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환경
서울특별시의 청계천
청계천은 해방 후인 1949-1950년에 준설하였고, 한국전쟁으로 관리되지 못하다가 1954년 전후 복구사업으로 하수도 개량공사에 착수하게 되었었다. 1970년대 이후 콘크리트 관을 주로 하는 관거시설을 설치함으로써 주로 빗물을 처리하기 위한 하수도 공사를 시행하였다. 특히 저지대의 침수를 방지하기 위해서 유수지에 빗물펌프장을 건축하는 등 인명과 재산피해를 줄이는 데 집중적으로 예산이 투입되었다.
이와 함께 늘어나는 서울의 교통량을 감당하기 위한 방편으로 청계천을 복개하고 그 위에 고가도로를 설치하여 근대화의 상징을 삼기도 하였다. 고가도로가 처음으로 위용을 드러낸 당시에는 도심을 빠르게 가로지르는 간선도로, 현대화의 상징으로서의 공중 도로로 시민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개천이 아닌 복개천(覆蓋川)은 더 이상 하천이 아니었다.
열려 있는 개천은 대기와 천을 흐르는 물이 에너지와 물질을 서로 주고받으며 공기로부터 끊임없이 산소가 물 속 생태계로 공급되고 수중생태계의 호흡으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를 쉼 없이 대기로 발산시키면서 정중동의 역동적인 생태시스템을 갖춘다. 그렇지만 닫혀져 있는 복개천은 악취가 진동하는 더러운 시궁창 하수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복개천을 흐르는 물은 이미 맑은 계곡물이라는 청계(淸溪)와는 의미가 전혀 다른 더러운 썩은 물이 되었고, 고가도로와 복개 콘크리트로 꽉 막혀 버린 청계천 도로는 오가는 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 덩어리와 개천으로부터 스며나오는 메탄, 황화수소 등의 부패 가스로 범벅이 되어 극심한 대기오염 구역으로 변해 갔다. 오죽하면 주한 미군부대는 청계천과 삼일고가도로는 폭발의 위험이 있으므로 차량으로 이동해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지휘지침을 내리기까지 하는 코미디 같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처음 개통으로부터 시간이 경과하면서 삼일고가도로는 보수를 거듭해야 할 정도로 노후하여 교통정체도 빈번해졌고, 더욱이 붕괴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서울특별시장의 선거에서 '청계천 복원'이 중요한 선거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고, 이를 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청계천 복원이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
청계천 복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청계천은 60, 70년대 개발경제정책 밑에서 복개천으로 모양을 바꾸었다가, 그 위를 가로지르는 도로와 고가도로에 통과하는 교통량이 너무 많아지면서 대기오염, 소음공해 등이 심각해졌고, 청계천에 다양한 업종이 혼재하여 정체성이 없는 도심산업지구가 되어 버렸으며, 600년 이상의 고도(古都)로서의 서울의 이미지와 역사유적이 훼손되어 버렸다. 또한 강남북 간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져서 강북 개발사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시장 선거의 이슈가 되기에 충분했다.
선거에 이긴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을 복원할 필요성을 (1) 600년 서울의 역사성 회복·문화공간의 창출, (2) 노후 구조물의 위험요소 제거, (3) 인간 중심의 생태적 환경도시로 전환, (4) 지역 간 균형 발전이라고 정리하면서 그 미래상으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문화의 중심지, 고품격 국제수준의 중추관리 업무 중심지, 동북아·유라시아 한류문화 관광쇼핑 중심지, 매력·활력이 넘치는 시민의 생활중심지로 만들어 낸다는 목적을 정하여 청계천 복원 사업을 시작하였다. 즉 보전과 개발의 조화를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교통대란, 공사로 인한 소음, 분진 공해, 대체상권지, 노후상가 등의 수많은 이견과 우려 속에서 강행된 청계천 복원공사는 2년 3개월이란 짧은 기간 만에 완결되었다. 복원된 청계천은 답답하게 막혀있던 뚜껑을 걷어내고 시원하게 뚫린 물길을 시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게 했다는 점만으로도 일단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매캐하고 눈을 아리게 하던 대기오염 대신에 시원하게 불어오는 개천 바람이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를 진두지휘한 이명박 시장은 국제적인 환경상을 여러 곳에서 수상하기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나서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에도 청계천 복원이 힘을 보탰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 좋은 것 일색일 수 없듯이, 청계천의 복원에는 이렇게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청계천에 흐르는 물길을 유지하기 위하여 매일같이 지하철 역사에서 길어 올리는 물 2만 2천 톤과 한강물과 중랑천하수처리장의 처리수 7만 1천 7백 톤을 끌어다가 흘려보내고 있다. 유량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9만 3천 7백 톤의 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약간 급한 경사로 인하여 청계천을 흐르는 물살은 빠른 편이다.
청계천의 상류 구역은 특히 물살이 빨라서 수생생물이 하천이나 바닥에 숨어서 쉴 공간이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못하다. 다양한 서식생물을 끌어들이기 어려운 점이기도 하다. 물론 청계천의 뚜껑을 뜯어낸 지 얼마 지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청계천의 생물상이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없어서 앞으로 그 생물상의 변화를 면밀하게 추적 관찰할 필요가 있다.
청계천은 조선의 천도 이후 서울의 간선 배수로였다. 천연적인 하천이 아니라 인공이 가미된 '개천'이었다. 따라서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은 '자연의 자연으로의 복원'이 아니라 '인공하천'의 '인공하천으로의 복원'인 셈이다. 따라서 그 복원에 문제점이 다소 있다하더라도 크게는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 인공이던 개천을 인공으로 다시 개천으로 만들었으니 성공하지 않을 수 없다. 물을 공급하기 위한 지출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지지의사로 허락한 것이니, 이제 새롭게 만들어 낸 '개천'에 정착되는 생물상을 기다리면 될 일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특별시의 청계천 (역사로 보는 환경, 2009. 3. 10., 김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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