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은 바로 '용기'입니다.
이주는 아주 자연스러운 경제지리학적 세계적 현상이라고 합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사람은 살기 힘든 곳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옮겨가 살고자 하는 욕구를 가졌죠.
결핍을 느끼면 그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그 욕구 말입니다.
오래전부터 한국은 ‘사람들이’ 떠나는 나라였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였죠.
하긴 먹고 사는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고국을 떠났습니다. (요 부분도 대부분은 동의하시죠?)
물론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이주한 이들도 적진 않았습니다.
자신의 선택권 없이 부모 따라, 혹은 양부모가 정해져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 현재도 약 180여 나라에 750만 명의 재외동포가 산다고 합니다.
그런 한국이 이젠 아주 많이 달라졌습니다.
한국인의 해외 이주가 급감하고,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많던 해외 이주와는 반대로 외국인의 한국 이주도 급증한답니다.
현재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200만 명이 넘는다는데, 이중에는 결혼이주가 가장 많다고 하네요.
이 모든 이유는 당연합니다.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죠.
저는 이주를 한 번만 하진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독일로, 그리고 다시 스위스로 이주하여 살았습니다.
이주와는 다른 의미지만, 스위스에서도 이사를 여러 번 했었습니다.
남편의 월급이 오를 때마다 좀 더 나은 집을 찾아 이사를 했죠.
그러다 이제 다시 한국으로 이주하였네요.
그러나 이주를 했다고 늘 더 나은 곳으로만 가진 않습니다. 가는 길이 늘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환경이나 험하고 힘든 인생길을 걸어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외국으로의 길은 언어장벽이나 문화 차이 등으로 첨부터 만만치 않습니다.
이럴 때마다 필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그 이주의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사람도 많죠. 이들의 이민 성공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뉴욕 월가 투자은행(브라운 브라더스 헤리먼) 애널리스트 신순규 씨는 시각장애가(선천성 녹내장, 9세 때 시력 완전상실)
있었음에도 보통 건강한 사람도 해내기 어려운 공부를 마치고(하버드 졸업), 기업계, 금융계에 성공하셨습니다.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은 “잠을 안 자면 되죠. 그까짓 꺼 잠 안 자고 공부하면 안 되겠습니까? 난 할 수 있습니다!” 였어요.
건반을 보지 않고, 눈을 감고도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것처럼, 컴퓨터 자판기를 보지 않고도 컴퓨터를 칠 수 있는 것처럼
신순규 씨는 앞이 안 보여도 계산기 자판을 외워서 일반 계산기를 사용하여 그 어려운 국제 공인재무분석사(CFA) 시험에
합격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신순규 씨만이 아니라 외국에 사는 (살았던) 사람들 개개인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보면 정말 모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외국으로 나가 산 사람들은 대부분 용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뭐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그분들마저도 외국에서는 참으로 용기 있게 사신 분들이 많습니다.
변화를 원하고 결핍을 느꼈음에도 그 용기가 부족하여 행동으로 옮기지 못 한 사람도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아무리 한국이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 용기가 없으면 돌아오기 힘듭니다.
나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모두 용기 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특혜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여러분은 외국 이민 하신 점, 혹은 한국으로 돌아오신 용기 외에도 어떤 특혜를 누리셨는지요?
첫댓글 동감가는 말씀이십니다.
이민당시에는 용기와 더불어 스스로 굳게 다짐한 삶의 개척정신이라고도 봅니다.
그래서 젊을때 일을 저지르는?것이겠죠.
한국으로 돌아올때는 나이가 들어서 돌아오니 더욱 용기와 각오가 필요한듯합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 역시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한 듯합니다.
'자유의 비밀은 용기' 뿐이라는 4.19 선언문 글귀가 생각나는군요.
"귀소본능이 충족되고나면 다시 비교심리가 작동하는 것이 생명체가 일생 겪는 섭리, 그 본능의 발현과 제어에는 개체별 차이가 크다(철새와 텃새, 낙엽수와 상록수)"는 요지의 글에 오래전 공감했었는데, 이제는 그 비교심리를 본능이라고도 한답니다.
지구촌시대라 한지도 이미 오래전이고 이제 우주여행 AI디지털 문명시대, '이민과 역이민'으로 양분하기보다 그냥 '이주'라고만 하면 어떨지요?
"이 세상 어디에도 낙원은 없고 다만 내마음 속에 낙원도 지옥도 있다"는 말씀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이 카페의 이름이 역이민이고, 이민 간(갔던) 분들의 심정을 서로 나누는 곳이라 생각되옵니다. 양분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애독했던 글 보다 훨씬 내 마음에 와 닫는 글에 더욱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건승과 건필로 카페가 새롭게 변화되기를 기대 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편을 기대해봅니다.
글을 올리는 분들이 많지 않아 오히려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입니다.
다행히 토론토 님의 응원에 그 조심스런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젊었을때는 혼자이니 그래도 결정이 쉽지만 가족이 생기면 힘들어 졌다가 아이들이 성장해서 떠나면 그래도 좀 쉬어지지만 배우자의 생각도 있으니 그리 쉽지는 않지요. 선택한 길에 밝은 빛이 있기를 바라며 힘든 결정을 하신 용기에 찬사를 드립니다. 저희는 왔다리 갔다리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요번 나들이에 너무 힘들어서 팬들럼의 추가 다른 쪽으로 기울어 집니다...
제게도 그리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적어도 70 중반에 내린 어려운 결정이었죠. 그것도 용기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겁니다. 용기 있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서야 용기라고 말하며 다행이라 여기고 있죠. 모든 사람들의 선택을 존경하며 인정합니다.
별떵이님이 다시 오셔서 카페가 아주 풍성해졌어요 ㅎ
나라를 떠나는 것도 다시 돌아오는 것도
보통 이상의 용가가 필요한 거 같아요
각자의 동기나 상황은 다를 수 있지만요
자주 못 들어와도 글은 잘 읽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떠날 때는 두려움이 더 많았을 테니 용기도 더 많이 필요했던 거 같아요.
'자유의 비밀은 용기 뿐'이라는 4.19혁명의 선언문이 늘 생각납니다.
이렇게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걸 느끼는 거죠.
고마워요, 저도......
글을 쓰고 어딘가에 공론으로 발표하는 것 도 ...
대단한 "용기" 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 중이었습니다 . .
자신을 낮선 들판에 내 던지듯 드러내는 게 어찌 용기가 아니겠습니까 ? . .
학자 - 學者 다우신 언사를 올려 주시어 읽는 사람도 뿌듯한 자긍심을 느낍니다 . .
學者 가 맞으시지요?
그렇지요, 우린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하하하
잘 읽고 갑니다
용기 그한마디 오늘 은 가슴에 새기면 이것저것 밭농사에 도전해 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야 할 것이 바로 용기 아닐까 싶어요.
그렇지 않음 쉽게 포기하는 거 아닐까요?
저도 손바닥 만한 밭뙈기에 상추, 피망, 토마토, 가지 심었어요.
용기 보다는 무지와 젊음이 미국행 결정을 도운것 같어요. 이제는 미국 귀신이 무섭지 않을정도로 여기서 오래도 살았습니다. ㅎㅎ
역이민 하시기전 한국에서 장기간 생활해 보셨는지 궁금해요.
네, 역이민하기 전 얘기도 언제 써볼게요.
사람마다 처한 환경과 형편이 모두 같지 않으니
이민과 역이민의 처지가 각각 일 겁니다.
귀한 경험담을 기대 합니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과 형편도 다르지만, 언제 어디로 이민을 갔느냐고 참 다르겠죠?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모두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습니다.
환경과 형편이 같더라도 같은 날, 같은 나라로 이민을 갔어도
개개인의 경험은 천차만별 아니겠어요?
그래서 개개인의 경험담이 모두 소중하지 않나 싶네요.
이중 국적으로 살아가는 지금 별떵님의 글에 많은 공감을 느낌니다.
또한.긴~ 내용이 지루하지 않고 쟈밋게 읽어내려 가게
하는 별떵님의 재주에
박수를 보냅니다.
잠깐!!!
별떵님의 "별떵" 이란 의미가 궁금 합니다.^^
여러 번 설명을 드리긴 했습니다만......중학교 문학반 선생님이 붙여준 별명 '별'에서
달덩이를 연상하는 별덩이, 그러나 소리 나는 대로, 별떵이입니다.
달떵이, 햇떵이, 별떵이......
참, 쪽지 보냈는데 읽어보세요!!!