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해설ㅣ 나와 시 또는 가족애를 통한 존재의 탐색 --강흥구 시집 『둥지의 아침』 김 송 배 (시인.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나’의 인식을 통한 존재의 이해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나’에 대해서 진지하게 사유하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영육(靈肉)의 향방이나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되새겨본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구나 시인들의 회억(回憶)에서의 사고(思考)는 더욱 절실하면서도 애증(愛憎)의 진폭은 다양하게 분출되는 특성을 다수 접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문제나 존재의 의미 탐색은 인생과 시(詩)라는 범주(範疇)에서 불가분의 상관성을 갖기 때문에 거기에서 삶의 궤적(軌跡)을 통한 애환 모두가 시적 이미지나 주제로 현시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비평가(소설가) A. 지드는 ‘나는 하나하나의 존재가 지닌 가능성을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로 굽어보고 도덕의 테두리 속에서 질식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위하여 눈물을 흘린다’라는 명언으로 자신의 인식과 존재의 의미를 심도있게 역설하고 있다. 강흥구 첫 시집 『둥지의 아침』에서는 이러한 ‘나’에 대한 인식이 바로 존재의 문제로 발전하기 때문에 그가 탐색하는 ‘나(自我)’는 현재 어떤 어조로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은퇴 후에 시선을 나 자신에게 돌리자 꽃들의 대화가 들리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 냄새를 맡게 되었다’는 인생전환의 부두에 이미 접안(接岸)하고 있는 것이다.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는데 난 어딘가로 가고 있나 강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는가 바위 오르는 염소처럼 올라가는가 티베트인은 마니차를 돌리고 오체투지 고행을 하는데 난 천일기도로 인생길 물어본다 기도 중에도 문득문득 세상의 향락이 생각나는 나 낮아져야 갈 수 있는 길 높아지려는 나와 싸운다 이 길 가는 사람 적어도 흔들림 없이 가야할 길 --「길」 전문 우선 강흥구 시인은 ‘난 어딘가로 가고 있나’라는 의문형으로 문제의 해법을 찾고자한다. 이는 ‘길’이라는 형체에서 그가 지향해야 할 인생향방에 대한 실상적인 고뇌가 적시되어 있다. 그는 다시 ‘강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는가 / 바위 오르는 염소처럼 올라가는가’라고 많은 난제(難題)에 대한 해답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었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의문은 ‘난 천일기도로 인생길 물어본다’거나 ‘낮아져야 갈 수 있는 길 / 높아지려는 나와 싸운다’는 비장한 어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현실에서의 모순과 불합리 등의 갈등과 고뇌는 그가 여망하는 ‘길’이 바로 ‘흔들림 없이 가야할 길’이라는 결론으로 자신의 야멸찬 주제를 명징하게 토로하고 있다. 그는 이와 같은 ‘길’을 지나와서 이젠 인식의 단계에 들어섰다. 작품 「나의 광복」에서 ‘차창 밖의 산들이 / 친구 하자며 따라온다 / 아래로만 흐르는 시냇물 보며 / 올라가려고만 한 자신을 돌아본다’라면서 자신의 현재 위치와 상황들을 돌아보면서 성찰의 단계로 지향점을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홀로여행은 멍에를 벗은 광복이다 / 소중한 사람도 잠시 내려놓고 / 해야 할 일도 지킬 약속도 없는 / 야생마처럼 자유로운 시간이다 / 비위를 맞추거나 양보도 필요 없다 / 내 마음 대로 가고 싶다’는 인식의 단계를 벗어나 존재에서 봉착하는 여러 문제들에게서 어떤 단정적인 결론과 동시에 기원의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타인의 얼굴만 쫓아다니다가 나에게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매일 보는 모습인데도 오늘따라 낯설다 잡티가 늘어나는 피부 솔직하게 보여주는 거울 이만하면 멋지지 않나 싶다가도 좀 더 잘 생겼으면 해 본다 하늘처럼 맑았다 흐렸다 한다 --「거울」 중에서 강흥구 시인은 이처럼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서 매일 ‘거울’을 보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어쩐 일인지 ‘매일 보는 모습인데도 / 오늘따라 낯설다’. 그는 보편적인 상념으로 자신을 비춰보지만 언제부터인가 ‘잡티가 늘어나는 피부 / 솔직하게 보여주’는 형상에서 자신을 인식하면서 ‘이만하면 멋지지 않나 싶다가도 / 좀 더 잘 생겼으면 해 본다’는 어조로 조그마한 소망을 되뇌이고 있다. 그는 다시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작품에는 ‘이런 가이드 러너 / 내 삶 속에도 있다 / 보이지 않는 길을 / 그의 소리만 듣고 / 한눈팔지 않고 따라 간다 / 의심하는 순간 / 아무것도 할 수 없다(「가이드 러너」 중에서)’거나 ‘그 사랑 지키려 몸부림 친다 / 꽃 보내고 잎 맞이하는 나무처럼 / 내 것 다 버린 빈자리에 당신으로 채운다(「최고의 사랑」 중에서)’, ‘누군가 찍은 발자국 위를 / 내가 덮고 / 내 자취는 또 지워질 것이다(「황톳길 체험」 중에서)’라는 어조처럼 ‘나’에 대한 사유가 곧 자아(自我-the ego)의 진정한 인식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이러한 자아의 인식은 자애(自愛-self love)에서 발현하는 간구(懇求) 또는 기원의 여망이 포괄하게 된다. 일찍이 하이데거는 그의 「존재와 시간」에서 ‘실존하는 현존재에는 항상 나라고 하는 것이 속하고 그것이 본래성과 비본래성의 조건을 이루고 있다’는 논리로 자아와 존재의 상관성을 피력하여 ‘나’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함축시키고 있다. 2.시간성에서 탐구하는 애환의 행장(行狀) 강흥구 시인은 존재와 동행하는 시간성에 대한 집념이 작품에서 강하게 현시되고 있다. 우리는 시간이라 하면 하루 24시간을 비롯해서 일년 365일 그리고 춘하추동 사계절을 통해서 생성하는 일상적인 실생활(real life)에서 감지하는 다양한 형태가 바로 시적으로 이미지화하거나 주제로 취택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 시간에 대한 시적 이미지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깊은 상념이다. 시간이 인간과 동행하는 일에서부터 모든 행위와 생활은 공유하고 있다. 시간은 미래영겁의 환영(幻影)이라는 플라톤의 말처럼 과거의 궤적에서 현실적 실상과 그리고 미래의 환영에 까지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 스물 네 시간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다르게 느껴진다 아픈 시간은 긴 턴널 같다 행복한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임을 기다리는 시간 길어도 달콤하다 산모는 무섭고 힘들지만 설렘도 있다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 빨리 시험이 끝났으면 싶다가도 시험 준비 모자라 천천히 갔으면 싶다 돈 받으려 소송한 사람에겐 재판일이 더디고 빚을 낸 사람에겐 돈 갚을 날이 너무 빨리 다가 온다 유한한 시간 울고 웃으며 산다 --「다르게 느끼는 시간」 전문 그렇다. 강흥구 시인의 시간은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그는 ‘하루 스물 네 시간’을 분류하면 ‘아픈 시간’, ‘행복한 시간’,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설렘’의 시간이다. 그가 이처럼 변화무쌍한 시간성에 집착하는 것은 ‘시간은 영혼의 생명이다’라는 롱펠로의 말과 같이 그 기능이나 효용이 다변적이면서도 인간과 밀접한 동행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결론적으로 ‘유한한 시간 / 울고 웃으며 산다’는 관조(觀照)의 안온한 시법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 삶을 영위하면서 생성하는 여건들이 그 시간과 장소 즉 시간과 공간(時空) 개념에 따라서 다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에게서 가장 절실하게 시간과 흡인하는 것은 누구에게서나 당할 수 있는 애환이다. 인간의 생로생사(生老病死)의 절대적인 운명에 대한 긍정이다. 그의 이러한 긍정은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에서도 동류의 사유를 공유하고 있다. ‘더운 여름 잘 견디었다고 / 힘든 세상 잘 살았다고 / 하늘나라 엄마의 말처럼 / 힘 솟게 하는 바람이다(「가을 마중」 중에서)’는 그의 시간성은 계절 감응(感應)에서도 적시하고 있다. 내 친구 칠성이 육십 년 친구로 지냈는데 일흔도 못 되어 바람처럼 떠났다 --중략-- 며칠 자기 집에 나를 데리고 가서 온갖 귀한 것 다 내 놓아 대접 하더니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났다 내 손엔 아직도 그의 체온이 남아 있고 내 맘엔 일곱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다 --「친구를 보내고」 중에서 이러한 시간적인 변고(變故) 중에서도 ‘육십 년 친구로 지냈는데 / 일흔도 못 되어 바람처럼 떠났다’는 ‘내 친구 칠성이’ ‘육십 년 친구’와 ‘일흔도 못되어 바람처럼’ 이 세상을 떠났다는 허탈에서 시간의 함수(函數)를 이해하게 한다. 누군가 ‘시간은 시시각각 우리를 상처내고 마지막 시간에는 일격을 가한다’는 격언이 실감나게 한다. 그가 적시한 결론은 ‘며칠 자기 집에 나를 데리고 가서 / 온갖 귀한 것 다 내 놓아 대접 하더니 /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났다’는 허무와 허망의 의식이 넘치고 있다. 대체로 그가 시간에서 탐구하는 시법은 ‘세월 따라 가버린 것들 / 이젠 다 잊으리라 / 머뭇거리지 말고 / 종점 앞두고 짐을 챙기자(「종점」 중에서)’거나 ‘이름처럼 굳어버린 직함 / 떨쳐버리기 아쉽다 / 함께 한 정든 사람들 / 이별의 손 놓을 수 없다//시냇물이 흘러가듯 / 하늘에 구름 떠가듯 / 뒤돌아보지 않고 가리라(「정 때문에」 중에서)’ 그리고 ‘밤새 가래제거 소리 들으며 / 밤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 앞 베드의 남자가 / 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 생과 사의 간격을 재어 본다(「간격」 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별리(別離) 또는 생사의 문제와 깊게 상관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3.가족애에 대한 집념과 정감 이미지 강흥구 시인은 일상적인 가정생활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거나 당면하는 가족관계에 많은 정서의 순환을 집중하고 있다. 통념적인 일상에서 재생하거나 창조하는 시적 환경들이 가족애를 형성하면서 다정한 정감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어서 공감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는 할아버지에부터 아버지, 어머니, 아내, 형, 동생 그리고 아들, 손자에 이르기 까지 온갖 애정을 분사하고 있다. 이는 ‘장에 간 엄마는 안 오고 / 번쩍 우르릉 쾅쾅 / 소나기 쏟아져도 / 동생들 앞에서 안 무서운 체 했다 // 부모님은 구남매의 맏이 / 친가 외가 통틀어 제일 큰손자 / 서울대학에 떨어지고 / 온 집안이 눈물바다 되었다(「낙숫물」 중에서)’는 시적 구조에서 ‘엄마’, ‘동생들’, ‘부모님’ 그리고 ‘제일 큰손자’ 등등의 가족들이 제재(題材)로 등장하여 시의 스토리를 형상화하고 있다. 우리 엄마 손목시계 어릴 적 너무 갖고 싶어 달랬더니 “나 죽거든 너 해라” 시계가 탐나서 엄마 빨리 죽었으면 싶었다 그랬다가 금방 후회했다 시계보다 엄마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맏아들 결혼 한 지 두 해도 안 되어 쉰 셋의 엄마 하늘나라로 가셨다 시계를 내게 주려고 그리도 일찍 가셨나 엄마의 시계, 할아버지가 된 내 손목을 꼭 잡고 있다 이대로 끝없이 엄마에게 손목 잡혀 있고 싶다 고장 난 엄마의 시계 가는 세월 붙들고 있다 --「엄마의 시계」 전문 강흥구 시인은 ‘엄마(혹은 어머니)’에 대한 집념이 강렬하게 시적으로 현시되고 있다. 이처럼 ‘엄마의 시계’는 ‘할아버지가 된 내 손목을 꼭 잡고 있다’는 어조처럼 모정에 대한 회상이 사모곡의 원류로 의식이 흐르고 있다. 그는 철없는 동심에서 ‘시계가 탐나서 엄마 빨리 죽었으면 싶었다’는 진솔한 내적 심성에서 ‘그랬다가 금방 후회했다/ 시계보다 엄마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라는 후회로 내면의 진실이 시적으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결론적 주제는 ‘이대로 끝없이 엄마에게 손목 잡혀 있고 싶다 // 고장 난 엄마의 시계 가는 세월 붙들고 있다’라는 모정의 대미(大尾)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다시 ‘난함산 기슭 / 요양병원에 / 노모가 계시기 때문이다 // 면회 가면 우리 아들이라며 / 자랑하는 어머니 / 날 기다리다 눈이 물렀다(「난함산을 바라보며」 중에서)’는 애절한 메시지가 지금도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 키울 때 잔소리 도와 달라는 구조요청이다 다리가 아팠다 홀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갈등에 자기편 들어 달라는 잔소리 머리가 무거웠다 아들이 방황할 때 어떻게 해 보라는 잔소리 부부싸움의 불씨였다 은퇴한 내 건강 위하여 어린아이 다루듯 하지만 몸에 좋은 잔소리이다 --「아내의 잔소리」 전문 여기에서는 ‘아내’에 대한 애정이 가득 넘치고 있다. 여기에 내포하고 있는 ‘잔소리’는 애정의 표상이다. 그가 마지막 행에 적시한 ‘은퇴한 내 건강 위하여 / 어린아이 다루듯 하지만 / 몸에 좋은 잔소리이다‘라는 결론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부부간의 정적 교감을 실감나게 현현하고 있다. 그러나 아내의 사랑을 훔쳐간 사람이 있다. 아들이다. ‘삼십년 넘게 함께 살다 / 직장 따라 떠난 아들 / 아내의 마음까지 가져갔다 / 맛있는 것 먹을 때도 / 빨래하면서도 아들생각 한다 / 아들을 향한 사랑으로 훌쩍일 때는 / 빈껍데기와 사는 것 같아 심통이 난다 / 허전한 마음 채우려 / 더 진하게 나만 바라보는 아내 / 화려한 오월을 지나 / 늦게 핀 장미 같다(「아내의 남자」 중에서)’는 모자(母子)의 정이 적나라하게 적시되고 있어서 아내에 대한 이미지의 확산은 무한대에 가깝다. 이 밖에도 작품 「귀가」 「석이버섯 따는 부부」등에서 아내의 칭송이 넘쳐나는 시적 메시지가 많은 설득력을 흭득하고 있어서 독자들의 흡인력은 더욱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강흥구 시인의 가족애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그의 가족 사랑은 진한 감동을 제시하고 있어서 오륜(五倫)의 윤리적인 감응을 더욱 상기(想起)시키고 있다. -할아버지=집에는 할머니가 보살펴야 할 /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반달 입」 중에서) -부모님=부모님의 사랑으로 태어나서 /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되었다(「사랑의 빚」 중에서) -아버지=할아버지는 약방을 물려주려고 / 아버지를 초등학교만 졸업시켰다(「한 뿌리에 나다」 중에서) -어머니=나비 날개 닮은 네 꽃잎 / 더듬이 같이 닌 수술 / 흰꽃 분홍꽃 어우러진 / 엄마의 원피스 무늬 같은 바늘꽃(「바늘꽃」 중에서) -아내=아내를 지켜내고 / 자존심도 살려서 / 목에 힘주며 산길을 내려왔다 (「제 식구 지키 기」 중에서) -동생=나를 닮았지만 슬프게 살다가 먼저 간 동생(「벚꽃 그림자」 중에서) -아들=멈출 수 없는 / 심장처럼 일하는 아들아 / 일거리가 없어 / 노는 사람보다는 / 낫다고 생각하거라 (「쉬고 싶은 아들」 중에서) -손자=친손자들 제쳐 두고 / 외손자 무릎에 앉혀 / 밥 먹이던 장인어른 눈에 선하다 (「한로」 중에서) 4. 자연 풍광의 동화와 서정시법 우리의 모든 현대시인들은 자연 풍광에 심취(深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상존(常存)하는 아름다운 정취에서 응시(凝視)하거나 감응하는 정황(情況-situation)은 풍부한 정서의 행로를 제공하고 있어서 자연 서정 시법에 더욱 익숙해 있음을 간과하지 못한다. 일찍이 파스칼은 그의 「팡세」에서 ‘자연은 모든 진리를 각각 그 자신 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괴테도 ‘자연은 사방 어느 쪽을 바라보아도 무한(無限)이 계속 될 뿐이다.’라는 말로 인간과 자연의 영원한 존속(存續)을 논해 왔다. 강흥구 시인도 이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는 ‘꽃구경하던 가슴에 꽃물이 들고 / 꽃잎 떨어지고 새싹나듯이 / 시작된 사랑 / 신록 따라 짙어간다(「봄바람 때문에」 중에서)’라고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에서 사랑을 감득(感得)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의 변화에 따라서 계절의 바뀜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시간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만유의 자연이다. ‘봄비로 씻은 / 벚나무 / 하얀 눈 덮어 쓰고 / 눈 닮은 꽃잎 꿈꾼다(「벚나무의 꿈」 중에서)’ 또는 ‘게발 선인장은 손가락 끝에 / 붉은 매니큐어로 단장하고 / 보랏빛 난은 우아한 사랑을 노래한다 / 생명력 억센 제라늄 / 질긴 사랑을 토해 낸다 / 붉은 꽃기린도 가시 사이로 / 불타는 풋사랑을 고백한다(「베란다 꽃의 합창」 중에서)’는 그의 이미지와 같이 ‘봄’에 대한 노래는 계속 이어진다. 산 능선 나무는 군에 간 아들 머리칼처럼 짧고 가지런하다 품어 키운 나무들이 옷을 벗어 버려서 찬바람에 떨고 있다 자식만 잘 되면 효도할 줄 알았던 할아버지처럼 울고 있다 뽀얗게 눈을 뒤집어 쓴 소나무 형이 고개 숙이고 반성 중이다 동생 굴참나무도 종아리 걷고 서 있다 이제 그만 용서해 주라고 계곡의 고드름 눈물로 애원한다 봄비로 세수한 진달래 꽃망울을 품고 있다 --「봄을 기다리는 산」 전문 강흥구 시인의 ‘산’은 새 생명이 탄생하는 ‘봄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 산의 형상은 ‘군에 간 아들 머리칼’이 되고 ‘찬바람에 떨고 있’는 나목(裸木)들의 아픔이 ‘할아버지’로 의인화하기도 한다. ‘소나무 형’과 ‘동생 굴참나무’ 등이 전개하는 ‘산’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내면에서 분사하는 진실이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이제 그만 용서해 주라고 / 계곡의 고드름 눈물로 애원한다’는 어조에서 우리는 진정한 화해, 자연의 변화를 절규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전개는 스토리 전체가 따스한 봄을 기다리는 서정적인 안온한 정감이 물씬 풍기고 있다. 그는 봄에 심취하면서 봄에 대한 향연을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적시하고 있다. . 살아가는 이유도 잊은 채 / 지나온 세월 / 봄꽃 속에 떠올리며 / 새로운 꿈 꾼다 / 다시 잊어버릴 꿈을(「건망증」 중에서) . 심술궂은 봄비 내리고 / 바람 불어 꽃비로 / 꿈들이 마구 떨어진다(「꽃구경 가는 길」 중에 서) . 봄비가 다녀간 후 / 아카시아 꽃 산책길에 가득하다 / 꽃 다 지기 전에 벌 부르는 / 진한 아카시아 꽃향기(「아카시아 꽃」 중에서) . 겨우내 연밥 목에 채워 두었던 얼음 칼을 봄바람이 풀어 준다 물오리떼 연밥에게 봄이 왔다 고 속삭인다(「연화지의 봄」 중에서) . 따스한 봄 햇살 따라 / 꽃구경하러 / 봉화대에 오른다(「진달래꽃」 중에서) 강흥구 시인은 이 밖에도 「뻐꾸기 소리에」 「피서」 「유월의 연화지」 「솔바람 길」 등의 작품과 같이 유월과 여름의 정서를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일찍이 조병화 시인은 ‘여름이야 말로 우리 생명의 큰 에너지의 원천인 것이다. 많은 에너지를 공급받는 계절, 그것이 여름인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황악산 가슴팍 명적암에 구도자 행색으로 찾아온 가을 솔바람 타고 낙엽 하나 망초꽃 위에 내려앉는 오후 풀벌레도 숨을 죽이고 산사의 고요함에 젖어든다 학이 떠난 서학루엔 가을바람만 스산하여도 비바람 함께 헤쳐 온 그대가 있어 외롭지 않다 --「명적암의 가을」 전문 이제 가을이다. 어쩐지 가을 산사는 더욱 쓸쓸하다. 가을 오후의 고요함 때문일까. 어느 가을날 황악산 명적암에서 만나는 ‘솔바람’, ‘낙엽’, ‘망초꽃’, ‘풀벌레’ 등은 이 명적암에 ‘구도자 행색으로 / 찾아온 가을’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내면에서 그의 심정을 추스르고 있다. 대체로 이처럼 자연을 인격화해서 대화하거나 담론으로 작품에 등장시키는 것은 우리 시학에서 자연은 인간의 정서에 좋은 혜택을 주게 되는데 이를 자연의 인격화 즉 감상적 오류라고 한다. 시인이 모든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으로 인격화하는 동화(同化-assimilation)와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투사(投射-project)의 두 가지 원리로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시인들이 자연과 자신의 관계에서 동화냐, 투사냐의 관점에서 응용하면 좋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가을(혹은 단풍)’이 되어어서 인간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이 동화이며 저만치 멀리 서있는 어떤 자연을 응시하면서 풍경을 감상하듯이 창작하는 투사의 원리를 잘 적용하는 시법이 대체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 「단풍」에서 ‘공원 산책길 살짝 벗어나 / 햇볕으로 데워진 벤치에 / 해바라기 할머니 / 낙엽처럼 앉아있다’는 시행(詩行)이 바로 투사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찬바람에 옷깃 여미지만 / 앞산 불타는 단풍에 / 닫힌 문 활짝 열린다’는 어조와 정경(情景)이 강흥구의 서정시학을 절정에 이르게 하고 있다. 5.맺는 말-시에의 정감 강흥구 시인은 ‘나무와 풀처럼 인생은 대자연의 작은 존재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과 계절의 변화를 시로 노래하고 싶었다.’라고 ‘시인의 말’에서 피력한 바와 같이 시에의 정감은 남다르게 몰입하고 있다. 그는 ‘안개 속 희미한 그림자 하나 / 내게 손짓하여 / 가슴 울렁이며 따라 간다 // 바쁘고 힘들게 사느라 / 지나쳐 못 본 꽃 / 미소 지으며 말을 건다 // 걱정 속에 사느라 / 듣지 못한 새 소리 / 임의 노래로 다가 온다 // 사랑하는 이에게 / 기대어 울 가슴 대신 / 손수건만 건네주며 살았다 / 묻어 두었던 이야기 꺼내어 / 펑펑 함께 울고 싶다(「시에게」 전문)는 어조는 이제 시는 그의 인생과 동행하는 동바자가 되길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시의 소재나 주제는 우리의 일상적인 정서생활에서 탐구하게 된다. 이처럼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특별한 기교로 비현실적인 담론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시어(詩語)와 일상어가 다르냐하는 문제도 대두되지만 따로 시를 창작하기 위한 언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강흥구 시인은 ‘안개 속 희미한 그림자 하나 / 내게 손짓하여 / 가슴 울렁이며 따라 간다’는 의미심장한 어조는 그가 시를 향한 지향적인 심정의 발현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는 결국 시는 인본주의에서 추구하는 사랑(박애, 자비 등)으로 귀결하는 인간 본연의 가치관의 정립이라는 근본을 중시하게 된다. 그는 시에의 집념은 ‘나이 많아 건강이 최고라서 / 시 쓰기로 뇌 운동 / 헬쓰로 근력 키우고 / 악기 연주로 스트레스 날려 버린다(「건강 도우미」 중에서)’거나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났으니 / 시작의 향기에 취해 흘러 / 시의 바다에 이르자(「향기로운 만남」 중에서)’라는 비장한 각오와 같이 시에의 열정은 바로 그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강흥구 시집 『둥지의 아침』 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그는 ‘시를 잘 쓴다는 격려에 / 시인의 길 힘차게 내딛어 본다 // 믿고 싶은 달콤한 착각 / 인생항로의 등대 되었다(「달콤한 착각」 중에서)’는 그의 인생항로에 밝은 등대로 밝혀지기를 기원한다. 그는 대체로 이 시집을 통해서 ‘나’에 대한 인식 즉 존재이유를 재확인하면서 자성의 인생론을 정리하고 세월의 애환에서 오욕(五慾) 칠정(七情)에 대한 연민 그리고 가족애를 통한 인생역정의 회억 그리고 자연 친화를 위한 그의 심경을 잘 동화하거나 투사하는 모든 형상이 시로 승화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시집의 출간을 계기로 ‘여기에는 사랑이 있고 그리움과 슬픔도 있다. 목청 높여 부른 이 노래들이 작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다.(「시인의 말」 중에서)’는 그의 명징한 의지와 같이 그는 시의 세계에서 가슴 후련하게 유영(遊泳)하기를 기원한다. 시집 출산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