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비가 오지 않는 날입니다.
장마라기보다 폭우를 쏟던 몇 날 며칠
임병순 님의< 지겨운 장마>를 <2020. 장마가 쳐들어 왔다>로 퇴고한 시를 시작으로 수업했습니다.
(동인방에 올려져 있습니다.)
관념적인 한자어를 척결하라
어떤 말이 시가 될 수 있고 어떤 말이 시가 될 수 없을까? 일상어와 시어는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모든 일상어가 시어로 쓰일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문장과 대화에서 쓰이는 모든 말은 시어가 될 수 있다. 우리 현대시에는 표준어뿐만 아니라 꽤 오래전부터 방언과 비속어까지 심심찮게 시어로 등장했다. 김용택은 “환장하것네 환장하것어/ 아, 농사는 우리가 쌔빠지게 짓고/ 쌀금은 저그들이 앉아 올리고 내리면서/(…)/ 풍년 잔치는 저그들이 먼저 지랄”(<마당은 비뚤어져도 장구는 바로 치자>)이라며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노골적으로 농민들의 편을 든다. 김진경은 “복어새끼처럼 왜 그런대유/ 배에다 바람을 잔뜩 집어넣구/ 가시를 있는 대루 세우믄 누가 무서워헐 줄 아남유”(<복어새끼처럼 왜 그런대유>)하고 충청도 말로 능청을 부린다. 안상학은 “보래요. 삼시세끼 빵만 묵고 살라믄 살니껴? 대한민국 워델 가도 그런 사람 없을께시더”(<강씨 FTA론>)라면서 경북 안동 말을 시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이에 질세라 박남철은 한발 앞서간다. “내 시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놈들에게→차렷, 열중쉬엇, 차렷,”(<독자놈들 길들이기>) 하고 호통을 친다.
현대어뿐만 아니라 중세국어, 영어, 화살표 같은 기호까지 시어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문장에 쓰이는 마침표·쉼표·물음표·따옴표·줄표와 같은 부호가 시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못해 절대적이다. 심지어 옥타비오 파스는 침묵도 말이라고 한다. “침묵조차도 무언가를 말하는데, 침묵은 무(無)가 아니라 여전히 기호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활과 리라>)
그런데 시어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강철 조각이 아니다. 적어도 용접공이 강철과 강철을 이을 때 일어나는 불꽃이거나 그 불꽃의 뜨거움이거나 불꽃이 내장하고 있는 위험한 미래여야 한다. 그래서 때로 시어는 한글맞춤법이나 국어순화운동에 딴청을 부리기도 한다. 나는 자장면보다 ‘짜장면’이, 메리야스보다 ‘런닝구’가, 브래지어보다는 ‘브라자’가, 펑크보다는 ‘빵꾸’가, 머큐로크롬보다 ‘빨간약’이나 ‘아까징끼’가 더 시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옥타비오 파스도 시적인 언어는 일상으로부터 일탈할 때 태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시적 창조는 언어에 대한 위반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작용의 첫 번째 행동은 말들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를 뒤흔드는 일이다. 시인은 일상적인 일들, 그리고 그것들과 맺고 있는 연관 관계에서 말들을 뿌리째 뽑아내어 일상적 언어의 획일적인 세계와 결별시킨다. 이때 단어들은 이제 막 태어난 것처럼 생생한 것이 된다.”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 전통 속에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는 한자 혹은 한자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시인들은 한자의 형상이 드러내고 있는 시각적 이미지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한자가 시인들을 자극하고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기호의 의미는 같지만 ‘산’이라고 쓸 때와 ‘山’이라고 쓸 때 그 함의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우스운 이야기 하나. 어릴 적에 나는 음식점 간판에 적힌 ‘산낙지’를 보고 한동안 산에 사는 낙지인 줄 알았다. 가재처럼 심산유곡의 돌덩이 밑 어디쯤 사는……)
그런데 뜻글자라고 해서 그 뜻과 형상이 다 미학적으로 완전한 것은 아니다. 관념적인 한자어는 시에서 척결해야 할 대표적인 낡은 언어다. 시적 언어의 성취 목표를 한 50년 이전쯤에 두고 있는 사람일수록 관념적인 한자어를 쉽게 지워버리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유치환이 <깃발>에서 “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라고 노래한 것은 1930년대 말이었고, 박인환이 “사랑의 진리마저 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라며 절망스러워한 것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였다. 김현승이 ‘堅固한 고독’을 발표한 때는 60년대 중반이었다. 이 시인들이 ‘애수’와 ‘애증’과 ‘견고한 고독’을 노래할 즈음에 그 시어들은 ‘막 태어난 것처럼 생생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그 시어들은 시간의 무덤에서 하얗게 풍화된 죽은 말들이다.
무엇보다 관념적인 한자어를 써야만 그럴듯한 시가 된다는 착각이 문제다. 정진규는 시에서 관념이 ‘화자의 우월적 포즈’(<질문과 과녁>)라고 꼭 집어 말한 바 있다. 당신은 관념적인 한자어가 시에 우아한 품위를 부여한다고 착각하지 마라. 품위는커녕 한자어 어휘 하나가 한 편의 시를 누르는 중압감은 개미의 허리에 돌멩이를 얹는 일과 같다. 신중하고 특별한 어떤 의도 없이 아래의 시어가 시에 들어가 박혀 있으면 그 시는 읽어 보나 마나 낙제 수준이다.
갈등 갈망 갈증 감사 감정 개성 격정 결실 고독 고백 고별 고통 고해 공간 공허 관념 관망 광명 광휘 군림 굴욕 귀가 귀향 긍정 기도 기억 기원 긴장 낭만 내공 내면 도취 독백 독선 동심 명멸 모욕 문명 미명 반역 반추 배반 번뇌 본연 부재 부정 부활 분노 불면 비분 비원 삭막 산화 상실 상징 생명 소유 순정 시간 신뢰 심판 아집 아첨 암담 암흑 애련 애수 애정 애증 양식 여운 역류 연소 열애 열정 영겁 영광 영원 영혼 예감 예지 오만 오욕 오한 오해 욕망 용서 운명 원망 원시 위선 위안 위협 의식 의지 이국 이념 이별 이역 인생 인식 인연 일상 임종 잉태 자비 자유 자학 잔영 저주 전설 절망 절정 정신 정의 존재 존중 종교 증오 진실 질서 질식 질투 차별 참혹 처절 청춘 추억 축복 침묵 쾌락 탄생 태만 태초 퇴화 패망 편견 폐허 평화 품격 풍자 피폐 필연 해석 행복 향수 허락 허세 허위 현실 혼령 혼령 화려 화해 환송 황폐 회상 회억 회의 회한 후회 휴식 희망
“진부한 말이란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모든 경서와 옛사람들이 이미 언급한 말의 대부분이 이른바 진부한 말이다.”(김창협, <농암잡지> 외편) 시는 이런 진부한 시어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다. 사유라는 것은 원래 그 속성상 관념적인 것이고 추상적인 법이다. 하지만 관념을 말하기 위해 관념어를 사용하는 것은 언어에 대한 학대행위다. 관념어는 구체적인 실재를 개념화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관념어가 시만 좀먹고 있는 게 아니다. 예식장에도 있다. 흔해 빠진 주례사가 그것이다. 행복과 공경과 우애와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간 주례사가 귀에 들리면 한시바삐 밥을 먹으러 가고 싶어진다. 진정한 사랑은 개념으로 말하는 순간 지겨워진다. 황지우의 시처럼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늙어가는 아내에게)> 것, 그게 사랑의 표현방식인 것이다.
관념어는 진부할 뿐 아니라 삶을 왜곡시키고 과장할 수도 있다. 또한 삶의 알맹이를 찾도록 하는 게 아니라 삶의 껍데기를 어루만지게 한다. 당신의 습작노트를 수색해 관념어를 색출하라. 그것을 발견하는 즉시 체포하여 처단하라. 암세포 같은 관념어를 죽이지 않으면 시가 병들어 죽는다. 상상력을 옥죄고 언어의 잔칫상이어야 할 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관념어를 척결하지 않고 시를 쓴다네, 하고 떠벌이지 마라.
관념어를 떠나보내고 나면 그 휑하니 빈자리가 몹시 쓸쓸하게 보일 것이다. 당신은 그 빈자리를 오래 응시하라. 당신의 상상력이 가동하기 시작할 것이고, 상상력은 이미지라는 처녀를 데리고 올 것이다. 말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그 처녀를 꽉 붙잡고 놓지 마라. 관념어를 떠나보낸 자리에 그 처녀를 정실부인으로 들어 앉혀라. 그래도 관념어의 옛정이 그리워져 못 견디게 쓰고 싶거든 그 말을 처음 쓴 지 30년 후쯤에나 써라.
당신에게 시 한 편을 읽어주겠다. 이시영의 <그대의 시 앞에> 전문이다. 나는 이 시에서 ‘고독’이라는 말을 발견하고 온몸이 찌릿찌릿해졌다. 이쯤은 되어야 고독을 말할 자격이 있다.
고독을 모르는 문학이 있다면
그건 사기리
밤새도록 앞뜰에 폭풍우 쓸고 지나간 뒤
뿌리가 허옇게 드러난 잔바람 속에서 나무 한 그루가
위태로이 위태로이 자신의 전 존재를 다해 사운거리고 있다
<필사하기 좋은 시를 아래에 올립니다.
가슴에 지는 낙화소리 / 신석정
백목련 햇볕에 묻혀
눈이 부셔 못 보겠다.
희다 지친 목련꽃에
비낀 4월 하늘이 더 푸르다.
이맘때면 친굴 불러
잔을 기울이던 꽃철인데
문병 왔다 돌아가는 친구
뒷모습 볼 때마다
가슴에 무더기로 떨어지는
백목련 낙화 소리......
<신석정님의 마지막 작품, 병실에서 쓰신 것 같습니다>
登高등고 / 신석정
산에는 허옇게 눈이 쌓였었다
흰돛 그리메 황해에 은은하고
따뜻한 햇볕 노령산맥의 수려한 얼굴에
말긋말긋 흐르는
오후-
나는 바위에 걸터앉아
향그러운 솔씨를
하나 둘
하나 둘
까먹었다
나는 갑자기 산새처럼 가뜬하여지고
나는 갑자기 산새처럼 날아보고 싶었다
저 평온한 푸른 하늘을....
못 견디게 평온한 저 하늘 아래를....
1960년도에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동양의 시를 소개하는 3편 중 1편이 <등고>입니다.
신석정 님은 유일하게 창씨개명도 하지 않은 시인입니다. 일본말로 시를 지어달라는 당국의 집요한 설득에 절필로 항거한 독립운동가 시인입니다. 일본 당국은 왜 신 시인의 시를 선택하여 교과서에 실었을까요?
함께 실린 다른 2편은 중국의 <노신>과 우리에게도 익숙한< 타골>의 시였다니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신석정시인을 생각하면 놀랍기만 합니다.
신석정 님은 우리 시단에서 저평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 찬양의 시를 지어 바친 유명시인들의 시를 제치고 신석정님의 시를 수록한 연유는 뭘까요?
그 때 중학교를 다닌 히타야마 아유스키( 동아시아 현대문화연구소 소장)은 중학교 때 선생의 이 한 편의 시를 읽는 순간 받은 감명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사카대학 국문과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계속 이 길을 가고 있다면서 지금도 신석정 시인연구와 신석정을 일본에 알리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노벨문학상을 탄 영국의 유명한 시인 <에이츠>는 정인섭이 번역한 선생의 시 <님께서 부르시면>을 손수 번역해 세상에 내놓았답니다
어쩌면 선생은 국내보다 밖에서 더 실력을 인정받는 시인이 아닐까요
우리 선생의 시들이 우리 시단에서 저평가되고 있음이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이유가 뭘까요?
전라도 부안이란 벽지에 은거한 탓일까요?
잘 나가는 제자를 많이 만들지 못해서일까요?
아니면 ?
버팀목에 대하여 / 복효근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틔우고 꽃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자연 학습장 / 장민정
어린이집 모퉁이
부서진 철망 울타리가
씀바귀 냉이를 키운다
시절도 모르는 노란 민들레가
셔츠 단추만 하다
꽃밭과 채소밭 팻말은
어우러진 잡초 속에 반쯤 몸이 기울고
강아지풀 개망초가 풍장을 친다
철망 울타리 속 철망 겹집에
암탉 두어 마리와 수탁 한 마리
서너 마리의 토끼와
지린내를 풍기며 혼숙하고 있다
바지런한 석이 할머니는 혀를 차며 지나가고
납품하는 봉고차 운전사는 가래침을 뱉고 갔다
옆 건물 그림자가 울타리에 걸칠 무렵
아기를 데리러 온 엄마가
울타리 밑에서 단추꽃을 꺾어든다
머리 위에
자연 학습장 팻말이 있다
가족사진 / 나태주
아들이 군대에 가고
대학생이 된 딸아이마저
서울로 가게 되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자고 했다
아는 사진관을 찾아가서
두 아이는 앉히고 아내도
그 옆자리에 앉히고 나는 뒤에 서서
가족사진이란 걸 찍었다
미장원에 다녀오고 무스도 발라보고
웃는 표정을 짓는다고 지어보았지만
그만 찡그린 얼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떫은 땡감을 씹은 듯
껄쩍지근한 아내의 얼굴
가면을 뒤집어쓴 듯한 나의 얼굴
그것은 결혼 25년만에
우리가 만든 첫 번째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