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다시 재현될 요엘의 예언 177
권두언
주님의 재림이 매우 가깝습니다.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이상기온과 질병들과 사건들은 예수께서 오실 징조를 더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다가온 재림과 심판의 날에 서기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 선과 악의 전쟁에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증인으로 서기 위하여, 우리는 철저하게 자신을 살피며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로 엄숙한 여호와의 날에 설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늦은비 성령을 받는 일밖에 없습니다. 늦은비 성령은 회개하고 정결케 된 사람에게만 내립니다. 영혼의 그릇을 깨끗하게 준비해야 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영혼을 정결하게 준비하는 한편, 목소리를 나팔처럼 크게 높여 임박한 재림과 세상에 임할 심판에 대해 경고해야 합니다. 진리를 모르고 오류 속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을 속히 깨우고 구원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이 효과적으로 온 세상에 증거되기 위하여, 그리고 환난을 안전하게 통과하게 하려고 주어지는 늦은비 성령이 이제 막 준비된 영혼들 위에 내리려는 시간에 우리는 와 있습니다. 늦은비의 방울이 떨어지려는 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Love Letter_ 흔드는 바람
강 영은
저만치 오는 봄을 빨리 부르고 싶은지 바람이 붑니다.
겨울은 군데군데 잔설로 남아 보채지만
봄은 바람과 함께 의연히 찾아와 겨울을 몰아냅니다.
언뜻 부드럽지만 세차게 휘몰아치는 3월의 찬바람을 맞으며
인생에 부는 바람을 생각해 봅니다.
식물학자의 말에 의하면, 겨울이 지난 후 부는 3월의 강한 바람은 나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추운 겨울을 겨우 견뎌낸 나무에 쌀쌀한 바람이 마구 불어 가느다란 나무 가지들이 흔들리면 무척 애처러워 보이지만, 강한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는 것은 나무들에게 약이 된답니다. 초봄의 강한 바람에 가지와 나무가 흔들려야 새잎을 내는 데 필요한 영양이 위로 잘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흔드는 바람은 겨우내 활동 않은 나무줄기를 흔듭니다.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운동작용은 뿌리로부터 가지와 새싹까지 영양이 원활하게 잘 올라 가도록 돕습니다. 그래서 바람을 많이 맞은 나무가 빨리 잘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그뿐이 아닙니다. 흔드는 바람 때문에 나무는 자기의 뿌리를 더 강하고 튼튼하게 고정시키게 됩니다. 흔드는 바람이 괴롭지만 나무는 바람 때문에 성숙하게 되는 것이지요.
때로 우리 인생에도 거센 바람이 붑니다.
그러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우리도 흔들립니다.
우리를 성숙시키시기 위해 주님께서 보내시는 바람에
때로 가지와 몸통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아픔을 겪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가 더 많은 바람을 받듯이
가지 많은 나무가 더 많이 흔들리듯이
잔가지가 많이 뻗어있는 마음은 더 많이 흔들립니다.
사소한 바람에도 휘청이는 가지 많은 나무 처럼
마음 속에 뻗어 있는 수많은 가지들 - 욕심과 욕망, 시기와 질투, 교만과 이기심 – 같은 것들이 더 많은 바람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흔드는 바람은 우리의 속 모습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마음 속 깊이 가라앉은 것들을 올라오게 하기 위해
바람은 요리조리 잘도 흔듭니다.
그러면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처럼 정신없이 흔들리며
안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 모습에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는 모습에
안 그래야겠다고 했지만 또 그러는 모습에
낙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진짜 모습을 드러내 주는 세찬 바람은
우리에게 좋은 약입니다.
추한 것들이 주님의 사랑의 매질로 고쳐지는 것이기에…
흔드는 바람 때문에 우리는 성장합니다.
흔드는 바람 때문에 뿌리가 더 단단하게 고정되고,
흔드는 바람 때문에 몸통이 더 단단해지고,
흔드는 바람 때문에 생명의 양분을 더 뽑아 올리게 되어
결국 가지 끝마다 환한 꽃 피워냅니다.
삶을 흔드는 바람을 고마워 하십시오.
바람이 멈추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바람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흔드는 바람에 날려 보낼 것이 많기 때문에,
흔드는 바람에 빨리 자라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하늘의 사랑 많이 받는다는 표가 되기에,
그만큼 하늘의 관심 많이 받는다는 증거가 되기에,
그리고 그만큼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이 증명이 되기에…
3월의 쌀쌀하고 세찬 바람이 붑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문득 인생에 부는 바람이 고마워집니다.
신앙 1부_ 요엘서 서론과 배경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요엘서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요엘서는 구약 성경 중에서 3장으로 쓰인 짧은 예언 선지서입니다. 그러나 이 짧은 선지서에는 그리스도인들, 특히 마지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요엘서는 그 당시 유다 나라에 다가올 위기와 심판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으며, 여호와의 심판을 피하기 위하여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지만, 그러나 더 나아가 눈앞에 가까이 이른 심판의 날과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의미 깊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요엘서에 나타난 예언은 마지막 시대에 이중적으로 적용되는 예언이므로 요엘서 연구는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연구가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심판 날이 우리에게 기쁨의 구원의 날이 되도록 독자 여러분들을 준비시키는 기사가 되기를 기도하며 필독을 바랍니다.
– 편집실 –
신앙 2부_ 재앙이 다가온다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욜 1:15).
요엘서는 곧 닥쳐올 심각한 재앙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다. 요엘 선지자의 예언서지만 그러나 사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엘을 통하여 남방 유다에 닥쳐올 큰 재앙과 심판에 대하여 경고하시는 것이 요엘서의 내용이다. 그런데 도대체 유다 나라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어떤 재앙이 다가오고 있었는가?
1) 메뚜기 대재앙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욜 1:4).
남방 유다에 좋지 않은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서서히 가뭄이 들기 시작하더니 기근과 기아가 몰려왔다. 그런데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지평선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뿌옇게 검은 먼지가 일며 무서운 메뚜기떼가 몰려오는 것이었다. 재앙이었다! 몰려온 메뚜기들은 그냥 메뚜기들이 아니었다. 네 가지 다른 종류의 무서운 메뚜기떼였다. 상상해 보라! 메뚜기들이 사방에서 나타나 남아 있던 식물들을 삽시간에 먹어치우는 모습을…
남방 유다를 초토화했던 메뚜기떼가 몰고 온 재앙과 극심한 가뭄 속에서 요엘은 “크고 두려운” 심판의 징조를 보았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메뚜기 떼가 땅을 파괴하는 모습을 무서운 군대가 남유다를 쳐들어와 파멸시키는 것으로 빗대어 경고하고 있는데, 그는 메뚜기떼를 군대라고 불렀으며 그것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배역한 이스라엘에 미칠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무섭고 두려운 여호와의 심판 날이었다. 요엘은 미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비하면 메뚜기 재앙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네 종류의 메뚜기에 대해서 1장 4절에 언급하고 있다.
* 언급된 메뚜기의 종류
1. 팟종이(palmerworm): 팟종이는 까맣고 흰털을 가진 나방의 유충으로 푸른 이파리들을 씹어서 잘라 먹는 송충이같은 것이다.
2. 메뚜기(locust): 무리로 떼를 지어 오는 메뚜기를 가리킨다.
3. 늣(cankerworm): 늣은 한국어로는 ‘자벌레’라고 사전에 나온다. 나무나 초목의 잎을 먹는데 일부 자벌레들은 꽃과 꽃봉오리, 그리고 땅속열매까지 다 먹는다. 이것은 푸른 것은 모조리 깨끗이 핥아 먹어버리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4. 황충: 황충은 순 한국말로 ‘누리’라고 하며 ‘풀무치’라고도 불리는데, 황충은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왕성한 식욕으로 모든 식물을 다 먹어치우며 끝장을 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굶주린 황충떼가 지나간 자리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말처럼, 대량으로 떼지어 날아가는 모습은 먹구름을 연상시키고 그 구름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매우 공포스러운 것으로 알려졌다.
2) 메뚜기 재앙의 다중적 의미
요엘서에 기록된 메뚜기 재앙은 학자들 사이에 문자적, 상징적 이중적 의미로 해석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더 영적인고 심층적인 의미로 이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1. 메뚜기 천연재앙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이 재앙을 요엘 당시 정말 남유다에 임한 가뭄과 기근과 메뚜기떼의 재앙으로 해석한다. 메뚜기 떼로 인한 피해는 가뭄 피해보다 훨씬 심각하다. 가뭄으로 수확이 확연히 줄어든 데다가 남은 곡식마저 가뭄으로 시들었는데, 메뚜기떼들이 까맣게 몰려들어 조금 남아있던 식물을 다 먹어치워 버려 유다 나라에는 백성들이 먹을 것도, 팔 것도, 심을 종자마저 없어져 버렸다. 그렇다면 메뚜기 재앙이 왜 일어났을까? 그 대답을 우리는 신명기 28장 15절과 38절에서 얻는다.
* 신 28:15 –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 신 28:38 –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심을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
그렇다. 메뚜기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성경은 명확하게 짚고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우상 숭배에 빠진 유다에 메뚜기 재앙이 이르러 온 땅이 초토화되었던 것이다. 선지자는 또한 포도, 곡식, 기름과 같은 이스라엘 땅의 주요 생산물이 파괴되어 백성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탄식하며 인간의 희락이 끊어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밀과 보리는 그들의 가장 중요한 곡식이었다. 또한, 성경에서 포도와 무화과는 약속의 땅에 허락한 하나님의 복과 풍요와 안녕을 상징한다(왕상 4:25, 미 4:4, 슥 3:10). 그리고 자기 소유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쉬는 모습이야말로 평화와 번영의 목가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죄로 인해 닥친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으로 말미암아 사라져 버렸다.
2. 외국 군대의 침공
하나님께서는 요엘 선지자를 통해 네 가지 해충의 피해를 말씀하신 후에 6절에 유다 민족을 침공해 쳐들어올 한 민족을 언급하신다. “한 이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무수하며 그 이는 사자의 이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욜 1:6,7).
메뚜기 재앙을 상징적으로 푸는 학자들은, 메뚜기떼가 구름처럼 몰려들어 식물을 파괴하는 모습을, 한 군대가 침공해 들어와 유다를 완전히 파멸시킬 것을 대비하여 상징적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믿는다. 아무튼, 6절과 7절의 내용을 미루어 보아, 이는 궁극적으로 곧 유다 백성이 침략을 받을 것을 경고하고 바로 이 이족들에게 유다가 철저히 유린당하여 잡아먹히게 될 실제적인 전쟁을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내 땅에 올라왔다”고 한 이족, 바로 사자로 표현된 민족은 누구를 의미하고 있는가? 그것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을 침략한 바벨론 군대였다. “이스라엘은 흩어진 양이라. 사자들이 그를 따르도다. 처음에는 앗수르 왕이 먹었고 다음에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뼈를 꺾도다”(렘 50:17). 그러므로 팟종이 메뚜기와 늦과 황충 등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네 번에 걸쳐 다른 이족들에게 철저히 유린당하게 될 것을 미리 예언하여 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니엘서의 예언과 스가랴 1장의 네 뿔에 예언된 바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들은 평화에 관한 일을 몰랐다. 그들은 그들의 안일한 방종의 날들이, 우상숭배와 쾌락을 추구하며 흥청대는 날들이, 세상의 번영과 부를 갈구하며 정신없이 사는 날들이 영원히 계속될 줄 알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율법을 계속 불순종하며 살 때에 어떤 재앙이 오리라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곧 이제 무서운 바벨론의 군대가 쳐들어와 그들의 왕과 왕족과 왕비와 자녀와 처자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잡아갈 것이었으며 그들의 땅은 황폐하게 될 것이었다.
3. 하나님의 교회의 영적인 기근과 재앙
세 번째 메뚜기떼의 습격을 받은 재앙을 가장 영적인 의미로 풀어 본다면, 이것을 하나님의 교회 내의 말씀의 기근과 오류의 침입으로 인한 바른 복음과 진리의 소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주신 바른 진리가 점점 파괴되어 가는 실상은 메뚜기 재앙으로 비유할 수 있다. 먼저 팟종이, 잎을 잘라 먹는 송충이의 공격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 안의 진리의 중요한 기둥과 줄기들이 싹둑 잘려버리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다음에 중요한 진리의 기둥들이 무너지자 메뚜기떼가 몰려오듯 오류의 큰 물결이 하나님의 교회를 휩쓸게 되었고, 늣(자벌레)이 꽃과 열매까지 먹어 치우듯이, 오류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에 나타나야 할 의의 열매와 표준들이 깨끗이 없어져 버렸으며, 마지막에 황충의 공격을 받은 듯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가 깡그리 사라지고 영적으로 황폐하게 되었다. 현재 기독교를 보라! 마치 하나님의 백성이 외국 군대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듯이, 얼마나 바벨론의 오류로 완전히 정복당하여 있는가!
이를 뒷받침 하듯, 1장 5절에는 바벨론의 오류의 포도주에 취한 자들에게 호소의 말이 전해지고 있다.
* 욜 1:5 - “무릇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포도주에 취하였다”는 뜻은 오류에 취하여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단 포도주”란 진짜 포도즙, 발효되거나 상하지 않은 신선한 포도주, 곧 하나님의 진리, 올바른 복음 의미한다. 또한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전에 끊어졌고”, “생축이 탄식하고 소 떼가 민망해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 떼도 피곤하도다”,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라는 표현(욜 1:16~20 참고)들은 올바른 복음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고 진리와 진짜 복음을 알지 못해 방황하는 현시대의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얼마나 잘 묘사한 것인가! 지금 교회는 바벨론에 의해, 교황권의 오류 침입으로 인해 진리의 말씀 기근과 영적 황폐로 파멸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요엘의 예언은 마지막 시대에 또다시 재현될 것이다. 요엘은 영감의 눈으로 당시에 일어나는 재앙은 물론 더 나아가 세상 끝에 이 세상에 닥칠 재앙을 보았다.
신앙 3부_ 마지막 때에 재현되는 요엘의 예언
요엘이 예언한 여호와의 심판 날과 재앙의 징조는 마지막 때의 징조, 곧 예수님 재림의 징조와 세상 끝에 대한 징조와 맥락을 같이 한다.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세상 끝의 징조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 끝의 징조 중에 요엘의 예언과 똑같은 표현과 언급이 나온다. 또한, 사도 요한이 재림 전에 나타날 첫 번째 징조에 대해 기록해 놓은 요한계시록에도 같은 언급이 나온다. 성경 절을 비교해 보자.
* 요엘의 예언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욜 2:1,2).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일월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욜 2:10).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욜 2:31).
* 예수님의 말씀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 24:29).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눅 21:11).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눅 21:25~26).
* 요한의 예언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계 6:12).
얼마나 똑같은 표현인가?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 끝의 징조가 두 번에 걸쳐 크게 성취된 적이 있었다.
1) 대지진과 땅의 흔들림
그것은 포르투갈 리스본 대지진이었다. 지진은 1755년 11월 1일 오전 9시 40분에 리스본을 강타했다. 그러나 그 지진의 그 범위는 리스본만이 아니라 유럽의 많은 부분과 아프리카와 미국에까지 확대되었다. 그것은 그린랜드와 서인도제도와 노르웨이와 스웨덴과 아일랜드에서도 감진되었는데, 약 4백만 평방 마일의 지역에 미쳐서 나타났다. 아프리카에는 유럽에서와 거의 같을 정도로 격렬한 진동이 있었다. 현재 과학자들은 당시의 지진이 리히터 지진계 기준 진도 9 정도였을 것이며, 진원 점은 320㎞ 떨어진 대서양의 카보 베르데 제도 해저였으리라 추정한다. 지진 발생 40분 후 60피트나 되는 거대한 해일이 밀려와 더 많은 죽음과 파괴를 초래했다. 최초의 진동은 약 5분간 지속하여 리스본의 건물 대부분을 무너뜨렸고, 약 6분 만에 6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 그 무서운 날에 생명을 빼앗긴 사람은 9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 당시 27만 5,000명의 인구 중 거의 3분의 일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2) 암흑일과 일월성신의 징조
해와 달이 어두워지리라는 예언의 둘째 징조는 지진이 일어난 25년 후에 일어났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일이 성취된 시기가 예언에서 지적한 것과 틀림없이 일치된다는 점이다. 구주께서는 감람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교회가 오랜 기간의 시련기, 곧 일천이백육십 년간 교황권의 박해를 당할 것을 말씀하시고 그 환난 날을 감하리라고 하시면서, 재림 전에 있을 몇 가지 사건을 말씀하실 때에 첫째 사건이 언제 일어날 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리라”(막 13:24). 일천이백육십일, 곧 종교 암흑시대는 기원후 1798년에 마쳤는데, 박해는 그보다 25년 전에 거의 다 끝났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박해가 끝난 뒤를 이어서 해가 어두워질 것이었다. 이 예언은 1780년 5월 19일에 성취되었다.
1780년 5월 19일,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방을 중심으로 대낮의 밝은 하늘과 공중이 갑자기 암흑천지로 변하는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것을 “대 암흑일” (The Dark Day)이라고 하며 1869년 판 “웹스터 대사전”에는 “암흑일”이라는 항목으로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암흑은 오전 10시경부터 시작하여 그날 밤중까지 계속되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밖에서 신문조차 읽을 수 없었고 새들은 서둘러 둥지로 향하였고 닭들은 홰로 올라앉고 가축들은 집으로 돌아왔으며, 학교에서는 오전 중에 수업을 중단하고 들에 나간 농부는 일할 수 없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물론 그날은 일식은 아니었고 이런 현상이 무슨 까닭인지 전혀 원인을 알 길이 없었다.”
그 암흑의 범위는 심히 넓었다. 동쪽으로는 팰머드까지 미치고, 서쪽으로는 코네티컷 주의 가장 먼 지역과 앨바니 시까지 미쳤다. 남쪽으로는 해안을 따른 모든 지방과 북쪽으로는 미국 지역의 최북단까지 미쳤다고 한다. 낮 동안의 짙은 암흑은 줄곧 계속되었다. 그리고 저녁때의 한두 시간쯤 하늘이 얼마쯤 밝아져서 태양이 나타났다. 그러나 태양은 여전히 검고 빽빽한 안개에 가려 희미하였다. 해가 진 후에 구름은 다시 덮여서 순식간에 암흑이 심하여졌고, 또한 그날 밤의 달빛은 빛을 내지 않고 피같이 붉기만 하였다. 미국의 대부분 국민들은 그 암흑이 성경의 예언에 일치한다는 것을 믿었다.
3) 별들이 떨어지는 징조의 성취
“대 암흑일"이 있은 지 50년이 지나서는 "대 낙성일"이 찾아왔다. 1833년 11월 13일 아침 미국 전역에서 일어났던 유성은 실로 엄청난 것으로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굉장한 것이었다. 예일 대학의 “올무스테드” 교수는 “엔사이클로피디아 아메리카”(미국대사전)의 유성이라는 항목에서 이렇게 기술해 놓았다. “이날 아침의 유성은 세계가 창시된 이래 적어도 유사 이래 가장 굉장한 것이었으며, 이것을 본 사람은 너무나 별이 한꺼번에 많이 떨어져 이를 ‘눈보라 때의 눈 조각’ 또는 ‘석양의 빗방울’ 등으로 비교했다.” “찰스 영” 교수는 그의 "천문학 입문"에서 “지금까지의 유성우 중에서 1833년 11월 12일 밤에서 다음 날 아침에 걸쳐 일어난 '사자좌 유성우'만큼 굉장했던 것은 그 예를 어디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지방에서는 한 시간에 20만 개의 유성을 볼 수 있었으며 그것이 5~6시간이나 계속되었다.”고 썼다.
그런데 이 징조들은 마지막 때에 또다시 크게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요엘서에 나타난 재앙과 심판은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 내릴 재앙과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감하에 남유다의 국가적 위기와 그 땅의 영적 상황을 연결해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불순종한 자들에게 임할 재앙에 대하여 상기시켜 주고 있다. 머지않아 이 땅에 은혜의 시간이 끝나고 성령이 떠나가며 하나님의 자비가 걷힐 것이다. 예수님께서 중보사업과 속죄를 끝내고 지성소에서 나오실 때에 회개하지 않은 악인들과 이 땅에 무서운 재앙이 임할 것인데, 요한 계시록 16장에 그 일곱 재앙에 대한 언급이 나와 있지 않은가? 세계의 정세와 예언의 성취는 우리에게 여호와의 심판 날이 가까웠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재앙과 심판을 피할 길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여호와의 두려운 날에 구원을 얻을 것인가?
신앙 4부_ 여호와의 심판을 피하는 자들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를 입고 밤이 맞도록 누울지어다…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욜 1: 13,14).
요엘은 애가 탔다. 포도원과 과수원, 밭의 모든 소산이 말라버리고 남아있는 시든 식물까지 메뚜기 떼에 먹혀버린, 그리고 이젠 생축들조차 목이 말라 죽게 되고 여호와께 드릴 소제와 전제까지 끊어져 버린 자국의 형편과 머지않은 미래에 무서운 기세로 침략해 올 외족의 군대 공격과 침입을 내다본 요엘 선지자는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어떻게 하면 임박한 여호와의 심판을 피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생명을 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 당시 유다 민족에게 기록한 요엘의 경고와 예언은 오늘날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여호와의 심판을 피하기 위한 귀중한 처방을 전해 주고 있다. 여호와의 심판을 피하는 자들이 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그 처방을 살펴보자.
1) 심판을 피하기 위해 마음을 찢으라!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욜 2:13,14).
요엘은 임박한 심판과 파멸을 피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당장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하였다.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로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고 마음을 찢는 회개를 촉구하여 임박한 재앙과 심판을 피하라고 경고하였다.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욜 2:17). 하나님의 심판은 민족 전체의 회개를 요청하고 있었다. 선지자는 제사장뿐만 아니라 농부와 포도원지기 그리고 모든 백성이 성전으로 모여 성회를 선포하고 금식하며 부르짖으라고 명령한다. 그 길만이 눈앞에 외부 적들의 침입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렇다!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눈앞에 둔 우리에게도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 남을 보지 말고 자신을 깊이 살피며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면서 회개하여야 한다. 주님 앞에 모든 죄를 철저하게 자복하고 버리는 일과 삶의 전반적인 면에 서 개혁하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손가락질하는 일을 금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어떤 형제와 화목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이사야 58장에 묘사된 것처럼 금식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다투고 싸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사 58:4).
또한,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와 허물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겔 9:4). 곧 주위에서 행해지는 죄악과 사람들의 죄를 보고 마음으로 울며 중보기도를 드릴 만큼의 자비와 동정과 순결과 거룩함을 갖추어야 한다. 이렇게 철저하게 회개하는 사람들의 이마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 쳐지고,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에 내리는 무서운 재앙과 환난에서 건짐을 받을 것이다.
2) 나팔을 불라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욜 2:1).
요엘은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위하여 나팔을 불라고 명령한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과 재림의 날을 뜻한다. 그렇다면 나팔을 불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나팔은 언제 부는가? 나팔은 전쟁을 알리는 경고의 소리로 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하나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나팔은 대속죄일 10일 전에 대속죄일을 알리기 위해 불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사가 확정되는 대속죄일 심판의 날이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준비하라는 경고로 나팔을 불었다. 나팔소리를 들으면 백성들은 대속죄일이 가까운 것을 알고 그들에게 마지막 남아있는 죄악이 있는가 자신과 온 가족들을 살폈다. 그리고 영혼의 정결을 위하여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고 버리며 엄숙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그 날을 기다렸다. 대속죄일에 자복하고 버리지 않은 죄가 있으면 그 사람은 수치를 당하고 이스라엘 진영에서 끊어짐을 당하였다. 그러므로 각 가정의 가장은 물론 각 지파의 족장들과 제사장들은 어디에서고 죄가 발견되지 않도록 사람들을 권고하고 살피라는 엄숙한 명령을 내렸다.
나팔은 여호와의 두려운 심판이 이르렀음을 알려주었다. 나팔은 분명한 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그 나팔 소리를 들은 백성들이 깨어나 회개하고 준비하게 된다. 그것처럼 오늘날도 이 세상에 관영하는 죄악과 범람하는 가짜 복음과 오류를 경고하기 위해 우리는 경고의 나팔 소리를 높이 울려야 한다. 우리는 마음을 찢고 철저하게 회개하는 동시에, 세상과 우리 주위에 진리의 참복음을 전해야 한다. 나팔처럼 분명한 소리를 내며 기독교에 들어온 오류와 반쪽 복음과 진리의 타협을 경고해야 한다.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분명하고 날카로운 진리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찢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특별히 음성을 나팔 소리처럼 높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허물과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려주어야 할 목사들과 지도자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라는 거짓 평안의 기별만 전하며 때가 가까움을 전하지 않는 것은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며 그런 지도자들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또다시 성취될 요엘의 예언을 생각하며, 우리는 나팔을 크게 불고 또한 안으로는 우리 자신을 철저히 살피고 회개하여 세상에 내릴 재앙과 심판을 피하는 사람들이 되자!
신앙 5부_ 부어지는 하나님의 영과 늦은 비 성령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욜 2:23).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
회개한 백성들에게는 놀라운 약속이 주어진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정결하게 된 백성들 위에 부어지는 일이다. 진정으로 회개한 자들을 보시고 중심이 뜨거워지신 여호와께서 긍휼을 베푸사 큰일을 행하시는데, 그것은 늦은 비로 비유된 성령, 곧 권능의 성령을 회개한 자들 위에 무한히 부어주시는 일이다. 요엘은 그것을 두 가지로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먼저는 늦은비를 내려주시는 것으로, 두 번째는 하나님의 신을 부어 주시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 요엘의 예언은 한번 크게 성취되었고, 다시 한 번 성취될 것이다. 이에 대해 자세하게 공부해 보자.
1)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의 예언과 그 성취
요엘의 예언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에게 오순절 성령이 부어짐으로 성취되었다.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신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부활하신 구주에 대한 기쁜 소식이 땅끝까지 전파되었고, 제자들이 구속하시는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였을 때 사람들의 마음은 그 복음의 능력에 굴복하였다. 교회는 각처에서 모여 온 회심자들로 가득 찼다. 복음에 대해 가장 혹독하게 반대하던 어떤 이들이 복음의 옹호자들이 되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의 형제들에게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들에게 생긴 한 가지 공통된 관심사는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나타내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행 4:33)었다. 그들의 수고로 진리의 말씀을 받고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충만해진 사람들은 그들이 들은 그 소망에 찬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에 그들의 생애를 헌신하였고, 교회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세상의 그 무엇도 그들을 위협할 수 없었으며, 주께서 그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으므로 그들이 가는 곳곳마다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거룩한 은혜의 기사가 나타났다.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고 나가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자 복음이 삽시간에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 그들이 오순절 성령을 받고 나가서 크게 외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이 그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자,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을 인용하여 이렇게 대답하므로 그 예언이 성취된 것을 증거하였다.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행 2:15-18).
첫 번째 오순절 성령 운동에 요엘의 예언은 이렇게 한번 크게 성취되었다. 이른비 성령의 부어주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운동은 놀라운 결과를 초래했는데, 하루에 삼천 명씩이나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엄청난 결과가 뒤따랐다. 그들은 성령을 힘입어 장래 일을 말하고 꿈을 꾸고 이상을 보았으며 부어주신 성령의 은사를 따라 복음 전파에 온 힘과 전력을 다하였다.
2) 마지막에 다시 일어날 요엘의 예언 성취
그런데 이제 세상의 맨 마지막 때에 다시 한 번 요엘의 예언이 성취될 것이다. 그와 같은 예언이 요한 계시록 18장 1절에는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이 장면은 늦은 비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온 땅에 나타내는 두 번째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가리키는데, 이 늦은 비 성령의 역사를 넷째 천사의 운동이라고도 한다. 이 역사의 결과는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는 표현처럼 이른비 성령의 역사보다 훨씬 더 크고 엄청날 것이다. 이 역사는 세상 추수의 끝이 가까울 때에 인자의 오심을 맞기 위해 교회를 준비시키기 위한 특별한 영적인 은혜의 선물로 주어지는데, 늦은비 성령이 주어지는 이유는,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을 통과하기 위하여 그리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이 세상에 전파하기 위하여 주어진다. 우리는 늦은비 성령을 받기 위해 준비하여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영적 성장의 근원 되신 분과 살아 있는 연결을 맺지 않는다면 이 일을 위해 준비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도 필요한 준비는 게을리하면서 환난을 통과하고 주의 날에 설 수 있도록 “늦은비”와 “새롭게 되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 늦은비 성령을 받는 데 필요한 준비를 게을리하는 사람들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게 해주는 “새롭게 함”을 받을 수 없다.
선지자들의 경고를 거절하고 모든 진리를 순종하여 그들의 영혼을 정결케 하는 데 실패하고, 또 그들의 상태가 실제보다 훨씬 더 좋다고 믿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재앙이 내릴 때에 그들의 성품이 적합하게 깎여지고 다듬어지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준비할 시간이 없을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처지를 변호해 줄 중재자도 없을 것이다. 어느 사람도 저지르기 쉬운 모든 죄와 교만과 이기심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과 모든 옳지 못한 말과 행동을 극복하여 승리를 얻지 못한다면 그들은 결코 “유쾌하게” 됨과 “새롭게 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매일 끊임없이 새로운 은혜의 공급을 받는 사람만이 마지막 때에 내리는 성령의 부어주심과 큰 권능을 사용할 능력을 받을 것인데, 매일의 의무를 등한히 하면서 미래에 큰일이나 기적적인 일을 행하기 위해 특별한 성령의 부으심을 기다리는 사람은 늦은비를 받기에 적합하지 않다. 자신을 날마다 하나님께 복종시킴으로 그분의 사용 목적에 적합한 도구로 만드는 사람만이, 그리고 모든 죄를 회개하고 자아가 온전히 비워진 겸손한 사람만이 늦은비 성령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될 것이다. 또 이른비 성령의 경험으로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된 사람만이 늦은비를 받을 것인데, 늦은비는 온전하게 된 성품을 고정해주는 것이지, 늦은비가 내릴 때에 성품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매일 이른비 성령의 경험을 하면서 늦은비 성령을 받기 위해 열렬히 구하는 사람들이 되자!
신앙 6부_ 환난에서 구원을 얻는 남은 자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1,32).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욜 3:16).
요엘서는 재앙과 심판 때에 하나님을 부르는 자들, 곧 남은 자들이 구원을 얻을 것과 하나님께서 세상의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모습과 하나님의 왕국이 회복되어 영영히 설 것을 예언하며 3장을 끝으로 마친다. 요엘서가 흥미 있는 것은 요엘이 기록한 예언이 마치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짧게 압축시켜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남은 자에 대한 언급이나 재앙과 심판의 장면, 그리고 그 구성과 내용과 끝마침이 짧은 요한계시록을 보는 듯하다.
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와 남은 자
요엘은 여호와의 심판 날을 피하는 자들과 구원을 얻을 자들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와 남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피난처와 산성이 되신다. 그런데 성경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다’는 표현은 단지 하나님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른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 단순히 자신을 주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여기거나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한다는 뜻만도 아니다. 그 정확한 의미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과 또 그분에 대하여 증언한다는 의미이다. 곧 하나님을 위한 증인이 되어 주님을 증거한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창 12: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증인이었다. 성경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의 의미가 항상 그분의 역사와 행하심을 선포하고 증거한다는 의미로 쓰였는데, 그 예를 몇 개 보면 다음과 같다.
*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 = 행사를 만민에게 선포함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사 12:4).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찌어다”(대상16:8).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찌어다”(시 105:1).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분의 이름, 곧 그분의 성품의 영광을 보이며, 그분의 행사를 세상에 널리 선포하는 큰 외침인데, 여호와의 부름을 받은 남은 자들이 바로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음과 같은 공식을 성립시키는데, 이것이야말로 마지막 시대에 딱 들어맞는 공식이 됨을 알 수 있다.
*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함 = 큰소리 외침 = 남은 자
* 남은 무리 =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가진 사람들 = 하나님의 행사와 성품을 보이고 증거할 십사만 사천
얼마나 요엘의 예언이 마지막 시대에 알맞게 적용되는가!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 재앙과 심판이 올 때 하나님의 교회인 시온 산에서, 그리고 복음이 전해지는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피할 사람들이 생길 것이며, 여호와의 부름을 받은 남은 자들이 여호와의 이름, 곧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증거하고 그분의 행하심을 선포하는 큰소리 외침을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2) 세상에 임하는 여호와의 심판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찌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욜 3:13).
3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바벨론에 사로잡혔던, 곧 죄악에 빠져 있었지만 회개한 자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괴롭히던 악의 세력과 무리를 심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요엘이 영감으로 표현한 기록, 곧 “낫으로 곡식을 추수하는” 표현이나 “포도주 틀을 밟는”다는 표현은 요한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의인과 악인의 추수 표현과 똑같은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계 14:15,16).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계 14:18-20).
얼마나 똑같은 표현인가! 의인은 알곡으로 익어 하나님의 곳간으로 추수되고, 바벨론의 오류의 포도주에 취해 하나님의 복음을 거절한 악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밟혀 멸망을 당할 것이다.
3) 여호사밧 골짜기의 심판
드디어 여호와의 심판이 시작된다.
“그 때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욜 3:2).
“열국은 동하여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찌어다. 내가 거기 앉아서 사면의 열국을 다 심판하리로다”(욜 3:12).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심판을 베푸시는가? 여호사밧 골짜기가 무엇이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벌어진 사건은 역대에 일어난 일 중에 가장 훌륭한 믿음의 선례가 되는 사건이다. 여호사밧 골짜기는 ‘브라가 골짜기’라고도 불리는데, 그곳에서는 큰 전쟁이 있었고, 또한 큰 승리를 기념한 곳이기도 하다. 함께 그 사건을 잠깐 공부해 보자.
유다 왕 여호사밧 때에 모압과 암몬 족속이 마온 사람들과 3개국 연합군을 형성하여 쳐들어왔다. 3개 연합군과 대결해야 하는 위기의 상황을 맞은 여호사밧! 유다에는 그 엄청난 수의 군대와 맞서 싸울 군사력이나 능력이 전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극한의 곤란한 상황 속에서 여호사밧 왕은 결단을 내렸다. 그는 모든 국민을 성전 뜰에 소집하였다. 그는 모든 국민을 금식하게 하고 회개하게 하며 여호와 앞에 간구하고 부르짖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 전쟁이…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대하 20:15)는 기별을 보내셨다. 여호사밧은 큰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약속을 믿고 여호와를 찬양하며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 선지자를 신뢰하면 모든 일에 형통하리라”(대하 20:20)라고 격려한다. 그리고 전쟁터에 나아가기 위해 특별한 군사작전을 세운다. 그것이 무엇이었는가?
여호사밧은 레위인 성가대에게 찬양복을 입혀 군대 앞에 행진하게 하며 찬양하게 하였다. 그러자 그렇게 두렵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도하고 찬양했더니, 그들이 찬송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암몬과 모압 자손을 쳐서 대 혼란 가운데 서로 쳐서 죽게 하므로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고 다 죽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여호사밧왕과 유대 백성들은 아무것도 한 일도 없이 전쟁은 큰 승리로 끝났다.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이 나가서 한 일은 다만 골짜기에 널린 전리품을 가져오는 일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그 전리품이 얼마나 많았는지 사흘 동안 거두어들여야 했다. 그래서 무리가 그 골짜기를 “브라가 골짜기, 곧 송축의 골짜기”로 이름을 지었는데, 그 골짜기를 “여호사밧의 골짜기”로 불렀다(대하 20:26). 그러므로 여호사밧의 골짜기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의 현시가 직접 나타난 것을 기념하는 지명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마치 마지막 때에 선과 악의 전쟁, 곧 아마겟돈 전쟁에서 짐승과 용과 거짓 선지자의 삼중 연합과 여자의 남은 무리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싸울 때에, 기드온의 300명처럼 적은 숫자인 남은 무리가 담대하게 나아가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할 것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 싸움은 여호와에게 속했다”는 것을 믿음으로 믿는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죄를 이기고 승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며, 그러므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짐승의 세력과 싸우는 사람들이다. 이 남은 무리야말로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쟁에 나가 승리한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여 승리할 사람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여호사밧 골짜기라는 의미 있는 곳에서 악인을 심판하시는 것으로 묘사된 것이다.
요엘서의 마지막 부분은 여호와의 심판이 다 끝나고 유다, 곧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어 영영히 설 것을 예언하며 끝을 맺는다.
** 마치면서
우리는 함께 흥미로운 요엘서에 대해 연구해 보았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그대로 재현될 구약의 요엘서의 예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엄숙한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며, 그 두려운 날에 서기 위하여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호와의 날에 서기 위하여 어떻게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마지막 늦은비 성령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죄를 회개하며, 또 우리 속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죄악을 알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엄숙한 심판의 시간이 가까이 다가온 이때에, 남은 자가 되어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성품의 영광을 온 세상에 외치는 증인들이 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축복하시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능력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세계 동향 Top News
1. 러시아 반(反)동성애법과 세계적인 이슈가 된 동성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으로 러시아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 정부가 최근 통과시킨 미성년자에게 “동성애를 선전하는 활동”을 금지하는 법이 전 세계적인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및 유럽의 주요지도자들은 반동성애법에 대한 반대 표시로 개회식에 불참했고 수많은 기업 및 시민단체들도 유감을 표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소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 위원회 총회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공격에 맞서자고 촉구했다. 구글, AT&T, 쉐보레, LUSH 등 다국적 기업들은 동성애 지지 캠페인 및 광고를 하고 있다. 이런 일들로 소치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동성애가 광고되고 있으며, 이는 인자의 때가 롯의 때와 같으리라 예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정확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2. 새 연준의장 옐런, 양적 완화 축소(테이퍼링)는 계속
연준(Fed)은 지난 1월 29일 지난달에 이어 추가로 양적 완화 규모를 100억 달러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버냉키에 이어 새 연준 의장이 된 자넷 옐런은 첫 공식 석상에서 미국 경제는 정상이라며 양적 완화 축소(테이퍼링)를 계속할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유명 소매점들(JC Penney, 시어즈, 메이시, 라디오섹, 타겟, 베스트 바이 등등)은 수 백 개의 점포를 문 닫고 있으며,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등 경기침체의 징조들은 계속되고 있다.
3. 신흥국들의 금융위기와 혼란
연준(Fed)의 양적 완화 축소(테이퍼링) 여파로 신흥국들의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신흥국들의 자본유출을 막기 위한 긴급 조치들이 세계 경제에 이슈가 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자국 통화 텡게화의 가치를 2009년 이후 최대 조정인 19% 하락시켰으며, 터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기존 7.75%에서 4.25% 인상하여 12%로 긴급 상향조정하였다. 인도와 브라질 등도 자국 통화 가치의 폭락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 페소는 금년 들어 달러 대비 30% 이상 가치가 폭락했다. 그 여파로 음식류는 100%, 잡화류는 20~30%까지 가격이 급등했다. 아르헨티나 민간은행들의 금리는 수수료 등 기타 비용을 포함하면 65%까지 치솟았다.
4. 미국 경제, 2014년 3월 4일 붕괴 가능성(?)
신흥국들의 금융위기가 선진국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인물들이 2014년 3월 세계경제 붕괴를 경고해 화제가 되고 있다. 전 미국 부통령 넬슨 록펠러의 자문이었으며, 경제전문가인 그래디 민즈는 2012년 10월에 워싱턴 타임즈에 ‘미국의 몰락은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를 끌고 갈 것이다’라는 논평과 분석을 썼다. 그리고 그는 그 글에서 ‘실제 세상 파국은 2014년 3월 4일에 일어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라고 했다. 전 연준(Fed)의장 폴 볼커와 전 미국 감사원장 데이비드 워커도 그 시점에 경제적 환란이 시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시기에 현재 미국 주식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1929년 끔찍한 주식 시장 붕괴 직전에 미국 주식 시장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대단히 닮았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현재 다우지수 챠트는 1929년 다우지수 챠트와 굉장히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다우지수가 그대로 따라간다면 올해 2월~5월 사이에 심각한 붕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붕괴가 실제로 3월 4일에 시작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경제 붕괴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5. 사상 최악의 가뭄과 불황, 美 캘리포니아 주 강타
미국 최대 농업지역인 캘리포니아 주를 강타한 극심한 가뭄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3년째 계속되고 있는 가뭄에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캘리포니아의 실업률은 치솟고 식품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현재 목장주들은 풀이 모자라 가축을 내다 팔고 있고 농장주들은 유실수를 잘라내고 있다. 경기침체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급등하는 식품 가격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제는 하늘로_ 종교개혁의 샛별 존 위클리프
14세기 교회는 신앙의 문제보다는 정치나 경제적인 관심사들이 우선시 되었고 물질만능주의로 사치와 방탕이 절정을 이루어 부패가 만연했고 거짓교리와 관행들이 날로 증가했으며 성경의 가르침들은 무시되었다. 이러한 때에 16세기 종교개혁자들에 앞서서 교회의 진정한 개혁을 위하여 온 생애를 다 바친 사람이 바로 종교개혁의 샛별로 불리워지고 있는 존 위클리프이다.
그는 1329년 영국의 북부지방 요크셔에서 출생하였다. 16세 쯤 당대 최고의 명문인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하였는데 대학시절 이미 놀라운 재능과 학식 뿐 아니라 열성있는 신앙인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철학이나 교회의 가르침에서 얻지 못했던 구원의 계획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깨닫고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유일한 중보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그리스도 사업에 바쳐 하나님의 말씀에서 소외된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자기가 발견한 진리를 전파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모든 합법적인 통치권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상의 통치정신도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1366년 영국 왕실의 전속 신부가 되었는데 이것이 교황제도의 실정을 직접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당시 교황들은 교회의 순결성과 천부적인 역할 감당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자신들의 세속적인 소욕이나 야심이 중대 관심사였다. 그들의 훌륭한 저택과 사치스러운 식탁은 백성들의 빈곤을 더욱 극심하게 했다. 로마교회는 온갖 폭정을 일삼으며 그리스도의 겸손과 가난을 버리고 잔인하고 가증한 생활을 추구했다. 수많은 의식행위와 속박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아 자유함을 얻은 사람들의 양심이 위협과 유혹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 위클리프는 로마교회의 권력남용을 공격하고 교황의 권위를 제한하려 했다. 특히 큰 악폐였던 수도원 제도와 수도승들의 나태와 시주행위 그리고 종교적 진리를 왜곡하는 사실 등을 들어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우상(형상)과 성자의 유품들을 숭배하는 것을 어리석은 짓으로 비판하였으며 면죄부 판매, 죽은 자를 위한 미사, 행진과 성지순례 등을 부정하였다. 그의 저서 「시민 통치에 대해」에서 ‘교회의 유일한 머리는 그리스도이며 사랑의 정신으로 다스리도록 예정된 사람이 아니라면 교황은 적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선언하여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제시하며 교황의 폐지를 부르짖었다. 그것은 중세 로마교회에 대한 치명적인 도전이었다. 사실 그는 고의적으로 로마교회에 반대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리에 투신하게 되자 필연적으로 거짓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로마교황권의 오류가 분명해질수록 더욱 열렬하게 성경의 교훈을 설명하였다. 그는 로마교가 사람의 유전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을 보고 성경을 저버린 신부들을 담대하게 질책하고 성경을 백성들에게 돌려줄 것과 성경의 권위를 교회 안에서 다시 한 번 확립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일반백성들의 무지와 영적인 맹목성을 불쌍히 여겨 롤라드라는 가난한 사제 전도단을 조직하여 각처로 파송하여 일반백성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전하게 했다. 그들은 국내 뿐 아니라 외국에까지도 가서 그의 가르침을 전파했다. 그들 사역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신자가 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국왕들과 로마 교황은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였으며, 영국 역사상 최초로 복음의 사도들에 대하여 화형 선고를 내렸다. 순교자가 계속하여 뒤를 이었다.
당시 로마교회는 벌게이트역이라고 불리는 라틴어 성경만을 사용하였기에 일반인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을 안타깝게 여긴 위클리프는 그들에게 직접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주고자 영어로 성경번역 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는 오류와 미신의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오랫동안 속박되어 있는 사람들이 자유를 얻기를 원했다. 당시는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아 성경을 일일이 손으로 필사하였다. 보통 한 권의 성경을 필사하는 데는 열 달 정도 걸렸다. 드디어 최초의 영어성경이 나오게 되어 결코 꺼질 수 없는 빛을 영국 국민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는 교회의 참된 권위는 교황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교회가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며 성경이 하나님의 뜻의 완전한 계시인 동시에, 성령께서 성경의 유일한 해석자이므로 모든 사람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연구하여 스스로 자기의 본분을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렇게 하여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교황과 로마교회로부터 성경 말씀으로 돌이켰다. 성경은 그 가격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의 성경이 필사되자 로마교회 지도자들은 당황하였고 영국 국회는 법령을 정하여 번역했다는 이유로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그들은 음모를 꾸며 세 번이나 위클리프를 법정에 소환하였다. 위클리프는 국회에서 두려움 없이 교직 정치를 비난하고 무서운 악폐들을 혁신할 것을 요구하며 담대하게 자신의 교리를 확신있게 주장하고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의 비난을 반박하였다. “당신들은 이익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상품화하고자 하는가? 그대들은 누구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진리와 더불어 싸우고 있는 것을 아는가?” 법정에서 그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순교자의 면류관을 멀리서 찾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저 교만한 주교들에게 전하라. 그리하면 순교는 틀림없이 오고 말 것이다. 살아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결단코 안 될 말이다. 탄압하려거든 해보라.” 이런 존 위클리프를 교황청에서 얼마나 미워했는지 그가 세상을 떠난지 40년 후에 그의 유골을 다시 파내어 공중 앞에서 불사르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재를 근처 스위프트 강에 던져 버렸다. 이에 대해 한 저술가는 말했다. “그 재는 스위프트 강물을 따라 에이번으로, 에이번에서 세베른 강으로, 세베른 강에서 영국해협으로 영국해협은 대양으로 옮겨주었다. 그리하여 위클리프의 재는 오늘날 온 세상에 퍼져있는 그의 교리를 상징하고 있다.” 이처럼 종교개혁이 시작되기 약 150년 전에, 그의 사상은 위대한 종교 개혁의 밑거름이 되었다.
진리 탐구_ "7년 환란"이 숨겨버린 "바벨론"
성경에는 바벨론의 존재에 관해 크게 세 번 기록을 해 놓으셨습니다.
첫 번째 바벨론은 창세기 10장에 등장하는 니므롯을 통해 세워진 바벨론왕국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바벨론역사에 의하면 니므롯이 죽은 후, 그의 아내 세미라무스는 니므롯이 죽은 후 임신을 하자, 니므롯의 영혼이 자기에게 와서 자신이 임신을 하였으며 그 낳은 아들이 “담무스가 됩니다. 그래서 니므롯은 바알숭배 곧 “태양신”의 숭배의 시초가 되며, 세미라무스는 “여신숭배”의 시초가 됩니다. 이러한 사상은 계속해서 발전을 더해 애굽에서는 좀더 화려하고 의식있는 태양신 숭배로 전승이 됩니다.
두 번째 바벨론은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갔던 그 당시 전세계를 다스리던 역사속의 바벨론인데 이 나라도 역시 첫 번째 바벨론과 같이 우상을 섬기도록 모든 사람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세 번째 바벨론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바벨론입니다.
창세기 10장과 11장에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바벨과 바벨탑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는데 노아 홍수 후 무지개를 통해 다시는 물로 이 세상을 멸하시지 않으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않고, 언약의 말씀과 주권에 도전하는 뜻으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란 단어는 하나님의 주권에 “반역”한다는 뜻을 가진 말과 근원적으로 같은 의미의 말이며 아울러 “혼잡”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다스리던 바벨론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억압하였고, 여러 가지 이방종교가 혼합된 형태의 거짓 종교들이 성행했으며, 그로 인해 바벨론은 모든 거짓종교의 어미와 거룩하지 못한 것과 우상숭배 권력의 집단으로서 영적으로는 오늘날 기독교의 혼돈과 말씀에 대한 대적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결국 니므롯에 의한 첫 번째 바벨론과 느부갓네살에 의한 두 번째 바벨론과 요한계시록의 세 번째 바벨론의 동일한 교훈은 "우상숭배"와 관련 있으며, 이는 또한 하나님께 대한 "대적세력"임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에서 18장에 나오는 바벨론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바로 직전에 일어날 사건을 묘사하며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라고 쓰였으므로 그것은 옛날 고대 바벨론 국가가 아닌, 영적인 바벨론임을 우리는 또한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너무나 쉽고 단순하게 “사탄의 바벨론 왕국”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7년 환란” 교리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들에게는 “비밀”이 되어 버렸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5절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왜 그들에게는 비밀이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이러한 바벨론을 통해 일어날 요한계시록의 사건들은 자신들이 하늘로 휴거가 되어 올라간 다음에 생겨날 일들이기에 그들에게는 몰라도 되고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교단이나 목회자들이 가르치고 또한 그 교리가 그렇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까지 나와 있는 바벨론에 대해서 그들은 눈과 귀를 닫게 되므로 귀 있는 자들에게 외치는 성령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슬프고 애달픈 일입니까?
7년 환란 교리는 성령께서 "내 백성아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외침을 전혀 들을 수가 없게 막고 있으며, 혹 들었다 한들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에 진리를 살피고자하는 의욕도 상실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의 바벨론에 대해서 읽고 듣고 그 기록한 것을 살펴보라고 권면할 때 그들은 “요한계시록”을 상고하게 되면 이단에 빠지거나 신앙에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당황스런 말들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할 "바벨론"에 대해 깨닫지 못한다면 영혼을 멸망시키며 진리를 혼동케하는 오류를 알 수가 없게 되며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가 되게 됩니다.
7년 환란 교리를 믿는 사람들은 그들이 바벨론 안에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영혼이 사단과 함께 유리하는 별들처럼 휩쓸려 갈 때에야 비로소 자신들의 운명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의 유혹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세상 마지막 사탄의 유혹이 바로 "7년 환란"교리라고 해도 말이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탄이 “바벨론”에 대해 깨어있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7년 환란”교리에 취해있는 사람들에게 다음의 말씀은 아무 유익이 없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43절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함과 같으니라.”
다음 호에는 “7년 환란”이 변개한 “영원한 복음”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기독교회사 Episode_ 금욕주의와 수도원 제도
일찍이 초대교회의 믿음과 행위 속에 살금살금 기어들어와 복수를 시작한 이교는 단 한 순간도 교회에서 완전히 제거된 적이 없다. 또한, 이교는 언제나 신자들의 믿음이 저하되거나 열성이 식을 때에 이단이나 부패의 핵심 세력으로 바뀔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4세기 말에는 로마 카톨릭의 금욕주의와 그 뒤를 따른 수도원제도가 특징이었다. 당시 투르의 주교 마르틴은 프랑스 루아르 강의 제방 주변에 프랑스 최초의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의 극단적 엄격한 금욕주의는 거짓 기적들에 관한 지어낸 과장된 보고들과 연결되면서 서유럽에서 금욕적 생활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복음의 단순성을 잃은 이 종교제도는 한편으로는 허영심 가득한 우쭐함과 영적 자만과 불가사의한 권세에 대한 요구를, 다른 한편으로는 거짓 겸손과 의기소침이었다. 이 둘 모두는 그리스도의 완전하고도 충분한 희생에 관한 가르침을 훼손시키는 금욕주의라는 잘못된 제도의 소산이었다.
이 금욕주의는 마르틴과 같은 사람들의 고통과 선행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했다. 이교의 제단에서 기독교의 성당으로 옮겨져 온 종교적 관습들이 한 죽은 성인에 대한 기억 때문에 교묘하게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았다. 더 나아가 교황 겔라시우스는 5세기에 서방 교회에 이교도의 축제인 루페르칼리아(이 날부터 새가 교미를 시작한다는 고대 로마의 풍요 기원제)를 추가하기 위하여 ‘빛의 행렬’과 더불어서 정결 축제를 소개하였다.
수도원 제도가 금욕주의를 바싹 따랐다. 저스틴 마터(A.D. 150)의 잘못된 가르침은 초기의 배교자 중 매우 두드러진 인물이었다. 그의 제자인 타티안이 그의 뒤를 따랐고, 타티안은 알렉산드리아의 교리문답 학교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를 가르쳤다(A.D. 190). 클레멘트는 자신이 이교의 철학을 섞지 않은 복음은 전하지 않겠노라고 공언하였다. 하지만 독신주의에 대한 칭송을 시작하는 일은 그의 후계자요 제자인 오리겐에게 넘겨졌다. 오리겐은 금욕을 위해 스스로 자신을 불구로 만들었으며 사도들이 전해 준 성경을 자신의 이교적인 사상에 맞게 편집하여 오늘날 알렉산드리아 계열 많은 성서의 모체가 되었다.
수도원 제도는 불교에서 온 것임이 분명한데, 기독교 안에는 이집트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수도사 중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첫째는 광야에서 어두침침하며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찾아서 홀로 거하는 부류였고, 둘째는 수사로서 수도원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부류였다. 교회의 최고 우두머리 외에는 그 어떤 영적 권위에도 복종을 거부한 그들은 그 어떤 회중에 의해서도 움직이지 않고 오직 교황권의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기동력 강한 방대한 수의 군대 조직이 있었다.
수사들은 때를 따라 겉치레와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는 행위들을 하였다. 이 모든 외형적 행위들은 교회의 제도가 점차로 증가되어 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후들로 교황 교회가 정부와 연합하는 일을 위해 길을 닦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제롬은 이러한 시기에 교황권의 라틴어 성경을 만들 때 잘못 전해진 오리겐의 조작된 헬라어 사본을 비롯한 전와된 사본을 사용해서 이미 초기부터 번역되어 그리스도인들에게 널리 사용되던 이딸라 성경(A.D.157)을 대체하는 새로운 라틴어 성경(5세기)을 만들어 내었다. 이것은 이교적인 교리를 가져온 자신들의 합리화를 위한 것이었다.
금욕주의와 수도원제도의 선동자와 그 히스테리의 영향은 어떠했을까? 다음 호에서 계속...
Healing story_ 독감
봄이 온다는 입춘과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가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서 머뭇거리며 떠나지 않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습니다. 바로 독감입니다. 독감은 바이러스 중 인플루엔자(Influenza)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상기도 감염으로 일반적인 감기와는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날씨가 춥고 건조한 10월부터 4~5월까지 발생률이 높습니다. 독감을 그냥 감기로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해마다 독감 합병증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가 평균 2십만 명이고 그 중에 3만 6천 명이 사망한다고 합니다. 특히 면역기능이 충분히 발육되지 않은 6살 미만의 아이들과 65세 이상의 노인들, 특히 양로원에 계신 분들의 경우 더 위험하다고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보고한 바 있습니다.
아침에 멀쩡히 출근했는데 오후가 되면서 으슬으슬 춥고 두통, 근육통, 기침, 고열이 나는 등 갑자기 몰아쳐 오는 게 독감입니다. 반면, 며칠은 콧물이 흐르고, 그다음에 목이 아프고, 그다음 기침을 하는 식으로 1~3일을 여유 있게 슬슬 오는 것이 감기입니다. 이제는 ‘아! 내가 그 때 아픈 것은 감기였구나.’하고 구분이 되시지요? 보통, 감기 증상이 시작되면 증상대로 콧물약, 기침약, 두통약, 거기다가 항생제까지 처방받아 먹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해야 할 공부나 업무가 많기에 끙끙거리며 아파 누워 있을 시간조차 없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감기를 앓음으로써 생기는 면역력을 얻지 못하게 하며 합병증을 불러오게 하는 지름길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은 집에서 할 수 있는 독감의 천연치료법과 예방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 천연치료법
1. 뜨거운 물에 목욕하기 : 더운 물로 샤워를 하거나 욕조에 들어갑니다. 우리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제일 빠르고 효과적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욕실 안과 방 안의 온도를 따뜻하게 하여서 옷을 벗고 들어갈 때와 목욕 후 나올 때에 추위를 느끼지 않도록 하십시오.
2. 물 많이 마시기 : 처음 감기가 왔다고 느낄 때, 따뜻한 물을 10분마다 한 컵씩, 한 시간 동안 마십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 코 안과 목, 기관지에 있는 세포들이 물에 약간 뜨는 정도로 수분을 많이 공급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놀랍게도 바이러스가 수분이 가득한 세포에 침투해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또한 모세혈관이 확장되어 혈액순환이 잘 되므로 산소공급과 영양소, 면역체 공급이 더 효과적이게 됩니다.
3. 식사 가볍게 하기 : 가벼운 식사란 소화효소를 필요하지 않는 과일식 같은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레몬, 자몽, 오렌지를 같이 짜낸 시트로스(감귤류) 주스입니다. 가래가 많이 나오고 기침을 하면 위산도가 떨어지게 되므로 이런 신 과일 주스를 짜서 차지 않게 천천히 마시면 좋습니다. 주스를 입안에서 10번 정도 씹어 삼키면 좋습니다. 점차 몸 상태가 좋아지면 과일 자체를 선택해서 먹도록 하고 열이 떨어지면 맑은장국과 밥도 좋습니다.
4. 신선한 공기 마시기: 머리가 띵하고 무겁거나 목 안이 까칠까칠하고 침 삼킬 때 불편하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막히는 것 같을 때에 얼른 심호흡을 하십시오. 햇빛이 있는 신선한 공기를 깊이 호흡하고 몇 초간 붙들고 있다가 천천히 내쉬고 이것을 20~30분간 반복하십시오. 또한 머리를 뒤로 젖히고 목의 볼록 나온 부위를(아담스 애플이 있는) 아래위로 마사지를 해줍니다. 그러면 우리 몸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 단순한 심호흡과 마사지가 기도에 전달되면 그 반사작용으로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나 보라며 몸이 경고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분포된 혈관 벽을 자극함으로써 피가 집중적으로 몰려들게 되고 혈액순환이 좋아짐으로 백혈구, 항체들, 모든 병들과 싸울 수 있는 파워가 막 몰려들게 됩니다. 이건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5. 숯 정제 : 목이 아프면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숯 정제를 24시간 동안 빨아 먹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중간중간 따뜻한 물을 먹습니다. 숯 정제는 바이러스, 혹은 박테리아, 독소를 흡수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6. 열 치료 : 체온이 화씨 100~102도(섭씨 37.8~38.9도)일 때, 오한과 근육통, 가슴막부위 통증, 기침이 심한 경우 약간의 폐렴 기가 벌써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열 치료를 합니다. 먼저 욕조 전체를 덥히기 위해서 더운물을 발목이 잠길 정도로 넣고 2~3분 뒤에 찬물을 섞어 줍니다. 물 온도는 발을 담글 때 저항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면 됩니다. 배꼽 위로 물이 올라오도록 채우며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면 됩니다. 들어가서 5~10분 안에 화씨 100도(섭씨 37.8도)까지 온도를 올리고 서서히 화씨 102도(섭씨 38.9도)까지 올립니다. 화씨 101도(섭씨 38.3도)가 넘으면 시원한 물을 한 모금씩 마시게 하고 이마에는 찬 수건을 대어줍니다. 환자가 힘들어하면 찬물을 조금씩 넣어서 서서히 물의 온도를 100도(섭씨 37.8도)까지 내린 뒤에 천천히 부축하여 나오게 합니다. 이렇게 열 치료를 받은 사람은 현기증으로 쓰러질 가능성이 있기에 조심해야 하며 6살 미만과 65세 이상의 노인은 잘 관찰하고 증상 호전이 없는 경우 바로 병원에 갑니다.
7. 충분한 휴식 취하기.
8. 열이 내려가고 몸 상태가 좋아지면 방 안에만 가만히 누워 있지 말고 옷을 따뜻하게 차려입고 옥외활동과 운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방
1.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 피하기, 마스크 하기, 손 씻기 등입니다. 특히 손 씻기는 모든 감염 질환의 60%를 예방해 준다고 합니다.
2. 적정온도(섭씨 18~22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내 온도가 섭씨 22도 이상 높아지면 호흡기는 좁아집니다. 밤에 잘 때, 아이들의 옷을 따뜻이 입히고 서늘하게 하고 자면 호흡기가 충분히 열려서 간접적으로 공기를 교환함으로 감기를 잘 이깁니다. 겨울에 더운 아파트에서 사는 아이들이 감기가 잘 걸리는 이유입니다.
3. 수분 부족, 과로, 스트레스 노출 등은 면역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4. 잠을 부족하지 않게 충분히 자는 것입니다. 오후 10시 전에는 꼭 자도록 하십시오.
신앙 칼럼_ 죄를 이기기 위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로마서 8:13,14]
한 늙은 인디언 추장이 자기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항상 두 마리 늑대가 싸우고 있단다. 하나는 악한 늑대로 그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 동정,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로, 그가 가진 것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
그러자 손자가 물었습니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야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여러분은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거의 무뎌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와 싸우는 것에 매우 게을러서 될 수만 있다면 자신에게 힘이 안 드는 것을 찾아다니며 양심을 속이고, 육체의 정욕과 타협하며 죄와 싸우는 것을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그 결과 진리와 거짓,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회색지대에 자신을 방치해 버립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죄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모든 사람은 죄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죄책감과 양심입니다. 이 때문에 죄를 숨기고 감추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죄를 방치하고 덮어버리면 그 죄가 우리를 죽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일한 해결 방법은 양심의 소리를 성경 말씀의 진리를 통해 활성화 시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믿는 자들의 의무라고 말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 3:5).
죄는 우리의 영혼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죄를 정복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없으면 죄가 우리를 삼킬 것입니다. 반대로 죄를 이기고 승리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하늘 백성으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마음으로 깨닫고 몸으로 실천하여 온전히 죄와 싸워 이기는 훈련을 해 나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