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에 들어서고도 어깨를 펴지 못했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장례식장 기운에 마음이 눅눅하다. 밤 운전도 부담스러워 차선을 바꾸려는데 조수석 대시보드 위 구석에 연두색 물체가 보였다.
어머머어, 어떡해~!! 벌레잖아. 제가 벌레라고요? 저 여치예요. 여치고 매미고 곤충은 싫거든. 얼른 나가. 나는 창문 열림 버튼을 눌렀다. 아줌마! 저 좋아했잖아요. 보릿짚 엮어 집 만든 거 생각 안 나요? 날 못 잡아서 난리더니, 속된 말로 이렇게 쌩까기예요? 뭐래. 내 나이 육십이야. 너 운전대 쪽으로 휙 날아들지 마라. 이 팸플릿으로 확 내려친다. 아니, 왜 이러세요, 저도 이렇게 연두연두 하는 고운 날개 다치고 싶지 않거든요.
당돌하네. 도대체 어떻게 탔어? 아줌마가 차 문 열고 상주와 인사 나눌 때요, 아니 내가 어디로 갈 줄 알고? 나 한 시간도 넘게 갈 건데. 어디든 상관없어요. 산자락 아래 장례식장 주변 숲에서 진즉부터 벗어나고 싶었어요. 날마다 앵앵대는 엠블런스 소리도 싫고, 아파서 죽고 사고로 죽고 자살해서 죽고… 천수 누리고 편안히 가셨다는 말 들어 본 지가 언젠 줄 모르겠어요. 아흔이 넘어도 아쉽다고 야단, 도대체 인간들 욕심은 어디까지인지. 만족을 모르는 것 같아요. 백세시대니까 그렇지. 가족이고.
영원한 게 있나요. 우리 곤충 세계는 약육강식 순리를 받아들여요. 그런데 인간들이 걸핏하면 해충제를 뿌려대니 살 수가 없어요. 메뚜기도 반딧불이도 없어졌잖아요. 옛날 할아버지 시대엔 약을 올리면서 놀아도 잡았다 놓아주곤 했다니 참 인간적이죠. 곤충 입에서 인간적? 너 개그하냐? 인간적이란 말에 움찔하시네요. 죄다 체면쟁이들이에요. 부모님 병원비, 장례비로 쌈질하며 겉으론 애달픈 척. 다 알거든요. 인간 세계엔 양면성이 있는 거야. 다 솔직할 순 없어.
오늘 망자는 누구예요? 음, 연고자라곤 아버지가 다른 서른 살 아래 동생 한 사람뿐. 평생을 외롭게 사셨다네. 극락왕생하셨으면 좋겠다 싶어 왔지. 아줌마, 생시에 찾아뵀어야죠? 얘 좀 봐라. 그래, 여치 부처 나셨네.
아줌마 죽음은 어떨 것 같아요? 모르겠는데. 아니 육십이 넘었다면서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어요? 사부작사부작 가고 있잖아. 어느 인문학 교수가 연말이면 새 수첩에 연락처를 옮겨적고 유서를 쓴대. 처음엔 감정이 복받쳐서 할 말이 많았다더라. 부탁할 것도 많고. 근데 해마다 써보니 염려도 부탁할 것도 없더래. 삶을 정리하는 개념이 달라지더라는 거야. 부탁도 자기 욕심이더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니 한번 써보라 했어.
써봤어요? 안 썼지. 진짜 죽을까 봐~. 겁나세요? 가족을 볼 수 없다는 게 애석하달까. 불가 식으로 윤회한다면 다시 만나려나. 그런데 얼마 전 미술 심리치료 마지막 날에 죽음 맞이를 했어. 깜깜한 강의실에 장송곡이 흐르고 강사가 조문을 나지막이 읽었어. 망자가 되어 떠나는데, 정말 기분이 묘하더라. 60년 살아온 날들이 일순간에 지나갔어. 고달팠고 애태웠고 즐겁고가 겨우 이것이었나. 아무 할 말도 없고 슬프지도 않더라. 내 생활이 좀 안정돼선가. 카르페 디엠~. 죽음이 너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겠지만 그 순간에 충실했다면 편안하게 받아들여질 것 같았어.
뻥 치지 마세요. 살날이 진짜 석 달밖에 안 남았다 하는데 정말 의연할 수 있겠어요? 사람들이 말로는 다 내려놨다고 하는데요. 너무 쉽게 말하지 마세요. 지하철에서 내리듯이 가고 싶다, 연명 치료 안 하겠다, 죽음 앞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갔다 와 보고나 말씀하시죠.
너 몽테뉴 알아? 아줌마도 개그 하셔요? 너도 나만큼 무식하네. 그는 ‘당신의 죽음은 우주 질서의 여러 부품 중 하나이다, 라고 수상록에 적어놓았대. 우리가 어디선가 이 세상에 들어온 것 같이 이 세상에서 빠져나가는 게 죽음이라고. 장송곡을 들으면서도 코 고는 사람 때문에 터져버린 웃음처럼 시크하게 받아들이면 좋지.
묘비명은요? 노을 지다. 아줌마 깬단 말 알죠? 별 뜻 없어. 내 아이디가 노을 40이거든. 조지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고 해서 화제가 됐어. 개그맨 김미화는 웃기고 자빠졌네라 할거래. 나는, 아무런 기록을 하고 싶지 않아. 나를 아는 사람들 가슴속에 새겨진 나 그대로 머물다가 잊히길 바라.
아, 수의에 대해선 할 말 있어. 문헌을 보면 수의는 시신을 감쌈으로써 관 속에서 뒤틀리지 않게. 공기의 유입을 막아 붓지 않게, 장례 기간에 혹 부패에 의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감싸는 거래. 그래서요? 요즘은 죽자마자 냉동고에 넣었다가 화장되잖아. 겹겹 삼베 말고. 하얀 드레스나 즐겨 입던 원피스에 레이스 달린 흰 양말, 망사장갑 끼고 흰나비처럼 나풀나풀 날아가고 싶어. 너의 연둣빛 날개처럼. 오호~~ 아줌마 나이스!
아파트에 도착하니 열 시 반이다. 여치는 두어 번 움직거렸으나 운전석으로 날아오진 않았다. 나는 차 트렁크에서 빈 쇼핑백을 꺼냈다. 팸플릿으로 여치를 살살 건드려 가까스로 쇼핑백에 몰아넣었다. 마구리를 접고 중앙공원으로 건너갔다. 풀숲에 여치를 놓아주었다. 잘 가시게. 여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인생을 꼭 이해하려 하지 말라.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맞이하라.' *
시 한 구절이 별에서 한 자 한 자 똑‧똑‧똑 떨어진다. 빗방울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인생> 중 한 구절임.
(2023년 올해의작품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