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하신 부모님의 병원 일로 한국에 몇 달이고 있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있는 동안 텃밭에 나가 일하는 재미를 붙였고 땀 흘리고 한잔하는 막걸리는 세상에 그런 맛이 없다.
들깨나 고구마, 상추 등 야채들을 조금씩 재미 삼아 심어 먹는 우리 텃밭은 동네 끄트머리에 있고 밭 입구 왼편에는 오래전 아버지가 세놓기 위해지어 놓으신 작은 창고가 있다. 작고 허름한 샌드위치 패널 창고는 한참 동안 비어있다가 작년에 대전사람 유사장에게 임대되었다. 유 사장은 이사하자마자 창고 앞뒤의 잡풀들을 깨끗이 정리하고 창고 옆구리에 '유성식품'이라는 간판을 큼지막하게 달아 놓았는데 유성식품의 하는 일은, 붕어빵을 파는 리어카를 제작해 임대하고 모집한 '점주'들에게 재료를 만들어 공급하는 일이다.
창고 안에는 부엌 딸린 살림방이 하나 있고 다른 한편에 작은 보일러 방과 화장실을 하나 더 만들어 팔순 노모를 모시고 있으니 대전 같으면 웬만한 살림집 월세값으로 여기서는 공장과 살림집과 텃밭까지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붕어빵이라는 것이, 겨울 한철 장사인지라 다른 계절에는 공장의 반죽기계 돌아갈 일이 없어 겨울 몇 달 벌어 어떻게 일 년을 먹고사는지 궁금하다. 미국 흑인 배우 모건 프리먼을 꼭 닮은 유사장은 어쩌다 만나도 태평인걸 보면 아마 모아둔 돈이 따로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장에서 하루 지내기가 무료한 할머니는 창고 앞 빈 터에 밭을 일궈 상추나 고추 등을 손수 심어 풀 뽑는 일로 거의 종일을 엎드려 있고 유사장은 일 없는 여름철에는 공장 앞의 손수 만든 툇마루에 앉아 신문을 보거나, 밭 일로 오가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 붙잡아 놓고 나라일로 열을 올리기도 하고 자신과는 크게 상관도 없는 이런저런 동네일 참견으로 하루를 보내는데 그러기 위해 손님용으로 마루에 펴 놓아야 하는 막걸리나 멸치등 주전부리 비용도 만만치 않을 듯했다. 그렇다고 유사장이 동네에서 마냥 평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주로 토박이들이 모여사는 50호 남짓 되는 조그만 마을에 어느 날 갑자기 이사 들어온 외지 사람 유 사장 네를 놓고 동네 사람들끼리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다. 우선 어디서 무엇하다 온 사람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 공장도 안 돌아가는데 무슨 수입으로 사는지 알 수 없다는 것, 부인이 있다가 없다가 하는데 실제 부부 인지도 의심스럽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혼자 있을 때면 끊임없이 염불 같은걸 중얼거리는 데 틀림없이 무슨 이상한 종교에 빠졌거나 아니면 신이 내렸는지도 모르겠다는 것 등이었다.
공장 주차장에는 유사장의 배달용 봉고차 말고도 가끔씩 소렌토가 서 있는 날이 있다. 이 차는 대전 사는 아들 내외가 주말이면 손주 데리고 할머니 찾아오는 것이고 소렌토가 오는 날이면 유사장은 어김없이 텃밭에 숯불 피우고 불판 올려 삼겹살 구울 준비에 바쁘다. 유사장의 아랫도리는 언제나 낡은 튜리닝 운동복차림이지만 번갈아 입는 유명 메이커의 방수 등산복 두 벌은 아들이 사준 것이고 특히 나이키 등산화는 등산을 자주 다니는 아버지를 위해 지난봄 환갑 때 한복과 함께 서울 사는 딸이 선물한 것이라고 설명할 때면 자랑이 넘쳤다.
유사장은 별 일없으면 혼자서 동네 뒷산을 한 바퀴 돌아내려오는 게 주된 일과였고 돌아올 때는 배낭 한가득 약초를 담아와서 툇마루에 널어놓아 지나면서 보면 어떤 때는 산 도라지와 산더덕, 곰취나물 등이 수북해서 장에 가서 장사해도 될 정도다. 유 사장은 공장 앞을 지나는 나를 불러 가끔씩 약초나 나물을 한 움큼씩 쥐어주곤 했다. 특히 곰취는 나물 향이 너무 좋아 나도 한번 캐 보고 싶어 산에갈 때 한번 데려가 달라고 여러 번 부탁을 했었고 오늘 갑자기 같이 가자는 연락을 줘서 별 준비도 없이 따라나서게 되었다.
유사장은, “원래 약초 캐는 산행은 자식 하고도 같이 안 가는 법인데 형님이 워낙 가고 싶어 해서 오늘 특별히 같이 가게 되었노라”라고 생색을 내는 바람에, 건성으로 고맙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약간 아니꼬와 , ‘이번에 약초밭을 확실히 알아놓고 다음부터는 아쉬운 소리 않고 혼자서 다녀야지’ 마음먹었다. 동네 밭길이 끝나고 가파른 산길이 시작되면서 유사장은 가다 자주 멈추고선 갖고 간 철사 꼬챙이로 낙엽더미를 헤쳐 산도라지 한두 개 뽑아 넣고 하면서 나에게도 주변을 잘 둘러보면 얼마든지 있다고 했지만 나는 눈을 씻고 보아도 도무지 찾기가 어려웠다.
유사장이 평소 나에게, ‘산에는 약초나 나물이 지천’이라고 했던 것과 달리, 산에 따라와 보니 도라지밭, 더덕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귀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몇 뿌리 캐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배낭을 채운 유사장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소문대로 무슨 이상한 주문인가 싶어 귀 기울여 듣다가 그게 뭔지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본인이 지은 '재수 노래'라며 가사를 알려준다. "나는 재수가 좋아, 어머니 건강하시니 재수가 좋아,/ 나는 복이 많아, 마누라 착하니 복이 많아,/ 나는 팔자가 좋아. 아들이 효자라 팔자가 좋아 / 나는 재수가 좋아, 재수가 좋아, 나는 운이 좋아 운이 좋아"
가사는 아무 곡에나 갖다 붙여도 되고 노래 속 사람만 바꾸면 하루 종일이라도 이어갈 수 있겠다. 주로 동요인 ‘상어 노래’ 곡을 활용하는 유사장은, 맞는 '곡'을 찾는 게 노래를 맛깔스럽게 부르는 요령이라고 알려줬다. 시원치 않은 사업에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모시고 살면서도 언제나 밝은 유사장의 모습은, 아마도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매일을 행복하게 생각하며 끊임없이 저 '재수 노래'로 자기최면하는 때문인지 모르겠다. 유사장을 따라 간 산에는, 도라지나 더덕이 유사장 눈에만 보이니, 뒤에 따로 간들 제대로 캘 자신이 없었고 앞으로 혼자서 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어느 날 유사장은, 몇 가지 상의할 게 있다면서 지나가는 나를 불러앉혀 놓고 막걸리를 내 왔다. 유사장은, '캐나다 이민생활이 어떤지, ' '나이 먹어 늦게 이민한 경우가 있는지', '그곳에서도 붕어빵을 먹는지'등을 물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유사장은, "노모가 있는 한, 이민은 자신의 처지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라며 형님이 부럽다"고 했지만 사실, 언제라도 고향 동네로 돌아와 살고 싶은 나는 오히려 유사장이 부러운 사람이다. 그밖에 유사장은, 붕어빵 이름을 '잉어빵'으로 바꿀까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잉어는 맛없는 물고기라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나의 반대에 생각을 접는듯 했고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늦가을 찬 바람이 불며 붕어빵이 제철을 맞아 공장이 활기 있게 돌아갈 때인데도 어찌 된 일인지 기계소리는 잠잠하기만 하고 공장 옆 공터에는 반품된 리어카가 쌓여가기만 했다. 배달이 줄다 보니 유사장의 배달용 봉고차가 서 있는 날이 많고 할 일없는 유사장은 반품된 리어카를 분해하거나 툇마루에 앉아 신문을 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리어카가 반품되는 이유에 대해 유사장은, 원래 붕어빵 장사는 '밤 장사'인데 요즘은 추운 밤에 몇 시간씩 서서 일 할 사람이 없는 데다 사람을 구했어도 워낙 노점상 단속이 심해져서 점주가 얼마 못가 장사를 포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사장에 의하면, 옛날엔, ‘서로 하겠다고’ 줄 서던 좋은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모두가 힘든 일을 싫어하고 특히 밤 시간에는 일을 안 하려고 하니 세상이 너무 변했다고 달라진 세태를 한탄하는 한편, 붕어빵 영업을 탄압하는 공권력을 심하게 비난했는데 특히 시장통의 청원경찰에 대해서는 극도로 화가 나 있었다. 장사 철인 겨울인데도 나가 있어야 할 리어카가 줄지 않고 공장의 반죽기계도 서 있다 보니 내 눈에도 공장 운영이 어려워 보였고 어쩌다 만나도 전 같은 활기는 없이 재수 노래만 흥얼거리고 있는 게 안쓰러워 멀리 유사장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이면 아예 뒷 길로 돌아다니는 게 마음 편했다.
아직 붕어빵 철이 끝나지 않은 이른 봄인데 갑자기 유사장으로부터 공장을 비우고 이사 나가게 되었다는 통고를 받았다. 유사장은, 공장 뒤켠에 쌓여있던 산더미 같은 리어카는 고물상에 고철값으로 넘기고 공장 안팎의 청소까지 깨끗이 마친다음 떠나기 전날 나를 불렀다. 송별회는 우울했지만 조금도 기죽어 보이지 않는 유사장은, 동네 발전을 위한 의견도 잊지 않았다. 우선, 이장이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너무 오래 했기 때문에 돌아오는 선거 때에는 반드시 바꿔야 하고, 마을운동기구 설치장소도 잘못되었으며, 팔각정을 하나 더 짓는 것은 국가예산의 낭비라는 것 등이었다. 나는 여러 의견들을 동네에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유 사장의 해박한 세상 지식과 낙천적인 성품도 너무 빠르게 변하는 시대상황에는 어쩔 수 없었던가보다. 아마도 들 일을 오가는 동네 사람들을 위한 선물이었을까, 유사장이 공들여 만든 공장 앞의 툇마루는 제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고 나에게는 그가 가르쳐 준 '재수 노래'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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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 재수노래 참좋네요
저도 불러봐야겠어요
ㅋㅋㅋ 재수노래가 남았군요. 불러보실 생각?
저도 강아지랑 나가면 북한 가요 반갑습네다 곡조에 맞춰 감사합니다 땡큐 지저스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부른답니다.ㅎㅎ 감사한 일들을 하나씩 생각하면서요. 저번엔 개가 성격이 더러워서 바늘을 굳이 삼켰어요. 물려고해서 막질 못했는데 다음 날 똥을 구부려보니 가운데 감싸여 잘 배출이 되었어요. 아플까봐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가 감사노래가 절로 나오더라구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