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장 ------ 男子와 女子의 差異
무후대상인------
무려 천오백년 전의 파천고인.
대저, 중원의 불문무학은 소림의 비조인 대달마가 한잎의 가량잎
을 타고 중원으로 건너와 포교를 한 것을 기원으로 치고 있으나......
기실, 그 전에 중원에는 정통불문이 존재하고 있었으니...... 중
생의 계도를 교리로 하는 천축불교의 대승불교와는 달리 오직 수도
자 자신의 면벽고행과 계행에 의해서 해탈을 교리로 하는 소승불교
가 바로 중원 정통불문이었으며 그 불문무학의 비조가 바로 무후대
상인인 것이다.
그는 당세에 엄청난 대법력으로 그 당시 중생들에게 살아있는 활
불이라 청하던 고승이었다.
그리고,
지황------
혈천대마종!
이 땅에 삐뚤어진 마음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
지 않는 사람의 부류들을 마라 칭한다면......
혈천대마종은 바로 그 마의 뿌리를 이 땅위에 심은 마의 대조종!
그는 삼천년 무림사를 통틀어 가장 강대한 마의 세력인 마교를
창건한 마의 대조종이기도 하다.
한데,
놀랍고 기이한 것은...... 이 정과 마의 최극단을 걷던 두 조종
들이 이 한곳에 모여있다는 것이며 그들은 어떻게 해서 서로의 무
학을 비교하듯이 이 한곳에 모아두었냐는 말이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붉은 팻말을 바라보던 단봉중옥의 눈에 섬득하리만큼 강렬한 이
채가 스치고 지나간 것은......
"한이 있는 자...... 세상에 복수하고 싶은 자에게 힘을 준다고......
그것도 단 시간 내에 속성으로 이룰수 있는 힘을......?"
그녀는 이순간 완전히 지황의 글귀에 빠져든 듯 독백처럼 중얼거
렸다.
순간 금천풍호의 눈빛이 기이하게 흔들렸다.
이어 그는 단봉중옥에게 진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소저, 저것은 마요...... 결코 저런 글귀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
오."
허나, 단봉중옥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무렴 무슨 상관이 있어요. 나는 복수할 수만 있다면...... 나
의 아버지를 죽이고 죄없는 식솔들을 무고하게 죽인 천하제일가에
복수할 수만 있다면..... 설사 내 영혼을 악마에게 판다고 해도 후
회하지 않아요......"
오오!
너무나 무서운 말이 서슴없이 흘러나왔다.
"소저......!"
금천풍호는 흠칫하며 경악성을 터뜨렸다.
순간 단봉중옥은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공자께서 제 목숨을 두번씩이나 구해준 것은 감사해요...... 저
는 죽을때까지 그 은혜를 잊지 않을 거예요. 허나...... 내가 하는
일에 간섭할 권리는 없어요."
이어, 그녀는 금천풍호가 입술을 벌려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지황이 남긴 팻말을 바라보며 나직하나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느 오늘부터 지황의 무공을 익히겠어요. 아무도 나를 막지는
못해요...... 만약 공자께서 제 일을끝까지 막는다면 저는 이 자리
에서 당장 자결하고 말겠어요. 당신을 영원히 저주하면서......"
"......!"
금천풍호는 안색이 순간 돌처럼 굳어졌다. 결코 단봉중옥이 저주
운운한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순간 그는 단봉중옥의 결심이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흔들리
지 않을만큼 확고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심으로 그는 지금 단봉중옥의 이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 또한 그 누구보다도 강한...... 한이라면 한일 수 있
는 상처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아니, 그것은 분명히 한이었다.
그는 조용히 허공을 응시했다.
(할수 없지. 내가 저 여인을 살린 것도 하늘의 뜻이고...... 저
여인이 마의 길을 택해 복수를 하고자 하는 것도 하늘의 뜻이라면.)
* * *
그날 하루 온종일......
금천풍호는 천지제황부의 구조를 살피는데 하루를 소모했다.
천지제황부,
이름에 비해 그 규모는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본래 천연적으로 생성된 지하동굴을 약간 연공미를 가미하여 세
운 듯한 이 동부는 모두 네개의 석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맨 처음 그들이 발견했던 보물이 잔뜩 쌓여있던 방과,
천제, 무후개상인과 지황 혈천대마종의 선공과 마공이 총망라 되
어 있는 무고,
그리고 수천가지 약재가 쌓여있는 약재창고와 침실로 사용하게끔
되어 있는 방이 고작 전부였다.
* * *
허나......
참으로 난처한 일이었다.
방 하나에 침상 하나,
사람이란 수면이라는 휴식을 취해야 살수 있는 동물이다.
허나...... 젊은 여인과 젊은 사내......
이 둘이 한꺼번에 한 침상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난처한 일이 아
일수 없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침상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안색이 제각기 다른 것은......
금천풍호는 아까부터 괴이한 미소를 지은채 히쭉히쭉 웃고 있었
고, 난봉중옥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엇다.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수 없는 지하동굴이라고 하지만...... 인간
의 생체리듬은 굳이 햇빛이 아니더라도 밤과 낮을 구분할 수 있는
신비한 감지력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지금은 밤인가 보다.
단봉중옥은 아까부터 머리를 뒤덮어 오는 졸음을 기 위해 안간
힘을 다하고 있었다. 침상에 벌렁 누워 밀려오는 잠에 취해 실컷
잠이라도 푹 자고 싶은 것이 지금 그녀의 굴뚝같은 심정이건만......
어쩌랴!
침상은 하나 밖에 없고 자신은 순백한 청백지신이거늘......
저 능글맞은 사내에게 바닥에서 자라고 하기도 뭣한 것이 그녀의
칼끝같은 자존심이었고, 그렇다고 사내가 스스로 바닥에서 잠을 자
겠다고 자진해 주었으면 한없이 고맙겠건만......
저 사내는 오히려 하나 밖에 없는 침상에 무슨 좋은 기회라도 잡
은 듯이 아까부터 괴이쩍은 미소만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아까부터 무엇이 그리 좋아서 그 벌린 입을 다물줄을 모
르고 있는 것이죠?"
벌써 오래 전부터 속을 부글부글 끓어온 그녀는 짐짓 싸늘한 눈
빛으로 금천풍호의 얼굴을 바라보며 툭 쏘았다.
그러자 금천풍호는 여전히 괴이쩍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후후! 아까 보니까 좋더군!"
"좋다니요? 뭐가 말인가요......?"
단봉중옥은 짐짓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러자 금천풍호는 괴이로운 미소를 더욱 짙게 떠올리며,
"후후! 여자란 참으로 이상한 족속이야...... 몸에서 그렇게 좋
은 향기가 나는 줄 몰랐어. 난 꽃더미에 파묻힌 줄 알았지..... 감
촉도 매우 좋았고...... 마치 탄력 좋은 고무공처럼......"
"당신......"
단봉중옥은 얼굴이 금방 도화빛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이제야 금천풍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았던 것이다.
아까 낮에 무너지는 동굴을 피하려다가 엉겹결에 금천풍호의 위
로 넘어져 입맞춤까지 하려 했었던 그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그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저절로 붉
어지던 그녀였거늘, 지금 이 말은 완전히 그녀로 하여금 얼굴을 들
지 못하게 하는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닌가?
(이제보니 아까부터 그 생각을 하느라 괴상한 웃음을......)
그제야 단봉중옥은 금천풍호가 침상을 바라보며 그 괴이로운 미
소를 짓고 있던 진의(?)를 알게 된 것인데, 그 순간 금천풍호는 결
정적인 쇄기를 박는 말을 하고 있었으니......
"후후! 어서 누우라고...... 아까는 그 만년독각천령사인지 뭔지
하는 뱀 때문에 제대로 음미를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아주......"
아주,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순간 그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단봉중옥이 어느새 싸늘한 음성으로 그의 말허리를 단호하게 끊
었기 때문이다.
"듣기 싫어요. 자고 싶으면 공자나 자도록 하세요. 저는 하나도
피곤하지 않으니......"
"피곤하지 않다고......?"
"그래요. 하나도 피곤하지 않아요......"
"그럴리가...... 남자인 나도 피곤한데 여자인 소저가 피곤하지
않다고......?"
"웬 말이 그렇게 많아요...... 대장부가 점잖지 못하게......"
그러자 금천풍호는 약간 의아한 반문을 했다.
"무엇이 이상한 것이지? 나는 소저가 피곤할 것 같아서 잠을 자
라는 것 뿐인데...... 게다가 소저와 함께 누워 있으면 기분이 아
주 좋......"
"그만!"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지? 게다가 얼굴까지 그렇게 빨갛게
붉혀가면서......?"
금천풍호는 이해할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단봉중옥을
말똥말똥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는 이내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큰 하품을 하는
것이었다.
"아함!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졸려서 이
만 자겠으니 같이 자든 말든 그런 것은 소저가 알아서 하구료......"
이어 그는 돌침상 위에 벌렁 눕더니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아서 드
르렁! 쿨쿨! 아예 코가지 골면서 자는 것이었다.
"......!"
큰대 자로 벌렁 누워 코까지 골며 태평스럽게 잠을 자고 있는 금
천풍호의 모습을 바라보던 단봉중옥.
어느 한순간, 그녀의 눈가에 가느다란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의혹의 빛!
(대체 알수가 없어...... 전신에 풍기는 기도는 오직 명문대가의
귀공자만이 지닐 수 있는 그런 태산같은 기도를 풍기고 있으면서도
여인에 관한 것만은 전혀 아는 것이 없는 것 같으니......)
아아!
그녀가 어찌 알겠는가?
금천풍호가 이곳 불귀도에 들어온 것은 그가 불과 다섯살때의 일.
그후 그는 이곳 불귀도에서 주우언칠절과 줄곧 생활을 했으며 사요
빙은 그를 키우다시피 한 어머니같은 존재였으므로 기실 그는 여인
에 관해서는 거의 백지나 다름없는 상태라는 것을......
아무튼......
기이한 것은 그녀는 지금 금천풍호의 그런 모습이 전혀 밉지 않
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꾸밈없는 그의 그런 모습에서 그녀는 묘한 매력까지 느끼
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사람의 손 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고귀한
보석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묘한 사람이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사람의 마음을 사
정없이 잡아끄는 매력이 있으니...... 그것이 어떤 것인지 꼭 끄집
어 낼수는 없지만은 정말 기이한 일이야!)
그러다 문득, 그녀는 한사람의 생각을 떠올리고는 소스라치게 놀
랐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내가 저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다니......!)
자꾸만 말하게 되는 것이지만, 그녀에게는 오래 전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녀는 철이 들면서 그녀의 고운 가슴 한쪽에 그 사람의 영상을
깊숙히 새겨 놓았으며 스스로 그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자신
의 가슴을 헤집고 들어올 공간은 조금도 남겨 놓지 않았다고 자부
하고 있었다.
천하제일가의 대공자 옥천군.
자꾸만 밀려오는 상념을 애써 지우려는 듯이...... 그녀는 고개
를 설레설레 저었다.
(안돼...... 그분을 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죄악이야)
그녀는 길게 심호흡을 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얼마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