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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천년전쟁의 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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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콰콰콰―!
굉음이 울려 퍼지며 두 사람의 신형이 피를 토하며 날아가고 있었다.
음시천존과 구천광마였다.
어이없게도 그들 두 사람이 합공을 했는데도 천궁황을 이길 수 없던 것이다. 오히려 피를 토하며 패퇴하는 것이다.
"와아아……!"
천궁황의 대전을 지켜보던 정천맹도들과 군웅들이 환호했다.
천궁황은 천하의 십대고수 이 인을 너무도 간단히 물리쳐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핏물을 억지로 삼키고 있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아우는…… 아직 멀었는가?'
그는 홀로 나직한 독백을 하며 전장을 주시했다.
* * *
―본래 여의번과 창룡극은 하나이니, 그 둘이 합쳐진다면 고금제일인이 나타나리라.
"창룡번! 그 어떠한 기운이라도 백 배, 천 배로 증가시켜 토해낸다."
그랬다. 용해린이 얻은 창룡번은 천고의 기물답게 실로 기이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만년빙폭풍도 처음엔 그냥 나약한 찬바람이었으나 창룡번에 의해 증폭되어 용해린을 힘들게 할 정도로 가공할 위력을 보인 것이다.
* * *
밀물이 있으면 썰물도 있다.
지금도 그랬다.
정천맹의 무사들은 남궁세가의 힘을 입고, 혈마천의 무리들을 모조리 쓸어 갔다.
승리는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나타난 천 명의 혈의인들이 있었다.
인성(人性)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눈빛, 피부색도 그랬지만 눈빛도 핏빛이었다. 굶주린 늑대의 눈빛, 피를 그리워하는 눈빛이 그럴 것이다.
몸에서 뿜어지는 기도, 그것은 절로 사람을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혈마천 최후의 인간병기(人間兵器)인 일천 혈황마군이 등장한 것이다.
"커억!"
"크읏!"
나타난 순간부터 정천맹과 남궁세가의 무사들에게 진득한 혈풍이 불어닥쳤다.
도검불침의 핏빛 신체!
검이 쑤시고 들어가면 검이 부러졌다. 절세신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장력도 통하지 않았다.
일천 혈황마군!
그들은 이름 그대로 마의 군림자였고, 불괴지체였다.
군웅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혈왕마군을 정천금검대가 거대한 진을 형성해 막아갔다. 그리고 그 뒤를 독응곡의 일천 무사들과 천 명의 자삼시위들이 진을 형성해 혈왕마군을 막았다.
파멸염시를 상대할 때는 철저히 수비만 했었으나 지금은 강력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삼천 명 대 천 명.
하나 혈왕마군을 상대하는데 그들은 밀리고 있었다. 속속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이다.
물론 혈왕마군도 쓰러지고 있었으나 혈왕마군이 한 명 쓰러질 때 이쪽은 몇 십 명씩 쓰러지는 꼴이었다.
무슨 수단을 강구해야만 했다.
양문룡은 손에 땀을 쥐고 장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시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깨문 입술 사이로 진한 핏물이 베어 나왔다.
'여기서 이들이 다 죽는다면 중원무림은 그야말로 끝이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그의 시선이 곤륜일옹과 제왕검 등을 향했다.
십대고수의 상위서열인 그들조차 혈왕마군을 하나나 둘 뿐이 죽이지 못하고 있었다. 제왕검, 천룡신검, 보타신니, 해천웅 등도 혈왕마군을 한 명씩 꾸준히 베어 넘기고 있었으나 속도가 너무 느렸다.
혈왕마군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군웅들을 쓸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두두두두……!
돌연 지축을 울리는 실로 거대하고 웅장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말발굽 소리였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군웅들은 심장까지 떨리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그것은 이곳으로 향하고 있는 인마(人馬)의 수가 그만큼 많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으로 말을 이끌고 오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중원의 세력들은 모두 이곳으로 집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적인가, 아군인가?
양문룡이 말발굽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파파파팟……!
돌연 길다란 무엇인가가 격전장을 향해 쇄도해 들었다.
'창룡노인가?'
양문룡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창룡노는 아니었다. 창룡노보다 굵기가 얇았고 끝에 천이 펄럭이고 있었다.
'깃발?'
생각대로 그것은 깃발이었다.
그 깃발이 날아오는 빠르기는 한 줄기 빛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군웅들은 그 깃발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제각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순간 깃발은 한 명의 혈황마군의 배를 그대로 꿰뚫었다.
"끄르윽……!"
도검불침의 금강불괴, 그래서 그리 많이 죽일 수가 없었던 혈황마군이었다. 그런데 한 놈이 깃발에 꿰뚫린 채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 순간 배를 뚫은 깃발이 땅바닥에 밀리며 혈황마군의 몸을 뚫고 나왔다.
핏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깃발,
그 깃발을 본 순간 해천웅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형님이……!"
그 깃발, 비록 피가 묻었으되 바탕에 깔린 푸른색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 그 깃발은 바로 대해의 패자 해왕맹을 상징하는 표기였다.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을 때, 능선을 넘어 보이는 것이 있었다.
수십 기의 펄럭이는 깃발들, 푸른 수실로 수놓아진 깃발에 써 있는 글자, 그것은 바로 해왕(海王)이었다.
양문룡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해왕맹의 등장도 그렇거니와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없었던 혈황마군이 죽었다는 것에 대하여 말이다.
그는 죽은 혈황마군을 재빨리 살펴보았다.
'금강불괴라도 급소가 있기 마련이었다. 혈황마군이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잠시 살폈을 때 양문룡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 놈들의 급소는 단전(丹田)이다. 깃발은 정확히 단전을 꿰뚫었다.'
맞는 얘기였다. 십여 년 전, 천패대공 용잠이 혈왕마군의 단전을 파괴하지 않았었던가. 비록 흡정마혈석으로 사람들의 정혈을 빨아들여 깨진 단전을 복구하고 마공이 두 배나 강해졌지만 한 번 파괴된 단전은 불안정했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 리 없는 양문룡은 자신의 생각을 확고히 다졌다. 깨달음의 희열이 온몸을 감전시켰다.
그리고 그 기쁨을 배가시키듯 해왕맹 전사들이 모습을 보였다.
천군만마는 이들의 신위를 보았을 때 하는 말이리라!
"형님!"
해천웅이 반가운 외침을 토했다.
수천여 명의 무사들이 산을 하나 메우며 나타났다.
그들 앞에 도열한 천여 필의 말들, 그 맨 앞쪽 중간에는 해왕천사가 위풍도 당당히 서 있었다. 바다의 제왕인 그가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은 상당히 어울렸다.
해천호는 딸 해옥랑을 동생과 함께 중원에 보내고는 해왕맹의 최정예 일만 명을 황하포구에 포진시키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하나의 서찰이 날아들었다. 발신인은 천패대공 용잠이었다.
서신에는 여의총의 지리와 혈왕마군의 급소가 단전이란 것이 쓰여 있었다. 천패대공의 서신을 받자마자 그는 모든 세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해왕천사 해천호가 격전장을 주시하며 말했다.
"늦지는 않은 것 같군."
동생의 초췌한 모습을 본 해천호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그는 곧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웅장한 음성을 토했다.
"돌격하라! 혈의인들의 단전만을 골라 도륙해라!"
"와아아아……!"
거친 함성과 함께 천여 필의 인마가 혈황마군을 파도처럼 휩쓸어 갔다. 더불어 그의 뒤를 따라 수천여 명의 해왕맹 정예 무사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양문룡이 군웅들에게 급박하게 외쳤다.
"단전만 공격하시오! 그곳이 그들의 급소요!"
여태껏 밀리기만 했던 군웅들은 해왕맹 무사들의 힘을 얻어 혈황마군을 베어갔다.
단전만을 골라 수십 개의 검을 꽂았다.
역시 그랬다.
그들은 단전이 급소였고, 단전을 뚫린 혈황마군은 가래 끓는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죽어 나자빠졌다.
"컥!"
마종사뇌가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양단되며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만마혈황의 혈황마검이 그를 반으로 갈라 버린 것이다.
"너의 어쭙잖은 계략으로 해왕맹을 적으로 돌려놨다."
죄를 물어 간단히 그를 죽여 버린 것이다.
만마혈황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검미는 보기 싫게 일그러져 있었다.
"패천마종! 그대가 나서 줘야겠소."
그 말에 패천마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서자 그의 개인 시위들이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리에서 일어난 패천마종이 정천맹과 해왕맹의 무사들을 쓸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개인 호위들인 십패황과 더불어 마령검사 오백 명을 향해 신형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패천마종의 신위는 실로 눈부셨다.
그의 쌍장이 대기를 가르고 엄청난 장력이 쏟아져 나갔다. 가공할 패력이 담긴 장력은 마치 대해일처럼 마령검사들을 덮쳐 갔다.
"크아아악!"
당금 최강의 패도무공을 지녔다는 패천마종의 가공할 무위였다.
그의 수하들인 십패황 또한 흩어져 마령검사들을 볏단 베듯 쓰러뜨려 갔다.
실로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저…… 저놈이!"
패천마종의 놀라운 신위 앞에 이제 마령검사들은 채 몇몇만이 남아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만마혈황의 눈에서 흉폭한 안광이 폭사되었다. 동시에 그의 전신이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인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폭탄을 보고 있는 듯했다.
쿠왕!
이내 그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지면을 박차고 빛살과 같은 속도로 마지막 마령검사의 몸을 부서 버리는 패천마종을 향해 폭사되어 날아갔다.
쏴아아앙―!
동시에 그의 쌍장이 벼락같이 휘둘러졌다.
"혈황마공―!"
대노한 그의 분노와 그만큼의 살기를 담은 묵빛 강기가 꼬리를 길게 빼 물며 패천마종을 향해 쏘아졌다.
쿠와아아앙―!
패천마종은 그가 날아오는 방향으로 마주선 채 쌍장을 들어 전신의 모든 내력을 끌어모았다.
'일격에 끝낸다!'
생각과 동시에 그의 쌍장이 태산이라도 밀어낼 듯한 기세로 내밀어졌다.
"천황패력공―!"
지금껏 그가 보였던 패기의 열 배는 될 듯한 가공할 패력이 그의 두 손에서 폭풀했다.
콰콰콰쾅―!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방원 이십여 장이 완전 움푹 패이며 초토화됐다.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자 그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패천마종과 만마혈황은 각각 세 발자국씩 밀려나있었다.
명백한 무승부.
갑자기 만마혈황의 눈썹이 부르르 떨렸다.
"네…… 네놈은 설마……?"
어느 새 패천마종의 모습이 바뀌어져 있었다. 키가 팔 척에서 칠 척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바뀐 그의 얼굴.
아! 그는 바로 천패대공이었다.
패천마종이 설마 천패대공의 화신이었다니.
천패대공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후훗, 왜 아니겠소. 천패대공 용잠이외다. 십 년 동안 편안히 지냈소이다."
"네…… 네놈이 감히!"
만마혈황의 떨리는 손이 멈추질 않았다. 설마 최고의 숙적을 바로 곁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다니. 그의 분노가 어떠한지는 상상할 수도 없으리라.
그와 반대로 패천마종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십여 년 전, 만마혈황에게 패한 용잠은 그 생각을 한 것이다.
운명이 쥐어주었던 천 년 동안의 피의 역사, 그것을 종식시키기 위해서였다.
만마혈황은 용잠의 의지에 전율스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그의 뇌리 속에 혈마천이라는 거대한 산이 무너지며 자신을 덮쳐 오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마지막 변수로 뒀던 변황의 십지마군은 패천마종으로 변신해 있던 천패대공 용잠이 맡은 일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됐을 것이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만 했지만 그래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함이었다.
"변황십지마군은……?"
"후훗! 그들은 결코 중원에 들어올 수 없을 것이오. 본인의 설득에 그들은 영원히 중원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약조를 했소이다."
"음. 그대의 힘이 작용했겠지."
"부인하지 않겠소!"
만마혈황은 말없이 장내를 주시했다.
해왕맹의 가세로 인해 전황은 대등하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전황은 혈마천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나 천패대공이 나타난 만큼 승부는 예측할 수 없었다.
결코 천 년의 염원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 건재했다.
"좋다…… 아주 좋아!"
그는 자신의 애검인 혈황마검을 천천히 들었다.
"천패문과의 지겹던 천년 승부의 역사를 오늘 접어 보도록 하자!"
그의 눈에서 극렬한 혈광이 폭사되어 나왔고 동시에 그의 검이 질풍노도처럼 뻗어 나왔다.
"아수라혼천마공―!"
"좋소……!천황패력공―!"
인세(人世)에 다시없을 어마어마한 대격돌!
두 사람의 장력이 허공에서 부딪친 순간 태양이 폭발하는 듯한 대규모의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온 하늘을 흙먼지가 뒤덮었다.
일각 여가 지나서야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그 동안 군웅들은 손에 묻어나는 땀을 수없이 닦아 내어야만 했다.
결과는 백 번 고쳐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에 천패대공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물론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천황패력공을 구성에 이르게 연마한 그였기 때문이다.
천황패력공에 격중된 혈황마검은 가루로 화한 지 오래였고 만마혈황은 심장에 사발만한 구멍을 갖고 있었다.
천패대공 용잠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헛!"
만마혈황의 입에서 기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자신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오는 핏빛 검, 그것은 그가 익히 보아온 물건이었다.
"아수라혈……?"
혈마천 지하 광장에 박혀 있어야 할 검, 항상 자신을 거부했던 그 검이 그를 향해 날아드는 것이었다.
그가 경악에 휩싸였을 때 아수라혈은 마치 제 집을 차자 들어가는 뱀처럼 만마혈황에게로 날아왔다.
순간.
팍!
아수라혈이 돌연 만마혈황의 단전으로 파고든 것이다. 그리고는 이내 깊이 박혀버렸다. 그는 멍하니 자신의 단전을 파고든 검을 내려다보았다.
'왜……? 이것이 어째서 여기에…….'
그러나 그의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돌연 아수라혈이 빛을 발하며 그의 본신 내공과 마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휘우우우……!
만마혈황의 전신이 쭈그러지더니 이내 그의 모습이 급속도로 목내이(木乃伊)가 되어 버렸다.
그런 만마혈황의 귀로 땅 끝에서 울리는 듯한 아련한 음성이 들어왔다.
"아수라혈이 그걸 원하고 있소!"
'아수라혈이……?'
저 멀리 아지랑이처럼 다가드는 한 사람, 그는 마천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도 슬픔도, 인간의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런 그의 입이 조용히 열리며 아무런 감정도 들어 있지 않은 지극히 메마른 음성이 흘러나왔다.
"혈마천의 천년 염원을 위해서 천주의 모든 것이 필요하오. 천주의 피로 목욕한 아수라혈은 고금제일의 병기가 될 것이고…… 본 천의 천년 염원은 내 대에 이루어질 것이오."
'그래…….'
만마혈황은 꺼지는 의식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수라혈은 마중마병(魔中魔兵), 그리고…… 네놈은 모든 마의 정화! 너라면 군림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그것이 끝이었다.
푸스스스―!
만마혈황의 신체가 재로 화하더니 한 줌 먼지로 변해 허공에 뿌려졌다.
용잠은 재로 화해 사라진 만마혈황의 입가에 맺힌 한 줄기 흐릿한 미소를 읽었다.
'그가 믿고 모든 걸 떠맏길만 하군.'
한순간 마천의 신형이 돌아섰다.
'웃!'
마천의 지극히 무심한 눈빛이 용잠을 향했고, 그 눈빛을 받은 용잠은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완벽한 마중마의 화신이군!'
용잠은 본능적으로 그 자신의 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만마혈황을 격퇴한 구성에 다다른 천황패력공! 하나 용잠은 자신할 수 없었다.
마천의 전신에서 흐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극살의 살기, 그 가공할 기운에 용잠 같은 최고의 절대자가 숨이 멎을 듯했던 것이다.
순간 마천의 발이 용잠에게 돌려졌다 생각됐다.
그 순간 놀랍게도 마천의 신형이 어느새 용잠의 십여 장 앞까지 다가서고 있었다.
순식간에 백여 장의 거리를 좁힌 것이었다.
"웃―!"
용잠이 기쾌하게 쌍장을 앞으로 밀어냈다.
실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보고 쌍장을 내밀었다면 벌써 늦었으리라.
"천황패력―!"
콰콰콰쾅―!
"헉!"
구성에 이른 천황패력공이 분명 마천의 전신에 작렬했다. 하나 헛바람이 튀어나온 것은 용
잠의 입이었다. 이번 한 수에서 이미 승패의 판가름이 났다.
천하의 천패대공 용잠을 마천은 지극히 간단하게 제압한 것이다.
마천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손이 천천히 움직여지기 시작했다. 순간 그의 손에 아수
라 형상을 한 집채만한 강기의 덩어리가 맺혔고 동시에 그의 손가락 하나가 들려졌다.
"너도 죽어야 돼!"
무심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집채만한 강기 덩어리가 용잠을 향해 날아왔다.
콰콰콰쾅―!
"으윽!"
용잠은 가슴에 정통으로 마천의 핏빛 강기를 얻어맞고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갔다.
그런 그의 입에서 선혈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고 그의 오른쪽 어깨는 상당 부분 녹아 없어졌다. 너무도 간단히 용잠이 밀린 것이다. 더구나 마천은 아직 아수라혈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으니.
한 번만 더 마천의 공격에 격중된다면 용잠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천이 재차 용잠을 향해 강기를 내치려고 할 때였다.
그그그긍―!
돌연 땅이 진동하는 엄청난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땅 속에서 하나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비산하던 돌가루와 흙먼지들이 가라앉고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 손에 노처럼 생긴 기다란 물체가 쥐어져 있었다.
여의창룡번이었다!
창룡노에 용의 형상을 한 면 부분에 꽂힌 창룡번이 바람에 휘날렸다.
용해린, 바로 그였다.
그때였다.
그의 머리 위로 한 명의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털썩!
그의 품안에 안긴 것은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였다.
용잠은 거슴츠레하게 변한 눈을 힘없이 뜨며 자신을 안아 든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들이었다.
순간 아들의 손에 들린 여의창룡번을 바라보던 용잠의 눈이 빛을 발했다.
"녀석! 드디어…… 얻었구나."
용잠은 히죽 웃었다.
그 모습에 용해린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팔자 좋으시군요. 패배를 당해 아들의 품에 안겨 실실 웃으시다니."
"하하! 이놈, 웃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한단 말이냐?"
용해린은 그러나 아버지가 웃기도 힘든 중상을 입었음을 잘 안다.
"그만 웃으시고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이 지겨운 전쟁을 끝낼 때가 온 것 같으니."
그 말에 용잠이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자신…… 있느냐?"
"후훗!"
용해린은 말없이 웃어만 주었다.
용잠은 아들의 그 웃음만으로 충분했다.
"됐다."
용잠은 그 말 한마디하고는 이내 태연하게 자리에 섰다. 그런 그의 곁으로 천궁황이 다가왔다.
이내 용해린은 신형을 틀었다.
용해린의 고개가 정면을 향했다. 그의 눈앞에 마천이 있었다.
그의 운명적인 적!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었다.
말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두 사람의 신형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하늘로 솟구쳤다.
"천황패력―! 천룡등천―!"
쿠아아앙……!
한 줄기 광채가 기이한 움직임을 보이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것은 용(龍)의 환형!
반쪽이 아닌 완전한 용이었다. 비로소 역천쌍병 중 하나인 여의의 도움으로 완전한 대창룡을 창출한 것이다.
용의 환형은 허공에서 방향을 바꿔 찰나의 순간 마천을 덮쳐 갔다.
마천은 부지중 움찔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마중마의 화신인 그였다. 그런데 그가 움찔거리다니!
그 만큼 여의창룡번이 창출한 용의 힘은 가공할 것이었다.
마천은 피하지 않았다.
"크카카카! 나는 마중마의 화신이며 아수라혈과 더불어 천지에 유아독존 하리라―!"
아수라의 거대한 환영이 그의 몸을 감싸며 마검 아수라혈에서도 가공할 악마의 기운이 폭출되었다.
콰콰콰쾅!
"컥!"
"큭!"
첫 대결의 결과 두 사람은 두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동수(同手)였다.
여의창룡노를 바로 세우며 용해린이 외쳤다.
"마지막―! 이 한 수에 천년 천패가문의 모든 혼을 담겠다!"
마천도 아수라혈을 가슴에 세웠다.
"아수라혈에 혈마천의 모든 것을 담았다. 아수라혈이 내게 말한다.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고……."
마천이 움켜쥔 아수라혈에서 돌연 마천이 나타냈던 아수라의 형상을 끌어내고 있었다. 아수라혈 본래의 힘과 만마혈황의 진원진기를 흡수해서 형성된 가공할 힘이었다.
"아수라혼천혈―!"
외침과 동시에 아수라혈에서 생성된 가공할 악마지기가 용해린을 향해 쏘아져 갔다.
엄청난 거력의 힘! 만마(萬魔)를 숭배(崇拜)케 할 그런 힘이었다.
"천황패력! 여의창천파(如意蒼天破)―!"
용해린의 여의창룡번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순간 어마어마한 용의 환형이 형성되더니 하늘을 뒤덮었다.
용의 환형은 그대로 아수라 형상을 휘감아버렸다.
쿠콰콰콰콰…… 쾅!
천지의 종말을 알리는 듯한 굉음이 일었다.
그들을 둘러싼 바닥이 쩌억 아가리를 벌리며 흙과 나무들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폐부를 찢어발기는 듯한 누군가의 비명성이 하늘을 갈랐다.
"크윽―!"
흙먼지가 가시고 장내의 광경이 드러났지만 마천의 시신은 온데 간데없었다.
용해린이 격출한 십성의 천황패천공에 가루도 남기지 않고 증발해 버린 것이다.
천패문과 혈마천의 천년의 승부.
그 피의 역사가 종식된 것이다.
용해린의 무릎이 힘없이 꿇려졌다.
"드디어…… 끝났는가……!"
그의 뒤에서 수많은 군웅들의 외침이 터지고 있었다.
그러나 허탈함으로 가득한 용해린의 귓속으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냥 쉬고 싶을 뿐이었다.
저 앞에서 그의 아버지가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를 바라보던 용해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반가움이 담긴 미소 속에 언뜻 다른 빛이 떠올랐다.
'한 손가락으로 부족할 정도로 며느리들이 많은 것을 아시게 되면 과연 어떠한 표정을 떠올릴지가 못내 궁금한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제왕검문에 있는 소소선화 양홍균이 갑자기 미치도록 보고 싶어졌다.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런 그를 향해 저 높은 하늘의 태양이 밝게 내리비추고 있었다.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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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