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과 봉화산 등정기
봉화산 정상
봉화산 등정기
제주의 올레길이 대박을 치자 전국 각지에서 올레길과 둘레길을 만들어 놓았다. 지리산에도 10여 년 전 둘레길이 만들어져 신문과 TV방송에서 여러 번 보게 되어 언젠가 나도 걸어보고 싶었다.
올해는 5월 5일 어린이날, 6일 임시공휴일, 7일과 8일은 토, 일요일이라서 나흘이나 되는 황금연휴였다. 더구나 6일은 특별한 임시공휴일로서 고속도로 통행료도 받지 않았다.
30여 년 전, 양주시의 덕산초등학교에서 절친하게 근무했던 동료 중 네(김태진, 정회열, 이승우, 필자) 사람은 그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다 다른 학교로 전근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소식을 나누며 만나고 또 몇 차례 부부여행을 했다. 이번 연휴에도 1박 2일의 여행을 한 달 전에 계획하여 실행하게 되었다. 한두 가족도 일정을 맞추기 어려운데 네 커플이 만나 1박 2일 여행을 함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가 꼭 만나려는 간절함이 없다면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출발 전에 여러 차례 전화하며 일정을 맞추고, 여행 장소를 선정하여 숙소를 예약했다. 6일 아침, 수원에서 필자는 친구와 7시 30분에 출발, 11시 20분에 광주대구고속도로의 지리산휴게소에서 다른 두 가족을 만났다. 이곳에서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고, 남원시 아영면 봉화산(烽火山) 입구로 갔다. 황금연휴임에도 이곳은 한산했다. 20여 대는 댈 수 있는 주차장에 우리 일행의 차 두 대를 포함하여 3~4 대 뿐이었다. 수원서 내려올 때 천안논산 간 고속국도에 차량이 많이 밀려 약 30여 분 이상이나 정체했던 걸 생각하면 정말 이곳은 정말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과연 깊은 산마을이었다.
농가 몇 집을 지나 산길로 접어드니 이미 철쭉은 지고, 시든 꽃잎만 초라하다. 철쭉꽃을 보러 왔는데 꽃이 저버려 허망했다. 그러나 산으로 올라가니 한 잎 두 잎 남아 핀 철쭉이 반갑다. 20분 정도 오르니 고갯마루인 치재. 여기에서 왼쪽으로 오르니 봉우리가 보였고 10분 정도 오르니 정상, 해발 712 m의 매봉이었다.
봉화산 줄기에 있는 매봉
두루 전망을 살피니 산등성이와 봉우리가 하늘에 닿도록 사방으로 펼쳐진 산의 바다였다. 병원에선 환자만 보이고 산에서는 산만 보인다. 매봉으로 올라온 맞은편 산등성이를 따라 멀리 봉화산의 정상이 보였다. 정상 주변에는 벌겋게 핀 철쭉꽃이 피었다.
맞다. 저거다. 저게 철쭉꽃이다. 가자! 정상에는 아직도 철쭉이 피어있고, 등산을 왔으니 당연히 정상에 서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한 친구는 이 매봉에서 일단 막걸리를 한잔 하자고 자리를 펼 기세였고, 한 명은 저 봉우리까지는 무리라며 난색을 표했다. 내 추측으로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 “사람이 제 아니고 메만 높다하더라“는 격이다.
그 시각, 1시 30분. 두 시간이면 충분히 봉화산 정상에 도착할 것 같아, “나는 혼자라도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소신을 밝히고 함께 가길 제안했다. 정 힘들면 간 길로 다시 내려오니, 내려오다 만나면 되지 않겠느냐며 갈 수 있는 곳까지라도 가보자고 적극 권유하여 우리는 매봉에서 내려와 아까 올라왔던 치재 고개 삼거리를 통과했다.
고개 마루에서 잠시 오르니 정자가 나왔다. 정자의 벤치에서 잠시 쉬며 바나나 한쪽과 방울토마토를 먹었다. 남자 셋은 막걸리 두 병을 거뜬히 비우고 일어섰다. 산등성이를 타고 가니 그다지 힘겹진 않았지만 가파른 경사를 만날 때는 진땀을 빼기도 하였다.
일행 중 두 부부가 먼저 가 보이지 않았지만 뒤처진 분들 때문에 함께 천천히 2 시간쯤 걷다보니 봉화산 정상을 마주 볼 수 있는 산마루에 서게 되었다. 김 선생님은 정상까지 가는 건 무리라며 그만 가자고 하셨다. 필자의 아내도 고산증으로 힘이 들었는지 나에게 먼저 가라며 따라오지 못하였다. 내 짐작으로 10분이면 정상에 오를 건데, 여기서 포기하여 가보지 못하면 아마 평생 저 정상에는 가지 못할 거라며 조금만 더 가자고 했다. 그러나 김 선생님은 “10 분으로는 못 갈 거리이니, 먼저 가면 천천히 뒤 따라 가지요.” 하고, 나에게 먼저 출발하라 재촉하셨다.
두 가족이 앞서 갔기에 나는 서둘러 정상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내리막길에서는 달렸고, 오르막길에서는 약간 무리하면서 앞서 간 일행을 따라잡고자 서둘렀다.
정상에 선 것은 앞 봉우리에서 예상했던 대로 10분 거리였다. 뒤에 처진 김 선생님 내외와 아내에게 10분 거리니 어서 오라고 전화하니 가까이 왔다고 했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잠시 후 세 사람이 오르니 8 사람 모두 해발 919 m의 봉화산 정상에 설 수 있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 봉우리에 언제 오르나’ 하며 지레 겁을 먹기 쉽다. 늦게 온 세 사람도 정상을 밟게 되니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봉화산 기슭의 철쭉은 거의 모두 시들었는데 정상 부근에는 철쭉이 한창이다. 연분홍 산철쭉과 진분홍 철쭉이 무더기를 이루어 화려하게 피었다. 마치 빨간 물감으로 방금 칠한 듯, 붉은 색이 밝은 햇빛을 받아 더욱 짙었다. 진달래가 부끄럼 타는 16살 소녀의 앳띤 미소와 같다면 진홍빛 철쭉은 20대 여인의 선정적 입술빛 같다. 봉화산(烽火山)이란 이름의 유래도, 어쩌면 저 철쭉이 불타오를 듯하여 끌어당길 봉(夆) 자에 불 화(火) 변을 붙였을 것 같다.
봉화산 정상의 철쭉꽃
봉화산에서 내려와 저녁 식사를 위해 무려 50여 km나 떨어져 있는 곳의 한우 고기집을 찾아갔다. 구례 방향의 산기슭에 있는 창고형 식당이었는데 승용차가 50여 대 주차되어 있었고, 100여 명의 사람들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다른 곳보다 값이 싸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유명한 식당이라 했다. 고기도 신선했고 육질도 부드러워 맛이 좋았다. 사람들이 많이 올 이유가 충분했다.
모처럼의 쇠고기로 입이 호식을 하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약, 소주를 세 병이나 비워 상승된 기분으로 지리산온천랜드에 있는 블루썬리조트에 도착했다. 방에 들어와 짐을 내려놓은 후 옷을 갈아입고 마켓으로 갔다. 맥주와 소주, 음료수와 안주, 과자와 아이스크림 등 간식을 한 바구니가 넘치도록 담아 계산하니 5만원이 넘었다. 8 명이 둘러앉아 먹으려니 탁자나 식탁으로는 좁아서 방바닥에 풀어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주 몇 잔 돌아가니 조는 분이 있어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나도 금세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2. 지리산 둘레길 1코스 산행
지리산의 둘레길은 무려 22개 코스가 있다. 이 둘레길을 걸어서 모두 돌아보려면 아마 20일 이상은 걸어야 할 것 같다. 이번에는 일정상 한 나절만 걸을 수 있기 때문에 광양에 사는 친구가 선택한 1코스 중, 내송마을에서 구룡폭포와 육모정까지 4 km 남짓 되는 거리를 선택했다.
지리산(智異山).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이름의 산.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다 머물러 솟아 두류산(頭流山)이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전라남북, 경남의 3개 도, 남원군과 구례군, 하동군 산청군 함양군 등 5 개 군에 걸쳐 있다. 1,500 미터가 넘는 산봉우리가 10 개나 되고, 1,000 미터가 넘는 산까지 합치면 20여 개가 된다. 조금 작은 산봉우리까지 합치면 무려 85개의 봉우리라 한다.
피아골, 뱀사골, 칠선계곡, 한신계곡 등 20여 개의 골짜기가 있으며 화엄사, 쌍계사, 실상사, 대원사 등 수많은 사찰과 암자가 있다. 그 외의 명승지로는 남원의 광한루와 청학동, 구룡폭포와 춘향묘 등 많은 명소를 거느리고 있다. 이 지리산은 설악산의 1.5 배, 한라산의 3 배 크기로서 고산준봉(高山峻峰)의 매우 넓고 장엄한 산이며 산고수려(山高水麗)한 명산이다.
우리는 아침 7시에 숙소에서 나와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추어탕으로 먹었다. 내송마을, 둘레길 입구에 도착한 건 8시 30분. 상당히 일찍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담하고 정원이 예쁜 집 두어 채를 지나며 힐끗거리다가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공기가 무척 신선했다. 맑은 햇살, 고요한 산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담을 나누면서 숲으로 들어갔다. 투명하던 햇살도 우거진 나무 때문에 닫혀버리고 호젓한 오솔길이 되었다.
둘레길이라서 대체로 평탄한 길이겠거니 예상했으나 그건 오해였다. 가파른 경사의 길을 땀 좀 빼면서 걷는 구간도 몇 군데나 있었다. 30 분쯤 걸어가던 중 야생화와 기묘한 나무들을 촬영하고 메모하다 일행과 뒤떨어지게 되었다.
기묘한 소나무 뿌리. 놀라운 생명력
나는 기묘한 나무와 야생화의 사진을 찍느라 일행과 자꾸만 멀어져 일행을 따라가느라 힘이 들었다. 문득, ‘왜 나는 저들과 같이 편안한 산행을 하지 못하고 힘겹게 올라야 하나?’ 하는 회의를 하며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 나는 그래서 저들과 달리 책을 몇 권 쓸 수 있었고 수시로 기행문도 남길 수 있었구나’ 하는 발견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 산행을 하며 느낌을 갖는 건 비슷하지만 나는 명주실을 뽑아내는 누에처럼 글을 남길 수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무하며 반가운 꽃이나 기묘하게 자란 나무들을 보느라 걸음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소란스레 다가오던 40대로 보이는 5~6 명의 아낙들이 나를 앞질러 가기에 어떤 모임이기에 이렇게 일찍 산에 왔느냐고 물었다. 남원에 사는데 같은 마을의 이웃들이라 간단히 대답하고는 가파른 산길을 나보다 더 빨리 올라갔다. 평소에도 자주 오는지 이 산의 지리에도 밝고 야생화의 이름도 많이 알았다.
물푸레나무꽃
호젓한 오솔길에 기묘하게 자란 소나무와 참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이파리가 넓고 둥그런 쪽동백, 물푸레나무, 오리나무, 참나무 등이 있다. 하얗게 막 피어난 층층나무꽃, 고광나무꽃, 고추나무꽃과 노린재나무꽃들이 눈에 덮인 것처럼 하얗게 피어 있다. 이곳저곳에 피어있는 미나리아제비, 은대난초, 졸방제비꽃, 풀솜대 등, 여러 종류의 야생화들이 피어 있다. 둥글레도 줄기에 하얀 꽃을 매달고 있고 노란 양지꽃도 작지만 새초롬히 피어있다. 산새들은 밝은 아침이 그리도 즐거운지 떠들고 지저귀며 여기저기에서 노래를 불렀다.
숲 속으로 들어갈수록 빽빽히 자란 나무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투명하다. 이 깊은 산으로 들어왔기에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고, 기화요초(琪花瑤草)도 볼 수 있었다. 김 선생님은 무성히 자란 둥글레의 하얗고 긴 뿌리를 하나 캐어 맛을 보라고 건네 주셨다.
한 나무에서 가지로 자랐다가 옆 가지가 맞붙은 연리목도 보았다. 아까의 아낙들에게 이 연리목 좀 보라고 했더니, 방금 전에 유명한 연리지가 있었는데 못 보았느냐며 오히려 내게 물었다. 나중에 홍보물의 사진으로 보니 지나오다 본 것 같은데 유심히 보지 못하고 스쳐 버린 것 같았다. 이렇게 심산유곡(深山幽谷)의 진경(眞景)을 보려면 그만큼 시간과 경비를 투자해야 하나 보다.
연리지
내송마을에서 개미정지와 임도, 솔정지를 지나 구룡치에서 샛길로 들어 구룡폭포 쪽으로 내려왔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가 폭포소리가 나는 위쪽으로 가파르고 좁은 철계단을 100여 미터쯤 오르니 구룡폭포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폭포는 직선으로 쏟아지는 걸 연상하지만 이 폭포는 휘어진 바위를 타고 물이 휘어져 쏟아지는 모양이 특별했다. 짙은 나무 그늘 바위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이 마치 하늘이 구멍이나 쏟아지는 것 같았다. 폭포 아래는 여느 폭포처럼 둥글고 깊은 못에 물이 가득하다. 햇살이 비치는 바위 웅덩이의 물빛이 우유를 쏟아놓은 것처럼 뿌였다. 왜 그럴까? 유심히 보며 생각하니 송홧가루가 물에 씻겨 와서 섞이어 비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남원 8경 중 1경인 구룡폭포와 용소. 9 마리의 용들이 못에서 놀다가 하늘로 승천하는 모양이어서 구룡폭포라 이름 했고, 동네 이름은 용호동이라 했단다. 용소로 볼 수 있는 웅덩이는 실제로는 12 개이지만 일반적으로 10 이하의 최대 숫자를 9로 보기 때문에 구룡이라 했단다. 구룡폭포 물줄기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와 숲 밖, 자동차 길로 나왔다. 계곡 입구 한 쪽에 구룡폭포 안내소가 있어 관광지도를 하나 얻었다.
휘어져 쏟아지는 구룡폭포
11시 30분. 약 3시간 정도를 걸은 셈이다. 계곡에서 나오니 친구 둘은 한 차를 타고 내송마을에 가서 출발 때 놓고 온 차를 가져왔다. 차를 타고 1~2 km를 내려오니 춘향의 묘가 나왔다. 40여 년 전 어머니께서 광한루와 춘향의 묘를 보고 오시어 두고두고 자랑하셨던 곳이다. 하얀 돌계단을 새로 만든 것 같다. 옛날에는 산 속에 쓸쓸히 있었을 텐데 관광자원으로 개발했나 보다.
춘향 묘는 100여 m 나 되는 가파른 계단 위에 있었고, 계단 맞은편에는 화려한 단청으로 지은 육모정이 근사했다. 육모정 뒤로는 계곡이어서 더 운치가 있었다. 400여 년 전 조선시대 선비들이 이 계곡의 바위 위에다 육각형의 정자를 지어놓고 놀았다는데 홍수로 떠내려가, 계곡 옆 언덕 위에 산뜻하게 새로 지어 놓은 것이다.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새로운 명소가 된 것 같았다.
지리산 둘레길에서 만난 기이한 나무뿌리
김 선생의 내외분이 기차를 타고 세종시로 먼저 가신다 하여 구례구역으로 갔다. 40여 년 전에 보았던 조그만 역사가 아니고 새로 지은 신식 건물이었다. 철로 위에 전철의 전선이 혼란스러웠다. 선생님과 작별하고 남은 우리 6 명은 구례 읍내로 돌아와 올갱이국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 사람이 넘쳐 10여 명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역시 유명한 식당인가 보다.
올갱이국이 나와 숟가락으로 저어보니 검푸른 올갱이가 상당히 많았다. 숟가락으로 듬뿍 4~5 개는 건져낼 정도의 양이었다. 별미였지만 옛날의 그 고소한 맛과는 차이가 있었다. 섬진강에서 잡는다는데 알이 굵은 걸 보면 수입품이 아닐까 생각했다.
식당에서 나오니 여전히 10여 명이 자리가 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광양시에 사는 이승우 선생과 여행 경비를 계산하고,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서려니 아쉬움과 섭섭함으로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었다. 총각 때 교단에서 만나 무려 35년이 넘었으니 참 긴 인연이다. 이 친구의 안내 덕택에 좋은 구경, 맛있는 음식, 즐거운 담소, 편안한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스승을 잘 만나야 발전하는 것처럼 여행에서는 가이드를 잘 만나야 편하고 유익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이번 여행은 지리산 가까이 사는 이 친구 덕택에 여러 차례 좋은 여행을 했다. 생애의 고마운 친구다. 이렇게 40년 가까이 교분을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정회열 선생의 차를 타고 상경하며 함께 여행한 분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통화를 하며 즐거움을 되새김질 했다.
햇빛 참 눈부신 봄날. 송창식의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졌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첫댓글 감사합니다
첫째 사진이 멋있습니다. 촬영 솜씨가 대단합니다. 연리목과 연리지도 신기합니다. 나중에 찾아보겠습니다. 지리산 가까이 산다는 친구도 감사하네요! 총각 때 만나 35년을 교우한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서로 오랜동안 정을 나누고 배려한 결과라 생각됩니다.
푸르른날!!! 송창식이 생각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공부가 되네요^-^ 5월 장미의 계절입니다. 뜰에 아버지가 심어놓으신 장미가 만발하였습니다. 장미 한 송이 올립니다! 이 아름다운 5월에 더욱 행복하소서!!!!!!^-^
긴 글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기억을 위해 자세히 썼지요.
봉화산이 봉화마을에 있는 산인줄 알고 읽었는데 아니군요^^ 지리산은 젊었을때 몇번 가보긴 했으나 기억이 가물한데 선생님의 산행기를 통해 지리산의 아름다움이 조금씩 떠오르네요. 자상한 여행기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글쓰지 않으면 소중한 기억들을 잃어버리게 돼 제 자신을 위해 쓰고 다른 분이 참고하도록 했습니다. 글 잘 읽어주시고 고마운 댓글 달아 주시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