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술 이야기? 왜 마시는지 궁금하지는 않아요?
최희정, 성동종합사회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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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 아저씨의 욕구는 갑작스레 발생한 경제문제와 치아 건강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상담을 진행하며 사례관리자로서 거들어야겠다고 느낀 문제는
그뿐만 아니라 술에 의존하고자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심한 당뇨로 당장 치과 치료도 어려웠기 때문에
무엇보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술을 줄여나가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님, 구직도 하고 치아 문제도 해결해가면서 술을 줄여보시는 건 어떠세요?
당뇨도 심하신데, 술을 계속 드시면 건강이 더 나빠지실 것 같아요.”
“예전에 상담하겠다고 우리 집에 찾아왔던 어떤 분도 나한테 술 좀 끊으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대뜸 술 끊으라고 쉽게 얘기할 게 아니라,
내가 왜 술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 먼저들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아차, 싶었습니다. 왜 술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지레짐작만 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잦은 음주는 습관이라 생각해 양과 횟수를 줄이는 것에만 신경 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당사자와 같이 되짚는 것부터 시작했어야 했는데, 대뜸 술을 끊으라니.
아저씨 처지에서는 당황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아…맞아요, 죄송해요, 아저씨. 제가 말을 잘못 꺼냈어요.
왜 자주 술을 찾게 되시는지부터 짚고 넘어갔어야 했는데요.
여러번 상담을 하며 아저씨를 뵀을 때 제가 알게 된 건,
지난 날에 대한 속상함이 커 안 좋은 생각이 자주 들곤 하시는 것 같아요.
댁에 혼자 계시는 시간도 많다 보니 우울감이 더 심해져 술을 찾게 되시는 것 같고요. 맞을까요?”
“맞지. 혼자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깐 할 게 없어
‘에이. 술이나 마시자.’하고 더 찾게 되더라고.
밤낮이 바뀌어버리니깐 잠을 못 자서 또 마시게 되고. 미안할 것까지야.
선생님만 그런 건 아니야.
내가 만났던 사람들도 아무리 이유를 말해봤자 그저 끊어야 한다고만 말하더라고.”
무엇보다 당사자의 의지가 있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단면적인 습관만 고치고자 했던 건 아닌지 성찰했습니다.
....
“무엇보다 댁에 계시면 술에 더 의존하시게 될 것 같아요.
직접 말씀하셨듯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생활이 불규칙해지시면 마음이 더 심란해지실 것 같아요.
매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게 생각보다 아저씨께 힘이 될 수도 있어요.”
“그건 그렇지…. 근데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요새는 어딜 가든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부터 달라고 하니깐.
나는 이렇다 할 이력도 없고 쓰는 법도 모르는데.”
“그건 걱정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컴퓨터도 잘 쓰시고, 제가 어떻게 작성하면 되는지 같이 봐 드릴게요.
아저씨께서 오랫동안 하실 수 있는 일자리가 있는지도 한번 찾아볼게요.”
‘생명은 하느님의 은총이다. 노동은 생활을 풍요케 한다. 자립은 이웃을 기쁘게 한다.’
성종종합사회복지관의 오랜 관훈입니다.
신입 직원교육을 받으며 처음 관훈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참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25년도 전에 세워졌을 이념과 목표일 테지만 그 안에 인간 존엄성이 녹여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안에서 생활하고,
자립적인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이는 곧 당사자의 삶이 보다 주체적이길,
사회 안에서 본인의 역할을 다하고 차별받지 않도록 지지해야 하는 것이
사회복지사의 역할임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아저씨 또한 주체적으로 본인의 삶을 꾸려나가실 수 있길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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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희정 선생님은 성동복지관 글쓰기 모임 '무지개'에서
봄부터 꾸준히 읽고 씁니다.
작년에는 성동복지관 글쓰기 모임 '성님들'에서도 기록했습니다.
오늘 책방에서 이 글 나눴습니다.
최희정 선생님께 이 대목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술로 인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당사자에게 '술 끊기'를 강요한 적이 있습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유나 이전에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문제만을 고집하고 해결하려해도 잘 도울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당사자와 관계 맺기를 시작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일로 거들기 시작하니 술로 인한 문제는 조금씩 사라지는걸 봤습니다.
최희정 선생님의 글을 읽고 그 때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그러지 않기를 다짐합니다.
한수지 선생님, 반갑습니다.
한수지 선생님 말씀에 공감해요.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하시는 말씀 잘 듣고 이해하려 애쓰면 좋겠습니다.
잠시 기다릴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어떤 분이 사회복지사에게 "그럴 수 있지요. 이해합니다."
그 말 한마디 듣고 싶었다고 했어요.
한수지 선생님이 증인입니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이야기 할 때,
당진에서 일하는 한수진 선생님도 같은 경험 했다며
힘주어 말할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