승용차들이 꽁무니로 지독한 매연을 내뿜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그것도 적잖은 돈을 바쳐가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바에는 눈 파랗고 머리 바글거리는 인종들이 적당히 노린내도 풍기는 맛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것은 우리 동네 느타리작목반장 김 씨를 보듯, 쪽 째진 눈초리에 불거져 나온 광대뼈에 부리부리한 눈빛까지 전혀 낯선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러시아군이 일본군을 격파한 공적를 기리는 자이승 기념탑에 오르자니, 좌판에 즐비하니 훈장을 늘어놓고 팔고 있다. 한때는 그들의 가슴에 매달려 긍지로 빛났을, 레닌 흉상이 새겨진 훈장들을 치켜 올리며 그들은 쉰 목소리로 "원 달라!"를 외치다가 급기야는 한국말로 "두개! 완 달라!"를 외쳐댔다. 그들은 광활한 대륙을 말 달리며 세계를 제패했던 기마병의 후손들이었다.
최신 유행의 미니스커트를 입은 멋쟁이 아가씨 옆으로 페트병을 주우러 다니는 꾀죄죄한 걸인 소년이 우글거리는 울란바타르 시내를 벗어나 드디어 국립공원격인 테를지로 갔다. 비로소 널찍한 초원이 나타났다. 넓기는 넓은데 선술집 담벼락에 붙어 있던 달력 속의 초원과는 너무 달랐다. 생기 없는 풀들은 누렇게 시들어가고, 시간에 5 달라를 내고 타는 말은 내가 아무리 "추추"니 "이랴"를 외쳐대도 콧방귀만 뀌며 풀을 뜯어 먹었다. 몽골 마부가 다가오면 몇 걸음 뚜벅거리다가 멀어지면 다시 풀을 뜯어 먹었다. 내가 박차를 가하며 소 몰듯 "이랴" 소리를 냈더니 코 대신 엉덩이로 방귀를 뀌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청소년 캠프장에서 독일이며 러시아며, 온갖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저녁마다 마당에 모여 흥겹게 춤추는 동안 오로지 잘하는 것이라고는 보충과 야자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물끄러미 구경만 해야 했다. 온종일 핸드폰 게임만 주물러대는 아이들과 한증막 같은 겔 안에서 닷새 동안 갇혀 있다 돌아온 나는 오는 날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절대 몽골에 가지 말라"고 외치고 다녔다.
김진경 시인이 교육문예창작회 사람들과 몽골을 간다고 했을 때도 나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몽골에 가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했다. "거기 갈 바에는 우리 동네로 오셔. 마유주보다 더 션한 막걸리래두 대접할테니."
문인들 사이에 '국경을 넘'어 제 3세계에 대한 징검다리를 부지런히 놓을 무렵이었으니 몽골에도 그런 바람이 불고 있던 듯했다. 몽골 가지 말라 읍소를 하던 나도 일찍이 내가 좋아하던 이영진 시인과 김형수 작가가 몽골을 번질나게 드나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데다가, 알타이 산을 넘는다는 여정에 귀가 솔깃해졌다.
이런 사연으로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중학 세계사 시간에 졸면서 얼핏 들었던 '고비사막'이라는 말과, 별들에게 타박상을 입으니 머리에 헬멧을 쓰고 가야한다는 김진경 시인의 말에 홀려, 소 팔러 가는데 개 따라나서듯 줄레줄레 몽골을 다시 찾아나선 것이다.
거기에는 김진경 시인의 다른 말도 한몫을 했다.
"거 가믄 한 평에 일 원짜리 땅두 있어."
이 나라에 돈푼깨나 있는 이들 가운데 땅 덕 보지 않은 이가 없으니, 점잖게는 재태크라고 하고 속 편히 말하자면 땅 투기라는 재주 아니던가. 그런 재주가 없어 스스로를 비관하던 터에 그저 땅에 맺힌 한이라도 풀어보려 질리도록 내 땅 좀 가져보자고 비장한 목소리로 "갑시다. 땅 사러." 하고 나섰던 것이다. 평에 일 원이면 백만 평이라고 해 봐야 요즘 있는 집 애들 군것질거리도 안 되는 백만 원이었다. 백만 평이라면 아침에 나서서 저녁에나 돌아올 면적이요, 혹 돌아오다 길을 잃어 이리저리 헤매어 쓰러져도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을 땅 아닌가. 어디 나도 내 땅에서 길 좀 잃어 보자. 나도 투기가 아니라 땅이란 것 좀 '사랑하여 보자.'
정색을 하고 나서자, 김진경 시인이 여물 씹다 하품하는 소처럼 유난히 큰 눈을 끔벅이며 "근디 물이 안 나와."한다. 으잉, 물이 안 나오는 백만 평이라. 땅 둘러보러 나갔다가 목말라 죽을 땅이요, 일찍이 톨스토이가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글에서 빠홈이 저를 묻고 만 땅이 아니던가.
좋다. 물 안 나오는 허허벌판이라도 내 땅 일백만 평을 이번 세상에 어디 가서 구하겠는가. 우선 문패 하나 꽂아 놓고, 의자에 앉아 해 저무는 걸 우두커니 바라보고, 어정어정 걷기도 하고, 별들이 우수수 바람에 떨어지는 것도 구경하자. 속으로 그리 생각하고 과연 어떤 땅인가 둘러보자고 나선 마음도 있었다.
'황량한 땅'이라는 뜻의 고비는 매혹적이었다. 스텝으로 시작하여 남행할수록 비어져가는 불모의 풍경 속에는 어떠한 서사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적막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만큼 비어져있으면서도 고비는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시들었다가도 소나기를 만나면 일제히 꽃을 피우는 야생화들의 향과 메뚜기 날개 소리가 텅 빈 대기를 '성령'처럼 충만하고 있었다. 거룩하리만치 '외롭고 높고 쓸쓸한' 고비를 시인들 틈에서 여행하였으니 어떠하였겠는가. 김진경, 배창환, 박두규, 조영옥, 박일환을 비롯하여 가만히 바라보아도 눈물이 나는 시인들 틈에 백설기에 콩 박히듯 소설가 둘이 낀 것이었다.
"시인들은 다 저런가."
해 있는 동안은 멀쩡하다가도 해가 기울어 눈물 그렁그렁한 별들이 스며 나오면 무슨 늑대인간처럼 뿔뿔이 흩어져 땅에 자빠져 눕기도 하고, 당장 늑대라도 달려들 것 같은 칠흑 야밤에 늑대 울음소리를 내며 유성처럼 이리저리 거니는 자들을 겔 문짝에 기대어 혀를 차며 소설가 둘이 구시렁거린 말이었다. 저잣거리의 야바위 약장사를 스승으로 삼아온 나 같은 삼류 소설가 입장에서야 순도 높은 고비의 별처럼 지고지순한 시인들의 심경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밤마다 술 먹기 아늑한 겔에 둘러앉아 코펠 뚜껑 두드리며 세상에 어느 종파에도 속하지 않은 무차별교의 교주격인 저 유명한 명호선사의 게송이나 읊조리는 게 고작이었다. 남의 논에 물대기를 즐겨하는 명호선사 어느 과부 보살 집에 이르러 염하기를, "안주믄가나바라 그칸다구주나바라..."
시인들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고비 벌판에 짝퉁 소설가 둘이 소주병에 꽂은 숟가락을 흔들며 낭자히 염하자니, 드디어 독일이며 이탈리아에서 온 여행자들이 겔 앞에 엎드려 교화되기를 다투더라.
이렇게 되어먹지 못하고, 신성모독이며, 보드카에 취하는 게 전부였던 여행이건만 이후 '아무 것도 볼 것 없는' 몽골을 즐겨 찾게 되었다. 일부 물정 모르는 이들이 "거기 가 봐야 뭘 볼 게 있다고 한 번도 아니고 자꾸 간대?"라고 묻는다면 "볼 게 없는 거 보러 가는 겨."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그나마 볼 게 없는 고비에서 내가 건져온 생각이란 것은, 삽질하지 못해 안달이 난 이들을 모셔다가 삽 오천 자루쯤 주어서 물길도 파고, 보를 막게 하면 어떨까 하는 궁리이다.
나로 말하자면, 아무 것도 볼 것이 없는 고비 한가운데 주막 하나를 차려, 귀화하면 몽골 정부에서 거저 준다는 양 다섯 마리에 염소 몇 마리, 말 두 마리쯤 기르면서 그 흰 젖을 마시고, 붉은 살코기로 끼니를 이어가며 일 년에 더도 말고 꼭 여남은 명씩 들르는 여행객들에게 먹다 남은 마유주나 팔고, 보드카에 물 좀 섞어서 바가지도 씌어가며 살아갈 궁리를 하는 중이다. 되어 먹지 않게 꼭 술상마다 집을 거리를 찾는 한국인들에게는 벌판에 세금도 없이 차르르차르르 날아다니는 메뚜기를 잡아다가 아르갈(말린 가축의 똥)에 불 붙여 굽고 볶아서 안주로 내놓을 셈이다. 그래도 질깃하니 씹을 살점 타령을 하는 자가 있다면, 하늘의 해를 쏘겠다고 잘난 척하다가 벌을 받아 땅에 구멍을 파고 살게 되었다는 타르박 구이는 어떨까. 술만 취하면 집에 간다고 떼를 부리며 밤중에 길을 나서는 이에게는, 그래, 늑대가 있다.
바끄가즐링 촐로(작은 굳센 바위)로 가는 길이었다. 석기시대에 살았으면 화살촉이나 돌창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일 활석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 바람에 자동차 바퀴가 연이어 터졌다. 바퀴를 갈아 끼우고 나니 날은 벌써 저물어 있었다. 밤길을 달리던 운전사가 돌연 핸들을 꺾어 무언가를 쫓기 시작한다. 미처 무어라 말을 건넬 틈도 없이, 토끼를 본 독수리처럼, 돈을 본 한국인처럼 생각보다 빠르게 그의 몸과 차는 맹렬한 속도로 달아나는 무언가를 쫓기 시작했다. 굉음을 울리고, 술 취한 것처럼 이리저리 비틀거리던 차가 한참을 헐떡거리다가 멈춘 뒤에야 운전사는 아쉽다는 듯이 자신이 쫓은 것이 '천'(늑대)이라고 했다.
몽골 사람에게 늑대는 말굽자석이 쇠를 쫓듯, 지남철이 남북을 가리키듯 생각 이전의 본능에 가까웠다. 스스로를 푸른 늑대의 후손이라고 칭했던 칭기스칸의 자손들이 어째서 늑대를 보면 철천지원수처럼 죽이려 안달이란 말인가. 가축을 지키려는 실리적인 목적을 넘어 그것은 일종의 매혹에 가까워 보였다. 몽골인들은 늑대를 신성시여기며 숭앙하면서, 그것을 잡아 자신과 일체시키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이 얼마나 처절한 짝사랑이란 말인가.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죽여야 하는 이 모순이 또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지도 몰랐다. 영하 40도의 혹한에 발 끊긴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늑대 사냥'을 내세우는 안간힘 또한 '어긋난 사랑'과 그리 멀어 뵈지는 않는다.
전성태의 「늑대」에 등장하는 솔렁거스 사냥꾼이 '돈과 노구의 정열'로 쫓는 늑대는 지금 몽골에 번져나가는 자본의 '검은 정염'인지도 모른다. 다른 쪽에서는 '돈을 벌수록, 사회가 안정되어갈수록 갑갑증'에서 벗어나려는 원시적인 세계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물고 뜯는 자본의 견강한 송곳니야 말로 '늑대'의 그것보다 더 잔혹하고 비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본에 길들여진 '시스템'에 물려 야성의 늑대를 찾아 나선 솔렁거스 사냥꾼은 자신이 또 다른 자본의 검은 정염을 야성의 초원에 불씨처럼 들이대고 있는 것을, 자신이 떠나온 자본의 시스템이야말로 야성의 불모지보다 더 비정한 승자독식의 정글임을 알고는 있을까.
전성태의 소설집 『늑대』를 읽으며 내가 부러웠던 것은 그의 작가적 역량이나 탁월한 작품성, 뭐 이런 것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가 몽골에 반 년씩이나 머물렀다는 사실이 부럽기만 했다. 나는 항가이의 검은 산들을 닮은 시커먼 표지의 소설집을 구해 들고 허겁지겁 읽어나갔다. 내가 그의 책에서 기대한 것은, 내가 사는 읍내 시장통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 일탈, 경외...뭐, 하여간 상당히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온종일 걸어도 자신의 그림자 밖에 없는 고적한 길, 알타이의 물과 산을 며칠 동안 구송하는 허미, 바다가 보인다는 낙타의 눈과, 금(金)이라는 뜻을 지닌 알타이 산맥을 넘던 어느 금에 미친 족속들..... 나는 이런 것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난수표 들여다보는 간첩처럼 골똘히 그의 소설집을 훑었건만, 그것은 또 다른 한반도, 내가 벗어나고 싶어 진저리를 치던 국경 이편 이야기들의 몽골판이었다.
그의 소설집 『늑대』는 항가이에서 흘러들어왔다는 「늑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울란바타르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내가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남고비나 알타이 어름의 풍광은 만나기가 어려웠다.
적어도 몽골에 관한 책이라면, '바람'과 관련한 그럴 듯한 제목 한 꼭지쯤은 들어가 줘야 하지 않는가. 그게 너무 상투적이라면, 늑대가 파먹은 말의 뱃속에 들어가 겨울을 나는 타루박이라든가, 전쟁 중에 경황없이 장수가 죽으면 새끼 낙타를 어미가 보는 앞에서 죽여 함께 묻는데, 그러면 몇 년이 지나도 어미 낙타가 그 자리를 기억하여 장수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는 설이라든가, 그 모성애 강한 낙타가 이유 없이 어린 새끼를 멀리할 때 마두금을 들려주면 눈물을 흘리며 젖을 물린다는 '썰' 정도는 버무려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몽골까지 날아가서 기껏 적어낸 것이 육이오 때 몽골이 받아들인 북한의 전쟁고아 이야기나 하니 지금이 어느 시절인가. 소설가라면 자고로 시류를 잘 더듬으며 세태에 민감하여야 하거늘, 그 넓고 푸른 풀밭에 나갔으면 요즘 들어 잘난 것이나 모자란 것이나, 배부른 것이나 홀쭉한 것이나 작대기 들고 나서는 골프 판에 자치기 치던 솜씨로 한번 후려갈겨 보고 그 소회라도 몇 자 적을 것이지, 동물원에도 없는 '늑대' 사냥하러 나선 이야기는 또 무슨 구렁이 담 넘다가 기왓장 깨지는 소리란 말이냐. 뭐, 이런 애정인지 걱정인지 모를 생각을 아니한 것은 아니었다.
『늑대』에 등장하는 몽골의 풍경들을 비록 짧기는 해도 비스름하니 더듬어 본 바가 있다. 다만 내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닐 뿐이었다.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과, 보아야 할 것을 보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나는 구시렁거리며 그의 소설집 『늑대』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싼 비행기 삯을 내어가며 '국경을 넘어' 내가 보려한 것은 무엇이며, 그가 본 것은 무엇일까.
내가 본 것은 길 없는 길이었다. 길이 없기에 잃을 길이 없고, 길이 없기에 가는 곳마다 길이 되는 광활한 초원을 덜그럭거리는 러시아제 프루공에 실려 하루 300킬로를 달려가면서 내가 본 것은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었다. 그것은 내 눈의 조리개를 통하여 가슴의 감광지에 새겨지건만, 나는 결코 어느 풍경 속에도 발을 들이민 적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더욱이 그것과 내가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서로에게 영향을 준 적도 없었다. 그것은 하나의 풍경이며,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었다. 그것은 밤새 겔 밖에서 서성이며 울어대던 모래바람과, 어디론가 까무룩 떨어져 이름을 기억할 틈도 없이 사라지던 유성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만날 수 없는, 어쩌면 내가 살던 세계의 것들과 만나고 싶지 않아 국경을 넘었다면, 그는 그것들을 만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집세를 계산하고 술집에 앉아 있었으며, 그가 살던 세상에서 미처 만나지 못한 채 헤어진 것들과 해후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그가 「코리언 솔저」에서 보여준 불안한 일체감은 - 개가죽이 된 사회주의를 내버리고, 재빨리 자본주의 외투를 걸쳐 입었건만 여전히 군대가 힘을 발휘하는 현실은 국민개병국가의 백성으로서 결코 낯설지가 않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초토화하던 기마병의 후예들을 능가하는 이 대책 없는 만용의 근저를 더듬노라면 쓴웃음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 묘한 웃음 은 환상과 현실이 교착되며 일으키는 파열음으로 받아들여진다. 늑대』를 통해 작가가 보여 주려던 '자본주의의 검은 입'은 그에 대비되는 야성의 유목주의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는 지점에서 불편하게 소통되고 있다.
그의 소설집 『늑대』를 읽는 동안 시종 떨칠 수 없었던 불편함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그의 집요하고도 진지한 시선이 아니었을까. 그는 우리의 근거 없는 자만과 일방적 인식을 불안하게 흔들어 불편하나마 소통의 숨통을 열어나간다. 이 불편한 소통은 '솔렁거스'라는 말의 해석마저 흔들어대게 한다. 한국을 지칭하는 솔렁거스라는 몽골말에는 '무지개 뜨는 나라'라는 설과 함께 색색가지로 둘러진 색동저고리에서 기인했다는 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무지개'라는 환상을 고집하는 그 저의가 급기야 한몽 연합론이라는 또 다른 무지개를 띄우게 한 것은 아닌지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의 소설들은 차창 너머로 보이던 환상에 균열을 일으켜, 그 단면 속에 숨겨진 현실과 만나게 한다. 그것은 대단히 불편하며 불안한 진실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점점 사막이 되어 가는 초원에서 양떼를 팔아넘기고, 무작정 울란바토르로 들어와 '달동네' 생활을 시작하다가 알코올중독자가 된 아버지와 페트병을 주우러 나선 아이들, 어떻게든 한국에 들어가 취업할 수 있는 끈을 이어보려는 간절한 눈빛. 레닌 메달을 길거리에 가져 나와 "완 달라!"를 외치는 노병. 말을 왼편에서 타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울란바타르의 아이들.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변화의 이면 풍경은 결코 낯설지 않은 것들이다. 적어도 작가는 '개발'의 '솔렁거'(무지개)를 쫓는 사람들에게 자본이 투입된 전선에서 종속이라면 모를까 연합은 무지개처럼 허망한 것임을 깨우치게 한다. '제 동족끼리도 연합을 못하는 주제에' 그의 소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소설이 주는 불편한 소통과 불안한 일체감은 이러한 '무지개' 너머에 있다. 그 불편한 진실들을 대면하기 싫어 불모의 벌판을 찾아 떠난 나야 말로 솔렁거스의 '늑대 사냥꾼'이 아니었던가. 내가 그러한 자본주의에 찌든 조국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현실을 피해 국경을 넘어 달아나는 동안, 작가 전성태는 유난히 동그랗고 맑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이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 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견 그의 소설집 『늑대』에서는 여전히 국경 아닌 국경, 동족이면서도 몽골인보다 더 먼 북녘의 동포들과의 소통이 다뤄지고 있다. 이야 말로 심히 불편하고 불안한 소통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만나면서 더욱 낯설어지며, 어색해지는' 동족 간의 현실적인 국경이며, 자본을 매개로 낯익어지는 몽골의 할하족보다 외려 더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국경이다. 「남방식물」에서 가난하지만 결코 굽히지 않는 '명화 처녀'의 자존과 그가 부탁하는 '몽골 녀성 오카 씨'는 자본에 길들어 야성을 잃어버린, '개가 되어버린 늑대' 격의 우리 눈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또 다른 국경이며, 현실적으로 그것은 낯설고 어색한 오해와 자만의 간극으로 조우하게 된다.
끝없이 짓뭉개고, 모멸함으로써 국경을 넘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이 알량한 쇼비니즘의 근저에는 여전히 돈이 웅크리고 있다. 믿을 건 돈밖에 없다는 이 주제넘은 자본주의자들이 국경을 넘는다고 제 버릇 개 주겠으며, 안에서 새던 바가지가 바깥에서 새지 않겠는가. 냉면 한 그릇을 대단한 민족일체의 실현으로 여기며, 자신이 건네는 지폐 몇 장으로 단숨에 국경의 철책을 넘어설 수 있다고 믿는 이 치졸한 오만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는 「목란식당」과 「남방 식물」을 통해 통렬히 보여준다.
그가 본 것을 나도 보기는 보았다.
「목란식당」에 등장하는 '불광동 양씨'와 비스름한 한국 관광객들이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 때문에 금단의 동토로 여기던 저편의 사람들과 '같은 말을 쓴다'는 놀라운 발견과 '나도 북한 빨갱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진기한 체험을 번지점프라도 하고 난 아이처럼 가슴 설레며 즐거워하는 것도 보았다.
울란바타르 시내에 있는 북한 식당에서 냉면 한 그릇 팔아주면서 선심이나 쓰듯,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빠졌다는 멀리 있는 제 동족들에게 몇 푼의 돈을 벌게 해 주었다는 긍지가 얼굴에 번질거리는 장면도 보았으며, 한국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추다 보니 원래 북한식 냉면맛과 달라지게 했다는 식당 여자의 말도 들었다.
제가 그 땅에 태어나지 않은 안도감을 즐기기라도 하듯,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통일되면 다시 봅세다." 어쩌고 하면서 함부로 여종업원의 손을 잡아 흔드는 것도 보았고, 막상 식당 주차장에 세워진 북한 대사관 차에 꽂힌 인공기를 보고는 무슨 뱀이라도 본 듯 움찔 놀라다가 주변을 살피고는 번갈아 가며 기념사진을 찍는 것도 보았다.
이제 돈 아니면 믿을 건 아무거도 없다고 믿는, 무엇이든 돈이면 다할 수 있다고 믿는, 돈밖에 가진 게 없다고 믿는 이 불행한 백성들이 국경을 넘어 몽골로 달려간다. 러시아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공산혁명에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도 돈 앞에서는 '사상이고 뭐고 없으며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며 킬킬거리던 한국 사업가는 자신이 울란바타르 시내에 단란주점을 차리고, 버려진 천혜의 초원에 골프장을 만들 것이라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울란바타르 시내에 널려 있는 한국 음식점과 '발 마사지'와 노래방을 알리는 한글 간판들. 몽골에 최초로 조폭문화를 전하고, 한국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세계화에 성공했다는 수준 높은 소매치기며, 돈으로 여인을 사려는 매춘의 전통들을 심어 주기 위해, 또한 한편으로는 무지한 야만인들이 여전히 '텡그리'(하늘)와 허황된 라마승에 미혹되어 천국을 못 가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눈물을 흘리며 선교를 하러 떼 지어 달려와 달란자드가드 벌판에도 십자가를 꽂은 한인교회들이 오늘도 부지런히 국경을 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지금도 어떻게든 '이남으로 돈 벌러 가길' 원하는 '오카 씨'처럼 '흰 늑대든 검은 늑대든 늙으면 모두 회색 늑대'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회색이야 말로 모든 국경을 무력하게 하는 '실용과 중도'라는 껍질을 뒤집어 쓴 자본의 빛깔이 아니겠는가. 그는 '희거나 검지도 않은 회색 늑대'가 지닌 비극적 운명과 암울한 미래에 대해 그의 소설들을 통해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몇 차례 더듬었던 몽골이 내가 보고 싶은 장면만을 잘라낸 스틸컷이라면, 전성태가 『늑대』에서 그려낸 몽골은 보고 싶지 않아도 보아야 할 이야기들이다, 그것은 이미지와 서사가 나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서사의 위기를 새된 소리로 외쳐대는 국면에 그의 소설집 『늑대』가 지닌 의미는 자못 심중하다. 소설가는 무엇을 보아야 하며, 무엇을 이야기하여야 하는지를 그는 알고 있을뿐더러, 자신의 작품 속에 담아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작가이다.
국경을 넘어 그가 다다른 몽골 기행은 바로 우리 가슴 속에 여전히 흐르고 있는 못 다한 이야기들의 연장이며, 서사가 어떤 아름다움을 지녀야 하는 것인가를 그 흔한 별빛 하나 없이도 잘 담아내고 있다. 그는 국경을 넘어 세계화라는 말을 타고 거침없이 질주하는 자본의 기마병들에게 그들이 다다를 제국의 신기루를 깨우치려 한다. 그것은 제국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무모한 일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서사이기도 하다. 별들에 취하여 늑대울음을 내며 돌아다니지 않더라도 그는 소설이 시 못지않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작가세계 / 2010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